케임브리지의 고민: 뼈빠지게 공부해 봤자 빌딩 부자에게 밀린다
1995년 봄의 어느날,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서울대 선배이고 같이 하버드를 다니던 형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우리가 아무리 서울대를 나온 하버드 박사라고 해도 한국 가서 맞선 시장에 나가면 변변찮은 XX대 나온 부잣집 아들, 50억짜리 빌딩 가진 놈한테 밀리게 되어 있다. 공부 열심히 하면 뭐 하겠냐.”
그 선배 형 얘기는 ’21세기 자본’ 이 책에 나오는 ‘라스티냐크의 고민’과 일맥 상통한다. 뼈빠지게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법률가가 되는 것보다 부잣집 딸과 지금 결혼해서 평생 팔자 고치는 게 낫다는 보트랭의 설교. 이것이 바로 ‘상속 자본주의’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대조이며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선배와 내가 투덜거리고 있던 그 순간, 같은 케임브리지 하늘 아래 MIT 경제학과 교수로 있던 피케티 역시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난 놈’인 피케티는 그 후 약 20년 동안 이 문제 의식을 천착하여 이렇게 두꺼운 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저 부럽기만 하다.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 돈이 돈을 번다
피케티는 자본소득 = 자본수익률 Ⅹ 자본 (책에 있는 대로 표현하면 자본소득분배율 = 자본수익률 Ⅹ 자본소득비율, α = r Ⅹ β. 자본소득분배율은 자본소득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며, 자본소득비율은 자본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비율) 이라는 간단한 수식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이 식은 그냥 자본수익률의 정의를 나타낸 것 뿐이다. 여기서 자본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요소로서의 자본이 아니다. 그냥 ‘재산’일 뿐이다. 자본의 수익률 역시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본의 가격(한계생산성과 같은)이 아니다. 그냥 ‘재산의 수익률’일 뿐이다. 자본소득은 임대료, 배당은 물론 자본이익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피케티의 책에서 자본수익률(r)은 그냥 ‘다양한 관련 집단의 상대적인 협상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역사적으로 대략 5%에 수렴한다고 분석되어 있다. 자본축적이 많아져 자본소득비율(β)이 높아지면 자본수익률이 약간 떨어질 수는 있으나 완벽한 반비례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자본소득과 자본소득분배율(α)이 늘어난다는 것. 쉽게 말하면 재산이 많아진다고 해서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재산에서 나오는 소득은 늘어난다는 얘기다(개인의 부에 적용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는). 부의 분배가 소득 분배보다 불평등이 더 심하기 때문에 자본소득 역시 노동소득보다 불평등이 더 심하다는 경향을 여기다가 대입하면 결국 자본소득 비율이 늘어날수록 소득 불평등도도 높아진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구체적인 숫자를 넣어 본다면, 국민소득 100원, 자본 600원 (β=600%), 수익률 5%, 자본소득 30원 (α=30%)인 경제를 생각할 수 있다. 국민소득은 100원 그대로인데 자본이 1,000원으로 늘어났을 때 (β=1000%) 수익률은 4%로 상대적으로 소폭 하락하여 자본소득 40원 (α=40%)이 되고 결국 소득불평등은 더 커진다는 얘기다.
여기서 끝냈으면 되었을 것을, 피케티는 굳이 주류경제학의 생산함수(콥 더글러스 함수)와 대체탄력성은 물론 ‘케임브리지 자본논쟁’까지 끌어오고 있다. 나 자신 나름 골머리를 썩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자본(기계)의 노동 대체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대체탄력성이 정말 1보다 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면 β가 늘어날 때 α도 늘어난다), 미시경제학의 기반이 되는 ‘규모에 따른 수익 체감’을 배격하는, 즉 현실에 있어서 ‘규모에 따른 수익 증대’가 많더라’는 요즘 읽은 책들에 나오는 주장도 상기해 보았다. 피케티가 얘기하는 자본의 상당 부분이 주거 자본이기 때문에 여기서 나오는 생산물(주거 서비스)에는 노동이 필요 없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본수익률이 경제 법칙이 아닌 협상력, 즉 ‘자본가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정치사회적 해석’이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자본수익률이 5%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피케티 말대로 선진국 자본의 대부분은 산업자본(주식)과 주거자본(부동산)인데, 둘 다 변동성이 엄청나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책 뒷부분, 적립식 연금을 설명한 부분을 보니 피케티 자신이 자본수익률의 불안정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자본수익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5~10배는 더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적립식 연금이 부과식 연금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결론적으로 피케티 책의 헛점 중의 하나가 실제 자산시장에 있어서의 자본수익률의 높은 변동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본수익률 5%는 역사적, 거시적 평균’이라고 주장할 테지만.
그리고, 미시적으로 볼 때 관찰되는,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수익률도 높아지는 현상(미국 최대의 대학기금인 하버드대 기금이 수익률도 높더라는…)과 거시적,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 수익률이 일정하다는 가정을 합하면 자본의 수익률도 부익부 빈익빈이 된다는, 그래서 자본(부)의 불평등이 더 커지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내 재산의 지난 10년간 수익률은 5%가 안 되는 게 분명한데, 이는 어떻게 설명할까? 나름 유명한 자산운용사의 주식형 펀드들이 많은데 말이다. 그 펀드들이 충분히 규모가 크지 않았거나, 아니면 10년은 역사적 수익률을 판단하기에 너무 짧거나. 아마 둘 다 진실일 것이다. ‘부자들은 수십년의 장기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다’는 얘기도 이 책에 나오니까 말이다.)
어쨌든 결론은,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돈(자본)이 돈(소득)을 번다는 것. 자본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 때문에 수익률이 왕창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 저성장 시대에 돈(자본)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이것은 자본소득비율=저축률/성장률 (β = s/g)이라는 공식이다. 앞의 ‘제1기본법칙’과 비교할 때 이 수식은 직관적인 이해가 그리 쉽지 않다. 제1기본법칙이 자본수익률을 정의한 항등식이라면 제2기본법칙은 장기적인 균형을 나타낸, 그러니까 단기적으로는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숫자를 먼저 대입해 보자. 올해 국민소득 100원, 자본 600원 (β=600%), 성장률 2%, 저축률 12%인 경제를 가정한다. 자본소득비율=저축률/성장률이 성립하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600%=12%/2%) 내년에는 국민소득 102원, 자본 612원 (올해 자본 600원+올해 저축 12원)으로 자본소득비율은 계속 600%가 된다.
이 식이 균형식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성장률이 1%로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내년에는 국민소득 101원, 자본 612원이니 자본소득비율은 612/101= 606%, 내후년에는 국민소득 102.01원에 자본 624.12원이니 자본소득비율은 612%,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자본소득비율은 저축률/성장률=12%/1%=1200%에 수렴하게 된다. (엑셀로 계산해 보니 1100% 넘는 데만 180년 걸리기는 한다.)
무슨 뜻일까? 내 생각에, 이 ‘법칙’은 성장률이 느리든 빠르든 상관 없이 자본(재산)의 축적은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축은 오직 자본소득에서만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위의 예에서 자본수익률 5%에 자본소득분배율 30%를 다시 가정하자. ‘자본가’는 30원의 소득을 얻어 그 중 18원만 소비하고 12원은 저축(재투자)하여 재산을 늘린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펫은 자본소득을 절대 다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성장률이 제로라고 할지라도. 성장률(소득 증가율)이 낮을 때도 이런 저축은 계속되기 때문에 결국 소득 대비 자본 비율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식이 의미하는 바를 거시경제학적으로 풀면 ‘저축을 많이 하고 느리게 성장하는 국가는 장기적으로 소득에 비해 거대한 자본총량을 축적할 것이다’는 얘기가 된다. 피케티 본인의 표현이다. 어째 확 와 닿지 않는다.
아니면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1인당 생산이 한 세대에 10배씩 증가하는(1년에 8% 성장하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그가 상속받은 재산보다는) 스스로의 노동으로 얼마나 돈을 벌고 저축할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낫다. 이전 세대의 소득은 현재 세대의 소득에 비해 매우 적어서 부모와 조부모가 쌓은 재산은 가치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해가 좀 되는 것 같다. 성장률이 빠른 사회는 나 자신이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부모 세대가 가난했기 때문에) 재산, 정확히 말하면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의 예에서 성장률이 8%로 빨라졌다고 하자, 내년에는 국민소득 108원에 자본 612원이니 자본소득비율은 567%로 확 낮아진다. 새로운 균형 자본소득비율인 저축률/성장률=12%/8%=150%로 수렴하는 시점은 대략 70년 후, 아니 한 세대인 30년 후만 되어도 자본소득비율이 200%로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개인으로 비유한다면 까짓거 월급 한 푼 안 쓰고 2년만 모으면 ‘1인당 평균 재산’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피케티가 기본적으로 성장에 있어서 비관론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즉 1700~2000년의 약 300년 동안 선진국의 1인당 생산 증가율은 거의 1% 수준이었고 특히 지난 100년간은 1.6%에 이르렀지만 앞으로는 1% 정도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이것도 낙관적인 예상이라고 주장한다. 얼마 전에 소개한 ‘기술 비관론자’ 로버트 고든 얘기도 하고 있다.) 거기다가 이미 1950-70년도에 정점을 찍은 인구증가율을 더하면 (물론 아프리카의 인구 폭증 가능성이 불확실성을 가져오기는 한다) ‘글로벌 비관론’이 완성된다.
성장이 느려지면 이미 축적된 자본, 즉 유산이 더 중요해지고, ‘세습자본주의’ 경향이 더 심해지게 된다. ‘자본주의 제1기본법칙’을 대입해 봐도 자본소득비율(β)이 높아져 자본소득분배율(α)도 높아지게 되고 소득 불평등이 더 심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피케티가 책 제목을 ’21세기 자본’이라고 지은 것은 결국 21세기가 되면 성장률이 떨어지고 자본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피케티도 분명 성장이 불평등을 완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다만 21세기의 성장 전망이 어두울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저성장 시대가 되면 자본, 즉 부모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돈의 중요성이 내 근로 소득에 비해 커진다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일수록 월급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5%의 꾸준한 수익률을 낼 만큼의 큰 규모의 유산을 받지 못한 (=빌딩 하나 없는) ‘평민’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r>g(자본수익률>성장률):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기보다는 멋있는 그림을 만든 식
잘 알려져 있듯이, 피케티 스스로가 r>g를 양극화(소득 및 부의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책 맨 앞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다. ‘자본(=상속재산)이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자본주의 제1법칙 및 제2법칙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r>g라는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이 잘 도출되지 않았다. 제1법칙은 자본수익률(r)이 높으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얘기, 그리고 제2법칙은 성장률(g)이 낮으면 자본소득비율(β)이 올라가 자본소득분배율(α)이 높아져 역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얘기, 그런데 왜 r과 g를 직접 비교해야 하는가?
수식을 만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α = r Ⅹ β (제1법칙)이니까 r = α/β
β = s/g (제2법칙)이니까 g=s/β.
그러므로 r>g라는 얘기는 α>s. 자본소득분배율이 저축률보다 높다는 얘기다. 이게 뭔가? 직관적으로 잘 와 닿지 않았다.
물론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체계적으로 높아야 한 근본적인 이유가 없고, 이 문제를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이해한다’고 써 놓았다. 자본수익률이 ‘역사적’으로 5% 정도라고 하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잘 알려진 그래프, 그러니까 20세기들어 전쟁, 공황으로 인한 자본손실과 여러가지 세금 부과로 인해 자본수익률이 낮아진 반면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고 인구 증가세도 빨라지면서 성장률도 높아져 수천년 인류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r<g가 실현되어 소득 불평등 역시 완화되었다는 그래프를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피케티는 또 ‘부의 분배에 있어서 불평등의 균형 수준은 r-g의 증가함수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r>g를 다시 등장시킨다. 뭔가 더러운 수학 공식을 숨기고 있다는 의심마저 든다. 짜증이 난다.
위에서 도출한 r>g가 결국 α>s라는 수식은 책의 맨 끝 부분에서야 비로소 등장하였다. 나 자신 암묵적으로 가정한 ‘저축은 오직 자본소득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가정을 도입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α>s는 자본소득 중 일부를 저축하고 일부를 소비한다는 이야기, α=s는 (균형상태에서 자본소득비율 β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소득을 전부 저축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자본가’는 소비를 못 한다는!), 그리고 α<s는 자본가가 소득 전액을 저축함은 물론 ‘노동자’도 소득의 일부를 저축해야 한다는 (=저축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래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내린 결론은, r이 높고 g가 낮아질수록 자본소득분배율이 커져 소득 불평등 역시 커지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r과 g를 직접 비교하여 r>g일 때 특히 불평등이 커진다고 논리적으로 수긍이 잘 안 간다는 것이다. (차라리 ‘부의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보다 큰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라고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냥, 앞에 말한 그 멋있는 그래프를 만드는 데만 효용이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택가격 상승과 세습중산층: 주택자본의 중요성
이 책에서 은근히 강조되는 것은 전체 자본 중 주택자본의 중요성이다. 일단 선진국에서 주택의 가치가 전체 자본의 40~60%를 차지한다는 것,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 자본의 회복(자본소득비율의 반등)이 많은 부분 주택 가격의 상승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면 집이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얘기가 헛소리임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당연히 자본소득 중에서도 주거용 부동산의 임대료가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1가구 1주택의 경우 자본소득은 ‘귀속 임대료’일 뿐 실제 현금흐름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전세 제도가 일반적인 곳의 경우 자본 이득이 없으면 수익률이 5%는 커녕 2%도 안 나올 수도 있다.
사실, 주택자본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택자본의 증가가 주택을 소유한 ‘세습 중산층’을 낳았다는 점이라고 피케티는 말한다. 세습 중산층의 부상과 함께 상위 1%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몫은 급격히 감소했으며, 연간 임대 수익으로 안락하게 살 만큼 많은 재산을 보유한 사람의 수 역시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책을 아무리 봐도 왜 하필 20세기에 중산층이 주택자본을 많이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설명은 없다. 다만, 내 생각에는 20세기 들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서 근로소득에서 일부를 저축하는 것이 가능해진 중산층이 그 축적의 수단으로 가장 친근한 실물 자산인 주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의 발전이 주택자본의 증가를 도운 것은 물론이다.
‘가치있는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주택자본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본 피케티 비판 중 주택자본의 비중이 너무 크다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느 나라든 ‘자본(=국부)’중 주택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이 사실이며, 피케티는 이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21세기 자본’은 정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책이 아니라 사실에서 출발한, 바텀-업식의 분석이기 때문이다.
세금 이야기: 누진적 소득세와 글로벌 자본세
피케티가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글로벌 자본세’를 주창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측면에 있어서 피케티가 바라는 것은 자본세보다는 누진적 소득세의 부활이다. ‘과세는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이며, 20세기에 불평등 문제가 개선된 가장 큰 이유가 누진적 소득세와 누진적 상속세의 도입이었지만, 최근들어 소득세 누진율의 완화와 자본소득에 대한 감세 경쟁으로 인해 소득 최상층에 있어서 세율이 오히려 역진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부시 정부의 배당소득세 감세가 그 좋은 예이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법안이 제안되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상속세율이 소득세율보다 낮기 때문에 노동소득보다 상속재산에서 받는 이득이 더 크다는 ‘라스티냐크의 고민’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미국 최고 경영진의 급여가 급상승한 것이 1930년대부터 거의 80% 수준으로 유지되었던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이 1980년대에 확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의 인상 내지 원상 복귀는 크루그먼을 비롯 많은 미국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신선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참고로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의 인상은 과다소득에 대한 몰수, 즉 사실상 ‘최고임금제’의 효과를 가진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마지막으로 그 악명높은, 유토피아적인, 글로벌 자본세이다. 물론 피케티 자신이 ‘글로벌 자본세는 유토피아적인 이상이다’라고 한 수 접고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글로벌 자본세 도입이 (아주 낮은 세율로부터 시작한다면) 오히려 소득세 누진세의 강화보다 실현될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고 본다. 피케티는 분명히 이야기한다. 자본세의 주요 목적은 세금을 더 걷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첫째 부의 불평등 증가를 막는 것이고 (r을 줄여 자본소득분배율을 낮춤과 동시에 대규모 자본의 수익률이 더 높은 현상도 막는 것), 둘째 해외 금융 계좌를 모두 투명하게 신고하게 하여 금융 시스템에 효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19세기 재산세와 상속세의 도입이 투명한 재산 등록을 가져왔고, 20세기 소득세 누진세의 도입이 투명한 소득 보고 시스템을 가져왔듯이, 21세기 글로벌 자본세의 도입은 투명한 전세계 금융 시스템을 유도한다는 이야기이다.
‘0.1% 자본세는 실제 세금이라기보다는 의무신고제도에 더 가깝다’ ‘일종의 전세계 금융자산보유 실태조사이다’ 이런 주장을 들으면 은근 현실성이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세계 주요국의 조세 당국은 지금 조세피난처를 없애고 ‘돈세탁’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런 노력을 조금만 연장시킨다면 ‘0.1% 자본세’ 정도는 비교적 쉽게 도입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소득 최상층에 대한 역진적 소득세의 해소를 목적으로 한 ‘의미있는’ 자본세 과세 (순자산의 2% 정도)는 쉽지 않겠지만.
진짜 서평: 실증, 규범, 정책 세 가지 측면에서의 평가
(한 페이스북 친구분이 제기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다 보니 ‘진짜 서평’이 나온 듯하다. 위의 장황한 글은 피케티의 주장을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에 가깝다.)
1) 실증 영역: 이 책에 나온 소득 및 부의 분배 불균형에 대한 ‘사실 제시(fact-finding)’는 이미 지난 10년간 나온 많은 연구 논문들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 이미 그 정확도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소위 자본주의 제1법칙(자본수익률이 일정하다) 및 제2법칙 (균형 자본소득비율은 저축률과 성장률에 의해 결정된다)이 성립하는지의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 ‘법칙’보다는 ‘경향’에 가까운 명제일 가능성이 많다.
2) 규범 영역: 이 책을 읽고 ‘소득 재분배를 꼭 해야 하는가’와 ‘자본소득이 특히 재분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이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피케티 입장에서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자본주의 경제는 그 자체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극심해져서 불안정하기 때문에 안정성 확보를 위해 소득 재분배를 해야 한다’일 것이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자본소득, 노동소득 둘 다 한계생산성이나 위험감수가 아니라 정치적인 협상 과정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모두 재분배의 대상이 된다’로 보인다. 피케티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3) 정책 대안: 피케티는 조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 대책으로 누진적 소득세, 누진적 상속세, 누진적 자본세의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틈새를 찾아서 누진적 소비세를 제안했지만.) 이 세 가지 중 이미 시행되고 있는 누진적 소득세의 한계세율을 높이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소득세 한계세율을 35%에서 38%로 높였다.) 누진적 자본세의 경우 피케티는 일단 ‘유토피아적 방안’이라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적어도 0.1% 정도의 부담없는 ‘단일 자본세’를 금융 순자산에 부과하는 것 정도는 현실성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