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도무지 소질이 없고 음악 지식도 별로 없는 나는 이 책을 준비하기 전까지 모짜르트의 오페라 <마적>이 ‘말을 탄 도적 떼’인 줄 알았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읽어 본 일이 없는 나는 도서관 서가에서 <사자들>이 보일 때마다 ‘사자처럼 용맹한 투사들’을 떠올렸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를 여적 읽어 보지 않았는데, 그 뜻을 알기 전에는 ‘신통방통한 영웅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다 같은 한국어인데 왜 이리 어려운가. 독자가 헷갈릴 수 있는 여지를 번역자가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자꾸 인용하게 된다. 글쓰기 강사 이강룡이 쓴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유유, 2014)는 그렇게나 훌륭한 책이다. 어려운 말로 설명하거나 무게 잡지 않고, 그야말로 편안하게 지극히 실질적인 예를 들면서다. 위에서 얘기한 걸 들으며 나는 몇 번씩이나 무릎을 쳤는지 모른다. 수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계속 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차르트 오페라 <마적> : <마술 피리>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사자들>: <죽은 자들>
헤시도오스의 <신통기> : <신들의 계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 <등대를 향해>
한자어나 개념어나 명칭을 만들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지만 원뜻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읽었을 때 뜻이 드러나지 않는 한자어가 있다. 이것을 자주 쓰는 한자어를 활용해 알기 쉽게 바꾸는 게 한자어 번역의 출발이다.
‘미필적 고의’를 일상 의사소통에서 ‘고의적 묵인’이나 ‘방치’나 ‘회피’나 ‘외면’ 등으로 바꿔 쓰면 원뜻의 본질이 더 잘 드러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나쁜 화폐가 좋은 화폐를 몰아낸다’로 고치면 조금 더 나아진다. ‘노견’은 단순하게 ‘길 어깨’라고 직역하기보다 ‘갓길’이라고 의역하는 게 낫다. 갓길을 주로 일컫는 말인 ‘길섶’도 좋은 표현이다. ‘공자는 은인이다.’라는 문장보다는 ‘공자는 은나라 사람이다’로 풀어 쓰는 게 훨씬 의미전달이 잘 된다.
미필적 고의 –> 고의적 묵인, 방치, 회피, 외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 나쁜 화폐가 좋은 화폐를 몰아낸다
노견 –> 직역하면 ‘길 어깨’지만 어색하다. –> 갓길, 길섶
공자는 은인이다 — 공자는 은나라 사람이다.
외래어 남용의 문제
드라마틱한 스토리 –> 극적인 이야기
랭킹 리스트 –> 순위 목록
마트에서 쇼핑을 하다 –> 대형 유통 매장에서 장을 보다
아이러니한 운명 –> 얄궂은 운명
앵커의 클로징멘트 –> 진행자의 끝인사
업데이트된 데이터 –> 갱신 자료
업그레이드되다 –> 발전하다
오버액션하던 시대 –> 지나치게 반응하고 행동하던 시대
이벤트를 오픈하다 –> 행사를 열다
점프하다 –> 도약하다
체크하다 –> 확인하다
커버하다 –> 아우르다
프로모션 프로젝트 –> 판촉 기획
땡땡이 무늬 –> 물방울 무늬/ 점박이 무늬
(참고로, 땡땡이는 일본어 ‘덴덴(点点)에서 온 말이다.)
피처 이미지 출처: 한글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