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 개막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상영작 <군중낙원> 티켓이 2분 32초만에 매진됐다. 비단 이 영화 뿐만 아니라 부산영화제는 거의 모든 상영작이 온라인 예매 시작 1시간 내 매진되기에 티켓을 구하기 힘든 것으로 유명하다.
#2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이 다양성영화 최초로 300만 명의 관객을 넘어섰다. 이는 2009년작 한국 독립영화 <워낭소리>(290만 명)를 제친 최고 기록이다. <비긴 어게인>은 여전히 박스오피스 6위권을 유지하며 여타 상업영화와 경쟁하고 있다.
얼핏 달라 보이지만 두 사건은 우리 영화시장에서 다양성영화에 대한 관객의 갈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비롯해 상업영화가 곧잘 수백만 관객을 끌어모으는 사이, 색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은 갈 곳을 잃었다. 극장에 가면 엇비슷한 영화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이 다양성영화다.
또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대형 영화제에서는 평소에 볼 수 없던 독특한 영화들이 상업영화보다 더 사랑받는데 이들은 향후 다양성영화의 주요 공급원이 된다.
‘아트버스터’가 키운 다양성영화
다양성영화 시장이 커지고 있다. ‘다양성영화’가 낯선 독자를 위해 용어부터 소개하자면 한국의 영화시장은 크게 상업영화와 다양성영화로 나뉜다. 그중 다양성영화는 상업영화와 달리 저예산 영화, 제3세계에서 만든 영화, 상업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주제를 다룬 영화 등을 대상으로 한다. 엄밀한 규정이 있다기보단 배급사가 다양성영화로 신청하면 다양성영화로 분류된다.
다양성영화 개봉 편수는 2011년 197편에서 2012년 232편, 2013년 342편으로 늘었다. 올해는 벌써 305편이 개봉했다. 개봉 편수와 흥행성적이 꼭 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2011년 477만 명이었던 다양성영화 관객은 2012년 370만 명, 2013년 343만 명으로 되레 줄었다. 그러나 올해는 10월 첫째주까지 무려 9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급반등했다. 이는 작년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로 이 상태로 늘어나면 올해 말까지 1천만 명을 넘을 수도 있다.
다양성영화 붐을 주도한 것은 소위 ‘아트버스터’라고 불린 화제작들이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77만명) <그녀>(35만명) <비긴 어게인> 등 ‘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가 돌풍을 일으켰다. 당장 <비긴 어게인>이 몰고온 320만 명의 관객은 작년 다양성영화 전체가 기록한 관객 수 343만 명에 맞먹는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다양성영화 시장에서 한국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상업영화 시장에서 한국영화가 독과점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뛰어난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다양성영화의 두 축인 미국 저예산 영화와 한국 저예산 영화 중 전자가 급부상한 반면 후자는 여전히 침체일로다.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한 <경주> <만신>을 비롯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숫호구> <족구왕> 등이 색다른 소재로 기대를 모았지만 흥행성적은 기대에 못미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750% 대박 수익률 <한공주>
그나마 올해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에서 한국영화의 체면을 살려준 것은 CJ의 다양성영화관 CGV무비콜라쥬가 직접 투자, 배급한 저예산 영화들이었다. 그중 <한공주>는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히는데 제작비 2억원으로 2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17억원의 극장 수입을 거뒀다. 무려 750%의 수익률이다. 천우희와 김소영, 정인선이라는 충무로 차세대 스타를 발굴하기도 했다. <한공주>에 빛이 바랬지만 배두나, 송새벽, 김새론 등 스타급 배우들을 캐스팅한 <도희야>도 10만 명을 끌어모았다.
<한공주>와 <도희야>의 특징은 각각 여고생 성폭력 피해자와 친부 성폭행, 동성애 등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가벼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묵직한 이야기를 낯설고 무겁게 접근하는데 익숙한 기존 독립영화와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다. 또 <한공주>는 로테르담 영화제 타이거상 수상, <도희야>는 칸 영화제 초청이라는 해외에서의 성과를 등에 업고 국내에서 화제를 모아 아트버스터 열풍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밖에 거의 매년 10만 명 안팎을 불러모으는 홍상수 감독은 <자유의 언덕>으로 현재까지 3만 5천명 정도를 모으며 순항중이고, 탈북자를 소재로 한 <신이 보낸 사람>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로 42만 명을 불러모았다.
3050에서 20대 여성으로 확장
그렇다면 다양성영화를 보는 관객은 누구이며 상업영화 관객과 어떻게 다를까?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주요 관객층은 30대 여성이고 그 뒤를 이어 4050 여성 관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낮 시간대엔 4050 여성, 밤엔 30대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다양성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엔 20대들이 늘고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비긴 어게인> 등 화면이 예쁘고 감성적인 음악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상업영화와는 또다른 매력을 발견한 것이다.
다양성영화를 상영하는 대표적 극장으로는 CGV무비콜라쥬, 씨네큐브, 아트나인, 인디스페이스 등이 있다. 그중 CGV무비콜라쥬의 경우 2013년 9개관에서 올해 19개관으로 확대했고 관객 수도 작년보다 180% 늘었다. 특히 대구, 대전, 부산(센텀시티), 광주의 관객 증가폭이 크다.
씨네큐브는 중장년층 관객이 많아 소위 ‘교양영화’라 불리는 삶과 죽음, 사랑과 가족 등의 주제를 접근하기 쉽게 풀어낸 영화들을 장기상영하며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극장이고, 아트나인은 다양성영화의 랜드마크답게 마니아들을 위한 화제작들을 상영한다. 인디스페이스는 한국 독립영화의 아지트로서 <워낭소리> <두 개의 문> 등 독립영화와 대중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예술영화관은 “늘 가는 사람만 가는 곳”의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올해 다양성영화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서 보듯 상업영화의 한정된 메뉴에 식상해 하는 관객이 늘고 있고 이들은 새로운 영화를 찾아다니고 있다.
다양성영화를 외국 영화만의 잔치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영화도 규모만 키울 것이 아니라 적절한 예산으로 새로운 소재와 스타일을 포용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영화에도 <비긴 어게인>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 영화는 삶의 모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