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원 곽영진 씨(34)는 지난 주말 IPTV를 통해 영화를 한 편 봤다. 제목은 <살인자>. 낯선 영화였지만 네티즌 사이에선 ‘최근 한국영화 중 가장 못 만든 영화’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곽 씨는 호기심에 2천원을 결제했다.
# 결혼 3년차 맞벌이 부부인 김민정 씨(32)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기를 재워놓고 남편과 함께 케이블 VOD를 통해 영화를 본다. 육아 때문에 놓친 최신 개봉작을 주로 선택하는데 최근엔 송승헌과 임지연의 노출 장면으로 화제가 된 <인간중독>을 봤다.
곽 씨와 김 씨처럼 최근 VOD를 통해 영화를 보는 안방 관객이 늘고 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IPTV 3사와 티브로드·CJ헬로비전·씨앤앰·현대HCN 등 케이블 MSO 4사로부터 제출받은 VOD 매출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새 IPTV 3사의 가입자 수는 861만 명으로 2년 전 455만 명에 비해 2배 가량 늘었다. 여기에 기존 케이블 MSO 4사의 가입자를 합하면 VOD를 시청할 수 있는 가입자 수는 1984만 명에 달한다.
7사의 VOD 수입은 2011년 1920억원에서 2013년 4084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2500억원을 기록해 연간 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VOD로 가장 많이 보는 콘텐츠는 영화로 41%의 비중을 차지했다. 즉, 6000억원의 41%인 2460억원 정도가 VOD에서 영화가 벌어들이는 수입인 셈이다.
살인자, 콜로니, 야관문… VOD로 대반전
그렇다면 안방 관객들은 VOD로 어떤 영화를 볼까?
영화진흥위원회가 IPTV 3사의 흥행 순위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VOD를 통해 가장 많이 본 영화는 <겨울왕국>으로 98만 회 이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수상한 그녀> <친구 2> <변호인>이 각각 76만 회, 63만 회, 50만 회로 나란히 2,3,4위를 차지했다.
얼핏 보면 극장 개봉 화제작이 상위권에 랭크된 듯 보이지만 <친구 2>의 경우 극장 개봉 때보다 VOD의 반응이 더 폭발적이다. 9위에 랭크된 <인간중독> 역시 극장 개봉 성과보다 VOD 성적이 눈에 띄게 좋다.
상위 10편의 영화를 극장 관객 수와 VOD 이용건수를 놓고 비교해보면 대략 10만 명 당 1만 건으로 평균 10분의 1 수준의 차이를 보이는데 반해 <친구 2>와 <인간중독>은 5분의 1 수준으로 VOD가 선전했음을 알 수 있다. 상위 10편의 영화 중 두 영화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것은 “VOD에선 자극적 소재가 더 통한다”는 말이 짐작만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VOD를 통해 대반전을 이뤄낸 영화도 있다. <살인자> <콜로니: 지구 최후의 날> <야관문: 욕망의 꽃> <들개들>은 극장 개봉 땐 빛을 보지 못했지만 VOD 시장에서 유독 강한 영화들이다. 극장에서 8만8199명이 관람한 <살인자>는 VOD에서도 8만3889회를 기록해 뒤늦게 악소문의 힘(?)을 과시했다. 캐다나산 <설국열차>인 <콜로니: 지구 최후의 날>은 더하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관객은 고작 1220명에 불과하지만 VOD 이용건수는 무려 5만6470회로 46배나 많다.
<야관문: 욕망의 꽃>은 극장 관객 수 6085명, VOD 이용건수 3만5723회로 소위 ‘야한 영화 대박’ 행렬에 합류했고, 극장 관객 수 1617명으로 잊혀지는 듯했던 <들개들>은 <도가니>처럼 지적장애 학생 성폭력 사건 실화를 영화화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지며 VOD 이용건수 3만4173회로 극장 흥행 실패를 만회했다. 위 네 편 역시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영화들이다.
VOD 시장도 통합전산망 필요
이처럼 VOD로 영화를 보는 안방 관객이 늘면서 영화 제작사들은 VOD를 극장에 이어 주요한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난 7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에서 열린 ‘한국 영화산업의 디지털 온라인 시장과 변화’ 토론회에 참가한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영화 기획 단계부터 VOD 시장을 고려하고 있고 배급 단계에서도 극장과 동등한 지위에서 유통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VOD 시장에 대한 정확한 집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영화산업 발전의 걸림돌이다. 극장의 경우 전국 매출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통합전산망이 마련돼 있지만 VOD는 각 사업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통합전산망이 갖춰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7사가 미래부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VOD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밝혀지긴 했지만 사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IPTV와 케이블 MSO 외에 네이버·다음 등 포털, 유튜브, 아프리카TV·곰TV 등에서도 VOD를 서비스하고 있고, 티빙·에브리온TV·푹 등 OTT 서비스에서도 VOD를 볼 수 있지만 이들에 대한 공식 집계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현행 방송법에 ‘부가방송서비스 사업자’를 신설해 방송사업자 외에 VOD 서비스를 하고 있는 사업자를 등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해 일단 시장에 대한 정확한 추이를 파악할 수 있어야 기획이든 마케팅 전략이든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문: 레이와이의 영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