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시를 통해 흥미로운 뉴스가 하나 떴습니다.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가 지분정리를 마쳤다는 이야기인데요.
“이준호 NHN엔터 의장은 네이버 보유지분 일부(1.06%)를 블록딜 형태로 매각해 약 2800억원을 확보했다”
“네이버 역시 보유하고 있던 NHN엔터테인먼트 지분 전량인 144만6990주(9.54%)를 1158억원에 이준호 의장에게 팔았고, 이해진 네이버 의장 또한 보유지분 중에서 1%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3.64%)을 442억원에 넘겼다”
대충 둘이 관계를 정리했다는 내용은 알겠지만 숫자 위주의 복잡한 표현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 생소하게 느낄 분들이 있을 텐데요. 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여러모로 중요한 사건이라 판단해, 좀 더 풀어보는 기회를 가져볼까 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뭘 판 거임?)
1. 애증관계의 시작
인터넷업계를 대표하는 두 공룡은 어떠한 일로 인연을 맺었으며 지금 이 시점 왜 ‘선긋기’를 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15년 전 이맘쯤으로 돌아갑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막 삼성SDS를 나와 찬찬히 사업을 일구고 있었고 이준호 NHN엔터 의장은 숭실대 교수로서 검색 분야 전문가였죠.
이때 이준호 의장은 학자 신분으로 솔루션 하나를 내놓아 많은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자연어 검색서비스!
옛날에는 검색을 할 때 단어 위주로 했습니다. 예를 들면 강남에서 제일 유명한 성형외과를 검색하고 싶을 때 “강남 유명 성형외과”라고 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어 검색서비스는 “강남에서 제일 유명한 성형외과는 어디인가요?”처럼 문장 그대로를 입력해도 나와 훨씬 이용자 친화적이었습니다.
엠파스가 먼저 선보인 자연어 검색에는 이준호 의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가 공동개발자였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후발사업자로서 입지가 불안정했던 이해진 의장은 이준호 의장을 찾아가 제안을 합니다. 둘은 서울대 컴공과 동문으로서 이준호 의장이 3년 선배였는데요. 이해진 의장은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게 꺼림칙하면 독립법인을 세우고 10억원의 투자는 물론, 월 4천만원의 연구비를 주겠다’고 꼬드깁니다.
그래서 이준호 의장은 엠파스와의 관계를 끊고 서치솔루션이라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넥서치 등 검색솔루션을 공동개발하는 등 네이버와 인연을 이어나갔죠. 하지만 네이버의 상황은 그렇게 호전되지 않았고 이해진 의장은 불안했던지 서치솔루션을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했습니다. 이로써 이준호 의장은 네이버의 대주주가 됐죠.
그는 계속 학계에 있었습니다만 서치솔루션 출신 인사들이 네이버에 배정됐다는 것을 봤을 때 지속적으로 자기 세력을 늘리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2. 고조되는 갈등
그러던 2005년 이준호 의장이 CTO로 들어왔습니다. 이때부터 둘의 관계가 상당히 애매해집니다. 당시에는 네이버가 포털업계를 완전히 평정한 이후로서 앞으로 회사를 더욱 키울 수 있는 모멘텀과 비전이 무엇이냐가 화두였죠.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해외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일본, 미국 등에 게임과 검색을 수출하려고 했지만 족족 말아먹었습니다.
중국, 일본, 미국,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았고, 검색과 게임을 둘 다 건드리는 것도, 선택과 집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내부사정이 혼란스럽고 복잡했다는 이야기였지요. 어떤 길로 가는 게 맞을지도 몰라 갈팡질팡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네이버파와 한게임파가 각자 정치화됐다는 점도 큽니다. 둘은 매출 등 사업기여도도 비슷했고, 확연히 다른 조직을 각자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파워게임의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결과적으로는 검색사업 확장과 창업 정통성(?)에서 밀린 한게임파 퇴진이 이뤄졌고, 자연스럽게 이준호 의장은 넘버2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슬슬 파워게임은 둘 사이로 전이되는데요. 이준호 의장의 힘을 뒷받침하는 것은 역시 지분율이었습니다. 2013년 기준 이해진 의장 4.64%, 이준호 의장 3.74%로, 두 사람의 지분율이 엇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해진 의장이 사업초기 투자를 여러번 받으면서 상장했을 당시 이미 개인 지분이 10%도 안 된 데다가, 개인 사정으로 여러번 공개시장에 팔면서 그 지분이 더욱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준호 의장은 딱히 돈 쓸 일이 많지 않았으니, 지분을 잘 관리한 편이었습니다.
이에 이준호 의장은 개발조직은 물론 인사, 운영 등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영향력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임원 사이에서도 라인이 생성되기 시작했죠.
다행히 이해진 의장 입장에서 이준호 의장은 창업 정통성은 물론 지지기반 측면에서 상대가 될 수 없었죠.
3. 이혼의 길로
그러다 하나 2013년 네이버는 중대사안을 하나 발표합니다. 그것은 바로 포털사업체 네이버와 게임사업체 NHN엔터(한게임), 이 두개로 인적분할하겠다는 것이었죠. 인적분할은 아예 한 회사를 두개로 쪼개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소멸법인 주주들은 존속법인(네이버)과 신설법인(한게임) 주식을 기존 지분율만큼 가져갈 수 있죠.
그리고 자사주(회사 스스로 보유한 자기주식, 통상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매입이 이뤄지며 의결권은 없다)는 존속법인이 신설법인의 주식을 가져가게 됐습니다.
이해진 : 4.64% (네이버, NHN엔터)
이준호 : 3.74% (네이버, NHN엔터)
네이버 : 9.54% (NHN엔터)
당시 증권가에서는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죠. “네이버를 정점으로 하는 지주사 체제로 가는 것이냐?”, “아니면 이해진 의장과 이준호 의장은 결별하는 것인가?”
이준호 의장이 NHN엔터 회장에 취임,후자가 맞았음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아래 라인이 NHN엔터의 임원으로 들어오죠. 왜 이준호 의장이 한게임을 먹는 걸로 됐을까요? 한게임은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이 만든 조직입니다. 만약 찢어진다면 검색조직 일부를 분사하는 게 공평해 보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래서 지분이라는 게 무서운 것입니다. 이혼한다면 위자료가 있어야 하듯, 네이버에서 내치려 할때도 위자료라는 게 필요하니까 NHN엔터를 넘겨준 것이죠.
이후 네이버와 NHN엔터는 극명하게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네이버는 라인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는 반면, NHN엔터는 웹보드게임 규제로 비틀비틀거리죠. 주가 차이도 엄청납니다. 네이버 26조원, NHN엔터 1조3000억원. 무려 20배 차이!
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지분을 정리하기에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준호 의장으로서는 엄청 높아진 네이버 주식을 팔고 NHN엔터 주식을 사면 경영권이 더욱 강력해지죠. 그래서 3.74% 중 1.06%를 팔아 2800억원을 손에 넣은 후, 마치 사전합의 된 것처럼 네이버가 자사주 9.54%, 이해진 의장이 4.64% 중 3.64%를 이준호 의장에게 매각한 것이죠. 그래서 이준호 의장은 모두 16.93%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이해진 의장은 NHN엔터 주식을 대부분 팔았는데, 이준호 의장은 네이버 주식을 상당히 많이 남긴 것은 네이버의 주가 상승 여력이 있어 보이니, NHN엔터의 경영권을 확보할 만큼만 팔면 됐다는 생각이었다는 썰이 있습니다.
4.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지분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애초에 이해진 의장이 어느 정도 자본과 경험이 있는 상황에서 창업을 했다면, 이렇게 지분구조를 짜지 않았을 겁니다. 그 결과 불안해서 자기지분을 희석시키면서까지 투자, 인수합병을 반복했죠. 반면 NHN엔터에게 조금 껄끄러운 말이지만 분명 이준호 의장은 이 과정에서 사업기여분보다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가 시운의 사업가인지, 행운의 억만장자인지는 앞으로 NHN엔터 행보에 달렸겠지요.
물론 회사가 커지면 파워게임은 피할 수 없지만, 네이버는 좀 달랐습니다. 오너가 있다면 파워게임이 아무리 횡행해도 어느 순간 칼 자르듯 정리가 가능합니다. 사실상 왕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죠. 헌데 김범수 의장도 그렇고, 이준호 의장도 그렇고, 지분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파워게임이 더욱 피튀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지붕 아래 용이 두마리가 있을 수는 없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해진 의장은 어떨까요? 그의 지분은 여전히 4.64%에 불과합니다. 국민연금공단 등 기관이 대주주인 상황에서 언제든지 짤릴 위험이 있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사업을 못하는 경영자는 아무리 대주주라도 나가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습니다. 어차피 회사가 망가지면 지분율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주식이 휴지조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