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Berkowitz가 Advertising Age에 기고한 ‘The Beginning of the End of Storytelling, Brands Need to Be Story Makers, Not Story Tellers‘를 번역한 글입니다.
“옛날 옛적에, 스토리텔링에 사로잡히게 된 산업이 있었어요. 이 업계 사람들은 어딜 가든지 스토리텔링이 그들이 해야 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러자 칼럼니스트인 어느 짓궂은 용이 스토리텔링은 악하다고 했고, 업계 사람들은 그를 죽이고 다시 일을 즐기러 돌아갈 수 있었어요. 끝.”
아니면 이 이야기의 다른 버전을 생각해 보자.
“옛날 옛적에, 스토리텔링에 사로잡히게 된 산업이 있었어요. 하지만 점점 아무도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아이디어가 되었고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업계 사람들은 그들의 고객과 연결되기 위해 더 의미 있는 방식을 찾았어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이 얘기들은 서로 배타적이다. 하나는 허구(픽션)가 되면, 다른 하나는 논픽션이 된다. “당신 자신의 모험을 선택하라” 시리즈의 비공식 버전 중에서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하길 원하는가? 그 길은 우리 일을 하는 모두에게 난해한 결과가 될 수 있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컨퍼런스에 얼마나 많이 참석해 봤는가? 마케터들이 더욱 잘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법을 다룬 글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 스토리텔링에 집착하게 되면서, 몇몇 사람들은 이의 어두운 면을 인정한다. 내 아내와 나의 세계관을 바꿔놓은 대화를 하기 전까지 나는 이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소개한다.
어느 날, 내 아내와 나는 지인들 중에서 견딜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나 다른 누구에게도 흥미를 갖기 않고 오직 자기들에게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내 아내가 짜증을 내며 한탄하길 “그들은 자기 얘기만 해요!”라고 했다.
결코 잊지 못할 말 중 하나였다. 우리 업계에 주어진 건 모두 스토리텔링에 대한 것이다. 나는 스토리텔러들이 영웅이라는 상황에 익숙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는 이 예술의 부정적인 면을 폭로했다. 스토리는 종종 사람들이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을 열기보다는 어떤 특징이나 순간을 조명하기 위한 목발(crutches) 같은 걸로 사용되었다. 스토리는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스토리텔링이 처음이자 중간이자 끝이었고, 그럼 일은 끝났다.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이 진짜 브랜드 스토리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가? 애플 / 타이드 / 구찌 / 현대 혹은 당신이 브랜드라고 여기는 어떤 브랜드든 좋아하는 브랜드를 떠올려 보라.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새로 나온 아이폰을 사느라 상당히 큰 돈을 지불했지만, 애플 얘기를 해줄 수가 없다.
아내에게 이런 것도 물어봤다. 카라는 다이어트 코코를 좋아하기에, 그녀에게 “코크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라고 물어봤다. 그 직후, 나는 마치 “매드맨” 속의 ‘Carousel’ 실사 버전에 살고 있는 거 같았다. 그녀는 코카콜라에서 빨간색 캔 따개가 달린 캔이 나왔을 때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친구들 모두가 그걸 수집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캠프에서 숙박할 때에 그들이 어떤 남자애를 좋아하는지 밝히는 방법으로 코카콜라 캔에서 따개를 떼는 게임을 했다고 들려주었다. 이 브랜드 덕분에 내가 내 삶에서 10년 가까이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ADWEEK] How ‘Share a Coke’ Went Beyond Ingenious Packaging to Boost Sales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토리메이킹은 더 많은 걸 실현할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도달하려 하는 우리의 모든 브랜드에게 중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