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 대 39.9%. 제 18대 대선 부산지역 득표율 결과다. 당연히 박근혜 당선자가 더 많은 표를 받는 데 성공했다. 지난 4.11 총선 때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득표율 합계가 40.2%인 걸 감안하면 썩 나쁘진 않은 성적표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은 부산에서 40% 남짓한 득표율에 만족해야 할까? 물론 노무현의 16대 대선 29.85% 득표율을 감안하면 10% 가량이 더해진 결과로 큰 발전이다. 그렇지만 4.11 총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사상구에서 55%의 지지율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열기를 부산 곳곳에 전파하지 못한 실패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선 직후부터 부산에 머물며 부산의 민심을 직접 들어보았다. 시시껄렁한 술집에서부터 50, 60대 어르신들의 목소리까지. 왜 문재인은 더 많은 표를 얻지 못했을까? 이 실패를 비과학적이고 단편적인 방법으로 들여다 보았다. 때로는 분석만큼이나 단편적인 느낌과 촉감이 와 닿을 때가 많은 법이기도 하지 않는가.
<삼촌! 몇 번 뽑았어요?>
결혼을 앞둔 친구 커플과 술잔을 기울이며 좋은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커플 중 여자분이 우리 테이블을 빤히 쳐다봤다. 눈길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대뜸 나를 보며 외쳤다. “삼촌! 몇 번 뽑았어요?” 역시 부산 가스나의 기운이었다. 일행의 만류를 뿌리치고 우리가 몇 번을 지지하는지를 다짜고짜 물어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 대고 있으니 “이 봐라, 이 봐라! 딱 1번 뽑았네. 그래서 말 못하네! 그럴 줄 알았다. 생긴 게 딱 1번 얼굴인기라.” 아니, 이모 ‘1번 뽑게 생긴 게’ 어떤 건데요…
아무튼 옆에 있던 2번 뽑은 친구들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 가스나… 아니 누나… 아니 아줌마는 이후 열변을 토했다. “아니 도대체 누가 1번 뽑았는데? 내 주위에는 다 2번 뽑았다는데 와 1번이 되는 기고!?” 그 가스나… 아니 누나… 아니 아줌마의 말처럼 과연 누가 1번을 뽑았을까? 그 많던 1번 투표자들은 어디로 숨었을까?
<침묵하는 다수>
친척들과의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신 엄마. 사촌 언니들을 만나고 오셨다. 그 자리의 안주는 단연 대선이었던 모양이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한 분의 교수 남편 이야기. 비교적 지식인층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 사이에서는 2번을 뽑아야 한다는 당위랄까, 합의랄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1번을 지지하는 그 남편 분은 꿋꿋하게 1번을 지지했다고. 이에 “그럼 동료들이 이상하게 보거나 왕따 당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
“말 안 하면 되지!”
그렇다. 간단한 침묵 혹은 정치적 성향의 은폐만으로도 편 가르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실 이는 전 세대와 지역을 아울러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닐까.
이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많은 사촌 언니들의 ‘고해성사’가 뒤따랐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래 나도…’ 하는 식의. 사실 1번을 뽑은 것이 죄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숨겨오고 있었다는 사실. 이것이야 말로 2번 진영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패인이 아닐까? 그들을 죄인인 것 마냥 몰아간 분위기와 정작 그들을 포용하지 못한 전략들이 아찔하게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목소리 큰 ‘깨시민’의 표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지 않았을까.
<야야, 니 꼭 1번 뽑아래이…>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트위터가 있었다면 그들에겐 전화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정치적 성향을 공유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반면 어르신들은 전화기를 들고 자식, 며느리, 사위에게 직접적으로 명령, 호소, 부탁했다. “야야 니 꼭 1번 뽑아래이”라고. 이에 착한 자식들은 ‘뭐 원래 투표 안 하려고 했는데 부모님 부탁 들어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라고 응답했다고.
사실 그 분들도 자식들에게까지 그러고 싶진 않으셨단다. 그 전화가 촉발된 시점은 ‘대선후보 1차 TV토론회’ 직후였다. 그렇다. 이정희의 ‘잃을 게 없는’ 박근혜 공격이 있고 나서 그 분들은 소위 멘붕을 맛봤다. ‘저 년 저거는 안 된다’부터 ‘문재인이 되면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른다’까지. 이에 더해 ‘저런 싸가지 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박근혜를 보라. 대단하다.’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이에 그 분들은 전화기를 들고 사위, 며느리, 자식에게 모조리 전화를 걸어 종북으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구국의 심정으로 1번 투표를 호소한 것이다. 물론 1번 찍고 싶은 사람들이 이유를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들 이야기했다.
<다시 보는 침묵의 나선이론>
독일 커뮤니케이션 학자 노엘레-노이만(Noelle-Nueumann)은 “인간들이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지배적인 여론과 일치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는 성향이 있다”는 침묵의 나선이론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2번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지배적인 여론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이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진보세력이 그것이 우세하고 지배적인 것처럼 최면을 걸고 미리 ‘정신승리’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는 선거결과에서 패인을 분석해 개선하는 방향이 아닌 1번 지지층에 대한 증오와 멸시로 나타났다. 그들에 대한 반감이 과연 어떤 발전과 개선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스스로가 다수이자 대세라고 착각했던 이들의 폭력성과 오만함이 침묵했던 실제 다수들의 결집으로 이어졌다. 이는 비단 부산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으리라. 부산이라는 특수한 지역만을 놓고 본 비과학적이도 단편적인 글이지만 거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과 촉은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더해, 사상의 파동을 부산 전체로 이어가지 못한 민주당의 전략부재와 반대표심을 이해-포섭의 대상이 아닌, 멸시-무시의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는 ‘2번’을 외치는 이들이 꼭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