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는 ‘발견법과 편향(Heuristics and Bias, 이하 HB)’ 학파의 수장입니다. HB 학파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넓게 보면 인간)이 사실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밝혀내는 데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 학파랑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는 학파는 ‘자연주의 의사결정론(Naturalistic Decision Making, 이하 NDM)’ 학파입니다(전문성 연구도 이 편에 있습니다). NDM의 수장은 게리 클라인(Gary Klein)입니다. NDM 학파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는가’를 알리는 데 행복을 느낍니다.
여담이지만, NDM의 또 다른 선구자 중 하나인 로버트 호프만 박사는 저와의 대화 중에 HB를 어두운 세력(dark side)이라고 하고 NDM을 밝은 세력(bright side)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사실 이 두 학파의 초점은 전문가들의 직관적 판단에 모입니다. HB는 그건 믿을 것이 못 된다는 말을 하고, NDM은 믿을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직관에 대해 NDM의 입장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대중서가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Blink)』입니다. 또 이 책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마이클 르고의 『Think 싱크!(Think!)』라는 책도 있습니다. 어느 편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사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이 참 많습니다. 이때 흑백논리가 들어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어떤 상황 하에서 이 이야기가 잘 들어맞고, 또 어떤 상황 하에서 저 이야기가 들어맞는지 봐야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죠(결국 프레임입니다!).
NDM과 HB의 두 수장, 카네만과 클라인이 공동 저술 및 출판한 책이 있습니다. 『직관적 전문성의 조건(Conditions for intuitive expertise: a failure to disagree)』이라는 제목입니다. 두 사람이 같이 논문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뉴스감입니다. 적어도 두 학파 중 하나에 몸을 담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놀라움이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표가 악수하는 사진 같은 상징성이 있는 겁니다.
두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직관이 형성되려면 조건이 있다고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두 가지를 듭니다. 유효성(Validity)과 피드백(Feedback)입니다.
유효성이란 직관이 적용되는 영역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인과관계가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불확실성과는 다른데 예컨대 포커 게임에서는 전문성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게 떨어지는 분야는 장기적 정치 판도 예측과 주가가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두 가지 모두 실험을 했습니다. 역사나 정치학의 전문가들이나 일반인이나 장기적인 정치 판도를 예측하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주가(개별 주식에 대한)도 펀드 매니저나 원숭이나 큰 차이가 없거나 혹은 전문가가 더 못했습니다.
피드백은 ‘자신이 내린 직관적 판단에 빨리 피드백이 주어지고 이를 통해 학습할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냐’는 걸 묻습니다. 이게 부족한 직업으로는 공항의 보안검사대 조사원을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오늘 얼마나 실수를 했는지 아는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오늘 가방에서 칼이나 액체물질을 얼마 찾았는지는 알아도 내가 놓친 건수는 모릅니다. 한번 놓치면 영영 빠빠이거든요.
수십 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전문가가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유효성과 피드백이 부족한 환경, 예컨대 복잡한 상황에서 뒤죽박죽으로 일하거나 내가 오늘 실수한 것을 몇 달 뒤에 알거나 혹은 영영 모를 곳에서 일하는 겁니다. 그것이 요체이지요.
저자들은 섄토(Shanteau)의 연구를 언급하며 이렇게 전문성이 발전될 수 있는 직업과 그렇지 못한 직업을 구분합니다. 그 중간에 놓이는 직업도 있습니다. 몇몇 작업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발전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직업들이죠. 의사가 한 가지 예입니다.
원문: 애자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