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후배들은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저 질문만큼 바보같은 것도 없다. 스페셜리스트도 되고 제너럴리스트도 되어야 한다.
현대사회는 파이형인간(π형)을 요구한다. π형 인간은 폭넓은 교양과 함께 두 가지 이상의 전문지식을 지닌 융합형 인재를 의미한다. 이제는 수평적으로 넓어지지 않으면 두 다리가 깊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가 깊어지지 않으면 다른 다리들이 자라나질 못한다.
요즘의 인문학 열풍은 π에서의 수평적 확대에 초점이 맞춰서 나타난 트렌드다. 넓게 알지 못하면 깊이도 없어진다는 생각을 기업들도 하기 시작했다. 기초가 넓어야 건물도 높아질 수 있다.
역사를 모르면 정치가, 정치를 모르면 경제가, 경제를 모르면 산업이 안보인다. 산업만 봐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철강, 자동차, 조선, 화학, 기계, 전력, 건설, 금융, 물류, 유통, IT 등등 모든 산업이 서로 연결되어있으며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철강 산업을 보자. 철강의 3대 수요산업이 건설, 자동차, 조선이다. 이들 산업을 모르면 철강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철강은 엄청난 자원과 전력을 소모하는 산업이다. 광물과 에너지 산업을 모르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건설을 보자. 건설은 보통 토목, 건축, 플랜트로 나누는데 한국의 대형 건설업체는 요즘 해외의 플랜트 사업에 목을 매달고 있다. 플랜트는 산업 시설, 즉 공장이다. 각 산업을 이해하지 못하면 플랜트를 알 수 없다. 특히 중요한 수요산업이 에너지와 화학, 전력이다. 이들을 모르면 요즘 건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또 건축의 대부분은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경제와 금융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자동차를 보자. 가솔린, 디젤, 바이퓨얼,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이런 얘기들은 결국 에너지의 문제다. 에너지를 모르고 자동차를 알 수 없다. IT와의 융합도 핫 이슈다. 스마트 자동차, 모빌리티, 자율주행 자동차… 부품과 소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계와 화학 산업도 알아야하며, 차를 팔아먹으려면 금융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조선은? 일단 해운을 알아야 한다. 벌크, 컨테이너, 유조선, LNG선… 싣고 다니는 물품들이 다르니 그 각각의 상품과 제품 시장을 다 알아야 한다. 해양 플랜트가 매출의 절반을 넘어갔으니, 이제 에너지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워낙 초대형, 초장기 프로젝트가 많아지니, 금융의 중요성도 갈수록 커진다. 그럼 IT는? 금융은? 통신은? 유통은?
알고보면 다들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산업 다방면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 산업을 깊이있게 파헤칠 수 없다. 반대로 하나를 깊게 이해하지 못하면 나머지에 대한 이해도 얕은 상태에 머무른다.
어느 기업이든, 산업이든, 국가든 어차피 돌아가는 방식은 비슷비슷하다. 한 산업의 전문가가 다른 산업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다른 산업도 훨씬 빠른 시간내에 전문가가 된다. 새로운 산업에 도전할 때마다 같은 깊이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은 훨씬 짧아질 것이다.
우리는 결국 제너럴리스트이면서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한 방법은 가지가지다. 수평적 확대 이후 깊이를 더할수도 있고 하나를 먼저파고 폭을 넓힐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깊이와 폭을 동시에 확장해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게 더 빠른 시간안에 더 큰 π를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원문: 마왕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