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한국 인터넷은 커뮤니티의 전성 시대였다. 그리고 그 정점에 1,000만 회원과 120만 커뮤니티를 거느린 프리챌이란 거대 왕국이 있었다.
아바타 등 당시만 해도 아주 새롭고 신선했던 서비스들을 선보이며 커뮤니티 사이트의 대표 주자로 우뚝 섰던 프리챌은 2002년에 이용자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유료화 정책을 강행한다. ‘이용자들이 게시판에 쌓아놓은 그 수많은 컨텐츠들을 설마 다 버리고 떠나겠어?’ 라는 배짱으로 밀어붙인 일이었지만, 정작 이용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올린 그 수많은 컨텐츠들을 볼모로 삼아 유료화 정책을 밀어 붙이는 프리챌의 태도에 분노했다.
그 후 프리챌 왕국이 몰락하기까지는 불과 몇 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뒤늦게 부랴부랴 유료화를 철회했지만 이미 이용자들은 싸이월드와 다음 카페 등 다른 대체제에 새 둥지를 틀은 뒤였다. 한번 떠난 이용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프리챌은 초라한 모습으로 명맥만 겨우 유지하다가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프리챌 사태의 데자뷰, 카톡
요즘 카톡을 보면 프리챌 사태가 데자뷰된다. 한국 인터넷 기업 역사상 최대 뻘짓으로 기록될만한 프리챌의 교훈을 카톡은 깊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뻘짓은 무한 반복되기 때문이다.
SNS만 대충 살펴봐도 카톡에 대한 이용자들의 분위기는 날로 악화되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나마 외양간을 고치겠다며 몇 가지 개선 방안이 발표됐지만 그걸로 잃어버린 소를 쉽사리 되찾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사실 ‘외양간 프로젝트’라는 작명부터가 넌센스이다. 외양간에서 잃어버린 소들은 누가 훔쳐간(해킹)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떠난(사이버 망명) 것이기 때문이다.
제 발로 떠난 이용자들이 애초에 카톡에 대해 가졌던 아쉬움은 이용자들과의 신뢰와 정부 압력에 대한 태도였다. 보안이 텔레그램에 비해 허술하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단지 보안을 텔레그램 수준으로 강화한다고 해서 신뢰를 잃어버린 이용자들이 떠나간 외양간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아직도 이걸 모르고 있다면 그나마 남아 있던 이용자들마저 미련 없이 외양간을 떠나는 건 시간 문제이다.
실제로 외양간 프로젝트의 발표 이후 오히려 이용자들의 분위기는 더 냉랭해진 느낌이다. 비판의 화살이 정부를 겨냥해야 옳지 않냐는 카톡측 항변은 물론 맞는 소리지만, 몇몇 내부 관계자들의 꼬인 스텝이 계속 분위기를 더 나쁜 쪽으로 몰고 있다. 결정적 위기는 항상 내부에서 비롯된다.
카톡 사용자와 서비스가 많으니 쓰러질 리 없다?
그 사이 카톡 하루 평균 이용자수가 지난 주 대비 40만 명 정도 감소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반면 텔레그램 가입자는 순식간에 150만을 돌파했다. 3,500만 이용자 중 그깟 40만 정도가 빠진게 무슨 대수겠냐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것도 한국 인터넷 역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트위터가 국내에서 본격 사용된 직후인 2009년, 당시 이용자 수가 불과 50~60만 명 정도였을 때부터 이미 언론에서는 트위터 현상을 주목하는 기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었다. 심지어 그 이듬해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트위터가 선거 판세를 결정한다’는 류의 기사들이 속출했고, 실제로 이것은 현실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에 40만 명은 충분히 의미있는 숫자이며, 150만은 아주 위협적인 숫자이다. 이런 추세가 1~2주만 계속된다면 순식간에 판도는 뒤집힐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대책없이 낙관적인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 중 혹시라도 이용자들이 카카오스토리에 쌓아놓은 수많은 디카 사진들이 아까워서 쉽게 카톡을 탈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프리챌의 1,000만 이용자들이 유료화의 볼모가 된 자신의 소중한 게시물들을 기꺼이 버렸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기 바란다. 혹시라도 이용자들이 카톡에서 구매한 유료 이모티콘과 카카오뮤직에서 구매한 유료 음악들이 아까워서라도 쉽게 카톡을 탈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도토리를 구매해 온갖 아이템들로 정성스레 가꿔놨던 미니홈피를 수 년째 방치하고 있는 3,000만의 싸이월드 이용자들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환상에 빠져 모바일 메신저 시장 점유율 1위의 아성이 간단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낙관적인 분들도 있다. 하지만 카톡의 미래는 카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이용자 수의 무게 중심추가 넘어갈 것이냐의 여부로 판단할 일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그보다는 카톡이 압도적 시장 점유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것이냐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카카오톡, 신뢰를 회복할 시간은 길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전망해 본다면, 카톡이 당장 완전히 망하지는 않겠지만 국내 메신저 시장 점유율은 텔레그램 등 다른 메신저로의 사이버 망명을 통해 분산될 것이다. 즉 설령 카톡이 텔레그램보다 국내 이용자수를 여전히 더 많이 확보해 계속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해도 압도적 시장 점유자로서의 지위는 상실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카카오페이, 카카오픽, 카카오토픽 등 최근 카톡이 야심차게 내놓은 신규 서비스들은 모두 카톡이 모바일 플랫폼에서 압도적 시장 점유자라는 사실을 전제로 나온 것들이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카톡은 자신의 전체 비즈니스 영역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카톡이라는 모바일 플랫폼이 압도적 시장 점유자라는 지위를 상실하면 게임, 이모티콘, 플러스친구 등 카톡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와 광고를 제공하던 여타의 여러 업체들과 카톡 간에 구축되어 있던 비즈니스 생태계에도 심각한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카톡의 위기는 사이버 망명의 향후 확대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가속화되고 있다.
애초에 이 사태의 발단은 대통령 모독 발언과 검찰의 대응이라는 정치적 문제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이에 대한 사이버 망명이라는 이용자들의 움직임 역시 ‘망명’이라는 은유에서 보이듯 정치적 행동이었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지 보안 기술 개선한다고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정치의 최고 기술은 대중과의 소통에 있으며, 정치의 최고 자산은 대중과의 신뢰이다.
소통에 기반한 모바일 서비스의 선두 주자 카카오가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며 지금의 난국을 풀어갈지, 모바일 서비스 최고의 자산 가치를 갖고 있는 카카오가 대중과 어떻게 신뢰 관계를 회복할지 판가름할 시간은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원문: Cyber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