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일곱살 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시골로 통할 와이오밍 태생이었지요. 하지만 부모님의 일이 좀 국제적이었던지 유럽 물도 먹었고 그 어떤 외화도 더빙된 것 아니면 상종을 않는 미국인답잖게 외국어에도 능통한 청년이었지요. 고향의 대학교에 간 뒤엔 학생회 일도 열심으로 했고 와이오밍 환경 위원회 대학생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뭐 이쯤 되면 그야말로 ‘보드건청’ 즉 요즘 보기드문 건강한 청년으로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1998년 10월 7일 그런 건실한 청년, 매튜 셰퍼드는 뜻밖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성적 소수자,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바에 술을 마시러 갔다가 그는 누군가에게 차를 태워 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하지만 그는 얼마 뒤 죽도록 두들겨 맞은 다음 울타리에 묶입니다. 그가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18시간이 지난 뒤였지요. 이미 흘릴대로 흘린 피 때문에 이미 발견 당시 그는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머지않아 그가 독실히 믿었던 하느님 (그는 성공회 신자였습니다) 곁으로 갑니다.
그를 죽인 이들은 또래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뒤 그들이 했던 변명은 다음과 같아요. “매튜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비이성적인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라는 겁니다.
사실 이들은 치밀하게 매튜의 돈을 노린 것으로 확인됐지만, 범인들의 해명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범인들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적개심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범죄에 대한 핑계로 삼고 있다는 거죠. “내가 얼마나 놀라고 충격받았으면 그랬겠느냐.”는 식이지요. 대개 핑계를 대는 이들은 그 핑계가 통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지요. 이 사실은 매튜의 장례식이 있던 날 우울하게 증명됩니다.
프레드 팰프스라는 반동성애 운동가이자 목사가 그의 신도들과 함께 시위를 벌인 겁니다. 어차피 성경 몇몇 구절에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등장하는 바에야 “신은 동성애자들을 혐오한다.” 는 피켓까지는 이해를 하겠지만 그들이 들었던 문구 중의 하나는 그들이 섬기는 것이 사랑의 하느님인지 사막 언저리 유목 민족의 잡신인지를 헛갈리게 만들었습니다.
“매튜 셰퍼드는 지옥에서 불타 버려라.”
이것이 바로 적의입니다. 저 범인들이 매튜를 만났을 때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그 기독교인들은 충분히 알 수 있었겠죠.
미국에서는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을 계기로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 등에 의해 ‘증오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 법안’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종, 피부색, 종교, 국적 등의 항목만이 인정됐고 성적 소수자는 그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거죠. 명백히 한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가 전체 증오범죄의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는 FBI의 보고도 있었지만 성적 소수자를 증오범죄 피해 보호 대상자로 끼워넣는 데에는 무척이나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장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며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이므로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레위기 20장 13절을 금과옥조로 섬기는 이들이 문제였고, 그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성경 말씀을 설교하면 잡혀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매튜 셰퍼드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성적 소수자를 이 증오범죄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우여곡절을 거쳐 2009년 10월 29일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증오범죄 보호 대상에 성적 소수자를 넣는 법안에 서명합니다. 매튜 셰퍼드가 울타리에 매달린 채 비참하게 죽어가던 날로부터 11년하고 21일이 지날 때였습니다.
2008년의 9월에는 이화여대에서 변날 사태라는 게 벌어졌습니다. 변날이라는 이름의 성적소수자 동아리에서 준비한 행사 걸개그림이 도난당하는데 그 범인은 그레이트비전인가 그레이트마징가인가 하는 기독교 동아리 회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의로우신 하느님의 뜻으로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그 기독교인들의 얼굴은 CCTV에 낱낱이 보관되어 있었죠.
그레이트 비전쪽은 신앙적인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고 걸개 그림을 변상하겠다고 했지만 동아리 창립 이래 행사 때마다 테러와 절도에 시달려 왔던 변날쪽은 미온적인 사과를 거부하며 동아리 제명을 요구합니다. 이에 그레이트는 범인 3명이 다 탈퇴했다며 맞서고 변날 쪽은 다른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레이트 측이 탈퇴한 3인에게 성적 소수자 그룹이 주최하는 교육에 참가하도록 공개적으로 권유한다면” 제명을 철회하겠다는 것이죠. 물론 그레이트는 이 요구도 거절했습니다.
마침내 이화여대 동아리연합회는 꽤 의미있고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결단을 내립니다. 동아리 ‘그레이트 비전’에 대해 제명을 결의한 것이죠. 아시다시피 이화여대는 기독교 동아리고, 학생처 직원들이 변날 등 성적 소수자 행사를 사시미눈을 하고 쫓아다니는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한 동아리의 기물을 파괴하고 절취한 또 다른 동아리가, 피해 입은 동아리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했을 경우 그 존립 가치와 이유를 잃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응당한 일이었으나 “TV 드라마 보고 내 아들 동성애자된다.”는 말을 실제로 믿는 이들이 드글거리는 나라에서 그들의 결단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요즘은 있는대로 땡땡이를 치고 있지만 명색 저도 교회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성적소수자들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진보적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 성적소수자들이 사탄의 꾐에 빠진 자로 대접받을 일은 없고, 그 머리에 손 얹고 오 주여 이. 그릇된 욕정에 빠진 어린양을 구하소서 침 튀길 목사님도 없어요.
그런 가운데 어떤 성적소수자 커플이 교회에서의 결혼식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약간의 사단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막은 잘 모르니 설명을 생략하겠어요. 결론적으로 그들의 결혼식은 열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방관자로 건성건성 지켜보면서 나는 뜻밖에도 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벽이 얼마나 높고 강고한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어요.
“결혼이 시위도 아니고 꼭 교회에서 그렇게 물의 빚으면서 결혼하고 싶냐?”라고 혀를 차다가 “그럼 그분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 안에서 성혼할 자유도 없단 말이냐. 이 꼴통아.”하는 제 이성의 소리에 말문이 틀어박혔던 것은 그 단면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내 아들이 남자 며느리를 데려오거나 누군가의 며느리가 된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있느냐?”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저는 고통스럽게도 고개를 저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두고 보니 사실 저와 매튜를 죽였던 두 이성애자와의 간극은 그렇게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 간극은 점점 더 멀어져 가야 한다는 믿음이 있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