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브라더스 파산을 기점으로 시작된 초대형 금융위기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과연 이 비극을 일으킨 범인이 누군가를 두고 그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탐욕스러운 월가, 무분별한 파생금융상품 판매, 미연준의 저금리 정책, 금융규제의 완화, 신용평가기관의 모럴해저드 등 주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시장의 탐욕에서 원인을 찾으며, 이를 자본주의의 실패로 연결짓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이런 분석에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좀더 직접적인 계기, 혹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 못마땅하다.
- “리먼 브러더스를 굳이 파산시켜야만 했을까?
- “왜 하필 미국에서 거대한 부동산 버블이 터졌을까?”
를 잘 거론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처음과 끝에는 명백한 정부의 실패가 있었다. 특히 포퓰리즘과 청산주의라는 고질적인 정책기조가 문제를 야기하고 악화시켰다. 대공황 때에도 저지른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반성이 없고, 모든 책임을 시장에게 돌리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나는 시장 만능주의는 아니지만, 이런 형태의 쏠림을 보면 짜증이 난다. 얼마 전 “돈의 탐욕” (The love of money) 이라는 BBC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짜증이 폭발하고 말았다. 위 동영상은 3개의 에피소드 중 첫번째 것으로 리만브라더스 파산 신청 직전 있었던 뒷이야기들을 주요 인물들의 입을 빌려 들을 수 있다.
리만 브라더스의 멸망
2008년 9월 13일 토요일 (리만 파산 발표 2일 전),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처리를 위해 연준 이사회가 소집되고 월가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소환되었다. 당시 리먼브라더스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인수하거나 정부가 자금을 투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리먼브라더스 인수에 관심을 보인 곳은 미국의 BOA(뱅크 오브 어메리카)와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이었다.
하지만 BOA는 관망하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에 사실상은 바클레이즈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미 국제적으로 금융위기의 암운이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에 이 두회사의 회담은 사실상 양국 정부의 회담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영국은 미국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리먼 인수 후의 잠재적 부실에 대해 미국 정부가 보증을 서야만 리먼 인수를 승인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리먼브라더스의 협상단 및 월가의 주요 인사들은 당시 연준 이사회 멤버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연준 이사회의 입장은 단호했다.
“너희(월가)가 저지른 일이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
“자금이 필요하면 파산해라. 그래야 지원할 수 있다”
“너희가 파산해야만 시장이 진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리먼 측 협상단은 연준의 단호한 태도에 절망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이 결정이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 지 알고 있느냐?”
그러자 연준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마라”
여기서 리먼 협상단의 인사가 남긴 소회가 걸작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쫒겨났다”
그렇게 바클레이즈와 리먼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당시 메릴린치 CEO였던 존 테인은 이 회의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절대 리먼처럼 되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돌아가는 차안에서 BOA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메릴린치의 즉각적인 매각 의사를 전달한다. BOA 회장은 즉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고, 결국 다음날 BOA가 메릴린치를 500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BOA와의 협상 가능성마저 사라지자 리먼 브라더스에겐 어떤 대안도 남아있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조지 워커(부시 대통령의 6촌)라는 직원에게 호소하여 백악관에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백악관은 그 전화를 거절했다고 한다.
대선을 앞두고 “중요한 건 월가가 아니라 중산층이다”라는 구호가 판을 치는 상황이니 백악관도 월가를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무대책이 대책인 폴슨과 정부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새벽 2시, 리먼브라더스는 인터넷으로 파산 신청을 한다. 대공황과 LTCM 사태도 견뎌냈던 리먼브라더스가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아침에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관련한 인터뷰를 한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정부가 이런 부실기업을 지원할수는 없고, 앞으로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시장자유주의자이며 공화당원다운 발언이었다. 물론 헨리 폴슨은 딕 펄드 리만 CEO를 불신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월가에 부정적이었던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자 전 세계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정부가 리먼 브라더스를 저렇게 쉽게 버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세계 주식시장에 투매가 나왔고, 이로 인해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 금융기관들의 장부가치도 급락했다.
단기금리가 급등했고, 자금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거대한 신용경색이 발생했다. 멀쩡한 대기업마저도 돈을 구할 수 없었다. 당장 CDS(신용부도스왑)에 대거 투자했던 AIG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결국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발표된 그 다음날 연준은 AIG에 85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 은행들의 자본 가치가 의심받고 있었고, 이는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예금 인출 움직임까지 발생했다. 예금 인출 러시가 일어난다면 금융시스템은 끝장나는 것이다. 결국 헨리 폴슨은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대책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시키지 않는 데 드는 비용은 300억 달러면 차고 넘쳤음에도.
그런데 왜 하필 7,000억 달러였을까?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다. 나중에 재무부 관리가 밝힌 바에 의하면 막연히 큰 금액을 생각하다보니 그냥 7,000억 달러로 정했다고 했다. 헨리 폴슨이 얼마나 대책이 없었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헨리 폴슨과 버냉키는 이 법안에 사활을 걸었고,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매케인의 엇박자와 결국 악화된 상황
버냉키마저 적극적으로 나서자 일은 순조롭게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가 갑자기 이 법안의 처리를 위해 선거 일정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일이 꼬였다. 매케인은 이 법안을 정치 쟁점화 하고 싶었다. 월가의 구제에 세금을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는 여론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법안이 정치쟁점화되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법안의 처리는 계속 지연되었다. 그러는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은 더 큰 수렁에 빠지고 있었다. 급기야 9월 29일,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이 예상을 깨고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공화당의 2/3가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2/5도 반대표를 던졌다) 이날 미 증시는 9.11 사태 때의 684포인트 하락보다 더 많은 777.68포인트가 빠지면서 미 증시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그러는 동안 영국의 고든 브라운은 과감한 결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10월 8일 영국 정부는 8개 주요 은행에 대한 부분 국유화 정책을 발표했다. 10월 6일 아이슬란드가 파산하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은행들까지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자 더 이상의 패닉을 막기위해 궁극의 무기를 꺼내든 것이었다.
이 결정은 미국이 7,000억 달러 구제 금융을 승인하는데 큰 압력으로 작용했다. 결국 10월 17일 미국 상원이 먼저 7,000억 달러 구제 금융을 통과시켰다. () 초대형 구제금융 법안이 통과된 이후 금융시장은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시티그룹, GM, 크라이슬러 등 거대 기업에게 자금을 지원했는데, 이는 사실상 국유화에 다름없는 조치였다.
이제 서두에서 제기했던 첫번째 질문을 다시 해보자. 과연 리먼브러더스를 굳이 파산시켜야만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크게 다를 것이다. 나는 리먼브러더스를 파산시킨 결정은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청산이론에 입각한 처방이다.
투기는 나쁘고, 신용을 과도하게 일으켜 위험에 빠진 투기세력은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 환부를 도려내어야만 근원척인 처방이 가능하다는 생각. 물론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다. 기업의, 투자자의 리스키한 선택은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마불사를 기대하면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는식의 모럴해저드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그 이후의 영향을 예상할 수 있고, 대책이 마련되어 있을 때나 하는 것이다. 보다시피 미국 정부와 연준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신용경색이 왔을 경우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 이는 리먼 파산 이후 그들의 대응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누구도
연준은 말한다. 리먼 브라더스는 담보로 잡을 자산조차 없어 법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근거가 없었다고. 베어스턴스는 자산이 있었기 때문에 지원이 가능했다고. 내가 볼 땐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어차피 모기지 파생상품의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투자은행의 자산 가격 하락은 시간문제다.
베어스턴스에게 담보를 잡을 자산이 있었던 것은 자금 지원의 시기가 빨랐기 때문이다. 자금 지원의 근거나 논리는 만들면 된다. 어차피 후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지 않았나? 몇 조 달러의 MBS나 채권을 매입하는 양적완화까지 실시한 연준이 저런 말을 하는 건 코메디다.
학자들도 웃기긴 마찬가지다.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정치적으로 쟁점화되었을 때 200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손실을 보전해줄 수 없다며 미국 하원에 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 시간을 갖고 좀더 나은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강건너 불구경하는 사람들이나 할 소리다. 시장 참여자들 마저도 청산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결정이 내려진날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호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우물안 개구리였다. 사실 아무도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가져올 재앙적인 결과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결정이 옳은 선택이었느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의 기억을 가진 상태로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헨리 폴슨도, 버냉키도, 부시도, 매케인도, 오바마도 그 누구도 리먼 브라더스 파산이란 선택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문 : 마왕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