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그보다 더 참담한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며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 하나를 끄집어 내지 않을 수 없다. 떨쳐지지 않아서다. 만약에 세월호 희생자들이 강남부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었다면, 그런데도 이놈의 정부와 언론과 국회는 이따위로 허송세월하며 외면하기만 했을까? 물으나마나 한 질문이다. 당연히 그러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제 아무리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이기로서니 자신의 지지기반인 부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지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교통사고로 이해돼선 안 될 일이다.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사건이며, 따라서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그 이름은 바로 ‘노동자와 노동자의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 즉 노동자와 노동자의 아이들이 무참하게 떼죽음 당한 일이고, 죽어서도 끝내 차별의 굴레를 벗지 못한 채 구천을 헤매고 있는 사자들마저 외면하며 두 번 죽이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 노동자와 노동자의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
그러나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노동자와 노동자의 자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희대의 노동학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슬픈 일이며, 분노할 일이며, 안타까운 일이며, 잊지 말아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물며 성직자라는 사람은 유족들이 양보해야 하는 일이라 말하고, 정치권은 민생을 위해 단지 교통사고에 불과한 세월호 참사는 서둘러 봉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도 그것이 왜 노동자의 죽음이고 노동자를 부모로 둔 죄 없는 아이들의 죽음인지에 대해서는 말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두려운 것이다. 겁이 나는 것이다. 어찌 감당해 볼 자신이 없는 것이다. 노동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농단하기 힘들고, 어느 누구도 그 의미를 전유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그의 분노를 꺾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함부로 불러들일 수 없는, 그게 바로 노동이다.
노동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침묵케 해
참사 이후의 지지부진은 거기에 연원한다. 진상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는 것을 막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노동을 호출하지 않았으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제아무리 발악해봤자, 결국 저러다 제풀에 꺾이고 말겠지, 그래봐야 나약하고 지리멸렬한 서민들이라는 생각으로 대통령을 위시한 위정자들과 언론과 대중의 회피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다. 이제라도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다시 정의되어야 하고, 참사 이후의 진상규명과 진실에의 접근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노동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노동의 죽음이고, 노동에 대한 탄압이며, 노동형제의 자녀들을 수장시킨 희대의 참사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힘, 즉 노동이 결합할 때 세월호 참사는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노동의 감수성으로 무장할 때 비로소 저들도 긴장할 것이며, 그 긴장과 두려움으로 사태는 새로운 수습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미리 결론하건대, 그래서 지금 다시, 노동을 이야기할 때다. 김진숙을 살려내고 한진중공업의 사주를 만천하에 고발했던 ‘희망버스’를 다시 출진시켜야 할 일이다. 그의 전제로서 우리는 다시금 노동의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노동을 호흡하고, 노동을 호출해야 하고, 노동문학을 읽어야 한다.
지금, 다시 노동을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의 1970년대는, 1970년 11월 13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노동자 전태일이 청계시장 한복판으로 뛰쳐나와 제 몸을 불살랐을 때, 그때 비로소 격동의 70년대가 시작되었고, 그때 비로소 노동운동의 도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노동은 충격적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왔고, 이후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이어왔다.
당시의 충격과 분노와 울분과 열기는 고스란히 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촉발은 전태일이었고, 그걸 확산시킨 건 숱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심장의 고동과 피맺힌 절규였고, 노동문학이었다.
70년대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초판, 1978년 문학과 지성사. 2000년 이후 ‘이성의 힘’판, 2008년 초판 102쇄 발행)이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면, 고 조영래 변호사의 수고로 탄생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문건은 노동자들의 정체성을 일깨우는데 기여했다. 80년대 초반, 공단골목과 대학가를 떠돌던 이 문건이 <전태일 평전>(1983년 6월 도서출판 돌베개, 초판 1쇄 발행)으로 묶여 세상에 얼굴을 내밀면서 드디어 동토의 대한민국은 새로운 활기와 열풍의 80년대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80년대의 ‘열풍’을 주도한 <전태일 평전>과 <노동의 새벽>
전태일 열사가 70년대를 열어 재꼈다면, 그의 인생역정이 담긴 <전태일 평전>은 80년대의 열기를 뿜어내는데 혁혁하게 기여했다. 또한 신군부의 폭압이 극에 달할 즈음, 노동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준 것은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년 풀빛, 1987년 해냄에서 발행)이었다. <전태일 평전>의 뒤를 이어 발행된 <노동의 새벽>은 출간 즉시 문단은 물론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었고, 문학의 혁명이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늘어처진 육신에
또 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의 표제시 ‘노동의 새벽’ 전문.
그로부터 3년, 1987년에 이르러 마침내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 대투쟁’으로 역사의 전면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혹자는 7월의 ‘노동자 대투쟁’을 일러 6월 정치투쟁의 부산물 혹은 전리품이라고 비아냥하기도 하지만 그건 도시 말이 안 된다. 노동현장에서는 이미 수천, 수만의 ‘이름 없는 전태일들’이 피 흘리며 노동의 근육을 길러왔으며, 그러한 근육들의 육박하는 힘이 마침내 87년 7월이라는 공간을 강고하고도 단단하게 채워냈던 것이다.
그 연원을 캘 수 있는 단초이자 증인이 바로 80년대의 끄트머리에서 노동문학의 확고부동한 성취이자 발전이라 할 <파업>(원제 ‘동지의 약속’. 안재성 지음, 제2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 도서출판 ‘세계’ 간, 1989년)이었다.
70년대에 이어 80년대까지 신동엽과 김지하, 양성우, 신경림, 나해철, 정희성 등의 활약이 돋보였던 ‘시(詩)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확연한 소설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견케 하는 소설집이 나타난다. 김영현의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실천문학사, 1990년)가 그것이며, 이어 후일담 소설들과 무라카미 하루키 류의 감성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다시 노동의 감성에 불을 지핀 이는, 저 자신 답답한 대학에 갇혀 신음하고 있던 엄우흠이라는 청년이었다. 그의 처녀작이자 유일한 작품인 <감색 운동화 한 켤레>(실천문학사, 1991년)가 돌연 노동과 운동의 감성을 자극해낸 것이다.
<파업> 노동의 성취이자 노동문학의 확연한 성취
90년대 초반이야말로 노동문학이 활짝 피어났던 절정의 시기였다. 제2회 전태일문학상수상작이었던 <파업>에 이어 제3회수상작인 <열풍>(김서정, 세계, 1991년)이 출간되었고, 정도상을 비롯한 작가들의 노작들이 담긴 소설집 <서울, 그 어느 쓸쓸한 사랑>(지리산 간, 1991년), 김하경의 <그해 여름>(세계 간, 1991년) 등이 속속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당겼다.
7, 80년대의 노동문학이 대체로 번역물(잭 런던 <강철군화>,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1,2>, 고바야시 다키지 <게 공선> 등등)이었던 데 비해, 90년대 초반 수종의 노동소설이 출현한 건 노동운동사에서도 주요하게 다룰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노동문학은 갈등하는 노동자를 고되고 힘든 실천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한편, 돌아와 힘겹게 숨을 돌리고 있는 지친 노동자의 머리와 가슴을 식혀주는 청량제의 역할까지도 해내었던 것이다.
90년대 초반, 노동문학이 활개를 폈던 시기
아쉽게도 21세기에 들어서는 90년대 노동문학의 성과를 계승하지 못했다. 방현석(<새벽출정>, <겨울 미포만>) 등이 간헐적으로 노동소설의 명맥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노동문학은 더 이상 지난 시절의 결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노동문학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선 건 저 거룩한 민주정부에서 자행된 노동법 개악 정국이었다. 더 이상 노동은 문학의 감수성을 수혈 받지 못했고, 열정과 울분도 표출할 곳이 없었고, 분노를 토해낼 공간도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어이없게도 그 시기는 바로 김대중`노무현의 민주정부 집권기였다.
1987년 7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환경은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사업장에는 어용노조를 대신해 새로운 노조가 들어섰으며, 산별노조가 탄생했고, 민주노총이라는 가슴 떨리는 ‘노동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변화 혹은 성과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땀과 피, 헌신과 희생이 밑돌이 되었고, 더러는 동료의 주검을 가슴에 묻는 일을 겪어야 했다. 노동운동의 열기는 공교롭게도 정권의 탄압수위와 정확하게 비례해 왔다. 그만큼 우리의 노동운동사는 피의 냄새가 짙게 밴 파란과 격정의 역사였다.
반노동의 역사와 함께 한 노동의 역사
노동의 역사는 또한 반노동의 역사와 함께 했다. 배반의 역사는 어처구니없게도 민주정부를 자처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집중적으로 기술되었다. 그 시기 유난히 노동 관련법 개정이 많았던 것이다. 제도와 법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노동은 말 그대로 정치적 흥정의 매개물로 전락했다.
노동법은 노동의 요구와 열망과는 달리 개악에 개악을 거듭했다. 후퇴와 패배, 양보와 배신으로 점철된 노동법 개악의 과정과 내용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더구나 그와 같은 일은 소위 민주정부를 자처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김대중 정권이 비정규직 양산의 물꼬를 터주었다면,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의 양산과 더불어 고착화에 박차를 가했다.
10년의 민주정권에 이어 재등장한 보수정권은 더 이상 노동을 탄압할 이유조차 없었다. 앞선 두 정권이 구축해 놓은 구조화된 차별과 비정규직 양산체제를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즐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노동은 정권의 관심권에조차 멀어져 갔고, 그 와중에 300여명의 노동자와 그의 자녀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생중계로 수장되었다.
과거 사용자에 맞서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같은 노동자와 반목하고 갈등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믿지 않았다. 정권으로선 더할나위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만 내버려둬도 지들끼리 싸우다 제풀에 쓰러질 것이니 신경 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자신감을 얻은 정권은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싸움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차별을 넘어 노동 자체의 싹을 없애버리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공무원 노조의 파괴와 전교조 말살은 그 전조에 불과했다. 그 이름도 거창하고 그럴싸하게 새로운 차원의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선진화니 민영화니, 생산성 향상이니 구조조정이니, 자회사 설립이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재집권한 보수정권, 노동탄압을 넘어 노동말살 획책
그런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면서도 외면하기만 했다. 세월호 참사는 노동의 참사이며, 노동의 죽음이라는 것부터 명확하게 자각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노동자의 피와 땀과 눈물로 구축해온 노동의 역사를 일거에 맹골수도에 수장시켜 버리고, 그 위에서 다시 자본가로 대표되는 기득권들의 수익구조 재편을 꾀하려는 의도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와중에 언론과 진보진영은 역대 최약체인 야당을 탓하는 것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나자빠진다. 언론이야 그렇다 치자. 최소한 역사의 발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적어도 노동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정권의 노림수와 꼼수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그래서다. 다시, 노동을 읽어야 한다. 다시 공부하고 느끼고 아파하며 노동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하여 노동의 위상과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잃어버린 노동의 감수성 회복해야!
잃어버린 노동의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감수성을 회복한 뒤에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 역시 노동은 근육의 힘으로 성장한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필시 운동성을 회복해야 한다. 노동운동성의 회복, 노동 중심성의 복원이야말로 지금의 세월호 정국에서 우리가 담지해야 할 최선의 노력이며, 최대한의 운동일 것이다. 먼지 쌓인 책장에서 실로 오랜만에 꺼내든 <전태일 평전>과 <강철군화>, <파업>과 <감색 운동화 한 켤레>, <소금꽃나무>를 펼쳐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領域)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하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指環, 金力을 뜻함)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평전>의 마지막 쪽, 전태일 열사의 ‘유언’ 전문.
개악된 노동법에 깔려 신음하던 노동은 2010년대에 이르러 다시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한없이 웅크렸던 10여년 동안 노동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갈가리 찢겨 있었다. 노동자는 그새 세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노동자와 해고노동자, 그리고 현장과 유리된 채 어깃장으로 정치의 길을 걷는 지도부라는 이름의 상위 조직들.
그 모두를 불러 모아 새로운 노동의 감수성을 회복하자고 울부짖었던 건 부산의 김진숙이었다. 그의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2007)가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고, 그의 35미터 고공 크레인에서의 309일 간의 투쟁은 그야말로 잠자고 있던 노동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 와중에 노동자들은 도처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적게는 수백일에서 많게는 수천일 동안 거리에서 옥상에서 공중에서 장기투쟁에 지쳐가고 있었다.
<소금꽃나무>, 노동문학의 새로운 희망!
바로 그때 다시 노동이 하나의 길로 모여야 한다는 자각과 성찰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문학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에는 가슴을 울리는 글들이 수두룩했고 노동자의 가슴을 울렸다. ‘학번 없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거나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라는 깊은 한숨이 다시금 흩어졌던 노동을 한데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게,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 <소금꽃나무>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중에서.
김진숙의 절규와 울부짖음은 마침내 침잠하던 노동의 심장들을 들불처럼 일어나게 했고, 잠자던 노동의 감수성을 일깨웠다. 그리고 종내 그의 주장은 ‘민들레 연대’라는 한 마디의 말로 요약된다. 김진숙의 ‘민들레 연대’는 여전히 유효한 연대의 정신이자, 구호이며, 끝나지 않은 노래이다.
“낮은 곳에 피었다고 꽃이 아니기야 하겠습니까. 발길에 차인다고 꽃이 아닐 수야 있겠습니까. 소나무는 선 채로 늙어 가지만 민들레는 봄마다 새롭게 피어납니다. 부드러운 땅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길게 자랄 수 있지만 꽁꽁 언 땅을 저 혼자 힘으로 헤집고 나와야 하는 민들레는 그만큼만 자라는 데도 힘에 겹습니다. 발길에 차이지만 소나무보다 더 높은 곳을 날아 더 멀리 씨앗을 흩날리는 꽃. 그래서 민들레는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꽃입니다.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애 처음 민들레를 기다리는 봄. 이 설렘을 동지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2006년 3월 11일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 노동자 고용승계 쟁취 3차 결의대회에서. (<소금꽃나무> 162, 163쪽에서.)
언제 읽어도 감동적인 노동문학 10선
1. <전태일 평전>(조영래, 아름다운 전태일, 2014)
2. <노동의 새벽>(박노해, 느린걸음, 2014)
3. <소금꽃나무>(김진숙, 후마니타스, 2007)
4. <파업>(안재성, 세계, 1989)
5. <감색 운동화 한 켤레>(엄우흠, 실천문학사, 1991)
6. <세상 끝의 골목들/쇳물처럼/새벽 출정/봄비 내리는 날/매향 외>(방현석 등저, 창비)
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문학고 지성사, 1978)
8. <게 공선>(고바야시 다키지, 문파랑, 2014)
9. <강철군화>(잭 런던, 한울, 1989)
10. 황석영소설집 <객지>, 황석영 지음, 창비, 2005)
원문: 대안미디어 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