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기억을 마음대로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픈 첫사랑의 추억, 군대에서 고참들한테 갈굼먹었던 기억, 취업 면접장에서의 쪽팔림… 아니, 차라리 이렇게 아련한 추억으로 미화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낫겠다.
야동 보다가 부모님한테 걸렸던 기억, 양다리 걸쳤다가 애인한테 들켰던 기억 같은 것들은 미화할 수도 없고 매우 쪽팔리는 기억들이다. 특히 최근에 이러한 종류의 매우 쪽팔리는, 하지만 잊고 싶은 기억을 갖게 된 많은 이들에게 삼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바이다.
잊고 싶다… 잊고 싶어… 잊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망각’할 수 있는가? 보통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무엇인가를 잘 기억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은 쉬운 질문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듯하다. 심리학개론 교과서에도 널리 실려 있는 한 연구에 의하면, 어떤 대상을 잊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나중에는 오히려 더 떠오르게 된다.
이 실험에서는 사람들에게 ‘흰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도록 지시한 상태에서, 5분동안 ‘흰 곰’이 떠오를 때마다 종을 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흰 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계속 ‘흰 곰’이 떠오른다고 보고하였으며(종을 쳤으며), 이후 이러한 억압을 풀어주었을 때, 사람들은 억압하라는 지시를 미리 듣지 않았던 경우보다 더 자주 ‘흰 곰’이 생각난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의식적으로 어떤 기억을 억압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 기억의 더 잦은 회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쾌한 기억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불쾌한 기억을 잊을 수 있는가? 사실 심리학자들도 어떻게 잘 기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해 왔지만, 어떻게 잊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하는 듯하다. (사실 이런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흔하지 않으니까!) 망각에 대한 어떤 연구들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들을 돕기 위해 이루어졌다.
PTSD 환자들은 과거의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인데(대표적으로 전쟁, 성폭행 등), 이러한 환자들의 아픈 기억들을 어떻게 완화시키거나 잊어버리도록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일부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져 왔었다. 이와 관련하여 인출-유도 망각(Retrieval-Induced Forgetting)이라는 심리적 현상이 주목받았다. 대체 이 현상이 뭐길래 PTSD 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후보로 각광받았는지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출-유도 망각은 어떤 대상에 대해 기억해낼 때, 그것과 같은 범주의 유사한 개념들이 점점 잊혀져가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새’를 떠올릴 때 ‘뻐꾸기’를 계속 떠올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들 중 ‘뻐꾸기’를 제외한 다른 새들에 대한 기억이 점차 약해진다. 이를테면 ‘직박구리’ ‘파랑새’ ‘메추라기’ 등은 점점 기억에서 잊혀서 간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망각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뻐꾸기’를 떠올릴 때마다 다른 새들에 대한 기억의 강도가 약해진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점점 뻐꾸기 외의 다른 새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 멘붕에서 벗어나는 방법
이러한 현상은 불쾌한 기억을 완화시키거나 망각하는 데 응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쁜 남자와의 고통스러운 이별로 인해 힘들어하는 여자가 있다고 해 보자. 인출-유도 망각을 이용하여 이 남자를 잊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다른 남자를 사귀는 것이다. 다른 남자에 대해 생각할수록 A에 대한 기억은 옅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사랑으로 인해 얻은 병은 새로운 사랑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PTSD 환자들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려 시도한다. 아픈 기억과 관련되어 있는 다른 정보를 떠올리도록 계속 유도함으로써 아픈 기억이 점점 잊혀지도록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폐기’라 부른다.
자, 그러면 이제 배운 것을 실제로 응용해 보는 것만 남았다. 만약 이번 대통령 당선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잊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연히 다른 대통령들을 계속 떠올리면 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을 조용히 마음속으로 한 번씩 되뇌어 보자. 이승만, 장면, 박정희…
아, 박정희는 좀 그렇다. 박정희를 떠올리면 대통령 당선자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니 말이다. 그러니 인출-유도 폐기를 위해서는 일단 명단에서 박정희를 제거해야 한다. 박정희를 제거한다면 같은 군부독재 세력 전두환, 노태우도 제거하는 것이 낫겠다.
그러면 이승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남는다. 자, 이제 하루에 한 번, 자기 전에 이승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을 떠올려 보자. 그러면 조금씩이나마 대통령 당선자가 지워질 것이다. 그걸로 부족하면 허경영을 세 번 불러봐도 좋다.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아차, 흰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