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 사는 삶이다.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예외가 없는 일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도전하며 살 것인가, 현실에 안주하고 말 것인가. 끝없이 반복하는 고민이다.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해답이랄까. <남자의 후반생>(모리야 히로시 저, 양억관 역, 모멘텀 간, 2013)은 후회 없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책은 특히 인생의 후반부를 치열하게 살아서,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을 완성해낸 중국 역사 속의 인물 22명을 소개한다. 22명의 삶은 저마다 커다란 울림이 있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능력에다 좋은 환경 덕분에 일찍이 성공가도가 보장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웃자란 벼는 익기도 전에 낫질을 당할 가능성이 크고, 모난 돌은 정을 맞는 게 또한 세상사의 이치이기도 하다. 너무 이른 출세나 인생 초반부의 성공은 자만을 부르기 쉽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면서 적을 만들 우려가 크다. 또한 위기관리의 경험을 갖지 못해 쉽사리 몰락의 나락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초반부에 실패를 거듭했던 사람이 끝내 좌절하지 않고 분발하여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 성공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인생을 온전히 불살라 이룬 성취이기에 질투를 유발하기보다는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남자의 후반생>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삶의 후반부에 이르러 인생을 꽃피운 사람들이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이었을 리 없다. 그들에겐 뭔가 남다른 점이 있었을 것이다.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졌을 건 자명한 일이며, 시절을 잘 만나는 행운도 따랐을 것이며, 그를 알아준 눈 밝은 누군가의 조력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려나 인생 역전에 성공한 사람에게는 저마다 그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 인생을 늦게 꽃피운 사람들 : 중이, 공자, 공손홍, 주매신, 위징.
공자는 굳이 여기서 언급할 필요가 없을 테고, 특히 관심이 가는 사람은 ‘주매신’이다. 그는 일찍이 무능해서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뜻을 굽히지 않아 무려 오십에 이르러 출사하게 된 인물이다. 물론 성공한 이후 옛 아내를 정성껏 보살피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훌륭한 인물이다. 주매신을 읽으며 문득 한때 유행했던 ‘간 큰 남자’라는 말이 떠올라 속으로 웃었다.
– 산뜻하게 삶을 바꾼 사람들 : 범려, 진평, 여몽.
범려는 거부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는 부를 결코 헛되이 쓰지 않았다. 일찍이 범려는 와신상담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인물로 월나라의 대장군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스스로 정계에서 물러나 장사에 뜻을 두고 평생 돈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며 생을 마감했다. 출세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스스로 모실 줄 알았던 진정한 현인의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천하의 명재상 진평(유방의 참모)도 간과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가 설파한 ‘황노술(노자학)’은 오늘날의 위정자들이 귀담아 들어 둘만하다. 노자가 이르기를 “대국을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조리하듯 해야 한다.”고 했다. 작은 생선을 조리할 때 쓸데없이 젓가락으로 쑤시거나 휘저으면 부서지셔 보기에도 좋지 않고 맛도 없어진다. 시간을 들여 양념이 배어들기를 기다려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공연히 들쑤시기보다는 때를 기다리라는.
–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 : 소진, 장의, 사마천, 사마광.
전국시대에 ‘합종연횡’이라는 외교 전략을 펼친 인물이 바로 소진(합종)과 장의(연횡)였다. 그들의 지략은 오랜 고생 끝에 터득한 삶의 지혜였으며, 인생의 말년에서야 꽃을 피운 것이었다. 사마천은 ‘궁형’의 고통과 좌절을 이겨내고 중국의 최고 역사서 <사기>를 완성한 인물로 유명하다. 사마광 역시 뛰어난 역사서 <자치통감>을 완성한 뛰어난 인물이다. 그들은 모두 좌절을 딛고 마침내 인생의 후반생을 위대한 업적으로 채워 넣은 사람들이다.
– 승부수를 던져 성공한 사람들 : 여불위, 유방, 법정.
소위 ‘올인’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다. 유방이야 <열국지> 혹은 <초한지>, 법정은 <삼국지>의 인물이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다만 여불위는 새롭게 발견한 대단한 승부사다. 그는 빈객들과 <여씨춘추>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한낱 인질에 불과했던 진나라의 공자 ‘자초’에게 올인해 계략을 꾸미고 끝내 왕으로 세우고, 장차 그의 아들 정(政)이 전국을 통일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인물이다. 항간에는 그가 정(시황제)의 친부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대단한 승부사이며, 중국의 역사를 뒤바꾼 장본인이기도 하다.
– 늘 도전하며 살아간 사람들 : 조조, 도간, 왕안석, 왕양명.
대체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공통점은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 조조는 천하의 노력파로 지금껏 세간에 이름을 떨치는 인물이다. 왕안석과 왕양명은 지금 말로 하자면 개혁의 기수들이라 하겠다. 왕안석이 재정개혁을 부르짖었다면 왕양명은 주자학에 반기를 들어 새로운 학풍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도간은 좌천과 강격의 아픔을 딛고 열심히 재기를 모색해 끝내 나라(동진)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한시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 노력파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 공명을 멀리한 사람들 : 왕희지, 도연명, 여신오.
명필의 대명사 왕희지, 은둔시인 도연명을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그들이 인생의 후반기에 삶의 진의를 터득하고 자신의 소질을 십분 발휘한 점을 높이 살 뿐이다. 여신오는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그의 명저 <신음어>는 당대 최고의 인생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저작이다. 그는 인생의 매 순간을 정성 들여 기록해 두었고, 그게 훗날까지 전해져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하고 있다. 그의 인생에 대한 일갈은 오늘 되새겨도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난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정작 부끄러운 일은 가난하면서도 뜻이 없음이다.(…) 늙음을 한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무 목적 없이 늙음을 한탄해야 한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분발을 다짐할 때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
인생의 후반부는 40세부터일까, 60세부터일까? 물리적인 기준이 중요한 건 아닐 테다. 스스로 지난 삶을 돌아보며 분발을 다짐하는 때, 그때가 바로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아닐까. 공자는 마흔에 미혹됨이 없어지고, 오십에 천명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모리야 히로시 <남자의 후반생> vs 이중톈 <품인록>
모리야 히로시의 <남자의 후반생>이 인생 후반의 성공을 기준으로 22인의 인물론을 펴고 있다면, 이중톈 교수의 <품인록>(박주은 역, 에버리치홀딩스 간, 2007)은 보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역사 속의 인물을 재조명한다.
특히, 중국 역사의 걸출한 인물들인 항우(項羽), 조조(曹操), 무측천(武則天), 해서(海瑞), 옹정제(雍正帝)의 삶을 집중 조명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 이들 다섯 인물의 공통점은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다. 과연 그들의 비극은 어디서 연원한 것일까. <품인록>은 그러한 불행은 결국 그들의 성품이나 인격과 관계가 깊다는 점에 주목한다.
비극적 최후는 성품과 인격 탓.
<품인록>의 모토는 중국의 전통 중의 하나인 인물 품평을 재현하자는 것이다. 그 취지와 의미가 출판사에서 제공한 아래의 글에 정리돼 있다.
고래로 중국에는 인물 품평의 전통이 존재해왔다. 공자도 자신의 문하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을 품평했다. 공자는 간명한 언어로 사람의 특질을 정확히 짚어냈다. “자로는 과감하다”, “자공은 사리에 통달했다”, “염유는 재주가 많다”, “중궁은 임금 노릇을 할 만하다” 등. 공자는 인자(仁者)는 타인을 사랑하고, 지자(智者)는 타인을 잘 이해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물 품평은 일종의 지혜의 표현이다.
루쉰魯迅 역시 천두슈陳獨秀와 후스胡適의 서로 다른 매력을 다음과 같이 비교 품평했다. “두 사람의 도략韜略을 창고에 비유한다면, 천두슈는 창고 앞에 ‘안에 무기가 가득 들어 있으니 조심하시오!’라고 쓴 깃발을 꽂아놓은 것 같다. 그러나 깃발과 달리, 막상 문을 열어보면 총 몇 자루에 칼 몇 자루가 전부라 사람을 허탈하게 만든다. 후스는 꼭꼭 걸어 잠근 문 위에 ‘안에 무기가 없으니 의심하지 마시오!’라고 쓴 작은 쪽지를 붙여놓은 것 같다. 그러나 나 같은 이들로 하여금 그 말이 정말일까 싶어 문을 열어보고 싶게 만든다.
인물평도 예술이자 철학
인물 품평도 이 정도면 예술이자 철학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재 대학교에는 문학과, 예술대학, 철학과, 사학과를 막론하고 ‘인물 품평’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 않다. 신문이나 잡지에도 문학 비평, 예술 비평은 있지만 인물 비평은 찾아볼 수 없다. 더러 인물에 대한 전기나 일화는 있지만 인물 감상鑑賞은 드물다.
사실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감상 가치가 풍부한 존재 아닌가. 술과 차, 그림과 시도 품평을 하는데, 어째서 인물 품평은 없단 말인가? <품인록>은 그렇게 해서 씌어졌다.
<남자의 후반생>과 <품인록>에 고무된 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다룰 수 있겠으나 우선은 정치권 인사들, 그중에서도 특히, 차기(혹은 차차기) 대권에 도전할 의사를 가졌거나 은연중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를 하는 사람, 더불어 자천타천으로 대권주자로 꼽히는 사람들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이른바 ‘잠재적 대권주자 22인에 대한 짧은 품인록’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다. 객관적이거나 구체적인 근거를 가진 주장이 아님을 밝혀둔다. 개인의 의사이기에 필연적으로 인물들에 대한 호불호가 드러날 것이며, 정보의 한계로 인한 오해도 있을 것이며, 정치적 지향도 담겼을 것이다. 이점 유념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잠재적 대권주자 22인에 대한 짧은 ‘품인록’
여권 잠룡 11인
김무성 : 훤칠한 외모와 호방한 성격, 든든한 집안배경과 재력까지 갖춘 사람. 그러나 빈곤한 철학에서 나오는 천박한 언변으로 입만 열면 경쟁력이 깎이는 사람.
김문수 : 서민적 이미지와 성실한 품성. 드물게도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였으나 진보에선 배신자, 보수에선 여전히 미심쩍은 사람.
정몽준 : 축구협회장 시절 구축한 인맥 덕분인지 외교적 수완이 좋은 사람. 지나친 눌변에 재벌 출신 특유의 아집과 독선으로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람.
반기문 : 뼛속까지 관료인 사람. 역대 최약체의 UN사무총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귀국 후엔 대한적십자사 총재 정도를 하면 어울릴 사람.
원희룡 : 남경필과 함께 당내 소장파의 한 축을 형성, 친숙하고 참신한 이미지를 구축함. 큰 선거의 경험이 없어 아직 단단한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
김태호 : 그야말로 덩칫값 못하는 사람. 자기관리가 안 되는 영원한 아마추어.
남경필 : 소장파의 상징으로 승승장구. ‘수신’과 ‘제가’에 실패해 ‘치국’ 대신 ‘치명상’을 입었으니, ‘평천하’보다는 ‘평정심’찾기에 골몰해야 할 사람.
이완구 : 이름만큼이나 의뭉스러운 사람.
이인제 : 최다 당적변경과 최다 대권도전의 2관왕을 노리는 사람. 이쯤 되면 정치철새를 넘어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
유승민 : 여권의 기대주, 아직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여권의 히든카드.
오세훈 : 자기연민의 정치인이자 세기말적 낭만과 데카당스의 아이콘.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정치로 주변을 당혹스럽게 하는 개인플레이의 대명사.
야권 잠룡 11인
박원순 : ‘박원순’을 넘어서야 ‘박원순의 가능성’이 열린다! 시민운동가와 행정가를 넘어 ‘정치인 박원순’으로 거듭나야 할 숙제를 안은 사람.
손학규 :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다가 우선 자신부터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로 한 사람.
문재인 : 제1야당 최대 계파의 수장이지만 정치력은 최악인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최고의 정치인 사람. 권력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권력을 잡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
안철수 :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된 새정치의 열망을 ‘전유’하려다 몰락을 자초한 사람.
김부겸 : 손학규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노무현의 길을 갈 것인가?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한 사람.
안희정 : 영민한 ‘정치 아이돌’이자 차분한 품성을 가진 사람, 아직은 자기 정치를 시작하지 않은 원석.
정동영 : 진보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현실정치인 중 가장 진보적인 행보를 걷는 사람. 꺼지지 않은 휴화산.
정세균 : 관리형 리더 혹은 전형적인 바지사장 스타일. 대권은 바지사장을 뽑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김두관 : 스토리는 좋은데 스토리텔링이 안 되는 사람. 그동안 줄곧 자기 스토리를 까먹는 마이너스의 정치를 해온 사람.
박영선 : 국회의원으로선 최고, 리더로서는 2% 부족한 사람. 절치부심, 다시금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상품가치가 큰 사람.
유시민 : ‘싸가지 없는 진보’의 원조. 정당 파괴자. 좋은 머리에 출중한 언변과 뛰어난 글발을 갖췄으나 가슴(감성)이 메말랐다는 평을 듣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