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키노트는 늘 짜임새 있게 준비되고, 소비자들을 매혹시키는 제품 소개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 9월 9일의 이벤트는 몇가지 면에서 그렇지 못했다. 단순히 이벤트 초반 짜증을 불러일으킨 스트리밍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애플의 키노트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소개할 때 늘 있어왔던 “왜”라는 스토리가 빠졌다.
잘못된 키노트
2001년 10월 23일, 스티브 잡스가 오리지널 아이팟을 선보일 때 그는 현재의 음악 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왜 애플이 음악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이팟의 특별한 점이 무엇인지를 얘기했다. 2007년 1월 9일 오리지널 아이폰을 선보일 때도 역시나 현재의 스마트폰 시장을 설명하고, 애플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이폰의 멋진 점이 무엇인지 얘기했다. 또한 아이팟, 전화, 인터넷 커뮤니케이터라는 세가지 카테고리를 하나로 합친 제품이 아이폰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서 아이폰의 장점을 확실히 했다.
2010년에 발표된 아이패드도 그랬다. 조잡한 넷북을 비꼬고, 현재 시장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했다 – 그 당시에 태블릿 시장이라고 할만한게 없었다. 그리고 아이패드가 그 시장에서 사용자의 어떤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지를 확실히 했다. 발표장에 준비된 쇼파는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장치 중 하나였다.
심지어 9월 9일 있었던 애플 페이 발표에서도 그런게 있었다. 왜 애플 페이를 만들었고, 현재의 결제 시장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애플이 현재 잘못된 부분들을 어떻게 바로잡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하지만 애플 워치를 발표할 때 그런 설명은 없었다. 기존의 스마트워치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애플은 무엇을 올바르게 했는지, 애플 워치가 어떤 점이 특별한지 설명하지 않았다. 단순히 스티브 잡스가 팀 쿡보다 키노트를 더 잘하고, 훌륭한 스토리텔러이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는 포인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기기다. 스티브 잡스만큼은 아니어도 스토리가 부여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애플 워치의 라이브 데모는 거의 재앙이었다. 데모를 진행한 케빈 린치가 무엇을 보여줬는지 기억하는가? 스마트워치의 작은 화면에서 사진을 보고, 영화 내용을 확인하고, 지도를 봤다. 도대체 주머니 속의 아이폰을 두고 애플 워치에서 그걸 확인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완전히 잘못된 데모였다.
애플 워치에는 시계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재밌는 기능들이 있다. 길을 찾을 때, 화면을 보지 않고 손목에서 울리는 진동으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애플 워치로 아이폰의 카메라 리모콘을 대신 할 수도 있다. 애플 워치의 데모에선 아이폰에서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기능들 대신, 애플 워치로 더 재밌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기능들을 보여줬어야 했다.
애플 워치
다행스러운 것은 애플 워치가 키노트만큼 나쁘진 않은 제품이라는 것이다 – 오히려 반대다. 늘 그렇듯 완성도 높은 만듦새와 다양한 커스터마이제이션이 가능한 디자인, 디지털 크라운(용두)의 활용, 애플의 디테일에 대한 강한 집착은 애플 워치를 꼭 필요하진 않지만 갖고 싶은 제품으로 만들어냈다. 애플은 시계 화면을 원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게 하고, 탭틱 엔진으로 진동까지 개인화 시키면서 스마트폰보다도 더 친밀함을 담고 있는 기기로 만들었다.
애플 워치는 아이패드가 그렇듯이 꼭 필요한 기기는 아니지만, 있으면 더 편하고, 없으면 아쉬운 아이템이 될 것이다. 자신의 하루하루 움직임을 완벽하게 기록하고 싶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보기보다는 손목에 부드럽게 울리는 진동으로 알림을 받고 싶은 사람들은 애플 워치를 구입할 것이다.
350달러부터 시작하는 애플 워치의 가격은 비슷한 가격대의 손목 시계들이 갖고 있는 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같은 가격대의 시계와 비교해보면 애플 워치의 만듦새와 디테일은 기능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제품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현재로서는 애플 워치보다 비싼 고급 시계를 대체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젊은 세대들은 애플 워치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젊은 세대들이 비싼 고급 시계를 구입할 수 있는 세대가 되었을 때, 그들은 알림을 해주지 못하고 하루의 움직임을 기록해주지 못하는 시계는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건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계 제조사들에게 실재하는 위협이 될 수 있다.
물론 스위스에 제대로된 위협이 되기 위해서 애플 워치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고작 하루를 가는 배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너무 부족하고, 다소 두꺼운 두께는 셔츠의 커프 아래에 차기엔 부적절하다. 하지만 애플 워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두께는 얇아지고 배터리는 더 오래 가게 될 것이다. 패션 아이템이니만큼 더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변할 수도 있다. 아이팟이 그랬고, 아이폰이 그랬고, 아이패드가 그랬듯이 말이다.
팀 쿡이 말했듯, 애플 워치는 애플의 이야기에 다음 챕터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