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광화문 일베 시위는 매우 상징적이다. ‘청년 극우’의 본격적인 대두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말하면 야권 지지층 일각이 일베에 대한 대항법으로 제시한 일베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전략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얘기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베가 왜 규탄받아야 하는지는 보편인권 의식만 있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일간베스트라는 커뮤니티이자 플랫폼의 구조적 특성에 대한 평가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그 부분은 여러 면에서, 한국 정치에서 일베가 갖는 영향력과 포지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검토의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크게 네 가지 지점에서 다뤄보겠다.
1. 일간베스트의 규모
일베는 동시접속자가 2.5~3만 명에 달하는 대형 커뮤니티이며, 다음 아고라와 같은 포털 기반이 아닌 대형 커뮤니티 중에서 일베에 비해 확실히 규모 면에서 앞서는 사이트는 거의 없다. 사실상 일베는 명실공히 한국 인터넷 스페이스의 주도적인 한 축이다.
일베와 지배적인 성향 면에서 비교되는 5개의 대형 커뮤니티, MLBPARK 불펜, 뽐뿌, 오늘의 유머, 클리앙, SLR클럽을 생각해 보자. 이 커뮤니티의 접속 인원을 전부 합친다면 일베를 압도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두 가지 착시현상이 존재한다. 우선, 야당 지지자의 정치적 포지션 쪽이 일베로 대변되는 정치세력이 갖는 정치적 포지션보다 다원적이라는 사실이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과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간의 충돌은 야당 지지 대형 커뮤니티에서는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저런 대형 커뮤니티는 중복 인원이 적지 않다는 점. 핸드폰 정보를 보기 위해 클리앙에 가고, ‘살 것’을 찾아 뽐뿌에 가고, 야구를 얘기하러 MLBPARK에 가는 사람은 전혀 드물지 않다. 그에 비해, 과연 일간베스트 구성원이 다른 커뮤니티와의 중복접속을 하는 비중이 최소한 저만큼 흔하다고 볼 수 있는가? 심지어 일간베스트는 수많은 다종다양한 토픽의 게시판이 있으며, 대부분의 관심사는 일베 ‘안에서’ 처리가 가능한, 포털과 대형 커뮤니티의 중간에 가까운 기능을 가진 커뮤니티다.
동접자 3만, 일일 페이지뷰가 500만에 육박하는 사이트의 지배적 여론이 갖는 크기는, 야당 지지자 일각에서 나왔던 “관심종자에겐 관심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전략을 무의미하게 한다. 뽐뿌와 맞먹는 규모의 사이트의 지배적 여론과 그 구성원의 반사회적 행동, 반인륜적 언행을 ‘관심을 안 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 그간 야권 정치세력도, 지지자들도 일베를 ‘사실상 방치’ 했지만, 일베는 잘만 성장했다. 일베는 ‘무시할’ 수 있는 사이트가 아니다. 오히려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 일베의 규모이다.
2. 여론형성의 인센티브
일간베스트의 구조를 간단히 살펴본다. 게시판이 있고, 글이 있으며, 모든 글에는 추천(산업화)과 비추천(민주화)이 공존하고, 추천이 많은 글은 대문으로 간다. 추천이야 어지간한 대형 사이트에는 있지만, 비추천은 보기 드물다(오유 정도). 이 비추천은 누적될 경우 유저의 유저 레벨을 떨어뜨리고, 자동입력 방지 문자를 입력해야 하며, 글에 ‘짤방’을 삽입할 수 없다. 매우 적극적으로 소수 의견을 구축하고 소수 의견의 생산자의 발언을 억제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산업화’가 이루어진 글은 당장 대문에 걸린다. 또한 ‘정치 게시판’의 일간 베스트는 일베 전체의 베스트 글 밑에 따로 걸리며, 접속하는 순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글은 일간베스트 전체 베스트 글과 정치게시판 베스트 글이다. 이렇게 게시판 개별 게시판을 넘어 모든 유저가 손쉽게 사이트의 다양한 게시판 전체의 베스트 글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역시 드물다.
이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의 역할을 한다. 하나는 일베 내에서 ‘자정작용’, 정확히 말하면 여론의 집적과 통일이 손쉽게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야권에서 대통령을 칭송하는 글이 거부당하는 것에 비해 일베에서 야권 정치인을 칭송하는 글이 거부당하는 효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동시에 추천을 통해 대문에 걸리는 시스템은 사람의 타인에 대한 계몽 욕구와 공명심을 자극한다. 이 시스템은 대문에 걸린 글에 뭔가를 보충하고 싶거나 더 논리적인(그렇다고 해 두자) 글을 쓰고 싶어하는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며, 일베 구성원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가치에 대비해 ‘나쁜 글’이 빠르게 배제되는 과정과 맞물려, 일간베스트 구성원은 어떤 사안에 대한 나름대로의 일관되고 정돈된 여론을 빠르게 축적하고 공유한다. 이 구조는 뒤에 설명할 ‘이슈파이팅’에 크게 도움을 준다.
결국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일베의 자료가 다른 사이트에 넘어올 때쯤 되면 그 정국에 대한 인식을 대변하는 일베의 자료는 빠르고 효과적인 강화와 개선을 거쳐 우수한 ‘선동성’을 보유하고, 다양한 이미지, 영상, 통계, 기사들로 무장한 그 자체로서 완결된 선동 컨텐츠로서 완성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몽준 선대위’가 그것을 활용했으며, 이슈가 되고 있는 중장년층 카카오톡 유언비어의 생성 역시 그런 일베에서 양산된 자료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그런 구성원리를 가진 일베 유저들이 ‘선동’을 문제삼는다는 점은 블랙유머다)
3. ‘친목 밴’과 유대의식
일베는 대형 커뮤니티 중 압도적으로 소위 말하는 친목질을 강력하게 배제하는 사이트인데, 이것 역시 구조적인 측면에서 따져볼 가치가 있다. 친목질의 배제는 커뮤니티에 있어 상반된 효과를 가져온다. 첫번째는 ‘유명인사’의 탄생을 억제하는 것이며, 두번째는 사이트 내의 평등주의와 ‘유대의식’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친목을 배제하는 것은 일간베스트의 유저를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는 역할을 한다. ‘일게이’가 그것이며, ‘일베 가수’로 유명해진 브로(Bro)의 인증에서 드러나는 강한 유대의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유명인사가 배제되고 반말을 사용하는 일간베스트의 구성원은 ‘불알친구’와 같은 멘털리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유대의식은 온오프에서의 다양한 반사회적인, 심한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심리적 원천을 제공한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는 영화 <친구>의 슬로건을 떠올려 보자. 어떻게 추동하느냐에 따라서, 일베의 구성원은 커뮤니티 에서 눈에 띄고 싶은 마음, ‘용자’가 되고 싶은 생각 등이 겹치는 것으로 충분히 반사회적 행동을 감행할 수 있게 된다.
구태여 어제의 시위와 같은 극단적인 정치적, 공적 행동이 아니더라도, 여러 면에서 그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여동생이나 누나의 사진을 도촬하는 매우 중고등학생 패거리를 연상케 하는 행위나, 학교의 대자보를 몰래 밤중에 찢는 것과 같은 좀 더 라이트한 종류의 행동들이 그렇다.
여론형성의 인센티브와 맞물린 유대의식의 특성으로, 제도 정치의 영역에서 일베는 재미있는 포지션을 갖추게 된다. 일베 출신 정치인은 나오기 극히 어렵지만, 대신 온라인에서는 1선, 오프라인에서는 2선의 영역으로서 ‘여의도연구소’와 공존하는, 결과적으로 보수를 위한 재능기부를 연상케 하는 포지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화문에서의 시위는 오프라인에서도 ‘1선’으로 동원될 수 있는(어버이연합과 쌍벽을 이루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보여준다.
4. 보수를 위한 재능기부
지난 지선에서 정몽준 선대위가 일베 자료를 쓰고, 다양한 종류의 대중 프로파간다에 새누리는 일베의 자료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일베가 만들어내는 ‘선동성 강한’ 완결된 컨텐츠는 카카오톡과 맞물려 중장년의 여론에 영향을 주는 효과적인 도구로서 활용된다. 이미 범 새누리 진영은 일베의 자료를 가까이 두고, 필요하다 판단되면 얼마든지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일베라는 커뮤니티의 자료를 ‘제1당’이 활용하고 있는데, 제1당에도 멀쩡하게 정당 싱크탱크가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의도연구소다. 그러나 여의도연구소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정국’에 대한 적극적인 프로파간다를 생성하지는 않는다. 여의도연구소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거’이자 정책이다. 사실 여연은 선거 때에나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지, 정국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간베스트에서 강한 유대의식과 신념, 효율적인 여론형성 인센티브를 통해 생성되는 다양한 자료(박원순 괴담, 유가족 비판 자료 등 다양한)는 여연의 미시적인 정국에서의 공백을 채운다. 일베 자료를 다른 산하 조직 구성원들에게 공유하고, 그 구성원이 카카오톡으로 다시 뿌려주는 것을 통해 일베의 자료는 매우 효과적으로 중장년층을 향한 ‘선동’의 기능을 담당하며, 여연이 하기는 힘든, 매우 저렴하고 천박하지만 효과적인 정치선동을 담당한다.
여의도연구소는 ‘판세’를 읽고, 일간베스트는 판세에 영향을 주는 느슨한 공조체계의 완성이며, 일간베스트의 구성원들은 결국 범새누리 진영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그들은 나름대로의 구국의 신념으로 그와 같은 자료를 생성하고 공유한다).
또한 일베는 광화문 시위에서 드러난 것처럼, 제2의 어버이연합으로서 현실적인 동원력까지 보여줄 수 있음을 입증했다. 범새누리 진영이 그런 일베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이라면, 아마 일베의 서버비를 보태주는 것(일베의 규모를 생각할 때 그 서버비를 대체 어떻게 조달하는 것인지는 많은 사람들의 의문으로 남아있다), 몇 명의 관리자에게 적절한 쌈짓돈을 꽂아주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일베는 대단히 효과적으로 대중선동과 동원을 위한 도구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어떤 정국의 우세를 잡기 위한 여론전 부터 인원 동원까지 다양하게 여권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결론
지금까지 개인적인 4가지 키워드로 일간베스트의 구조적인 특성과 정치적 성질을 정리해 보았다. 일베가 재특회와 같이 자리를 잡을 지, 또는 혹자의 표현대로 나치의 한국 버전이 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일베를 ‘무시하는’ 전략은 거의 실패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일베는 명백한 축이다. 그 사실로부터 전략의 재구성, 목표의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여진다.
원문: 잉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