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우고 바르디(Ugo Bardi)의 과학의 쇠퇴: 왜 너무나 많은 논문이 출판되고 있는가? (The Decline of science: why we are publishing too many papers)를 번역한 글입니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에 의해 초래된 임박한 재난에 맞서서 무언가를 행할 긴급한 필요성을 의사 결정권자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대단히 실패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과학적 연구의 쇠퇴에 대한 한 증상일 뿐인데, 과학적 연구는 연구비를 간절히 추구하지만, 대중의 무관심과 관료지배체제에 시달리면서 만연하는 사이비과학의 현상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 글에서 나는 과학의 쇠퇴의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출판을 강조하는 것(“출판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라” 규칙)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과학 논문들이 현대 금융 시장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점들을 겪고 있는 화폐의 한 형태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금융 세계와 과학 세계 둘 다 처리량을 최적화하지만 반드시 편익을 최적화하지는 않는 “창발적” 특성들을 발달시켰다. 요약하면, 논문들이 너무나 많이 출판되고 있다.
과학 세계는 모든 종류의 논문들의 진짜 쓰나미에 잠긴 듯 보이는데, 소리와 분노와 설전으로 가득차 있다. 좋은 정보(그런 것이 있다면)를 압도하는 저질의 정보에 잠긴 월드 와이드 웹의 일반적인 불협화음의 상황과 더욱더 비슷해 보이는 상황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수는 적지만 질은 더 높은 논문들을 출판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요청한 사람들도 있다(예를 들면, 티모 한네이(Timo Hannay)가 주장했듯이).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가? 무엇 때문에 과학은 논문 공장이 되어 버렸는가? 여기서 나는, 그것은 복잡한 체계들의 기본적 특성들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런 체계들은 일견 매우 상이한 듯 보이는 분야들에서 흔히 비슷한 창발적 특성들을 생성한다. 특히 과학 출판은 세계의 금융 체계와 매운 비슷한 것으로 판명되는데, 통제되지 않은 성장과 자원 낭비와 관련된 모든 문제점들을 나타낸다. 내 주장을 설명하겠다.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과학자들은 출판하라, 출판하라 그리고 출판하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그것은 저자들의 동료들이 투고된 논문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권한, 또는 수정을 요청할 권한을 지니고 있는 “동료 평가” 과정으로 시행되는 “출판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라” 규칙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데, “동료 평가”의 다양한 변양태, 과학 저널들의 상이한 명성, 상이한 확산 방법(예를 들면, 공개 접근 방식 또는 구독료 지불 방식) 등이 존재한다.
과학 출판 체계와 관련된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는, 동료 평가 체계가 일반적으로 정말로 나쁜 논문들은 걸러낼 수는 있지만, 그저 평범한 논문들은 거의 걸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동료 평가의 한계점들은 때때로 “과학계량법(scientometry) 또는 “과학계량학(scientometrics)”이라는 이름―사이엔톨로지(Scientology)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으로 제시되는 불가해한(그리고 효과 없는) 출판 후 평가 방법들을 창출했다.
비과학자들에게는 출판하라는 요구와 과학 출판 방법들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문제를 우리 모두가 친숙한 것, 즉 통상적인 화폐에 비교하면 그것이 전적으로 명료해질 것이다. 포괄적이지 않은 목록으로 다양한 유사점들을 검토하자.
아홉가지 유사점
1. 화폐.
오늘날 우리가 화폐로 사용하려고 꾀하는 방식은 아무런 고유 가치가 없는 것인데, 그것은 종이 형태 또는 컴퓨터의 비트 형태를 갖는다. 그런데 이런 비트 또는 종이를 소유함으로써 명품과 사치품을 획득하고,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게 된다. 과학 논문의 경우에도 상황은 정확히 동일하다. 그것 자체로 논문은 거의 또는 아무 가치도 없을 것이지만, 어떤 과학자가 논문을 더 많이 출판할수록, 그의 명성은 더욱 더 높아지며 과학적 사다리를 타고 더 높고 더 명망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 또한 논문도 비싼 연구 장비(현미경, 입자 가속기, 스캐너 등)의 형태로 사치품을 가져올 수 있다.
2. 화폐 발행.
오늘날 중앙은행은 화폐를 발행하는 권한이 있는 존재자이고, 그래서 그렇지 않다면 무가치한 한 장의 종이가 ‘돈’이 되게 하는 비준 표식을 찍는 권한이 있다. 과학에서 어떤 논문의 비준은 과학 출판사들의 특권이다. 그런데 누가 과학 출판사들에게 이런 권한을 부여하는가? 그것은 흥미로운 질문인데, 이것은 누가 은행에 화폐 발행이라는 같은 종류의 권한을 부여하는지라는 질문과 꼭 마찬가지로 대답하기 불가능한 질문이다.
3. 화폐를 사용하기.
보통 화폐는 그것 자체로는 아무 가치도 없지만, 시장에서 모든 종류의 품목들과 교환될 수 있다. 과학 논문들은 교환하기가 그렇게 용이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을 임금, 승진, 명예 등을 획득하는 데 필요한 교환권으로 사용함으로써 보통 화폐로 변환될 수 있다.
4. 인플레이션.
화폐는 인플레이션을 겪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의 일부를 상실한다. 과학 논문들도 같은 현상을 겪는다. 더 오래된 논문들은 새로운 논문들보다 가치가 떨어지고, 그래서 과학자로서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한다. 논문들이 더 오래되고 새로운 논문들이 출판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아무 가치도 없을 것이다.
5. 화폐의 이자.
보통 화폐는 더 많은 화폐의 형태로 이자를 획득하기 위해 은행에 예치될 수 있다. 과학 논문의 경우에도, 과학 논문들을 과학자들이 더 많은 논문을 산출하는 데 사용할 연구비로 변환시키는 연구비 지원기관들에 의해 같은 역할이 수행된다. 그것은 강화 되먹임의 고전적 사례이다.
6. 평가.
보통 화폐의 진짜 가치는 귀금속에 대한 화학적 평가를 포함할 절차에 의해 확증될 수 있다. 종이 화폐의 경우에, 그것들이 공인 기관들에 의해 발행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법들이 존재한다. 과학 논문의 경우에, 그것들의 유효성은 “심사자들”, 즉 보고된 데이터와 해석이 올바른지 여부를 결정할 과학자들에 의해 확증된다.
7. 위조.
보통 화폐는 다양한 방식으로 위조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귀금속 대신에 무가치한 금속의 형태로, 비공인 기관들에 의해 발행된 종이 화폐의 형태로, 그리고 미지의 소국들의 중앙은행에 의해 발행된 합법적인―그러나 무가치한―화폐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과학 출판에서 위조는 기성의 출판사들과 동일한 유효성 검증을 수행하지 않는 작은 “포식성” 출판사들에 의해 수행되며, 저자들이 (포준 화폐로) 지불하는 출판 비용을 받는 대가로 무엇이든 그냥 출판될 수 있을 것이다.
8.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것은 모든 경제에 잘 알려진 현상인데, 귀금속의 함량을 줄이거나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함으로써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과학에서는 과학 출판사들―흔히 자신의 논문이 출판되는 것을 몹시 보고 싶지만 전통적인 저널들에 실지 못한 과학자들로부터 돈을 벌고자 하는 떳떳치 못한 기업들―이 급증함으로써 동일한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그 결과는 좋은 논문들의 흐름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는 나쁜 논문들의 폭증이다.
9. 폰지 사기와 다단계 마케팅.
폰지 사기는 내부자의 특권을 위해 낮은 단계의 사람들이 높은 단계의 사람들에게 지불하는 피라미드형 구조이다. 다단계 마케팅은 비슷하지만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위해 지불한다. 과학의 경우에도 그런 도식들이 존재하지 않을 까닭은 전혀 없다. 최근에 출범한 몇몇 저널들은 다단계 마케팅 도식과 대단히 비슷해 보이는 피라미드형 구조를 취했다. 이 경우에 과학자들은 “편집자” 임명이라는 미끼로 유혹하는 그런 도식에 이끌린다. 그 결과, 그들은 출판사를 위해 무보수로 일한다.
결론
보다시피, 유사점들은 매우 많고 매우 명백하여 현대 과학의 출판 체계에서 논문은 자체를 창출한 체계 내에서 존재하고 번성하는 일종의 화폐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출판 체계는 매우 깊게 뿌리 박히고 매우 자연스러워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것의 기원에 대해 거의 또는 아무 관심도 나타내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런데, 한 세기 전에는 동료 평가 체계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예를 들면, 마이클 닐센의 이 글을 보라).
예를 들면,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300여편의 논문들 가운데 단 한 편만이 동료 평가를 거쳤다. 오늘날 알려져 있는 과학 출판 체계는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규칙이 된 듯 보인다. 이런 체계가 아무도 계획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자체적으로 출현한 것은 인상적이다. 그것은 “창발적 현상”인데, 이것은 퍼텐셜 에너지의 소산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는 복잡한 체계들의 특성들 가운데 하나이다(예를 들면, 카일라와 아닐라의 논문을 보라).
세계의 금융 체계는 지구의 자연 자원의 파괴를 극대화하기 위해 진화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지구의 자원 재형성 역량보다 훨씬 더 큰 속도로 자원 소비를 선호하며, 이것은 명백히 인류에 유익하지 않다. 세계의 과학 출판 체계는 평범하고 쓸모없는 논문의 대량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화해왔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이것은 과학에 유익하지 않다. 간단히 말해서, 논문들이 너무나 많이 출판되고 있다!
이런 체계들은 바뀔 수 있는가? 세계 금융 체계의 개혁이라는 주제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세계 과학 출판 체계의 개혁에 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에서, 개혁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어려운 듯 보인다. 과학에서는 “공개 접근 방식” 체계로 과학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고자 하는 선의의 노력이 역효과를 낳은 듯 보이는데, 평범하거나 나쁜 논문들의 수가 급증함으로써 과학적 퍼텐셜의 훨씬 더 빠른 소산에 유리한 “포식성 출판사들”의 물결을 초래했다. 금융 체계는 모든 종류의 변화에 훨씬 더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인다.
결국 이런 종류의 체계들 대부분은 그것들이 붕괴되어 버린 후에 재구성함으로써 개혁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놀랍지 않은데, 어쨌든 우리는 열역학과 싸운다면 열역학이 항상 이길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원문: 사물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