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북 사용자는 남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고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요즘 남의 이야기를 앞뒤 문맥없이 많이도 보고 있다. 그러다보면 아 나는 저 기사속의, 저 사진속의 누구보다 못한가 아닌가 싶어 부러워 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만해도 높은 지위를 얻는다던가 부자라던가 잘생겼다던가 세계적 석학으로 이름이 높다던가 멋진 자동차나 집을 가지고 있다던가 유명한 작가로서의 명예가 있다던가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다만 일단 부러운 감정이 생기면 나는 다시 그게 뭔가를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그것을 한번 더 생각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가르켜 누가 신포도의 여우처럼 그저 부러운 것에 대해 안부럽다고 변명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해도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달리기를 하는 것이든, 술을 마시는 것이든, 집에 가서 아이들과 아내를 한번 더 안아주는 것이든 아니면 사색에 잠겨서 이 모든 것의 의미가 뭘까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든 그 결과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리고 그런 행복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이 시시하게 그런 성공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생각하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런 것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시간을 쓰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나의 타고난 재능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나는 결국 모든 것을 다 해볼 수는 없다. 따라서 정해진 기회속에서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는 방향이 어디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박태환이나 김연아같은 유명 스포츠 스타가 부럽다. 우선 운동에 재능이 전혀 없는 나는 그저 크게 아프지 않은 정도에 만족해야 했을 뿐 스포츠로 두각을 나타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토록이나 성공적이라 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런 경험들은 분명 새롭고 재미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드는 것이다. 나는 그게 부럽다.
그러나 실은 나에게 수영이나 피겨스케이팅을 잘하고 싶은 욕망은 없다. 나는 그런 것에 정렬을 불태우는 사람을 존경하며 그런 가치를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이해하지만 나 자신은 그렇게까지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분명한 것은 나는 재능이 없다. 내가 목숨을 거는 정도가 아니라 열번을 죽으면서 연습한다고 해도 세계 무대에 나가서 기록을 세우는 선수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니 부럽다고 해도 나로서는 별 의미없는 부러움 인 것이다. 나는 화성에도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지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그렇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렇게 까지 해서라도 가보고 싶은 것은 아닌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 그러나 나의 부러움이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대부분은 이런 식의 부러움이다. 그런 스포츠 스타는 내게 있어서 화성이나 마찬가지다. 부럽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라는 사람이 진짜 가치를 느끼는 부러움, 내 인생을 걸고 고생을 참아가며 극복하고 싶은 부러움은 아니다.
그럼 지금 이순간 내가 진짜 부러운 사람이 있을까? 있다. 누굴 부러워 하는가는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으며 반드시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내가 진짜로 부러운 사람들은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꾼 사람들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일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현실적으로 그런 것 때문에 사는 것이 훨씬 덜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원초적 즐거움이란 참으로 단순한 것이다. 우리는 경치 좋은 곳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온화한 기후를 즐기며 맛있는 것을 먹고, 노래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사는 정도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누가 그런 것을 원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인류가 대단한 사치를 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인구를 조절하는 데 있어서 자제력만 좀 보인다면 인류는 이렇게 살고도 남을 만큼의 것을 소유하고 있다. 인류까지 넓히면 현실감각이 안든다고 말한다면 한국인들은 이렇게 살 수 있다고 말해 보련다.
집의 안과 바깥을 청소하고 마을과 고장의 자연환경을 가꾸고 먹을 것을 나누고 재미있는 것을 고민하면서 살기에 우리가 가진 것이 부족하지 않다. 나는 일찌기 그러니까 25년쯤 전에 처음으로 외국에 갔었을 때를 기억한다. 런던에 도착하여 지금의 한국의 이마트 같은 세인즈베리 슈퍼에 들어갔었다. 그렇게 큰 슈퍼마켓을 처음 본 나는 이렇게 가진 게 풍부한데 왜 세계에 굶는 사람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세인즈 베리 슈퍼보다 더 좋은 곳이 이제는 한국에 가득하다. 왜 한국인이 가난하다는 것인가.
우리는 앞으로도 학문을 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고 거대한 건물을 짓거나 문화 예술 작품들을 만들어 갈테지만 그런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지는 몰라도 그런 결과물 자체는 우리의 행복과 별 관련이 없다. 우리가 지금 행복해 지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물질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문화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우주선 한대씩 가지는 날이 와도 그래서 틈틈이 달로 화성으로 휴가를 떠나는 날이 와도 그것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확실하다. 도대체 그걸 아직도 모른다면 얼마나 더 많이 가져야 그것을 수긍할 것인가.
우리는 쓸데없이 싸우고, 쓸데없이 미워하며, 쓸데 없이 잘난체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살다보면 오해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해도, 우리가 사는 방식은 인간의 한계 운운하기에는 너무 창피한 수준이다.
부동산이며 통장에 돈을 쌓아두고서도 우리 대부분은 미래를 걱정한다. 왜냐면 세상이 불안해서 이 정도 가지고 미래를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고민은 다른 누군가가 보면 때로 터무니가 없다. 아마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가문인 삼성가문의 사람들도 돈을 쌓아두고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천억 가진 사람도 미래를 걱정하고 백억 가진 사람도 미래를 걱정하고 10억 가진 사람, 1억 가진 사람, 천만원 가진 사람도 대부분 빚 때문에 재산이 마이너스인 사람처럼 미래를 걱정한다.
왜 걱정하는가. 세상을 믿을 수가 없으니까, 다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 나도 걱정한다. 세상 사람을 다 믿을 수가 없어서. 만약 세상의 모든 것이 공짜라면 나는 그저 나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서 책읽고 여행하고 산책하고 글쓰고 노래하고 술마시고 살 것이요 그렇게 지금 하고 싶은거 하는데 정신을 쓸 뿐 내년이나 10년뒤에는 어쩔것인가 하고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유치원에 한번 가보라. 그때부터 입시공부에 시달리는 이상한 아이들을 뺀다면 부모가 해주는 밥먹고 크는 아이들이 내년에는 뭐하고 놀까를 걱정하느라 오늘 놀지 못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
이건 몽상일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인정한다. 맞다 이게 다 몽상이다. 우리는 너무 어리석고 쓸데 없이 문제를 만드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근심걱정에 쌓여서 산다. 하지만 자신있게 나의 몽상을 몽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 아니며 약육강식으로 죽고 사는 경쟁만 하고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의 생각은 몽상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물론 문제없는 천국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좋은 것도 많은 세상에 산다. 때로 즐거운 일도 많다. 그런데 그 부분이다. 그렇게 살수 있는 것이 우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약육강식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몽상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이 정말 그런 곳이라면 애초에 당신 부모는 왜 당신을 키웠겠는가. 귀찮기 짝이 없고 힘들고 돈드는데 말이다. 우리의 친척, 우리의 이웃, 우리의 친구, 거기서 더 나아가 그저 우연히 살다가 만난 사람들, 직장동료,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우리가 어떤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인간을 믿고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즐거운 시간도 가지며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잘나서 이만큼 사는 게 아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그걸 어떻게 모르냐고 되묻고 싶다. 당신만큼 운이 없었던 사람들은 세상에 넘치도록 많을텐데 말이다. 당신이 즐기는 만큼의 신뢰를 즐기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은 분명 이 세상에 넘치도록 많을 텐데 말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 유태인들조차 마찬가지다. 그들의 뉴스를 보고 가만히 생각해 보라. 어느날 폭탄이 집 안에 안 날아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그게 공짜인가? 아니다. 누가 자기는 그것을 즐길수 없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모두를 위해 이게 좋다고 희생해 주었기 때문에, 세상을 바꿔주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즐기는 것이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보라. 아니 그런 예들은 너무 극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버스 정거장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모든 것이 너무 들떠있는 낮이 아니라 모든 것이 좀 차분해진 저녁무렵에 버스정거장에 가서 버스마다 가득히 실려오는 사람들을 한번 구경해 보라. 그리고 이만큼 사는 것이 정말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씩 한발씩 양보하고 조금씩이라도 서로 믿고 사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피터지게 죽도록 경쟁하고 싸워 이겼기 때문인지 스스로 느껴보라. 아마도 전자가 옳다고 느끼리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단순히 남들에게 봉사하고 싶다던가 하는 마음으로 이런 생각들은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서울에서 차를 달려 개성도 보고 평양도 보고 신의주도 보고 중국이며 러시아까지 달린다면 얼마나 멋질것인지 꼭 해보고 싶다. 그런데 못한다. 주로 무겁다면 무거운 역사 때문이지만 생각해보면 결국 우습다면 우스운 인간들 때문이다. 분명하지 않은가. 나는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재미가 없다.
초상집에서 나 혼자 재미있을 턱이 없다. 그러니 힘든 사람이 있으면 적절히 위로 하고 또 다같이 재미있게 인생 살아가는 것이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세월호 사건 같은 것이 터지면 정말 배가 산으로 간다. 천명 만명 천만명, 오천만명이 재미있게 사는 걸 방해하고, 자기 혼자 욕심부리는 인간들은 밥을 하루에 천끼는 먹는 욕심쟁이인건지 아니면 머리가 짐승 수준인건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가 사람들이 다 좀 서로 믿고 살게 하고, 쓸데없이 싸우지 않게 하고, 문제 안 만들게 하고 얼마 안되는 인생 즐겁고 좋은 일만 고민하는 것에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 분들 세상에 있다. 잘 안 보일 뿐이다.
안 그런 것 같으면 나이 좀 든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잘 생각해 보라. 몇십년 전에는 사람들이 바캉스니 힐링이니 같은 거 별로 이야기 안했다. 세상이 훨씬 더 살벌한 면도 있었다. 사람들은 민족이니 국가니 같은 이야기에 눌려 살았다. 그때의 한국은 지금 우리가 북한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박정희 치하의 한국은 김일성 치하의 북한과 다르다면 많이 다르지만 비슷하다면 굉장히 비슷한 것 같다. 공산주의나 자유민주주의나 어떤 사람들의 입에서만 다를 뿐 행동은 굉장히 비슷하다. 김정일 사진이 비를 맞으면 그걸보고 울던 북한 응원단이 있었다. 남한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 남한에도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예외도 있지만 많은 한국사람들은 지금은 그래도 전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산다. 그래도 상식이란 게 지켜진다고 믿으면서 산다. 공중화장실에 휴지 가져다 놓으면 다 훔쳐가지는 않지 않은가. 세상을 바꾼 분들 덕분이다. 그런 분들은 힘든 것도 많았겠지만 보람도 컷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그런 분들이 부럽다. 그리고 종종 보잘 것없는 내 능력이 한스럽고 답답하다.
하지만 그것도 물론 내 입장에서는 화성에 가고 싶다는 꿈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고 나는 나대로 살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나는 나대로 살 것이다. 조금 틀리다면 앞문을 열어 놓고 살 것이고 많이 틀리다면 앞문 뒷문 걸어놓고 사는 수밖에 없다. 그건 물론 재미가 덜한 일이다. 그건 물론 유감스러운 일이다.
출처: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