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유관순, 유신시절 국정 교과서에도 안 실렸다“는 기자메모가 실렸습니다. 기사 일부를 인용해 보면:
“경향신문이 29일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우리역사넷(contents.history.go.kr)을 확인한 결과, 유관순 열사는 해방 후 발행된 1차(1956년)·2차(1966년) 교육과정 교과서는 물론 1979년 유신정권에서 발행된 고교 국정교과서에도 전혀 서술이 없었다.
1982~1996년 발행된 4~6차 교육과정 교과서에선 3·1운동 부분의 각주에 “유관순의 순국 사실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는 짤막한 문장으로 서술됐다. 2002년부터 사용된 7차 교육과정의 마지막 고교 국정 교과서에선 유관순 서술이 다시 빠졌다.”
일단 저는 유관순 열사가 ‘영원한 겨레의 누나’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유관순은 참 독특한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유관순은 일제 강점기 때 신문 기사를 검색할 수 있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도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1933년 동아일보 기사에 등장하는 유관순 씨는 동명이인)
그러니까 사실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유관순이 유명인사가 아니었을 확률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유관순은 언제부터 조선의 잔다르크가 됐을까요? 유관순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건 한 신문에서 1947년 2월 28일자 ‘순국의 처녀‘ 기사였습니다. (내러티브 형식으로 쓴 글이니 기자 지망생 여러분들은 꼭 전문을 읽어보시라.)
“그는 일찍이 충남 논산 지방의 한 농가에서 자라난 유관순이라는 소녀로 한 해 전인 기미년에는 서울 이화고등여학교 1학년 학생이었으며 3월 1일 거족(擧族)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모교학생들과 함께 서울 거리로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달리었었다.”
이 기사는 “유관순 양의 오빠가 당시 배재(고) 3학년 학생이라고 전문(傳聞)하였는데 생존해 계사면 신문사로 연락 취해주기 바란다”는 필자부기(筆者附記)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기어이 오빠를 찾아 3월 7일자에 “조선의 ‘잔다르크’ 유양 오빠도 현재 건국에 활약“이라는 기사를 내보냅니다.
이 기사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유관순 양의 피로서 얽혀진 이야기는 그 당시에 있어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였고 이미 본지 2월 28일자에 게재된 ‘순국의 처녀’로서 글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거니와”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걸로 볼 때 일단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처음 ‘발굴’했다는 걸 알 수 있고, ‘잔다르크’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뒤로 ‘유관순 붐’이 일어납니다. 동아일보에서도 그해 11월 27일자에 유관순을 처음 소개했고, 천안 병천리에서는 기념비 제막식도 열렸습니다. 그렇게 숨진 지 27년이 지나고 나서 유관순 누나는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링크를 클릭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재미있는 건 여기 등장하는 ‘한 신문사’가 경향신문이었다는 점. (물론 당시 이 신문사는 가톨릭 계열로 지금하고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 이 기사를 쓴 인물은 장편 소설 ‘순애보’의 작가 박계주 선생입니다. 그는 일제 대륙 침략 전쟁에서 무훈을 세운 ‘김석원 부대장’을 앞세운 단편 소설 ‘유방(乳房)’ 등으로 친일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발굴한 유관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들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유관순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기록에 근거해 사실로 확인한 내용입니다. 그저 우연히 친일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 유관순을 먼저 발굴했을 뿐인 거죠.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는 스코필드 박사 역시 옥중에 있던 유관순을 면회하고 돌본 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 박계주 선생도 ‘혐의’를 받을 뿐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같은 데 오른 것도 아닙니다.
그럼 유관순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관순이 ‘아이콘’으로서 과대평가 됐다는 점에는 저 역시 동의합니다. 어린 나이에 독립을 외치다 목숨을 잃은 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뭔가 큰 업적을 쌓았다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그저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 합니다. 옥속에 갇혔어도 만세 부르다 푸른하늘 그리며 숨이졌대요(‘유관순 노래’)”라며 그를 칭송하는 것 정도면 충분한 게 아닐까요?
고등학생이 돼 역사 교과서를 받아보기 전에 유관순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일 테니 말입니다.
원문: kini’n cre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