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도 영화 <명량> 열풍
기업이 <명량>에 열광하고 있다. 특히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고 있는 기업 경영자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다. 직원들을 이끌고 <명량> 영화관에 간 경영자도 있다. 주말에 <명량>을 본 경영자는 대부분 월요일 조회, 임원회의, 간부회의에서 <명량> 이야기를 꺼낸다. 무슨 얘기를 할까?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하자”, “책임지지 않는 장수는 필요없다”, “성과는 올바른 전략에서 나온다” 등등…
얼마나 위기를 극복하고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이럴까 싶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경영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행동보다는 그가 한 말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진다.
명량대첩이 가능했던 이유
명량해전은 12척의 배로 330척 왜군을 격파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10대1의 싸움, 100대 10의 싸움을 연상하면 된다. 아무리 싸움 잘하는 사람도 넓은 운동장에서 10명에 둘러싸여서는 싸움에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한꺼번에 10명이 달려들면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런데 10대1의 싸움이 한 사람만 건널 수 있는 외나무 다리에서 한 명씩 순차적으로 10명과 싸우는 상황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른 상황으로 10대 1의 싸움이지만 좁은 골목에서 한 번에 1~2명씩 상대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명량해전은 아군 12척 배와 적군 330척 배의 전투 상황이었다. 장군은 10대 1로 맞짱을 뜨는 상황에서 싸움을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려는 장수와 장병들에게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전투에 나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싸움 공간을 울돌목이라는 좁은 곳으로 유인해서 330대 12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이다.
명량해전의 두 가지 교훈, ‘문화’와 ‘전략’
<난중일기>에 보면 명량해전 하루 전 날 장군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 너희 여러 장수들은 살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이어서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장군은 명량해전 직전 장수들에게 ‘문화’와 ‘전략’이라는 전투에 필요한 두 가지 축을 얘기했다.
문화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내부 자원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이란 말처럼 ‘살고 싶은면 죽을 각오로 싸우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330대 12라는 비교가 안되는 전력을 가지고 싸움에 나설 때 두려움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장수들은 어떻게 전투에 임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전략이란 내외부 자원을 활용하여 목적한 바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다.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라는 표현이 있다. 거대한 적에 맞서 넓은 바다에서 맞짱뜨는 것이 아니라, 물살이 가장 빠르고 폭이 좁은 울돌목으로 적을 유인하여 싸우는 것이다.
여기서 장군은 세 가지 전술을 구사한다. ‘일자진'(울돌목을 꽉차게 배를 일자로 도열), ‘백병전'(조총을 쏘지 못하도록 붙어서 싸움), ‘충파'(아군의 강한 배로 적선에 부딪쳐서 충돌 시킴)이다. 아군의 배를 일자로 나열하여 포위당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수백 척의 어선을 12척의 군함 뒤에 도열하여 적에게 군함이 도열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백병전을 통해 뒷줄에 있는 적선이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적선 보다 훨씬 크고 강한 아군 배로 적선을 부디쳐서 침몰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수의 적선은 앞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구경만 하는 상황이 되고 물살에 쓸려 오는 배는 자기 배를 추돌하게 만드는 기가 막힌 전략이다.
함께 전장을 누볐던 부하의 목을 가차없이 베다
영화 속에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군영을 탈출한 병사가 잡혀오는 장면이 나온다. 탈영병은 장군에게 “살려달라”고 빈다. 영화에서 그려진 장군은 부하를 돌보는 자애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장군은 일절 주저함 없이 탈영병 목을 친다. 6년 전 임진왜란부터 오랜 기간 충성을 다하여 함께 싸운 부하의 목을 친 이유는 단 하나다. 일벌백계. 탈영병의 목을 친 행동은 ‘문화’인가? ‘전략’인가?
‘생즉사 사즉생’의 관점에서 보면 ‘문화’처럼 보이고, 전략 달성을 위한 리더십이라고 본다면 ‘전략’처럼 보인다. 경영자들은 ‘전략’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충격요법을 통해 경영자의 리더십에 두려움을 갖도록 하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경영자들이 이 장면을 보면서 임원에게 책임을 묻거나, 해고 등을 떠올리는 것 같다. 나는 이 행위를 ‘문화’로 보든 ‘전략’으로 보든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한 가지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장군은 ‘생즉사 사즉생’을 얘기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있게 싸우도록 독려함과 함께, 비교도 되지 않는 전력의 약세를 울돌목에서 전투를 치르는 최상의 전략으로 대승을 거뒀다. 여기서 한가지 이순신 장군의 행동을 기억하면 좋겠다. 거대한 적의 위용 앞에서 두려움에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전투의 맨 앞에서 목숨을 걸고 적들에 맞서 아군을 독려하며 전략을 실행한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명량>에서 보여준 장군의 리더십의 핵심은 탈영병의 목을 친 것이 아니라 목숨걸고 선봉에서 성과를 만들어 조직에 자신감을 심어준 솔선수범의 리더십이다.
기업 환경이 어렵다. 경영자는 리더들과 직원들을 독려하고, 필요에 따라 임원의 책임을 묻거나 정리해고와 같은 충격요법을 통해 문화를 만들고 전략적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경영자는 말만하고 지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전투의 선봉에 서서 승리를 통해 성과를 내고 그를 통해 모두가 들고 일어나도록 이끄는 사람이다.
경영자는 <명량>을 보면서까지 어떻게 조직을 이끌까 고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귀한 깨달음을 직원들을 부리는 정신교육의 수단으로만 삼는 것은 아쉽다. <명량>을 통해 깨달음과 교훈을 얻었다면 영화관을 나와 치열한 기업 현장, 명량 앞바다에서 이순신 리더십을 실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