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을 보니, 간통을 한 사법연수생의 민사 사건에 대한 판결이 소개되었습니다. 내용은 다들 아시겠지만, 유부남 A씨가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여 결혼한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고 생활을 하다가, 같은 사법연수생인 B양과 연인사이로 발전하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의 아내인 C양이 자살하였다는 내용입니다.
A씨와 C양의 어머니가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알 수 없지만, 위 민사사건의 쟁점은 간통 행위로 인하여 충격을 받아 아내가 자살한 것과 관련하여 간통남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가입니다.
오늘 선고된 판결에서는 법원은 A씨는 C양의 어머니에게 3000만원을, B양은 C양의 어머니에게 500만원을 위자료로 배상하라는 판결을 하였다고 합니다. 원고인 C양의 어머니는 C양의 사망에 대해서도 A씨와 B양이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하였지만, 법원은 C양의 자살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하였다고 합니다.
법조 실무에 계신 분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실무가가 아니신 분들은 위 판결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신 것 같습니다. 인터넷의 댓글만 보더라도 위 판결에 대해서 비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언론도 자극적인 문구로, 예컨대 “부인 자살 책임은 없어”라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기에 더욱 비난이 심한 듯 싶습니다. 언론에서는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셨지만, 법학에서는 이를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법학에서의 인과관계란
누군가가 잘못된 행위 즉 “불법행위”를 한 경우, 이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불법행위”와 “손해”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민법 제750조에서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불법행위를 하였더라도 그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면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습니다.
법원은 “상당인과관계”이 있다고 판단되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는데, 실무에서는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위 간통남 사건처럼 국민정서와 법 논리에 차이가 있는 경우나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문제되어 사건(예컨대, 담배소송이나 환경소송)이 발생한 경우라면, 법원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대리인은 “상당인과관계”을 입증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상당인과관계의 의미와 관련하여, 법원은 보통 어떤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고, 그 불법행위가 손해 발생의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는 경우라면,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불법행위와 자살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법원은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요?
군대 내 가혹행위 외에 자살의 이유가 없었기에 인과관계가 성립한 판례
먼저, 군대 내에서의 가혹행위에 따른 자살의 경우, 법원은 보통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법원의 판단 이유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사회와 달리 엄격한 규율과 집단행동이 중시되는 군대 사회에서는 그 통제성과 폐쇄성으로 인하여 군인 개인이 체감하는 정신적·신체적 고통이 일반 사회에서의 그것과는 크게 다른 점, 망인은 2006년 3월 초순부터 같은 해 5월 말까지 지속적으로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가혹행위가 이루어진 직후인 2006. 6. 5.경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달리 망인에게 자살을 시도할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지휘관 및 선임병의 가혹행위와 소속부대 지휘관들의 직무태만행위는 망인으로 하여금 자살을 결의하게 하는데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할 것이므로, 지휘관 및 선임병의 가혹행위와 지휘관들의 직무태만 행위는 망인의 자살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전주지방법원 2007. 10. 18. 선고 2007가합3048판결)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든 가해로 인해 인과관계가 인정된 학교폭력 판례
학교 내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과 가해행위로 피해학생이 자살한 경우는 어떨까요. 이 경우도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판례가 있습니다.
“서▷▷, 우★▲은 수개월에 걸쳐 권▷♤이 컴퓨터 게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습적으로 권▷♤을 폭행하거나 상해를 가하였고,이른바 물고문을 하기도 하였으며, 이 사건 사고 전날에는 권▷♤의 목에 라디오 전선줄을 감아 자신들이 먹던 과자를 던져주며 이를 주워 먹게 하기도 하였다. 권▷♤은 서▷▷, 우★▲의 위와 같은 가해행위가 있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밝고, 활발한 학생이었고, 지극히 모범적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다가, 서, 우★▲의 위와 같은 가해행위가 지속되자 점차 말수가 줄고, 내성적으로 변하였다.
그 후 권▷♤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서▷▷, 우★▲의 가해행위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살을 암시하는 등 불안해 하다가 급기야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1998. 2. 25.생인 권▷♤은 이 사건 사고 당시 13세 10월 남짓 되는 어린 학생으로서 사리 분별력이 충분치 않은데, 그와 같은 나이, 판단 능력, 성행, 서▷▷, 우★▲의 가해행위의 형태와 정도, 지속 기간, 가해행위가 권▷♤에게 미쳤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정도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 사건 사고가 비록 권▷♤이 스스로 유발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권▷♤은 서▷▷, 우★▲의 지속적인 폭력으로 인한 극도의 정신적 고통 감당하지 못하고 이를 피하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앞서 살펴본 서▷▷, 우★▲의 가해행위와 권▷♤의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
대구 중학생 왕따 자살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대구지방법원 2012. 8. 16. 선고 2012가합1492판결)은 이렇게 판단하였습니다.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을 제공할 때 인과관계 인정
그러면, 간통행위로 인하여 아내가 자살한 경우에,위 판례들처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유사 사건은 찾기가 어려운데,가장 유사한 사건으로 수원지방법원 2010. 3. 18. 선고 2009가합25701판결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A남이 B녀와 간통을 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견되자 B녀는 자신의 배우자인 C남이 보는 앞에서 A남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고, 이후 A남은 징계위원회에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후 A남은 수치심에 징계처분을 받은 지 1주일만에 자살을 하였습니다. A남의 유족들은 B녀를 상대로 자살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법원은 기각하였습니다.
“B녀의 위와 같은 행위가 도저히 참고 견디기 어려워 자살행위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의 극심한 가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B녀가 A남으로 하여금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는 데 직접적이고도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볼 증거도 없“어 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설명이 길었는데, 간통남 사건으로 돌아와 보면, 과연 간통행위와 자살과의 인과관계가 있을까요?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추후 정리가 되겠지만, 짜라시로 돌아다니는 카톡을 보면, B양도 자살한 C양에게 모욕적인 말을 한 것 같고, A씨도 모욕적인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또한 간통이라는 사건은 C양이 자살하는데 원인 제공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과연 간통이라는 사건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에 이르도록 한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이었을까요? 혹시 다른 원인, 가정 불화나 우울증과 같은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떤 변론이 있었을까?
위 간통남 사건의 대리인이 어떤 주장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변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재판장님도 수많은 이혼 사건을 담당하셨을 것입니다. 이혼 사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재판장님이 가장 많이 접하신 이혼 사유 중 하나가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아니었습니까? 지금 원고는 피고의 간통행위로 피고의 배우자가 자살을 하였다고 주장을 하지만, 부정행위가 문제가 되어 이혼이 된 사건의 모든 배우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망인의 극단적인 선택은 일반적인 간통 사건의 피해를 입은 배우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선택은 아니고, 극단적인 선택입니다. 피고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여러 원인으로 인해 망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간통이라는 사건이 망인의 자살의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손해배상소송을 수십 건 담당하였지만 “상당인과관계”문제는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민법 교과서에서는 ‘인과관계’를 참 쉽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실무가가 느끼는 “상당인과관계”는 항상 풀리지 않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제가 쓴 보이스피싱의 손해배상문제에 관한 글도 결국은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문제였는데, 인과관계 문제는 실무를 하면서 계속 접하게 되는 간단하면서 복잡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자매글-보이스피싱 사건, 통장주인의 손해배상책임 문제(2)]
원문: 법무법인 해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