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없는 청년과, 인재가 없는 구인자들의 대규모 만남. 이른바 ‘취직 대첩’을 열자는 기획이 SNS를 타고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기나긴 무직 생활에 지친 청년들과 일할 사람이 없어 힘들어하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호응하여 일정과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련된 구체적인 계획안은 이러했다. 서울 여의도 공원 오후 3시. 취업을 원하는 구직자들은 흰 옷을 입고, 일할 사람을 구하는 구인자들은 빨간 옷을 입는다. 그리고 알람 시간이 되면, 구직자들은 원하는 구인자들을 잡아 즉석 면접을 진행하는 것이다.
SNS를 통해 즉석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한다? 이는 이제는 생소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은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되어 있었다. 동호회가 있고, 플래시몹이 있었으며, 얼마 전에는 대형 군용 텐트를 혼자서 세울 수 있느냐를 두고 내기가 벌어져 실제로 방송이 협찬하는 대형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일도 있었다. 주최자와 참가자 모두, 이 취직대첩 이벤트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이것이 취업난을 해소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예정일이 다가오자, 이벤트의 진원 채널인 SNS를 타고 점점 우려스러운 소문과 회의론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소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소매치기 등이 횡행하고, 취업을 원하는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취업 사기 브로커들이 출몰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다함께 베스트 라는 사이트가 있어요. 강성 노조를 조직하고 폭력적 노동운동을 주도하면서 공장과 시설물들을 점거하고 파괴하고 기업들에게 교섭 비용을 뜯어내는 악질 조직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애써 힘들게 경영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자들을 모두 자본가이며 이 사회의 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지요. 거기에서 뭐라고들 하는 줄 아세요? 속칭 먹튀라는 사람들이 횡행하고 있어요. 고스펙 지원자들이 면접비만 받고 정식 직원으로 입사는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들어가는 비용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이벤트 당일 여의도 공원.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이미 모여든 수많은 인파로 열기를 띠고 있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세찬 한파 속에서 과연 즉석 면접이 잘 진행될까 하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 당국은 치안과 질서 유지를 위해 컨택터스 3천명을 긴급 투입하여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기로 하였다.
“이런 추운 겨울날 흰색 드레스 코드라니요? 원래 취업을 위한 면접자는 단정한 정장이 기본입니다. 이들이 왜 백수인지 알 것 같네요”
취직대첩 일정과 드레스코드가 한겨울로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백색 드레스 코드가 문제인 것을 미리 알았다는 양 사람들이 SNS를 통해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현장 분위기를 전합니다. 예상보다 더 심각한데요. 예상대로 흰 옷을 입은 구직자들 뿐입니다. 일할 사람을 찾는 구인자는 거의 없어요”
행사장 주변에는 기자들과 구경을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왜 백수인지 알 것 같아요. 다들 안정된 고소득만 찾고, 따지는 것만 많고…” 취직대첩 행사를 구경나왔다는 회계사 모 씨는 더 볼 것이 없다는 듯 자신의 K5 자가용에 몰고 일찌감찌 떠났다.
SNS에서의 반응들도 뜨거웠다.
“주최측에서 참가자들에게 이력서 용지와 취업 가이드를 배포한다고 듣고 업체들의 구인 담당자들이 발길을 돌린다고 합니다. 이들이 왜 백수인지 알 것 같아요”
“주최자는 사실 공기업 직원이라던데요. 자기는 이미 취직했으면서 백수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즐기겠다는 거죠”
“개중에 기업체 부사장 아들과 전무 딸은 행사장 주변에서 연줄 동원해서 이미 다 취직했다고 합니다. 되는 넘은 되고 안되는 거죠.”
“지금 구직자와 구인자의 비율이 정자와 난자의 비율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나도 일단 모 정부투자기관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저렇게까지 해서 꼭 취업을 해야 하나요?
“그러게 말이에요. 직업이라는 건 생계도 중요하지만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데 아무데나 골라서 취직을 하겠다는 것도 좀 아닌 것 같네요. 저라면 저런 사람 안 쓸 것 같아요. 아 잠깐 저는 지금 제 빌딩 입주자 회의에 좀 다녀올께요. 지하에 클럽을 임대해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이것도 골치아픈 일이라니까요”
영하 10도의 한파가 몰아치는 여의도 공원의 오후. 행사장을 지배하는 컨택터스와 그 다음 많은 흰 옷의 구직자들. 그리고 구구구구 비둘기.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든 붉은 옷의 구인자들. 지나가던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가, 주변의 똑같은 처지의 그러나 자신들은 저런 데 나와서 직장을 구걸할 만큼 아쉽지는 않은 척 하는 백수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하품을 하며 벤치 옆에 나른하게 앉았다.
“구인자들이 행사장에 거의 나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자의 질문에 근처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모씨는 대답했다.
“물론 구직자들의 안타까운 심정은 백 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좀 꺼려지는 건 사실이죠. 정말 능력 있는 사람들이면 저런 데 나오지 않아도 직장을 찾지 않았겠어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어스름한 여의도 공원 한 구석을 외로이 지키고 있는 해고 노동자 돕기 운동 천막. 모 중공업의 해고 노동자가 복직을 탄원하며 백여 일이 넘게 철탑을 지키고 있다는 전단지가 쓸쓸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그래요. 저런 사람들을 사업주 입장에서는 쓰고 싶겠어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 사람이 왜 해고가 되었는지 알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