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굳게 마음먹었으나, 그 결심이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된다는 뜻인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사자성어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란 녹록지 않다. 더군다나 자본이 가진 힘의 논리가 더욱 강력해진 요즘에는 선택을 함에 있어, ‘나의 무엇’이 아니라, ‘자본을 획득하는 방법’이 우선되는 순간이 많다.
빨리 타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곤 했던 공대생 송삼동도, 세상이 정해준 기준에 맞춘 삶을 살았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연기를 시작했다. 거창한 각오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저 대학로에 가서 연기가 하고 싶었다. 진입장벽이 낮은 아동극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과 영화를 거치며, 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연기를 하고 있다.
작심삼일에서 자유롭지 않던 한 남자가 뒤늦게 연기라는 세계를 접하고, 몸으로 경험하면서, 비로소 오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어떤 기준에서는 낯설고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의 논리에 깊숙이 빠지면 사람을 평가할 때 가치의 척도로 ‘돈’의 많고 적음만을 따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아하고, 지속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당장 큰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이탈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배우 송삼동은 아직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몹시 궁금했고, 그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카페 <패턴 에티오피아>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좋아지는 유쾌한 시간을 보냈는데,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아까운 그날의 값진 수다, 송삼동과의 인터뷰 전문을 이곳에 싣는다.
인터뷰이 – 송삼동
인터뷰어 – 사진 수다쟁이 쭌 (문준희)
수다쟁이 쭌(이하 쭌) 2013년 작업하신 작품이 아직 개봉하지 않은 <현수이야기>를 포함해 영화만 5편, 드라마 <세계의 끝>을 포함하면 총 6편이나 있는데요, 지난해 그렇게 많이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으신가요?
송삼동(이하 송) 영화만 5편, 드라마 1편까지 6편인데, 솔직히 말하면 2013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촬영 없이 쉬었어요. 지난해 촬영한 작품 중에서 개봉까지 한 작품은 <미스 체인지> 하나였고, 다른 작품들은 그전에 촬영한 작품이었어요.
영화는 후반작업이 필요하잖아요, 드라마 <세계의 끝>과 영화 <미스 체인지>만이 작년에 실질적으로 출연한 거고, 다른 영화들은 대부분 2012년에 출연한 작품인데, 지난해 개봉을 하게 됐죠. (웃음) 개봉은 많이 했는데, 흥행을 예상했던 작품도 기대에 미치지 못 해서 아쉽네요.
쭌 – 그럼 작년에는 실질적으로 영화 1편, 드라마 1편에 참여하신 건데요, 촬영 이외에 남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송 –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웃음) 좋아한다기보다 어쩔 수 없이… (폭소)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더니, 지난해 뭘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개봉하거나 방영한 작품 말고, 단편 작업도 두 편 정도 참여했고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AFI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업하는 작품에도 3일 정도 참여했고, 그 외에는 주로 집에 있거나, 근처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어요. (웃음) 영어공부도 조금 했었고. 남들이 보면 되게 재미없이 살았어요. 물론, 제 기준에서는 다르지만요. 최대한 스트레스 안 받고 잘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쭌 – 카페에서 책을 읽으셨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책을 주로 읽으셨어요?
송 – (웃음)이거 오해하실 것 같은데, 제가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고요. 빨리 읽지도 못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책이랑 정말 안 친했고,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종종 선물로 책을 받게 되어서, 어느 날부터 집에 있는 책들을 한 권씩 읽기 시작했어요. 우연하게 ‘성석제’ 작가의 <재미나는 인생>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는데요, 굉장한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그분의 책을 읽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웃음)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시고. 그래서 중고서점으로 달려가서 모든 작품을 구입하진 못했지만, 5~6권 구매해서 읽고 있는 중이에요. 어려운 책을 포함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한 번 읽어보려고 하는 중이에요.
쭌 – 20대 중반까지는 크게 경로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시다가, 군대를 전역한 후 경희대 환경공학과를 자퇴하고, 연기를 하겠다고 대학로로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송 – 대학로로 가고 싶었죠, 하지만 연기를 해온 사람도 아니고, 바로 잘할 자신도 없어서, 아동극부터 시작했어요.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왜 연기를 시작했느냐고 계기를 묻는데, 그건 저한테는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계기나 꿈이 없었거든요. 더 중요한 건 제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느냐? 아니냐? 인 것 같아요. 과거가 아니고 현재. 지금도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계기는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어떤 엄청난 계기나 동기, 꿈을 가지고 시작하더라도 지금 안 하고 있다면, 그게 과연 얼마나 어필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해요.
배우로서 매일 촬영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은 아니더라도 제가 연기를 하고 있고, 배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가끔씩 무섭고 신기한 게, 돌아보면 어쩌다가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칠 때가 있어요.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멀리까지 와버렸지? 제 성향이라면 여기까지 올 리가 없는데. (웃음)
뭔가를 배울 때도 금방 확~ 타올랐다가 빨리 식는 편이라서요. 그래서 이게 제 적성에 맞는다는 반증이기도 한거 같아요. 지금까지도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건 미련 때문은 아닌 거 같고, 적성에 맞아서인 것 같아요. (웃음) 아주 조금은 한량적인.
쭌 – 방금 전에 그 질문을 왜 드렸냐하면, 제가 2005년 학교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 훗날에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일단은 배우라는 사람들이 몹시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교를 1학기만 마치고 휴학을 하고, 대학로에 있는 ‘루나틱 컴퍼니’에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거기 형이 계셨어요.
그 당시 그곳에는 여자 단원 분들이 굉장히 많았고, 남자는 형 포함해서 단 두 분 밖에 안 계셨는데요, 처음 받은 인상은 구성원이 뭔가 수상하다. 그리고 거기 단장이었던 백재현 씨는 단원들의 연기력 상승을 위해서인지 몰라도 화도 많이 내시고, 갓 스무 살이던 저로서는 낯선 분위기였는데요, 형은 그때 루나틱에 어떻게 가게 돼서 거기 계셨는지 그게 궁금해요.
송 – 루나틱에는 아마 인터넷 공고를 보고 들어갔던 거 같은데요, 저는 음악도 좋아했고, 뮤지컬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거기서 낸 공고를 보니까 3개월 동안 춤, 노래, 연기를 가르쳐준다고 그렇게 약속을 했었죠. 그래서 들어갔던 거고요. 일은 할지언정 배울 건 배우자면서. (웃음) 근데 그게 보름 동안 연기를 두 번 정도 가르쳐주더니 없어졌고, 그 후엔 포스터만 주야장천 붙였어요.
그러다 보니 중간에 많은 분들이 떠났고, 저랑 함께 들어온 형 한 분만 ‘3개월은 하기로 했으니 지키자!’면서, 내내 포스터 붙이고, 스텝도 하면서 기간을 다 채우고 깔끔하게 나오게 됐어요. 그 당시에 딱지도 한 번 끊겼어요. 포스터 붙이다가. (웃음) 그래서 컴퍼니에 벌금 낸 거 달라고 했는데 계속 안주다가, 결국 받아내긴 했어요.
그곳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나는 게 있는데요, 백재현 대표님이 연기를 가르쳐주시다가, 제가 잘 안 나오니까 자극과 동기부여를 위해서, 팬티만 입고 연습실을 왔다 갔다 뛰게 했던 그런 기억이 있거든요.
쭌 – 아, 그 때!…저도 기억나네요.
송 – 여자분들도 많은 데서. (웃음) 근데 만약에 제가 거기서 어떤 연기 비슷한 것을 했다면, 성적 수치심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분에게 화가 나서 뭔가를 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연기를 끌어내는 제일 원초적이고, 단순한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의 연기가 안 나오면 그렇게라도 해서 끌어내는 연출들이 꽤 있는데, 연출가가 그러기 전에 배우들이 알아서 많이 찾아야 할 거 같아요. 쪽팔리니까요. (폭소) 팬티만 입고 뛰면. (함께 웃음)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송삼동
쭌 – 대중에게 알려진 건, 2009년에 <낮술>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알려지게 되셨는데요, 루나틱 컴퍼니를 나와서 <낮술>을 작업하기 전까지는 어떤 걸 하면서 보내셨어요?
송 – 나오고 나서 처음에는 아동극을 했는데요, 연기 초심자에게 제일 열려 있고,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오디션도 필요 없이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거길 들어갔던 거고요. 한 달 반 동안 아동극을 하면서, 거기에 머무는 연기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경제적으로 조금은 안정된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영화도 아니었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극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동극을 할 때,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세트 짓고, 한여름에 에어컨도 안되는 차량에서 창문 열어놓고, 뮤지컬 노래를 함께 하던 배우 형이랑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요, 뭣 모를 때라서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서 연극 영화과를 다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고요. 준비를 꾸준히 하진 못했지만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기 학원도 잠깐 다녔는데, 입시 연기라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는지 세 달 만에 그만두고, 연극 영화과 시험도 2년 정도 봤었는데 떨어지고, “그럼 나도 당신들을 포기하겠다, 학교 안 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필름메이커스>라는 사이트를 알게 돼서 단편영화에 두세 편 정도 참여했어요. <낮술>은 2007년 1월에 촬영했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드디어 연극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연극을 하다가 쉴 때는 독립 영화에 참여했고요. 그러던 중 2009년에 <낮술>이 개봉을 하게 되면서, 말씀하신 대로 그나마 사람들이 조금은 알게 되었던 거죠.
쭌 – 그럼 결국에는 연극을 하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는데, 아동극부터 하게 되고 이어서 독립 영화를 작업하신 건데,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연극을 처음 했을 때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송 – 대학로에서 공연을 한 건 아니었고, <전국연극제>라고 서울을 제외한 각 도 안에서 시별로 경합을 벌인 후, 거기서 도 대표를 뽑아서 다시 경합 후에 상을 주는 대회였는데요, 저는 성남시 대표로 나갔는데, 제가 어떻게 그걸 하게 됐냐면 단편영화를 작업할 때 ‘연극’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다녔어요. 함께 작업한 여배우가 한참이 지난 후에 연락이 왔어요.
저는 (웃음) 그때 PC방에서 오락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오빠 연극하고 싶댔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 어디로 가면 돼?”라고 대답했더니, “성남으로 오세요.”라고…(웃음) 성남시청 앞에 극단 사무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갔는데, 오디션도 보지 않고 바로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공연에 사투리가 들어갔는데, 제가 사투리도 쓸 줄 알고해서 하게 됐죠.
그 당시에 욕도 많이 먹고, 울기도 했어요. 아동극과는 다른 부분이 있더라고요. 확실히. 일단 관객 연령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답도 없는 질문인데 왜 했을까 싶은데, 그때는 선배들에게 “연기는 어떻게 하면 잘하는 거예요?”, “연기란 무엇입니까? 저는 너무 힘들어요 선배님!” 그러면서 술 마시면서 울고. (웃음)
그때 울었던 게 흔히 얘기하는 ‘리마이’, ‘쌈마이’ 연기라 해서 주연은 보통 ‘리마이’, 조연은 ‘쌈마이’를 한다고 하는데요, 조금 웃기고 캐릭터 있는. 어느 날 연습을 하고 있는데, 연출님이 저에게 “넌 되게 쌈마이다!” 이러더라고요. 당시에는 그 용어를 몰랐어요. 그래서 그날 검색엔진에 찾아봤는데, 뜻이 ‘삼류의~’로 시작하는 거였어요. 안 그래도 자신감이 떨어지는 찰나에 그 말까지 들으니까 너무 슬픈 거예요.
그래서 술 마시면서 울고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쌈마이가 아니었던 거예요. 제가 당시에 했던 배역이 조금 캐릭터가 있는 거라서, 욕이 아니라 연출 분의 칭찬이었던 거였어요. 저 혼자서 ‘아, 연출마저 나를 바닥이라고 하는구나.’라고 울었던 거죠. (웃음) 연극이라는 건 참 매력이 있었어요. 참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죠. 그 후에 물론 안 좋은 것도 보고 그랬지만, 시작할 때는 모든 게 좋았어요.
쭌 – <낮술>이란 작품을 하시고 나서도, 몇 년 동안 다양한 독립 영화에 출연하면서 시간을 보내셨는데, 계속 연기 경험이 쌓이면서 느끼셨던 게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송 – 저는 다작을 했었고, 공개되지 않고 사장된 단편들도 많았고요. 왜냐하면 작품이 잘 안 나오면 그냥 묻어버리는 분들도 꽤 있으니까요. 운도 따라주고 잘 나와서 영화제에 가기도 했었죠. 저도 잘 모르는데 후배들이 가끔씩 물어봐요. 연기 그 자체를 떠나서, 어떻게 하면 배우가 될 수 있느냐고요, 경로나 방법들이요. 예를 들어서 학교는 어디로 가고, 매니지먼트는 어떻게 하며, 영화나 연극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요. 저는 ‘제가 선택한 방법은 이거였다. 그래서 하게 됐다.’ 거기까지 지, 어떤 방법을 하라고 말해주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어떤 매체에서 먼저 연기해야 한다는 것도 장, 단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영상은 제가 발연기를 해도 기록으로 남는 거고, 다작을 할수록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 이미지에 대한 관념도 생긴 것 같고요. 유약하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이미지. 저는 작품마다 달랐다고 생각하는데, 보시는 분들은 송삼동이라는 이미지를 특정 바운더리에 묶어놓고 소비하시는 부분도 조금 있으신 거 같아요.
그런 연기만 가능한. 그래서 캐스팅을 하더라도 그런 쪽으로 접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크게 불만이 있다거나, 나쁘지는 않은데. 제가 연기로 표현하고 싶은 건 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거든요. 이를테면 시민들. 없을 것만 같은 인물이 아니라, 주변에서 한 번쯤은 본듯한 이런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은데. 현실과 타협한 부분도 있고, 실제로 많이 했고, 흔히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르다고도 하잖아요. 그런 것도 조금 느꼈고요.
어쨌든 배우는 제 직업이기 때문에 연기를 해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작품이 100%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조금 더 잘하고 싶어서라도 하긴 하거든요. 그래서 시나리오보다 잘 나온 작품도 있고, 아닌 작품도 있고요. 그게 일방적인 누구의 탓은 아닌 것 같아요. 잘했으면 서로가 잘한 게 있고, 잘못했으면 서로가 잘못한 게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영화제도 영화제마다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됐고. 영화제도 항상 공정하지는 않다, 사람들이 말만 안 할 뿐이지 조금씩은 느끼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건, 사람들이 흔히 어떤 누군가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마냥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알게 됐죠. 즐겁지만은 않다. 마냥 재밌지만은 않다. 즐겁지 않은 건 아니나, 항상 즐겁지는 않다. (웃음) 군대랑 비슷한 것 같아요. 이등병, 일병 때는 많이 빡세잖아요.
그때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면 3분 정도 걸렸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그 3분 때문에 23시간 57분을 버틸 수 있는 거 같아요. 그 3분의 순간이 저를 살리고 있는 거죠. 그 3분마저 없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모르겠네요. 끔찍했을 거 같은데요, 아주.
연기도 하다 보니 그런 거예요. 물론, 사람은 다양하니까 항상 즐거운 분들도 계시겠죠.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있다고 치고. 주변에 대학생분들이나, 타 직업군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되게 부러워하기도 하거든요. 그럴 때는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저도 알겠어요. 경제적인 거나, 연애라거나, 결혼과 같은 큰 것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할 수 있다는 용기라면 용기? 그런 걸 부러워하는 거죠. 하지만 삶이란 게 일장일단이잖아요. “그래 부러우면 부러워해. 나도 실은 너희가 부럽다.” 인 거죠.
사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회사 다니면 힘든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도 주말이 있기에 나머지 5일을 버틸 수 있지 않나요? 비슷한 거 같아요. 저는 사람들이 배우를 우러러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흔히, 예술 하는 사람의 카테고리를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나누기도 하잖아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부분들 때문에 안 좋은 악영향이 더 많은 거 같아요. 위로 가면 갈수록, 고집이라든지. 일본에는 오다기리 죠나 이런 배우들이 촬영장에 갈 때,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일단 다르게 보기 때문에, 배우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요. 사진이 찍히기도 하고, 일상에서도 평가를 받고. 그냥 다양한 직업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을 거 같아요. 연기를 함에 있어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면 훨씬 편해지더라고요. 특별하거나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직업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아주 사소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연기를 하는 게 직업이기 때문에, 그걸 잘하려고 할 뿐이에요.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일을 열심히 하고, 보고서도 잘 쓰려고 하고. 말하다 보니, 산으로 가버렸네요? (웃음)
쭌 – 조금 엉뚱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웃음) 막간을 이용해서 질문드리자면, 본명인 ‘송삼동’이 <드림하이>라는 드라마에서 김수현 씨가 연기한 주인공 이름으로 쓰이면서, 지금까지도 회자가 되고 있는데. 혹시 그 드라마를 보면서는 무슨 생각이 드셨어요?
송 – ‘아, 이거 너무 상도덕에 어긋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처음 했었죠. (웃음) 그 당시 저는 매니지먼트가 있었는데요, 제 이름을 알고 쓰진 않았을까? 라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어요. 혹시나 훗날 작가분을 만나게 되면, 여쭤볼 수는 있겠죠. 우스갯소리로.
어차피 다 지난 간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이름을 바꿔야 되나? 예명을 써야 하나?라는 생각까지는 안 해봤던 거 같아요. 그냥 당시에 10대 친구들이 ‘송삼동’이라는 이름을 검색해서, 제 미니홈피가 뜨니까 무작정 들어와서 1촌 신청을 하고, 글을 남기는 게 조금 피곤했지만.
어쨌든 김수현 씨가 지금 탑 배우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생각보다 저를 만나면 많이들 여쭤보세요. ‘어떻게 된 거냐? 드라마에 이름이 어떻게 쓰인 거냐?’ 저야 모르죠. 그렇지만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겠죠. 특이한 이름이기도 하고, 근데 그건 제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던 거니까요. 그 이름을 쓴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드라마 배역 명으로 썼다고 해도, 그걸 느낀 제 반응이 있을 뿐인 거잖아요. ‘어! 내 이름인데… 나도 배운데, 이름을 바꿔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 테고, 그래도 뭐 잠깐 지나가는 바람이겠지 했죠.
영화배우의 시작
쭌 – 매니지먼트에서 활동하셨다고 했는데, 다시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송 – 매니지먼트에 처음 들어갈 때의 마음과 비슷했던 거 같아요. 그때 제 나이가 서른 살 혹은 서른한 살이었는데요, 조급했어요. 보통 배우들이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중반까지는 되게 조급한 마음이 있거든요. 수요는 적은데,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버티지 못하고 다른 길을 가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그래서 독립 영화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먹고살기가 어렵거든요. 그 당시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상업영화와 드라마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한테는 정보가 많이 없었어요.
우연히 한 매니지먼트를 알게 돼서, 미팅을 했는데 거기서는 잘 안되고, 다른 곳을 소개해주셨어요. 마음이 조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들어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거죠. 배우들 대다수가 한 번쯤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마음 상태로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어쨌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조급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 가치를 얼마나 믿어주는지, 저도 그 회사를 믿고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여유로울 때 들어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나오고 나서도 다른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가 그때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제가 나온 지가 얼마 안돼서, 당분간은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요. 안일한 마음으로 들어가면 안될까 봐 그랬던 거 같아요. 그 후,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었어요. 영화 <남쪽으로 튀어>와 드라마 <세계의 끝>에도 참여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그런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조급한 마음으로 어딘가에 들어간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요. 뭔가를 바꾸려면 자신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머리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저는 매우 조급했기 때문에 컨트롤을 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쭌 – 조급함의 시기를 지나 여유가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셨는데요, 매니지먼트를 나와 다시 자유롭게 지내면서 곧장 깨달으신 건가요? 아니면 한참 더 지나서 뒤돌아보니까 ‘아 그때 그랬던 거구나’를 깨닫게 된 건가요?
송 – 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그런 거죠. (웃음) 근데 만약 매니지먼트를 나오고 나서 제게 아무런 기회도 찾아오지 않았다면,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인생은 조급해야 되는구나!’라며 다시 조급했을 수도 있고요. 그건 제가 지금껏 살아온 삶이 아닌, 다른 삶을 또 한번 살아볼 수 없으니까… 제 경험만 비춰봤을 때는 조급하지 않을 때 더 기회가 다가올 수 있고,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더라도 솔직히 저도 요즘에도 조급할 때가 있거든요. 도가 튼 사람이 아니고. 아직도 도를 닦는 사람이니까요. ‘조급하지 말아야지, 조급하지 말아야지…’ 마음속으로 되뇌다가도, 어느 순간 조급해질 때가 있어요. 마음 상태는 돌고 돌겠죠. 평생 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그게 정상 아니에요? (웃음) 배우고 뭐고를 떠나서. 조급했다가, 조급하지 않았다가… 그래서 저는 정상인 것 같아요. (함께 폭소)
쭌 – 그럼 결국 매니지먼트를 나오고 바라는 대로 상업영화에도 출연하게 되셨는데요,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임순례 감독님의 <남쪽으로 튀어>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송 –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남쪽으로 튀어>의 의상팀장이었어요. 영화사 사무실은 합정이었고, 저는 그때 홍대에 살고 있었는데요, 그 친구가 “삼동아, 여기 프로필 한 번 내 봐.”라고 해서 프로필을 냈어요. 그리고 오디션을 봤어요. 원래는 권순경 역할이 아니었고, 오디션 본 건 태훈이 형이 연기한 이 선생이었어요. 대본을 받아 들고 영화사 대표님과 감독님이 함께 계신 자리에서 대본을 읽었는데, 대표님이 부산 분이셨어요. 제가 아직 부산 억양이 조금 남아있거든요.
대표님이 저에게 “삼동씨 혹시 고향이…?”라고 하길래, “부산인데요.”라고 대답하니까. 대표님이 임 감독님에게 “감독님, 권순경도 읽혀보면 되지 않아요?” 얘기하시더라고요. 경상도 사람 아니면 미세한 사투리는 잘 모르거든요. 임 감독님은 “제가 듣기에는 괜찮은데요.”라고 하셔서 그냥 그날은 그곳에서 나왔죠.
보름쯤 지났을 때, 다시 영화사에서 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한 장짜리 권순경 대사를 읽었는데요, 되게 짧고 싱겁게 끝났어요. 감독님과 둘이 있었는데, ‘뭐지? 어떤 상황이지?’ 싶어서, 조심스럽게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감독님, 저 된 건가요?” 그러자 감독님께서 “예~”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네,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어요. (함께 웃음) 영화라는 게 캐스팅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고, 시나리오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거니까, “아! 됐다. 너무 좋다!” 이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가봐야지 안다. 비관적이지도 않았고, 낙관적이지도 않았고. 내가 살던 대로 지내고 있으면 촬영할 때 되면 언젠가는 부르겠지~’ 서울 촬영할 때 한 번 인사드리러 갔고, 섬에서 촬영을 시작할 때 합류했어요. 두 달 간 섬에서 지내면서 재미있게 찍었죠. 아마 친구가 얘기를 많이 해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쭌 – 재밌는 게 연극을 하려고 연기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영화 작업을 훨씬 많이 하시게 되고, 잠시 휴식 시간을 보내시다가, 작년에 JTBC에서 방영한 <세계의 끝>이라는 드라마를 하셨는데요, 일반적으로 드라마는 촬영 시간이 영화보다 짧고, 빠르게 돌아가서 처음 작업하는 배우들은 힘들어한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처음으로 드라마 작업을 하시면서, 영화랑은 다른 점이 있으셨나요?
송 – 드라마는 원, 투, 쓰리라고 해서 빨리 찍고, 쪽 대본이 나온다고 얘기는 많이 들었었는데요, 양쪽을 모두 경험한 안판석 감독님의 작품이라 그런지, 드라마와 영화의 중간쯤 되었던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 달리를 써서, 롱테이크도 찍고. 기존 드라마 현장처럼 작업한 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적응이 안 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대사가 엄청 많아서 대본이 늦게 나왔을 때, ‘이걸 또 언제 외우지?’ 할 정도의 분량도 아니라서, 즐겁게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매니지먼트를 나오고 나서, 연극을 다시 하고 싶어서 오디션을 두 번 봤는데요, 두 작품 모두 안됐어요. 그래서 빨리 포기했죠. 저는 영화와 연극 둘 다 하고 싶은데, 당장 공연을 할 기회가 오지 않으니까, 마음가짐을 새롭게 먹었어요. “그래, 영화를 더 많이 열심히 하자. 혹시 나중에 기회가 온다면 공연을 하자.” 연극은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꼭 하고 싶어요.
<슈퍼스타>의 기억
쭌 – 필모그래피를 보면 극영화 작업을 쭉 하시다가, 신기해 보이는 작품이 <슈퍼스타>인데요, 그 작품은 영화인지, 다큐인지 아리송한. 왜냐하면 실제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촬영을 했잖아요. (웃음) 그 작품을 하면서 어떠셨나요?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장소에서 ‘픽션’을 작업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요.
송 – 좋은 느낌? (웃음) 그것보다도 먼저 잘 와 닿았어요. 저는 배우든, 감독이든 누구나 그런 걸 느낀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제에 자기 작품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소외받는 것 같고. 할 것도 없어지고요. (웃음) 정말 대인관계가 좋아서, 여기저기 술자리에도 참여하고 그러면 다르겠지만. 제가 그렇게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라서요.
<슈퍼스타>에 보면, 부산영화제 파티장에서 멍을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안성기 선배님도 만나서 얼떨결에 인사하고, 혼자 멍하게 돌아다녀요. (웃음) 그게 촬영인 걸 저는 알지만, 그 파티에 있는 내빈들은 몰랐거든요. 영화에 담긴 장면이 현장에서 제가 진짜로 느낀 모습일 거예요. 몰래 찍기도 했고, 제가 얼굴이 많이 팔린 배우도 아니었고요. 후줄근하게 입고 가서, 턱시도 정장 차려입은 사람들 속에 있으니까. 연기가 아니라, 실제 제가 느낀 모습이 영화에 담긴 것 같아요.
쭌 – 무대에서 연기를 하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건, 연기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아까에 영상작업은 기록이 돼서 남으니까,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실제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가 배우인 거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이잖아요.
배우로서 연기를 할 때가 아니라, 일상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느낌은 어떠신가요? 예를 들어서 스물일곱 전, 배우를 하기 전의 일상과 남들이 배우라고 하는 지금, 살아가는 일상은 크게 다른가요?
송 –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배우를 하기 전의 저는 생각이 없었어요. 꿈도 없었고요. 그냥 대학 졸업해서, 취직하고, 결혼해서 애도 놓고 살면 되겠다, 할 정도로 막연한 게 있었고요. 배우를 하고 나서부터는 뭔가를 더 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 거죠. 근데 그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생활인으로서 일상. 배우를 하기 전의 주말과 지금을 비교하면, 행동의 모습은 조금 바뀌었죠.
예전에는 쉬는 날 친구들과 당구를 쳤다면, 지금은 당구 대신 영화를 보는 걸로 바뀐 거죠. 어쨌든 그건 직업과 조금 더 관련도 있고, 재미도 있고 하니까요. 생각해보니까 같다고 할 수는 없네요. 다르네요. 근데 솔직히 예전 일상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웃음) 애써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쭌 –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영화를 감상하면서 일상을 보내신다고 하셨는데요, 영화를 참여하는 기간에는 촬영장에 가시잖아요. 작품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다르게 흐르거나 하는 부분은 있으신가요? 배우만이 느끼는 미세한 온도차이라던가.
송 – 다를 수밖에 없죠. 그건 뭐 회사생활하시는 분들이 주말에 쉬다가, 월요일에 출근하는 거랑 같은 거니까요. 출근 시간도 맞춰야 하고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한 후, 씻고 나가야 하고요. 그날 일하는데 필요한 것도 챙겨서 가야 하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거 아닌가요? 배우도 대본 챙겨가야 하고, 독립 영화라면 의상도 제가 챙겨가야 하고요. 저도 씻고 가야 하고. (웃음) 그런 면에서 비슷한 것 같은데요. 저는 그냥 직업의 특수성인 것 같아요.
일할 때,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다 비슷할 것 같아요. 직업의 특수성이죠. 배우는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잘 기다려야 하고. (웃음) 마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되잖아요. 정신 줄을 놓으면, 나중에 지쳐서 카메라 앞에서 힘 빠진 상태로 연기를 하면, 그게 관객들에게 다 보이니까요. 직업의 특수성과 업무가 다를 뿐, 출근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글 쓰는 분들은 노트북 챙겨서, 작업실이나 커피숍에 가시고. 그림 그리시는 분들은 작업실 가서 정리하고, 물감과 재료 준비하고. 그분들이 붓을 들고 캔버스에 터치하는 순간이 저에게는 카메라가 돌고, ‘액션’ 소리가 들리는 촬영의 순간인 거죠. 직업에 따라 다른 거지, 다른 직업을 경험해 본 건 아니지만 비슷할 거 같아요.
학교로 돌아간 송삼동
쭌 – 배우로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시다가, 올해 영화과에 들어가셨는데요. 다시 학교에 입학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송 – 제가 재작년 가을에 <남쪽으로 튀어>를 작업하고 나서, <청춘정담>이라는 영화에 참여했거든요. 그 작품은 동아방송예술대학에서 제작한 영화인데요, 연출자를 포함해 스텝들이 전부 그 학교 출신 혹은 재학 중인 분이셨어요. 그래서 지도교수님과 학교 관계자들도 촬영장에 자주 오셨죠.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이 끝나고, 작년에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요, 시사회 때 동아방송대 교수님께서 “삼동씨, 우리 학교에 연예인 특기자 전형이 있는데,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지원해 봐라.”라고 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학교에 관심도 없었고, 연기과는 더더욱 없었고요. 그런데 ‘영화과’는 좀 궁금하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감으로는 알죠. 어깨너머로는 알겠고. 그래도 이게 어떻게 해서 완성이 되는지가 궁금했어요. 기술이 예술이 되는 게 영화잖아요.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결국 지원했죠. 면접도 봤고요. 그렇게 해서 올해 14학번이 됐죠. 14년 만에 다시 학교를 입학했네요. (함께 웃음)
쭌 – 14년 전에 학교에 입학하셨을 때는 우리나라 대다수의 고3들이 그렇듯, 성적에 맞춰서 무난하게 가신 거잖아요. 지금은 말씀하신 계기 덕에 ‘영화’라는 메커니즘이 궁금해서 가셨는데,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던 배우로서 학교에 다시 가서 카메라 뒤의 세계를 공부해 보시니까 어떠셨어요?
송 – 아직 제대로 배운 게 없어서…(웃음) 제가 학교를 들어갔던 또 하나의 이유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어요. 촬영이 없을 때는 혼자 쉬면서, 책 보고, 영화 보고, 사람 만나고 너무 좋아요. 너무 좋은데, 제가 제일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익숙해지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거라도 하나에 익숙해지면 안 좋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일상에 익숙해지려던 찰나, 학교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보면 배우는 것도 크고, 새로운 자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감독이나 촬영감독 같은 새로운 꿈을 꾸겠다는 게 아니라, 저에게 좋은 의미의 자극이 되겠다 싶어서 들어갔어요.
제 나이가 많잖아요. 학교에 있는 선배들 중에서는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본 사람도 있고요. 또, 거리가 멀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싶었지만, 누가 등 떠밀어서 간 건 아니잖아요? 다섯 시간 걸리든, 열 시간 걸리든, 그럼 가야죠. 멀어서 피곤하긴 하지만, 재밌어요. 함께 입학한 스무 살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제가 먼저 다가서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그런데 지금은 2~3주 밖에 안 지났지만, 동기 애들 방에서 자면서 맥주도 한잔하면서 얘기도 하고, 선배들과도 이야기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너무 재밌고 신기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넣으려니까 제 CPU가 버벅대긴 하는데, 그래도 재밌어요. 재미없을 때도 있겠지만, 지금은 재밌어요.
예술의 고달픔, 하지만 계속 간다.
쭌 – 재미 얘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세상에는 영화가 됐건, 음악이 됐건, 미술이 됐건, 소설이 됐건, 웹툰이 됐건 굉장히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있잖아요. 살아오면서 접한 문화콘텐츠 중에서 ‘와! 이건 너무 강렬했다.’ 인생에서 딱 하나를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송 – 없어요. 없는 게… 그때그때 강렬하지, 아직까지 평생 잊지 못하겠다… 예를 들어서 영화 대사라던지, 어떤 소설의 엔딩, 반전, 다양한 책, 그림, 음악, 만화, 웹툰 많아요. 많은데. 인터뷰를 할 때,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거. 제일 좋아하는 감독, 영화, 드라마를 물어보는데, 굳이 꼽으라면 얘기하는데, 그건 제 진심이 아니에요. 항상 바뀌는 거고.
절대적인 게 있을 수는 없는 거 같아요. 상대적인 거고. 영화만 보더라도 장르가 나눠지듯이, 좋은 문화콘텐츠가 너무 많고. 하루에도 좋은 영화들이 수백 작품씩 쏟아지잖아요. 그때그때 ‘아! 좋았다. 좋다, 기가 막히네!’ 이렇게 가는 거지, ‘아, 이건 평생 잊지 못하겠네!’ 그런 건 없는 거 같아요. 언젠가는 잊힐 것 같아요. 잊혔다가 불현듯 와 닿았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멘토나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 멘토? 저는 관심 없음. (웃음)
쭌 – ‘문화콘텐츠’라는 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예술’이라는 게, 먹고 사는데 크게 지장 없는 거잖아요. 동물로 예를 들면, 그냥 먹고 잤다가, 다시 일어나지니까, 사냥해서 또 먹고 자고 그러는 거잖아요. 근데, 인간은 살아가면서 의식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화콘텐츠가 왜 있어야 할까요? 없어도 그냥 먹고 살면 되는데, 왜 있어야 되는 걸까요?
송 – 없어도 되는데…(웃음)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말장난일 뿐이지, 없을 수가 없는 거 같아요. 제가 인류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에, 막연한 생각은 그런 게 생겼다는 건, 사람이 생각하는 동물이라서 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먹고살 만해지니까 생긴 것 같아요. 뭔가 의식주 말고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생겨서. 아니면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게, 남자는 자신의 종족 번식 본능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난자에 비해 정자 수가 엄청나다고 생각하거든요. 난자는 하난데, 정자는 수억 개가 달려드는 게, 그만큼 씨를 많이 뿌리려고. 그런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여자는 평안한 가정에서 좋은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를 고르게끔 되어 있고요. 그래서 그렇게 시작된 게 아닐까요?
아니면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흔적을, 어떻게 보면 아이도 분신 같은 자신의 흔적이잖아요. 그런 걸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이건 본능적으로.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이. 그런 지점에서 예술이 생겼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먹고 살만한데 24시간 중 8시간을 자요.
16시간 동안 먹기만 하진 않을 거 아니에요. 그 시간 동안 남녀가 관계를 맺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분명히 비는 시간이 있어요. 여가도 있고요. 물론, 낮잠을 잘 수도 있죠. 근데 전날에 잠을 많이 자서 낮잠도 안 온다고 생각해 봐요. (웃음) 그러면 뭘 하겠어요? 그때 끄적끄적 하다가 생겨난 거 아니에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쭌 – 그러면 (웃음) 끄적끄적 하다가 생겨난 문화콘텐츠 중에서 ‘영화’라는 콘텐츠에 배우로 참여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다른 사람들은 먹고살 만해서 여가를 영화를 감상하며 보내는데. 정작 그 영화 창작에 참여하는 배우로서 먹고살만하신가요?
송 – 지금 제가 먹고살만하냐고요? …아니요. (함께 웃음) 먹고살아야죠. 그래서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되는 작품도 참여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왜 그렇게 배우를 하려고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벌떼같이 달려들까?’라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강하게 하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연기를 시작한 지 올해 십 년째 된다고 치면, 평균으로 나누면 한 달에 제가 오십만 원도 못 벌었거든요. 아르바이트를 쉴 때마다 엄청나게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정도 되는가 싶지. 연기라는 걸로만 돈을 번 걸로 치면, 한 달에 오십도 안 되죠.
365일 촬영만 하는 것도 아니고, 1년에 몇 작품 하는 건데. 그런데도 왜 그렇게 벌떼같이 달려들까요? 특히, 요즘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우리 또래들은 그때 꿈을 적으라고 하면, 대통령, 과학자였잖아요. (웃음) 그것도 잘못된 건데. 저도 과학자라고 써냈던 거 같거든요. 지금은 다른 형태로 잘못된 지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연예인을 꿈꾼다는 건, 말하자면 한 방, 복권 같은 건데. 복권을 사는 사람의 심리랑 비슷한 거 같아요. 그 어린아이들이.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요.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그런 생각으로 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복권을 사는 마음으로요. 제가 만약 더 큰 상업영화에서 주연을 하고, 돈을 몇천만 원씩 번다고 해서, 그게 한 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전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근데 남들은 그걸 한 방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전의 제가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모르니까요. 아이들이 연예인이나 배우를 지망하는 것은 지금 제가 생각하는 한 방을 원하는 것이 아닌 것 같거든요.
인기 있는 아이돌이나, 스타 아역배우 같은 걸 원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물론 운과 조건과 타이밍이 수백 박자가 딱 맞아서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우리나라가 건강하지 않다는 거죠.
건강하지 않고 아프니까, 더 연예계에 달려드는 게 아닌가 싶은. 몇몇 스타 빼고는 현실적으로 이렇게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자신은 다를 거라는 자신감 좋죠. 좋은데, 예술이나 창작 그 자체가 즐거워서 달려들거나 하는 것 같지가 않아요. 저는 그게 안타까워요.
그 친구들이 봤을 때는 배우라고 생각되는 제가 한 달에 오십만 원도 못 번다고 솔직히 얘기하는데도, 스스로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 확률이 복권만큼이라는 걸 알까요? 정말 아는데도 도전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우리나라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쭌 – 지금 아프다고 말씀하셨는데, 배우를 떠나서 예술 하는 분들의 현실이 많이 열악하잖아요. 냉정하게 보면 세상이 시장경제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라,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는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있단 말이에요.
형도 연기를 꾸준히 하고 있잖아요, 그걸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뭘까요? 방금 전에 서른이나 서른한 살쯤 조급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다른 쪽으로 가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런데도 계속 꾸준히 연기를 하셨거든요. 그 근원은 뭘까요?
송 – 조급하지만 조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 (웃음)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제가 그렇게 식탐이 많지가 않아요. (함께 웃음) 그래서 이런 열악한 환경과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막연하지만 제가 잘 될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고. 근데 그게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급함이 생기고, 믿음이 흔들리는 거잖아요.
‘어? 나는 분명 잘 된 건데, 조금 늦어진다?’ 그러다가 5년 지나고. (웃음) ‘어? 이제는 될 때가 됐는데…’ 또 1, 2년 지나고. ‘어? 이젠 너무 힘들다.’ 저도 이제 나이 제한이 걸려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거든요.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혼자라서 버틸 수 있는 거 같고. 지속하는데 어떤 특별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건 개인의 차이인 것 같아요. ‘됐다. 여기까지만!’ 그러면 떠나는 거고. ‘조금만 더…’ 그게 미련일 수도 있어요. 미련을 붙잡는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지만요. 그렇게 더 오래 버티다가 떠나는 사람도 많고요. 근데, 이렇게 말하는 저도 언젠가는 떠나겠죠.
저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고 안 할 거예요. 그 떠나는 시기를 제가 정할 수는 있겠죠. 근데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건, 마흔일 수도 있고, 일흔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주 무섭기도 한데, 너무 궁금해요. (웃음)
앞으로 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하고. 혹시, 그 궁금함 때문에 하고 있는 건가? 하다 보니 하고 있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어쩌다가 내가 이걸 아직까지 하고 있지?’ 소름 끼칠 때가 있어요. 작품 할 때는 또 촬영에 집중하느라 잊고 살다가, 끝나고 쉬게 되면 ‘아이 좋다!’하다가, 쉬는 게 길어지면 ‘어휴~’ 이러면서 조급해지고. 그러다가 ‘아, 내가 어쩌다가… 그때 그만뒀어야 하는데…’ (웃음) 그러고 보니까 뭔가 한가지 생각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 중 하난 것 같네요.
쭌 – 장시간 인터뷰하느라 수고하셨고요. 잠시 살다가는 거니까, 지구를 언젠가는 떠나야 하잖아요? 저도 지구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배우 활동과 기다림의 작업을 지속하고 계신데요, 지구를 떠나기 전에 ‘아! 이거 하나는 꼭 하고 싶다.’ 그게 특정 지역을 여행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님 솔메이트를 만나서 사랑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지구를 떠나기 전 이것만큼은 꼭 하고 싶다. 이거 하나는 해보고 가야지. 싶은 게 있을까요?
송 – 떠나기 때문에 해야겠다는 것보다도.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그게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동물이 될 수도 있고. 생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웃음) 언제 바뀔지 모르지만. 이 인터뷰에서 했던 어떤 말도 나중에 번복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은 이율배반적이잖아요.
제가 이율배반이란 말을 대충 알고 있었는데, 학교에 가니까 교수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시더라고요. 듣고 맞다고 생각한 게, 여기에서는 이 말을 했는데, 저기 가서는 딴 말을 하고, 사람이 언행일치되기가 힘들잖아요. 어쨌든 그래도 사랑을 하고 싶죠. 동물보다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요. (웃음) 그게 평생이면 평생인 거고. 잠깐이면 잠깐일지라도. 그런 거죠, 거창한 건 없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런 거 아닌가요? 대단한 거 없어요. (웃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산다는 게 막연한 거죠. (함께 웃음)
여담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삶이라고 해도, 예나 지금이나 연기라는 길을 충실히 걷고 있는 송삼동이라는 배우가 나는 좋다. 언젠가는 그 길을 떠나야 한다고 해도 그가 출연한 작품을 조금 더 오래 만나고 싶다. 그래서 그가 그 길을 계속 걸어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회생활에 지치고 힘들 때,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저 세계도 만만하지 않은 무게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게 됐다.
핑계대지 않고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견디며, 보석 같은 작품 하나 만들어, 우리네 팍팍한 일상을 위로해주는 것. 그게 문화콘텐츠의 귀한 지점이 아닐까? 고되고 힘든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따라 작업에 기꺼이 참여하는 창작자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세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더욱 그렇다.
세상이 그리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고, 공정하고 신사답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학창시절 그토록 비판했던 사람들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돈’과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도 삶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하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진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걸어간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도 이제는 절실히 깨닫게 됐다. 아름다운 사람, 유쾌한 배우, 건투를 빈다!
원문 : 수다쟁이쭌의 산뜻한 문화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