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40일 넘게 단식투장을 하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요청한 대통령과의 면담을 거절했다.
대통령의 말 바꾸기와 오리발
청와대는 유족들의 특별법 요구를 거절하며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사 최종책임자가 말 바꾸기 하며 오리발을 내민 것이다. 지난 5월 유족들을 청와대로 불러 “국회에서 그 법(특별법) 갖고 토론 있을 텐데 유족 마음 잘 반영되도록 협조하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어떠한 제스처도 보이지 않았다. 약속대로라면 진즉 국회 특히 여당을 향해 ‘세월호 유족 뜻대로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기 바란다’라는 정도의 발언이 한번쯤은 나왔어야 했다.
교묘한 말 뒤집기다. ‘유족의 마음 잘 반영된 특별법’을 약속하더니 이제는 ‘여야가 합의하는 특별법’이란다. 이 말의 속뜻을 풀이하면 이런 게 된다. ‘유족들의 마음이 아니라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마음이 잘 반영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독한 정권이다. ‘유민 아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도 면담까지 거절하며 오리발이다.
자식이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다는 얘기에 이토록 지독하게 나오다니. 군화발로 짓밟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독재정권보다 더하다.
야당 총재 단식에 한걸음 물러서며 소통했던 전두환
5공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983년 5월 18일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는 5.18 3주년을 맞아 구속인사 석방, 정치활동 피규제자 전면해금, 언론자유 보장,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요구사항’을 발표한 뒤 자택 연금 상태에서 단식투쟁에 들어간다.
전두환 정권은 야당 총재 단식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보안과 통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단식 8일째 건강상태가 크게 나빠지자 노량진경찰서장을 보내 김 전 총재를 구급차에 태워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하는 조치를 취한다.
병원에서도 단식을 멈추지 않자 직접 사람을 보냈다. 29일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이 병문안 형태로 단식 중인 야당 대표를 찾았고, 그 다음날인 30일 전두환 정권은 가택연금을 해제했다.
단식 중 미국에 체류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단식을 지지하는 성명서와 함께 교민들을 이끌고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다. 현지 언론에 ‘야당 총재 단식투쟁’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의 철통같은 언론통제로 인해 단식투쟁 사실이 보도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 야당의원은 “국내신문에 파키스탄 변호사의 민주투쟁 단식은 보도됐지만 우리나라 야당 지도자였던 사람의 단식은 한 줄도 나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악명 높았던 5공보다 더 독한 정권
1990년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단식투쟁을 했을 때도 그랬다. 강자였던 여당은 약한 야당 총재에 대해 불통보다 소통을 택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에 성공한 노태우 정권은 ‘눈엣가시’인 지방자치제 합의 파기를 꾀한다. 지방자치제는 독재정권 유지에 있어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꼬마야당 총재였던 김대중은 지방자치 파기를 막을 수 있는 뽀족한 수가 없자 그해 10월 8일 단식투쟁에 돌입한다.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는 극한의 단식이었다.
단식투쟁 8일 만에 김 전 총재의 건강은 위험수위에 도달한다. 70을 바라보는 고령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이송된 뒤에도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거대여당 민자당 대표가 된 김영삼 총재가 병실을 찾아온다.
김영삼을 대면한 김대중은 “민주주의 핵심은 의회정치와 지방자치제 아닌가. 여당으로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찌 이를 외면하려 하시오?”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김영삼은 “비록 여당에 가담했지만 민주주의를 잊은 적이 없소”라고 답했다. 이 회동 직후 노태우 정부는 지방자치제 실시를 약속했고 김대중 전 총재는 13일 만에 단식을 풀었다.
국정원, ‘유민아빠’와 ‘주치의’ 신상 사찰까지
강자였던 여당은 정치적 적대관계였지만 야당 총재가 단식으로 목숨을 잃지 않을까 우려해 어떻게든 소통하려 했다. 또 5공 정권은 단식투쟁을 끝낼 수 있는 명분을 주기 위해 적당히 물러서는 방법을 택했다. 하물며 악명 높았던 5공 군사독재 시절에도 이랬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힘없는 ‘불쌍한 시민 유민 아빠’에게조차 한없이 모질게 나온다. 40일 넘게 단식을 해도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 않았다. 병원으로 실려간 뒤에도 위로 차 방문하는 여당인사 한명 없다. 소통하려는 노력이 터럭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단식하다 죽어도 그만이라는 건가.
불통을 넘어 사찰까지 한다. 청와대 앞 유족농성장을 24시간 CCTV가 감시하는 것도 부족해 국정원 직원을 유민 아빠 고향인 전북 정읍으로 보내 신상을 털기 위한 사찰을 벌이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세월호 가족은 정적 아닌 불쌍한 시민
또 유민 아빠 병원 주치의가 JTBC에 출연해 “김씨 상태가 매우 안 좋은 상태”라고 말하자 국정원이 주치의가 어떤 사람인지 뒤를 캐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 여당 의원들은 ‘특공조’를 편성해 일부 유가족을 만나 보상문제를 논의하는 등 분열책동을 꾸미고 있다. 정치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는 서민이라고 유족들을 벌레 취급하는 건가.
어떤 이들은 문재인 의원의 단식에 대해 “수권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노림수” “대권주자였던 사람이 할 일 아니다”라고 비난한다. 왜 비난 받아야 하나. 단식은 힘없는 유족들의 마지막 항거 방법이다. 목숨 건 단식 앞에서도 여전히 오만한 정부여당의 독기를 꺾을 누군가의 몸부림이 필요할 때 아닌가. 시민들의 투쟁도 확산되고 있다. 5공 전두환도 비록 정적일지라도 단식으로 죽어가는 걸 두고보지 않았다. 소통하며 적당히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했다.
‘유민 아빠’와 세월호 가족은 정적이 아닌 불쌍한 시민들이다. 왜 이렇게 대하나. 참 지독한 정권이다.
원문: 사람과 세상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