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역사를 통틀어 부강했던 국가, 혹은 왕조에서 특징적인 면을 찾으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도량형의 통일이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도량형의 통일이라는것은 미시적으로나 근시안적으로 보았을때는 비용및 사회적 혼란의 야기만 일어나고, 정작 그 도량형을 통일하려고 했던 그 당사자는 괴로움만 배가될 뿐 아무런 득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얻어지는 효과란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간단한 예로서 수레의 폭을 통일하여, 모든 길의 폭을 통일시킴으로서 교통의 발달 및 물류의 발달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멀리 본다면, 미터법으로 인해 길이, 넓이, 부피, 무게에 관한 수치의 치환이 가능해짐으로서 지금의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볼 때, 사실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고 생각하는것이 더 좋을듯 하다. 사실, 일반적인 미국 고등학교(공부잘하는 사립고를 제외)의 우울한 과학 실력을 생각해보면, 무게와 길이, 부피의 단위를 과학표준과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는것도 사실 깊은 관련이 있을 듯 하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이런 단위들 말고도 여러가지 생활단위들이 있다. 1분에 푸시업을 얼마나 한다던지, 싸움이 일당백이라던지 하는 그런 단위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 뜬구름 잡는듯한 단위에도 어느정도의 일관성과 논리는 있어 사실 주어진 상황내에서 그 정도를 예측하는 데 있어 부족함은 없을 수 있다. 위의 단위 중 가장 그럴듯한 건 분당 팔굽혀펴기 숫자인데, 자신이 힘이 세더라도(근력) 그에 상응하게 체중이 늘게 되므로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하게 되므로, 분당 푸쉬업 수는 자신의 근력을 남들과 비교하는 데 좋은 기준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간에 이렇게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통용되는 단위가 있지만, 자주 입에 올리면서도 논리적인 허점이 많이 보이는 것이 “나 술 좀 마셔”라는 것이다. 사실, K-1대전처럼 둘이 마주 앉아 한잔 한잔 마셔가며 뻗을 때까지 마시는 Sudden Death를 할 수 있으면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것을 감안해 볼 때, 이 기준이라는것이 너무 모호해서 정확하게 계량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것은 BPH(Bottle Per Hour)라는 단위다. 한 마디로 시간당 몇 병 마신다는것을 골자로, 술자리의 시간에 따른 변이를 주요 팩터로 삼은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최근 한달간 맥주를 50병먹었다고해서 “나 맥주 50병 마셔”라고 한다면 이것은 술을 어느 정도 마시는 지에 관한 비교의 기준으로 삼기 어려운 것이다.
하룻밤에 마시느냐 한달간 마시느냐의 문제일뿐
사실, 이제 갓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20대는 술을 넘기기만 해도 그 술이 채 간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식도에서 이미 해독이 되어버리는 지라, 그들이 소주 한 병을 놓고 한 시간을 마신다면 언뜻 보기에는 무시무시한 양처럼 보이지만 분위기 업을 위해 술자리에서 소주병 원샷을 하는 술 상무가 받을 임팩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그러므로, 40대 술상무가 소주 한병을 마시고 취했다고 해서 누구도 그의 술이 약하다거나 하는식으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이 모든 잡설들의 시초는 개개인의 술마시는 능력의 차이를 명확하게 계량화하자는 것에서 시작된 것인데 그 조촐한 시도로서 내가 주장했던것은 동일 시간내에 마신 술의 병수를 계산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Bottle Per Hour로서 시간당 몇 병을 마시느냐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적어도 내게는) 술인 소주로 그 기준을 가늠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계산법에 문제가 생기는것이, 소주가 가장 대중적인 술이기는 하겠으나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들의 주종의 기호를 담지는 못한다. 즉, 우리중에 누가 깡소주만을 마시며 그 술자리를 유지하냐는 말이다. 보통 맥주로 시작해서 소맥으로 달리던지, 와인으로 시작하다가 보드카로 끝낼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모든사람들의 술 마시는 능력을 계량화해서 분쟁을 없애보려고 했던 내 시도는 그 진정성에 의심을 받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즉, BPH개념 도입의 주된 목적이 사실은 그의 말장난을 발전시킨 것에 다름이 아닐수도 있다.
여기에서 나는 좀 더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하려고 한다. 가장 대중적인 소주를 기준으로 하는 병당 알콜함량의 새로운 단위인 SBE(Soju Bottle Equivalent)이다. SBE를 도입하기 위해 먼저 소주 한병에 담긴 절대 알콜의 양을 계산해 보겠다. 한 병에 360ml인 소주의 평균알콜함량은 19퍼센트이므로 소주 한병에 들어있는 알콜은 360ml * 0.19 = 68.4ml가 되는것이다. 그리고 비교를 위해 500ml가 기준인 맥주 한병에 담겨있는 알콜의 양을 계산해보면 500ml * 0.045 = 22.5ml가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주에 담겨있는 알콜의 절대량과 맥주에 담겨있는 절대 알콜의 양의 관계를 사용하려고 하는것인데, 소주 1병의 알콜을 1로 잡았을경우(1 Soju Bottle Equivalent) 맥주 1병에 있는 알콜은 소주에 비해 0.3289 (22.5ml / 68.4ml)가 되는 것이다. 즉 맥주의 병당 알콜 함유량은 소주의 병당 알콜 함유량에 비해 32.89퍼센트가 되므로 우리는 맥주 1병을 0.3289SBE로 표현할 수 있다. 이제 여러가지 술들의 SBE 계산을 통해 개념없이 마셔왔던 술들이 소주에 비해 어떤정도의 임팩트를 주고 있었는지 알아보자.
맥주 4.5%
500ml * 0.045 = 22.5ml
22.5 / 68.4 = 0.3289 SBE
발렌타인 (위스키) 43%
750ml * 0.43 = 322.5ml
322.5/68.4 = 4.7149 SBE
와인 12.5%
750ml * 0.125 = 93.75ml
93.75/68.4 = 1.3706 SBE
앱솔루트 (보드카) 40%
750ml * 0.40 = 300ml
300/68.4 = 4.386 SBE
바카디 151 75.5%
750ml * 0.755 = 566.25ml
566.25/68.4 = 8.2785 SBE
자, 이 SBE의 개념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마셔왔던 술들이 어느정도의 임팩트를 주고 있었는지 좀 더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즉, 1SBE이상이면 소주보다 센 술이고 (그 양과 알콜도수를 모두 고려하여) 1SBE 이하이면 소주보다 약한 술이 되는것이다.
맥주는 0.3289SBE이기 때문에 세병정도 마셔야 소주 1병와 등가를 가지게 되고, 만만하게 보고 있던 와인은 무려 1.3706SBE로서 소주의 1병하고도 3분의 1을 넘게 되는 무시무시한 술이다. (여기에서 혜안을 가지고 있던 전문가들의 작업주로서 와인이 사랑받았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앱솔루트 한병을 둘이서 나누어 마신다면 소주를 4병 넘게 마시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자, 아직까지도 이 SBE로는 내가 주장한 시간 개념을 포함한 주량을 표현할 수 없으므로 여기에 BPH개념을 추가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여기서 완성된 BPH야말로(사실은 다른 술들의 병당 알콜을 소주 기준으로 통일시키는 것 뿐이지만) 진정한 주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것이다. 일단 다음의 연습문제를 풀어보고 시작하자.
Ex1) 만약 술을 세시간 반동안 마셨는데 테이블위에 다음과 같은 술의 시체들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그 BPH는 얼마인지 계산하시오.
앱솔루트 보드카 1병, 소주 4병, 맥주 8병, 와인 2병
풀이) 먼저 각 술들의 SBE를 구한다.
앱솔루트 * 1병 = 4.386SBE
소주 * 4병 = 1*4 = 4 SBE
맥주 * 8병 = 0.3289 * 8 = 2.6312 SBE
와인 * 2병 = 1.3706 * 2 = 2.7412 SBE
이 술들의 총합은 4.386 + 4 + 2.6312 + 2.7412 = 13.7584 SBE이므로 소주를 13.7584병 마신 셈이 된다. 그리고 세 시간 반동안 마셨으므로 BPH는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다.
13.7584 / 3.5 = 3.931 BPH
즉, 위의 모든 술들을 마신것은 1시간당 소주를 3.931병 마신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좀더 범용의 기준을 원하는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음용되는 소주를 BPH(Bottle Per Hour)의 기준으로 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별도의 BPH 단위를 만들어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게 이용하도록 하는것을 주장한다. 즉, 한 시간 동안 2병의 와인을 마셨다면 2WBPH가, 한시간동안 3병의 맥주를 마셨다면 3BBPH가 되는 것이다.
만약 와인만을 마시는 된장남들이라면 WBPH를 그들의 주된 음용 기준으로 삼아 SBE라는 복잡한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도 그들 사아에서의 주량을 가늠케하고 좀 다양한 음주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모험가들을 위해 진정한 BPH를 사용하도록 하는것이다. 어쨌든, 이 기준이 널리 통용되어 작업을 하는 남녀들에게는 상대방의 정확한 BPH를 알 수 있도록 하고, 객기를 못이겨 니가 잘먹네 내가 잘먹네로 결투하다가 급성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는 평범한 이들에게 불필요한 술의 낭비를 피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원문 : 사라져가는 작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