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의 장점은 전쟁을 체험하게 했다는 것이다. “전군 출정하라”라는 최민식의 대사로부터 시작해 관객에게 배가 나갈 때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대포를 쏘아서 배를 침몰시키고 백병전을 치르고 충파에서 승리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관객에게 그저 뒤엉켜 싸우는 것을 무감각하게 바라보게 하지 않고 전쟁에 참여한 병사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전쟁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의 허술함 때문에, 명량은 “수작”이 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품의 퀄리티를 떠나 역대 최고 흥행 영화라, 이슈가 이슈인지라 많은 평론가들의 입에 이 영화가 오르내렸다. 그 중 화제였던 것은 허지웅과 진중권의 설전이었다. 허지웅은 대체로 내가 본 시선과 비슷했던 것 같은데, 진중권은 명량을 졸작이지만 “이순신” 때문에 성공을 거둔 것이라 했다. 나는 그것이 영화의 흥행에 도움을 준건 사실이지만, 졸작이 천만을 넘길 수 있을 만큼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졸작이라 불리었던 작품들이 “소재”만으로 천만을 넘은 경우도 여태 없었고.
그렇다면 이 영화가 역대 최고 흥행을 이루게 된 동력은 무엇일까? 나는 사람들이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을 “재미”라고 본다. 하지만 명량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갈리는 걸 봐서, 그만큼 기록적으로 재미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명량은 재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뭘까?
그냥 재미의 문제일 수 있다
“변호인”과 “겨울왕국”이라는 천만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800만 명을 동원한 수상한 그녀 이후부터 명량이 개봉할 때까지, 관객의 시선을 끌만한 한국 영화가 없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세월호 사건 때문이라 여겼지만 나는 그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그 기간에 해외여행객은 줄지 않았는데 영화 관객만 줄어든 것인가? 여기서 이 표를 보자.
수상한 그녀 열풍까지 식었을 3월 1일부터 군도 개봉 전인 7월 22일까지의 관객수를 비교해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총 관객 수는 크게 변화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유독 올해 한국영화 관람객 수만 약 1000만 명이나 감소했다. 어떤 분석에서는 이것이 세월호 때문이라고 하는데, 세월호로 슬퍼한 관객들은 한국영화 대신 외국영화를 본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보다도, 저 기간 동안 볼만한 한국 영화가 없었던 것이다. 상반기에 이목을 끌었던 “역린”이나 “끝까지 간다” 혹은 “표적” 같은 영화들이 흥행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던 것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명량이 개봉한 후 지금까지의 관객수 추이를 살펴보자. 2011년부터 지금까지 총관객수에서 한국영화 관객수를 빼면, 해외영화 관객수는 약 400만 명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모든 증가분은 한국영화 관객이다. 이 수는 해마다 3~400만명씩 가파르게 증가했고 올해는 작년과 비교해 상반기에 오히려 관객 수가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는 예년처럼 극장 관람객이 또 증가했다.
기대감의 연쇄와 누적
무엇이 이 시기의 영화 흥행을 견인한 걸까? 2013년 여름의 관객은 더 테러라이브와 설국열차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테러 라이브를 볼까? 설국열차를 볼까?” 라며 물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취향에 따라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평론가들도 두 영화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라며 어떤 영화가 천만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예측하곤 했는데, 실제로 더 테러라이브의 저 기간 관객 수는 5,092,807명, 설국열차는 8,276,944명으로 더하면 13,369,751명에 육박한다. 그 시기 한국영화 관람객 중 74%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두 영화를 관람한 것이다. 그 이전 해인 2012년 여름의 관객은 도둑들이 선두에 섰다. 도둑들의 저 기간 관객수는 8,260,722명으로, 역시 한국영화 관람객의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2014년 명량의 관객수는 8월 19일 현재까지 14,886,423명으로, 명량은 엄청난 힘으로 관객을 동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 2011년의 전체 영화 관람객 수가 약 1500만 수준으로 비슷한데, 올해 전체 영화 관람객 수는 2600만으로 증가분인 1000만명이 증가했다. 이쯤 되면 그 증가분을 모두 명량이 기여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 명량이 무슨 힘이 있길래 이 정도로 많은 관객을 동원하면서 역대 관객까지 갈아치운 것일까? 명량의 개봉일로 돌아가보자. 명량은 “역대 최고 개봉일 관람객”을 기록했다. 먼저 군도가 개봉할때 그 기록을 한번 갈아치웠던 것을 일주일 만에 명량이 또 갈아치운 것이다.
이 개봉일 관람객은 영화의 내용이나 퀄리티보다는 기대감에 훨씬 좌우되는데, 모두 “윤종빈”과 “김한민”이라는 성공적인 전작을 가진 감독들이 톱스타들을 내세운 영화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게다가 상반기에 볼 영화가 없어서 영화 관람을 미뤄둔 관객들이 여름에 이런 영화들이 개봉하면서 그 동안 참아온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러 극장으로 향한 것이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는 입소문이 반영이 된다. 여기서 이 차트를 보자. 군도 관람객의 변동 추이다.
군도는 둘째 날부터 관람객 수가 15만명 가량 감소했다. “나쁜 입소문”이 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군도가 천만 영화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군도는 이전 천만 영화인 “변호인”이나 그 이전 천만에 가까웠던 “관상”, “설국열차”보다 재미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7일째에 명량이 개봉하자 군도는 재기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군도에게 걸었던 기대는 명량으로 옮아갔다. 명량의 개봉일 관객수는 군도보다 15만명 가량 많았다. 그리고 그 숫자는 둘째 날 16만 명을 더 동원하며 관객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고 그대로 명량은 가속도를 받아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위 차트와 비교해보면 군도는 “명량”이라는 막강한 상대가 개봉하며 맥을 못 추었던 것과 달리, “해적”의 개봉은 명량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명량의 흥행은 상반기 흥행영화의 부재로 인하여 관객의 “영화에 대한 갈증”이 증가했고, 그 기대감으로 여름 영화 관람객이 폭증하였던 것, 그러면서 군도가 관객들에게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아 군도가 동원할 수도 있었던 관람객이 명량으로 넘어갔던 것. 두 가지 요인으로 초반 관객 수를 견인했고 그 후 입소문을 타고 순항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제지할 새로운 “비슷한 수준의 재밌는 영화”가 등장하지 않아 2014년 3월로부터 8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약 5개월 반의 관객을 모두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명량은 대진운의 도움이 가장 컸는지도
많은 사람이 흥행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은 애국이나 사회적 의미를 담은 마케팅은 영화의 흥행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이 수백만 관객을 좌우할 만큼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재미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것이고, 재미가 없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는다. 명량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전략의 허술함이나 떨어지는 개연성 같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후반부의 박진감은 전반부의 지루함을 밀어내고도 남았다. 이정도 만으로도 “최근 높아진 사람들의 눈높이”에 호응하기엔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이 점이 명량이 군도와 다르게 관객관객부터 합격점을 받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영화가 “대진운”의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에, 하정우의 전작인 “더 테러 라이브”나 “베를린”, 혹은 강동원의 전작인 “전우치”가 이시기 개봉했더라도 충분히 천만을 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최민식의 전작인 “신세계”나 “범죄와의 전쟁”도 당시 470만정도를 동원했는데, 이시기 개봉했더라면 그 두 배는 더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 “해무”를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이 영화는 소재 자체가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보편적인 관객에게 호응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앞으로 개봉할 영화 라인업을 보아도 그다지 눈에 띄는 영화가 없다. 해적도 그 힘이 약한 편이라 명량은 이대로 아바타를 훨씬 뛰어넘는 흥행을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왜 2012년부터 올해 초까지 끊임 없이 쏟아졌던 “보편적이면서 재밌는 영화”가 올해 유달리 줄어든 것일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그리고 이 추세로 올 하반기 영화도 그다지 흥행할 영화가 없다면, 겨울에 괜찮은 영화가 등장했을 때 또 한번 기록적인 흥행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