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화 속으로>라는 게 있었지. 빅뱅의 탑이 꽤 괜찮은 연기를 뽐냈고 권상우가 언제나처럼 불량하고 삐딱하면서 싸움은 잘하는 말썽꾼 역할을 맡은 전쟁영화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전투가 바로 포항여중 전투다.
71명의 학도병들이 포항여중을 근거지로 인민군의 공격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실화를 근거로 만든 영화지. 하지만 좀 지나친 뻥도 보인다. 이를테면 영화 속에서 권상우는 소년원 출신의 양아치이지만 실제 학도병들은 서울대생도 끼어 있고 대부분 번듯한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이었거든.
그 가운데 동성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우근이라는 학생이 있었어. 그는 전쟁 발발일부터 포항여중 전투가 한창 벌어지던 8월 10일까지 간간이 일기를 썼고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기는데 이 일기와 편지를 토대로 한 중학생의 마지막 여름을 되짚어 보기로 하지.
“오늘 새벽 38선에서는 공산군의 공격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단다. 국군이 잘 싸우고 있다고 하니까 안심이다. 전에 38선에서는 가끔 전투가 벌어졌지만 이번에는 좀 양상이 다른 것 같다.” 6월 25일의 일기다. 일단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 하나. 전쟁은 평화롭기 그지없던 1950년 6월 25일 갑자기 터진 것은 아니다. 38선에서의 국지적 충돌은 있었고 군인들도 많이 죽어 나갔었다. 그러나 ‘양상이 다른’ 전면전은 그날 작심을 하고 덤벼든 북한에 의해 도발됐지.
6월 27일, 즉 서울 함락 1일 전에는 국방부의 ‘서울 사수’ 방송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다. “국방부는 서울을 사수한다고 안심하라는 가두방송을 했다. 안심해도 될까?” 6.25판 가만히 있으라. 하지만 이우근 학생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한강을 건넜어. 이미 한강다리는 군경이 통제하고 있었지만 상류로 올라가서 헤맨 끝에 한 백발 노인의 나룻배를 얻어타고 한강을 건넌다. 그리고 한강 남쪽에서 한강 다리 폭파의 폭음을 들었다고 해.
7월 2일에는 의기양양 남하하고 있는 인민군을 만난다. 그 들 중 몇몇은 말까지 타고 있었는데 잠시 후 그는 이번에는 복부에 총상을 입고 신음하는 국군 상사를 만난다. 이우근 학생은 도와 주겠다고 손을 내밀었지만 상사는 한사코 거부하면서 “최후까지 적을 죽이겠다.”며 수류탄을 들고 인민군에게로 기어든다. 그리고 폭발. 이때 학생의 단상은 이랬어. “ 아! 인간이 죽을 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엄숙한 것이로구나.”
얼마 후 그들은 미리내 성지에 도착한다. 가톨릭 계열의 동성 중학교 학생이어설까 이우근 학생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어. 그는 천주님께 감사하면서 여러 감회에 젖는다. 그리고 도망만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돼. “이대로 쫓겨 간다면 결국 어디까지 갈 것일까…… 만약 국외로 쫓겨난다면 언젠가는 다시 와서 빨갱이 세상에 포교의 씨앗이 되리라. 덕만이와 내가 안드레아 신부님 묘역까지 온 것은 그러한 계시를 주시려는 천주님의 인도가 아니었던가. 분명 천주님의 인도다.”
대구에 이르렀을 때 그는 학도병 모집 공고를 본다. “가자! 김석원 장군 휘하로” 김석원 장군이 누굴까. 이 사람은 매우 애매하고 첨예한 문제적 인물이야. 단적으로 말하면 그는 일본군 대령 출신이야. 영친왕과 홍사익이라는 사람을 제외하면 (영친왕은 명목상 중장, 홍사익은 진짜 중장) 최고 계급을 달았던 사람이고 중일전쟁에서 2개 중대 병력으로 중국군 1개 사단을 패주시킨 전공으로 식민지 시대부터 유명했던 사람이야. 당근 ‘친일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야. 그 아들도 일본군 장교로 필리핀 레이테만 전투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전쟁 전 38선에서의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둬 명성을 유지했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 김석원을 죽일 포탄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부르짖으며 장검을 높이 들고 돌격하는 용맹함을 과시하고 있었지. 언젠가 배를 타고 철수할 때 피난민들이 송아지까지 태우려 하자 미군들이 만류했는데 “송아지 없으면 농사 어떻게 지어?” 하면서 태우게 했다는 기록도 있어. 아마도 일본군 대령 출신으로서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일은 4.19 때 성남고등학교 교장으로서 한 일일 거야. 데모 학생들 좀 관리 잘하라는 핀잔에 그는 이렇게 대꾸하니까. “정의는 막을 길이 없다. 애들이 올바르게 행동했는데 뭘 지도하란 말인가.”
학도병들에게 성남고등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고 중일전쟁 이후 유명한 군인이었던 김석원의 이름은 매우 컸어. 어느 정도였냐 하면 김석원이 사단을 옮기게 되자 사단을 옮겨 가면서까지 김석원 휘하에 있겠다고 고집하게 되니까. 이우근 학생도 학도병이 돼 김석원의 휘하에 들어간다. “학도의용대라는 완장과 태극 마크를 그린 흰 띠를 받았다. 이로써 나는 학생이 아닌 병사가 된 것이다. 이제 적과의 싸움만이 나의 전부다. 용감한 학도병이 될 것을 다짐했다. 병사는 전투를 통해서만 그 생명의 불꽃이 찬연히 빛날 것이다.”
이렇게 군인된 체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중학교 3학년이었어. 좋아하는 여학생도 있고 그 앞에서 한껏 자랑하고픈 뭔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황기태는 애인 자랑을 곧잘 하지만 나도 아끼는 소녀가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 눈매 고운 소녀가 생각난다. 언제나 잘 손질한 세일러복이 멋있었고 고개를 숙이고 치켜뜨던 그 눈매가 명멸하여 나를 사로잡았다.전쟁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그 때 그 소녀에게 말하리라. 전쟁에서 공훈을 세우고 돌아온 영웅처럼 그녀에게 나의 무용담을 들려주겠다면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들이 군대 얘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그때는 몰랐나 봐.
그들은 8월 10일 3사단 후방사령부가 설치된 포항여중으로 배치된다. 역시 중3답게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실보다는 역시 여자 중학교의 강당이 마음에 든다. 뭇 소녀가 여기서 노래하고 춤추었을 것이다.” 이해가 간다. 아마 휘파람이라도 휘휘 불면서 어디 갔어 응? 여학생들 어디 갔어? 농담도 하면서 낄낄거렸겠지. 또 한 번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소녀를 생각하면서 공상에 젖다가 서울사대생이던 소대장에게 정신 차리라고 한 방 먹었을 수도 있고. 그 여학교에서 그들은 총을 지급받고 전투를 치르게 된다.
8월 11일 새벽 4시. 학도병 소대장 김용섭은 학교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병력을 발견해. 암구어는 ‘별’과 ‘달’이었다는데 김용섭은 ‘별!’을 외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눈앞의 적이 인민군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학도병들에게 사격을 명령해.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지. 영화 <포화 속으로>와는 좀 다른 양상이지만 학도병들은 인민군들의 공격을 여러 차례 격퇴하면서 자신들의 임무를 다해. 이 전투 와중에 이우근 학생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긴다.
나는 이 편지를 교과서에 실었으면 해. 무슨 호국의 화신 학도의용군의 마지막 편지가 아니라 아직은 천진난만의 때를 벗지 못하던 한 중학생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묻게 되는 그 격동의 심리를 이렇게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쓴 글은 많지 않을 것 같으니까. 좀 길지만 읽어 봐라.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았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 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71명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하고 부르며 어머니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壽衣)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죽은 자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님! 제가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 물러날 것 같진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 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을 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 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님,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되는군요. 어머님,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게걸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사,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이 편지를 품은 채 이우근은 죽었다.
코멘트: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壽衣)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죽은 자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님! 제가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 물러날 것 같진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 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을 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 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