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카페 사장님의 하소연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경기도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A씨는 한 손님이 30분째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어봤다고 해요. 혹시 기다리는 분이 계신 걸까, 물이라도 한 잔 드려야 할까? 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카페는 원래 쉬는 곳 아닌가요? 스타벅스는 아무 말 안 하던데.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그래도 비도 오고 하니 그냥 쉬다 가시라고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일이 꽤 씁쓸하게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에요. 결국 이 이야기는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으며 기사로까지 다뤄졌습니다. 저도 그렇게 접하게 됐고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조금 다른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그 손님이 카페를, 그것도 주문하지 않고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여겼다는 건 어쩌면 스타벅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해당 기사를 쓴 기자님은 친절하게도 스타벅스에 직접 문의까지 해보셨더군요. 정말로 주문하지 않아도 스타벅스에서 쉬어도 되는 걸까요? 스타벅스 측의 답변은 이랬다고 합니다.
구매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매장의 ‘제3의 공간’ 경험을 방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안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1989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요. 제1의 공간은 집, 제2의 공간은 직장이나 학교 같은 곳이고, 그 사이에서 머물 수 있는 중간 지대가 제3의 공간이에요. 일상에서 잠깐의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이유를 말해주는 개념이죠.
스타벅스는 이 아이디어를 빌려 성공한 대표적인 브랜드입니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공간을 판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거죠.
저도 이런 철학을 체감한 적이 있었는데요. 작년에 병원에 갔다가 대기 시간이 길어져 집에 들를 여유는 없고, 사무실까지 가기는 번거로운 상황이 생긴 적이 있었거든요. 급히 카페를 찾아야 했는데, 당연히 첫 선택은 스타벅스였습니다. 콘센트와 와이파이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날따라 스타벅스가 만석이라 다른 카페를 찾아야 했어요. 어렵게 자리를 잡긴 했지만, 와이파이가 너무 느려 테더링까지 써가며 업무를 겨우 마쳤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다시금 스타벅스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믿고 찾아갈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이점이더라고요.
사실 스타벅스가 이런 ‘제3의 공간’을 전국 어디서나 일관되게 제공할 수 있는 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어느 매장이든 충분한 콘센트와 품질 좋은 와이파이가 준비되어 있고, ‘카공족’들에게 눈치를 주거나 쫓아내는 일도 없습니다. 심지어 맘만 먹으면 주문 없이도 이를 누릴 수 있죠. 전국 2,000여 개 매장에서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요.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이유는 바로 스타벅스가 모든 매장을 직영점으로 운영한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외식 브랜드, 특히 전국구로 운영되는 브랜드는 대부분 프랜차이즈 형태를 취합니다. 점포마다 사장이 다르기 때문에 운영 방식이 일관되기 어려운 구조죠. 이런 상황에서는 ‘진상 손님’을 내쫓는 것이 개별 가게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프랜차이즈로 운영되었다면 이런 원칙을 요구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고객 중심의 원칙을 강요했다가는 오히려 본사가 ‘갑질’ 논란에 휩싸였을 겁니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직영을 고수하며, 때로는 개별 매장이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의 신뢰를 쌓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개별 매장의 손익보다는 브랜드 전체가 고객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우선시하기 때문이죠.
이런 직영 운영 방침은 특히 한국 스타벅스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는 아르바이트를 뽑지 않습니다. 모든 직원을 ‘파트너’라 부르고, 철저한 매뉴얼을 기반으로 고객을 응대합니다. 혹시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쏟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한 번 음료를 받아 들고 돌아서다가 실수로 엎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새 음료를 준비해 주시더라고요.
물론 친절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라면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필 그때 카운터에 있는 분이 ‘알바생’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죠. 이들이 가진 재량이 한정적이니까요.
하지만 스타벅스에서는 친절과 대응이 매뉴얼화된 기본 서비스입니다. 그 덕분에 어디서든 이러한 친절함을 누릴 수 있죠. 이 점은 스타벅스를 항상 믿고 찾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잔, 그리고 커피를 받을 때 건네는 친절한 인사말 하나에도 이러한 경영 전략이 숨어 있다는 사실, 재밌지 않으신가요? 스타벅스가 ‘제3의 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바로 예측 가능함입니다. 익숙한 공간이어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매장 운영 방식과 직원 대응 방식의 표준화가 필수적이고, 결국 직영점과 정직원만을 고수하는 현재의 운영 방침으로 이어지게 된 겁니다.
더욱이 이런 전략은 스타벅스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혹시 올리브영 X 계정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프로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 해주세요↗️
이 문구는 실제 매장에서 사용되는 응대 멘트입니다. 너무도 유명하여 일종의 밈으로 여겨질 정도인데요. 올리브영도 대부분 직영점으로 운영되며, 고객 응대 방식과 매장 경험을 철저히 관리하는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직원들의 멘트는 물론, 말투와 어조까지 표준화된 매뉴얼을 통해 관리되고 있죠. 이러한 디테일 덕분에 올리브영은 소비자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이런 공간과 서비스에도 기업의 치밀한 경영 전략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사소한 미소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는 걸 떠올리며 하루를 보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조금 더 풍성한 하루가 될지도 모릅니다.
커머스 업계의 핵심 인사이트를 뉴스레터에서 만나보세요
트렌드라이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로,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커머스 리터러시로 일상의 소비와 상식을 쌓으셨다면, 이제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매주 수요일 아침, 엄선한 트렌드에 인사이트를 얹어 보내드립니다. 같이 트렌드를 나누고 공부하며 발전해가요.
이 필자의 다른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