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여러 대학을 둘러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많은 학생들의 경영학과 복수 전공 (혹은 부전공)이다. 아무래도 취업을 할 때에 본인의 전공에 더해서 경영학을 공부했다고 하면 유/무형의 가산점을 얻기 때문인것 같다.
하지만 꼭 교실에 앉아서 책으로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경영에 대해서 공부하는 방법은 많다. 물론 회사에 입사해서 신입사원부터 차근차근 업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렇게해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자신의 업무분야를 넘어서는 시각을 미리 갖추기는 어렵다.
재학시절부터 혹은 직장인 초년시절부터 경영학에 대한 인사이트를 갖추는 경영학 공부 방법론은 무엇인가?
경영학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 – 창업
경영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직접 사업을 해 보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잘 나가는 경영학과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한 분야의 창업자가 ‘내가 직접 해 보니 XYZ와 같은 방법이 잘 통하고, ABC와 같은 방법은 잘 되지 않더라’ 라고 말하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직접 해 본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업을 직접 해 보면 재무관리, 인사관리, 마케팅 관리 같은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그에 못지 않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자기 돈과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남들이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고, 과연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급쟁이 직원들이거나 남에게 서비스나 컨설팅을 제공해주는 입장에서 사업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사업의 오너만큼 진지하게 그 사업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비즈니스 오너만큼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게 되면 한푼 한푼의 돈이 내 스스로의 돈이거나 혹은 내가 직접 설득한 투자자 및 채권자의 돈이므로 허투루 쓸 수 없다. 하지만 회사돈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보다는 좀 더 마음 가볍게 돈을 쓰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직원수가 몇 명 되지 않는 소규모 기업을 창업한 창업자의 입장에서 종업원 한명 한명은 정말 꼭 필요한 인적자원일 수도 있지만, 대기업에서 내 밑에 있는 부하직원이 한명 나가게 되면 물론 당장은 좀 귀찮은 일이 많을 수 있지만, 인사부서에 전화나 이메일을 보내서 충원을 요청하면 된다. 부서 전체가 흔들릴만큼 큰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것보다는 조금 복잡한 일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많은 후배들에게 작은 구멍가게라도 한번 직접 창업할 것을 권한다. 무언가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더 좋다. 최근에는 창업 열풍이 거세지면서 대학 재학 중에 직접 창업을 하는 후배들이 늘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고,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이들에게 기꺼이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한편 경영학 분야를 선도한다고 여겨지는 Harvard Business School(이하 HBS)의 수업에서도 198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강조하는 수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창업가적 경영자 (Entrepreneurial manager) 와 같은 수업은 필수과목이 되었다고 한다.
반드시 자신이 창업을 하지 않고, 조직의 중간 관리자라고 하더라도 창업가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 점차 미국의 성공적인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재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각광받는 Google, Facebook, 등의 미국의 실리콘밸리의 Tech 기업들에서는 비록 회사가 계속 커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직원들 내부적으로는 기업가정신을 유지하고 자신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오너십과 실험정신을 유지할 것을 조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직접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고찰: 케이스 스터디
(Case Method, 사례연구)
하지만 창업이라는 것은 섵불리 할 수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부모님 돈과 친척 돈을 모아서 사업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사업을 무리하게 시작했다가 집안 전체를 재무적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례연구 즉, 케이스 스터디 (Case Method)이다.
기존에 기업들이 했던 일들에 대해서 주요 사건과 데이터 및 주요 의사결정의 내용들을 제시한 후에 사후적으로 분석해 보는 케이스 스터디의 방법론은 80년대부터 HBS 의 MBA 수업에서 널리 쓰이면서 경영학 공부의 대표적인 방법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MBA에서 케이스 스터디 수업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절반 이상은 HBS에서 나오는 HBR Case를 사용한다. 많은 미국의 Top MBA들이 그러한 방식을 지난 20-30년간 사용해 왔기에 케이스 스터디를 대체할 수 있는 혁신적인 한 수업 방식이 나온다면 또 한번 경영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까지는 HBS를 중심으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교육을 강화하는 것 이외에 뚜렷한 변화는 없어 보인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출판사인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에서 발행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Harvard Business Review, 이하HBR)에는 기업들의 최신 케이스들이 매번 실리고 있으며, 이렇게 실린 기업들의 케이스는 전세계의 경영학 수업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HBS case 라는 고유명사는 경영학 수업에서는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단어이며,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HBS Case중에서 BMW 해외 진출의 케이스를 읽어 보면…” 라는 식으로 특정 회사의 특정 케이스에 대해서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다음은 실제로 HBS를 졸업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케이스 방법론에 대한 내용을 표현한 글의 일부이다.
[사례연구방법(Case Method) – Harvard Business School이 고안한 독특한 경영학 공부법]
HBS 교육방식중 가장특이한 사항은 사례연구방식(case method), 즉 케이스에 대해연구하고 토론하는방식이다. 교과서는 참고자료일 뿐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HBS 교수들이 직접 만든 기업경영 사례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수업에서 교수들의 역할은 일방적인 강의자가 아닌 쌍방향 토론의 진행자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재무과목마저도 케이스로 배운다는 사실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놀라워할 때가 있다.
졸업 후 돌이켜 보면 이러한 케이스 방식 덕분에 2년간 쌓은 지식이 많은 부분 내면화됐다는 생각이 든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필자는 마케팅, 회계, 재무과목등 다양한 경영수업을 이미 접한 바 있다. 그러나 기억해 보면 교과서를 이용한 강의와 중간•기말고사를 위주로 공부했던 내용은 졸업 후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반면 HBS의 케이스 토론 방식은 머리속에 계속 남아있게 된다. 매일 5~8시간씩 다음날 수업을 위해 예습을하고, 학생들끼리 갑론을박을 벌이며 지식을 쌓는 체험적인 수업모델이기 때문에 수업 내용이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소화될 수 있었다.
대학 수업에서 이렇게 케이스가 많이 사용되다 보니, 케이스를 잘 쓰는 것 또한 하나의 가치 있는 기술이 되었다. 그래서 유명 경영/경제 연구소나 컨설팅 업체에서는 ‘사례 작성 대회’ 혹은 ‘사례 발굴 대회’ 같은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내용 중에서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것들을 잘 잡아내어서, 당시에 그 프로젝트에 실제로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보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론이다. 많은 HBS 케이스들이 그 케이스에서 중요 의사결정을 했던 CEO나 CFO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롤렉스 시계를 쳐다보면서 OO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라는 식의 소설속에 나올 법한 회상 장면을 시작으로 케이스를 쓰기도 한다.
일정 부분의 사실과 일정 부분의 허구를 복합해서 쓰는 경우도 허다하고, 케이스에 등장하는 회사들의 요청에 따라서 회사 이름을 감추거나 다른 회사의 이름으로 바꾸어서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케이스가 좋은 케이스일까? 한국에서는 케이스에 대해서 사후적으로 이미 성공/실패를 정의한 후에 그를 벤치마킹 하거나, 혹은 답습하지 말라는 식으로 답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케이스는 내 생각에는 좋은 학습을 위한 재료가 아닌 것 같다. 이런 면에서 기업의 홍보를 위해서 좋은 점만 기술하는 케이스들은 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지 않다.
따라서 좋은 케이스(사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1) 복잡한 상황이되, 2-5가지 정도의 명확한 이슈가 드러날 것,
2) 등장인물이 여러가지 선택이 가능하나, 그러한 선택들을 할 때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서 결정해야만 할 것,
3) 중요한 고려 요소들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잘 드러나 있을 것,
4) 결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힘들며, 다른 결정에 따른 다른 결과가 나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결과에 대한 시사점 (implication) 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케이스이다.
즉, 최대한 읽는 사람이 그 상황에 몰입되어서 비슷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할때, ‘과연 무엇, 무엇을 고려해서 결정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 그리고 그 경우의 의미와 시사점 (implication)은 무엇일까? 정도만 생각할 수 있도록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 주어도 되는 것이다.
경영의 많은 이슈는 어차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케이스 스터디 무용론
사례연구는 기본적으로 이야기(story telling)이며, 특정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케이스 스터디라는 방법론 자체에 대해서 무용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케이스 스터디의 단점은 모든 지식이 사후적이라는 것이다. 즉, 지나고 나면 너무나 자명해 보이는 일들이 많은데, 막상 그 시점에 처해 있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헷갈리는 의사결정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뒤늦게 바라볼 때에 너무 자명하다면 케이스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인사이트(insight)를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케이스 스터디의 단점을 드러내 주는 단적인 실험이 바로 The American Soldier Research[2]이다. (하단 참조)
그래서인지 케이스 스터디라는 경영학 교육의 방법론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모든 것이 사후적으로 해석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러한 사후적으로 얻게 되는 교훈을 영어 표현으로는 하인드사이트(hindsight) 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사례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hindsight는 삼성전자가 반도체에 투자한 사례이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산요(Sanyo)를 모방하기에 바쁘고, 국내 시장에서는 금성(현재의 LG전자)에 밀려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삼성전자가 장기간에 걸쳐서 반도체에 과감한 투자를 함으로써 90년대 후반부터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반도체 기업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잘 한 일이었다는 식으로 밖에 해석이 될 수 없고, 만약에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는 가정을 해봐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하는 것이 케이스 스터디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이다.
실제 현상과 반대 되는 내용도 쉽게 합리화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비즈니스 케이스를 보고 그것의 성공/실패 원인을 생각해 보는 것이 효과적인 교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용론자들의 논지의 핵심이다.
즉, 그 사례를 보고 이것저것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수 많은 이야기(story)의 하나일 뿐, 결코 그 결과를 필연적으로 도출하는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경영이라는 것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란 없다. 경영학이 어렵다면,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케이스들은 주요 의사결정 과정들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서 단계적으로 보여주거나, 일부 제품 혹은 회사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혹은 참고자료 등에 들어가는 숫자를 조금은 각색하여 제시함으로써 실제 존재했던 케이스에 각색을 가미하여 교육용으로 재탄생 시키기도 한다.
케이스 학습법 무용론자들의 또 다른 논거 중에 하나는 기업의 전체적인 역사나 전략의 흐름, 그리고 그 기업의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지 않고, 일정 사건만 이해해서는 기업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성공한 기업들은 이미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라져 있는 경우가 많거나, 혹은 그 기업의 시스템 자체가 성공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기업들은 모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케이스를 통해서 시사점을 얻는다고 해도 자신의 조직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애플이나 삼성전자가 어떤 신제품을 성공시킨 과정을 보면, 다른 기업들은 그런 성공 스토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자신들의 기업에 재적용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HarvardBusinessReview-JenStark [HBR Magazine: 1달에 한 번 한국어판이 발행되는 HBR은 경영학의 새로운 이론들이 소개되는 학술지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최신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보여줌으로써 케이스 스터디 교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케이스 스터디 제대로 활용하는 법
케이스 스터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케이스 스터디를 잘 활용하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주입식 한국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케이스 스터디에서는 어떤 특정한 가치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보다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생각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실제로 미국의 MBA에서 활용하는 케이스 스터디의 방식은 국내와는 조금은 다르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공통적으로 케이스 스터디는 수업 이전 혹은 수업 내에서 케이스에 대해서 충분히 읽을 시간을 교수가 학생들에게 주고 나서, 학생들에게 몇몇 핵심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 들이다.
– 케이스에 나오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겠는가?
– 이런 상황에서 더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가?
– 이런 상황에서 케이스와는 다른 의사 결정을 내렸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겠는가?
한국에서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교수님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학생들은 그러한 답에 가깝게 가기 위해서 애써 답을 마련한다.
그런데 미국의 MBA에서 받은 수업은 정답이 없는 쪽에 가깝다. 교수님의 역할이라는 것은 주어진 케이스에 대해서 학생들의 논의를 facilitate 해 주는 역할에 가깝지, 정답을 제공해주거나 알려주는 사람의 위치와는 거리가 멀다.
필자 또한미국의 MBA에서 수업을 듣기 전까지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일방적인 (one-way) 강의에 익숙해져 있었고, 처음에는 자유로운 토론이 오가는 미국 MBA의 수업방식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낯설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학생들에게 쓸데 없는 질문들, 바보 같은 질문들을 많이 허용하고,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는 것인지에 대한 결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나를 포함한 많은 동양인 학생들은 ‘그래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라는 것이냐?’ 고 묻기 일쑤였고, 교수님에게도 ‘그래서 당신이라면 그 때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겠는가?’ 라는 질문을 곧잘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즈니스 케이스에는 실패/성공이 확실히 없다. 그냥 상황에 대한 설명만 나와 있고,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요즘 가장 많이 거론되는 애플(Apple)의 경우, MBA의 케이스 스터디에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애플이라는 기업은 애플의 80년대를 보느냐, 90년대를 보느냐, 2000년대를 보느냐, 그리고 2010년대를 보느냐에 따라서 너무나 다른 가치판단이 가능하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제품 카테고리를 보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판단, 다른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90년대 PowerBook인지, 2000년대 iMac인지, iPod인지 등등. 심지어 대부분의 토론들은 지금도 그들이 활동을 계속하는 영역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어떤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게 많다.
우리가 대면하게 되는 대부분의 현실세계에서의 문제가 정답이 없기 때문에 경영학 교육과정에서 접하는 문제들 또한 마찬가지로 정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 그래서 ‘만약 나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을 때가 많다.
케이스 스터디 방식에 익숙해질수록 정답을 찾기 보다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서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한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세상의 어떤 비즈니스 상황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어느 정도의 유사성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분도 비즈니스 케이스를 접하게 되면 반드시 일정한 정답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기 보다는 그 상황에 자신을 대입시켜보고 과연 어떤 점들을 더 고려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의 연습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경영학 교재가 어디에나 있다
창업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경영학 공부가 될 수 있지만 수반되는 리스크 때문에 쉽지 않다. 케이스 스터디 (사례연구)를 하는 것도 매우 좋은 경영학 공부가 될 수 있지만 케이스 스터디는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과 함께 토론/디스커션(discussion)을 통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서 혼자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따라서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것들이 온통 비즈니스로 이루어져 있다. 집 앞에 있는 구멍가게부터 빵집, 세탁소, 커피숍, 약국, 식당 등등, 모두가 알고 보면 누군가가 돈을 투자해서 운영이 되고 있고, 종업원을 고용해서 월급을 주고 있는 사업체들이다. 따라서 굳이 창업을 하지 않고, 경영학에 대한 교재를 구해서 보지 않아도 주변에서 경영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이 구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비즈니스 오너들과 관리자들, 그리고 종업원들이 행하는 행위들을 소비자가 아닌 경영자의 눈에서 볼 수 있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커피숍에서 제공하는 작은 서비스 하나에도 분명 의미가 있을텐데, 계속 소비자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아무런 배움을 얻을 수 없다.
예컨대 어떤 커피숍에서는 케익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함께 팔고, 어떤 커피숍에서는 커피에만 집중을 한다. 어떤 커피숍에서는 대기 번호표를 나눠주고 어떤 커피숍에서는 번호표를 나눠주지 않고 종업원이 번호를 부른다.
또 어떤 커피숍은 공짜 인터넷을 제공해 주고, 어떤 커피숍에서는 인터넷도 제공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노트북을 꽂을 전원조차 제공해 주지 않는다. 저마다의 경영철학과 경영방침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운영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 이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케팅적으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재무적인 성과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 기업의 운영 철학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점에 가거나 어떤 제품을 구입할 때에 그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점에 들어서게 되면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가?
– 이 회사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 이 회사의 주요 타겟 고객은 누구인가?
– 이 회사의 경쟁사는 어떤 회사인가?
– 이 회사가 다른 경쟁사대비 차별화 되는 점은 무엇인가?
– 이 회사가 경쟁사 대비 갖고 있는 원가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 이 회사의 매출은 얼마나 될까?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 이 회사의 이익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동종 업계의 경쟁사들 대비 높을까? 아니면 낮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들이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업종이나 회사마다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서 이러한 핵심 질문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따라서 얼마나 그 비즈니스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질문을 뽑아 낼 수 있는가?라는 점도 내공을 측정할 수 있는 좋은 척도이다. 비즈니스에 대한 내공이 높은 사람들은 그 비즈니스를 파악하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만 보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제품 및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위와 같은 질문들을 한번 던져보라.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계속해서 갈고 닦으면서 ‘만약 내가 이 비즈니스를 운영한다면?’ 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다르게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
단지 소비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이 아니라, 만약 내가 소비자로서 갖고 있는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영자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며, 그런 행동을 할 경우에 주주, 종업원, 채권자, 공급자 등의 이해관계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자.
매경이코노미-Cover
만약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 경제신문이나 경제 주간지 등도 좋은 교재가 될 수도 있다. 경제신문에 나오는 기업들의 스토리, 특히 주간지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하는 기획기사나 특집기사들은 경영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의 ‘꺼리’를 제공해 준다. 자신이 그 기업의 입장에 처해 있다고 가정해보고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곳을 둘러봐도 기업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자체가 무한한 자연 학습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모의 실험: American Soldier Research]
2차대전 직후, 미국에서는 The American Soldier -An Expository Review 라는 리서치가 행해졌다. 이 리서치는 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군에서 진행한 리서치로서 60만명 가량의 참전 군인을 조사했고, 300개 이상의 연구가 집대성된,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가장 대규모의 리서치였다.
그런데 이 리서치를 통해서 아래의 세 가지 결과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1번의 이유에 대해서 한번 스스로 말해보자. 왜 그러했을까?
1. 교육수준이 높았던 병사들이 교육수준이 낮았던 병사들에 비해서 전쟁 당시나 혹은 전후에 정신질환을 더 많이 겪었고, 군대생활에서 교육수준이 낮은 병사들 대비 잘 적응하지 못했다.
2. 도시 출신의 병사들이 시골 출신의 병사들에 비해서 야전 생활에 더 적응하지 못하는경향을 보였다.
3. (날씨가 더운) 남부 출신의 병사들이 (비교적 날씨가 서늘한) 북부 출신의 병사들 대비 덥고 습한 아시아의 기후의 전장에서 더 잘 적응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내가 생각해 본 것은 다음과 같다.
– 교육 수준이 높을 수록 생각이 많아서 군대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더 괴로웠을 것이다.
–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 수록 군대 바깥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더 많기 때문에 기회비용이 더 커서 힘들어했을 것이다.
– 교육 수준이 높으면 사람을 죽이거나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서 더 죄책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 교육 수준이 높으면 전쟁 중에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명령이나 작전에 대해서 더 불만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2번의 이유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자.
–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육체적 노동에 덜 익숙해서 아무래도 농촌 출신들이 더 군생활을 잘 했을 것이다.
– 농촌 출신들이 집단생활이나 협동 작업에 더 익숙해서 개인주의적 도시출신보다 더 군생활에 잘 적응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다른 이유들이 존재할 것이다. 3번 결과에도 마찬가지로 우린 다양한 원인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독자 여러분을 속였다. 놀랍게도 실제로 The American soldier 리서치의 결과는 앞서서 언급한 1, 2, 3번 결과와 모두 반대였다!
즉, 도시 출신이 농촌출신보다 더 잘 군대에 적응했고, 교육수준이 높은 병사들이 낮은 병사들 대비 정신질환에 덜 시달렸으며, 남부출신의 병사들이 북부출신 병사들보다 아시아의 더운 날씨에 대해서 더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모두는 1,2,3번의 결과가 모두 우리의 직관과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는 결과이기 때문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것에 대한 이유를 술술 잘 말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이 간단한 모의실험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보일 것이다. 즉, 자신의 직관과 일치하는 결과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논리를 생성해낸다. 그리고 만약에 이 실험의 실제 결과를 처음부터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또 그것에 맞는 합리적인 이유를 언급할 것이다.
The American Solider Research의 경우는 조사를 통해서, 우리가 ‘그래야만 한다(why things are the case)’ 라고 생각한 것들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경영 실무에서 우리는 단순히 ‘직관’에 의존해서 어떤 명제를 만들어 낸 후에,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합리화를 진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금도 책상 앞에서 제안서를 작성하는 많은 실무자들이 자신의 직관에 의존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검증되지 않은 가정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이 간단한 모의 실험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뇌는 그럴듯한 이유들을 만들어내는 선수이다. 당신의 뇌가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을 경계하라’
원문: MBA Blogger
woolrich jassenThings That Suck About Being Stack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