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4년 4월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1월 고창에서 발생하여 확산된 AI로 인해 3월30일까지 약 1천200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되었다.[1]
아직도 이번 AI 사태가 마무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처분 될 가금류의 수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역대 최대의 살처분 숫자이다. 지난 2010년 구제역 사태 때 30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가 살처분 되었고, 또 AI로 600만 마리에 이르는 가금류가 살처분 되었다. 갈수록 살처분 하는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살처분 된 가금류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는 것은 AI가 발생한 농장은 말할 것도 없고, 반경 3km 이내는 위험지역으로 간주하여 살처분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AI사태에서 고병원성 H5N8에 감염된 가금류는 모두 28마리다. 28마리가 감염이 되었는데 1천200만 마리의 살아있는 생명이 살처분되었다.
우리가 이들 생명을 대하는 이러한 방식은 바람직한 것인가? 또 AI의 확산에 철새가 연관이 되었다며 철새의 관리방안과 더 나아가 야생동물의 질병관리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논의들도 있었다. 그로인해 해마다 철새가 먹을 사료를 살포하던 작업이 중단되어 철새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여 제때에 이동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AI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AI가 발생한 후 가금류의 예방적 살처분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며 AI를 포함한 가축전염병에 대하여 우리가 현재 행하고 있는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특히 이 고민은 가장 큰 고통을 받지만 이러한 사태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 동물의 생명의 관점에서 해보고자 한다.
살처분의 역사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발생농장과 오염지역(반경 500m이내)에 있는 가금류에 대해 살처분을 실시한다. 또 반경 500m~3km까지는 위험지역으로 설정하여 지자체의 건의를 받아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살처분을 실시한다. 이러한 예방적 살처분은 가축 전염병 확산 차단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이러한 평가를 대부분의 국민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가축 전염병과 관련하여 우리가 먼저 생각해볼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은 생명이란 무엇이며, 그 생명에게 발생하는 질병은 무엇이고, 또 그 중에 전염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우리는 공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또는 언론을 통하여 질병이나 전염병에 대한 개념을 익히게 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색(色)에 대하여 배우면서 빨간색만 배운다면 빨간색도 색의 한 부분이기에 색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빨간색의 특성을 색의 특성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틀린 이야기가 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의 질병은 동물이라는 생명에서 벌어지는 생명 현상의 한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은 전체에 대한 이해 속에서 이해가 되어야지 이 한 부분을 전체인 것처럼 이해할 때에는 생명 현상을 잘못 이해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 부분에서 간략하게 다루기로 하고 먼저 살처분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우리는 가축의 전염병과 관련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동물에게는 그러한 전염병이 원래부터 있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가축의 전염병은 원래부터 있던 질병은 아니다. 또 그에 따른 살처분도 원래 가축의 질병을 다루던 방식이 아니었다. 가축의 전염병에 살처분이라는 방식이 실시된 것은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영국의 귀족들은 쇠고기를 많이 먹는 것을 자신의 부의 상징으로 삼았다. 또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조아들 또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많은 쇠고기를 먹었다.[2]
늘어나는 쇠고기 수요에 맞추어 사육하는 소가 늘어나면서 여러 전염병도 발생하게 된다.
구제역은 1839년에 처음 발생한다. 당시 영국 정부와 농민들은 이 질병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구제역으로 인해 죽는 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3]
처음으로 구제역을 심각하게 생각한 집단은 우수한 품종의 가축을 키우는 영국의 부유한 귀족계층 사육자들이었다. 우수한 품종은 근친교배 등으로 인하여 구제역이 일반적인 품종보다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구제역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받게 되는 비용손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구제역을 법률적 해법이 필요한 심각한 질병으로 규정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감염된 가축의 이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1864년 의회에 제출하지만, 일반 농부, 가축상인, 도시주민들에게 구제역은 심각한 질병이 아니었기에 그들을 대표하는 의원들에 의해 법안은 기각되었다. 하지만 1865년에서 1867년 사이에 치사율이 높은 우역(牛疫)이 발생하여 확산되면서 영국정부는 가축의 살처분을 통한 통제를 실시하고 또 효과를 거두었다.
이로 인해 국가의 가축 질병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기 시작되었다. 구제역에 대한 일반 농부들의 생각과 영국정부의 생각은 차이가 있었지만 1884년 영국 의회는 구제역 발생 국가로부터 가축수입을 전면금지했고, 그로부터 2년 후 구제역은 1839년 이래 처음으로 영국에서 사라졌다.
이로 인해 정부의 강제적이고 보편적인 일련의 조치가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을 근절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확산시켰다. 즉 살처분 정책이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살처분이 공식적인 대응책으로 처음 채택된 것은 1892년이었다. 국가에 의한 가축의 살처분이 실시되면서 구제역은 익숙하고 대체로 무시되어 온 병이 아니라 무서운 동물전염병이자 엄청난 비용손실을 초래하는 외부로부터의 침입자로 간주되었고, 광범한 국가적 통제수단을 통해 영국에서 근절시켜야 할 무엇이 되었다.
질병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바뀐 것이다. 구제역에 대한 새로운 프레이밍이 이 병의 임상적 심각성과 역학적 성질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다. 그런 점에서 구제역은 자연의 산물일 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 영국농수산부(Ministry of Agriculture and Fisheries, MAF)가 선호했던 구제역 정책은 기본적으로 국가주의적 접근방식이었다.
MAF의 수석수의관이었던 스튜어트 스톡먼은 국가의 주도로 구제역을 통제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대응 방향을 수립한 인물이었고, 고비 때 마다 반대자들의 주장에 맞서 살처분 정책을 지지하는 이념들을 만들어 냈다. 그는 살처분이 효율적이고 가장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정책이라는 생각을 농민과 일반대중들에게 주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고, 필요할 때에는 정보를 차단하거나 은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살처분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대응방식은 2001년 구제역 대유행까지 지속되었다. 영국과 달리 살처분 정책을 채택하지 않았던 독일에서는 세균학자 프리데리히 뢰플러가 20세기 초에 처음으로 구제역 혈청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후 1938년에 사용가능한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영국은 백신접종으로 영국에서 구제역을 근절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967~1968년 대유행 이후 구제역 발생이 주춤하면서 서유럽국가들은 백신접종을 중단하는데 합의했고, 그 과정에서 살처분과 구제역 청정적 지위 유지가 EU 전체의 정책이 되었다.[4]
정리를 하자면 전염병으로 인한 가축 살처분의 시작은 전염병의 치사율이 높았기 때문이 아니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 정책으로 강행 되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에서 일반 농민이나 가축의 이익은 배제되었다.
생명의 자연치유력
가축의 전염병과 질병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될 때 동물의 질병 또한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생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35억 년 전이다. 그리고 35억년의 긴 시간을 거쳐 생명은 진화를 하여 오늘의 다양한 생물이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볼 부분은 모든 생명은 자기가 존재하는 공간(Niche)에 적응하도록 진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진흙탕에 사는 벌레는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도록 진화되었고, 똥 더미에 사는 구더기는 그러한 환경에서 ‘아주 잘 살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어느 생명이나 자기가 사는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문제로 인하여 그 생명은 번창할 수가 없다.
지렁이가 습한 땅속에서 살면서 끝없이 피부염을 앓는다면 그 피부 문제를 해소하느라고 면역력과 영양을 소모하기 때문에 종의 번성에 에너지를 소모할 수 없게 된다. 그로 인해 그 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지렁이는 번창한 것이다.
이것은 지렁이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마찬가지다. 북극에 사는 생명은 그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했고 열대에 사는 생명은 그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했다. 모든 생명들은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그러한 환경이 오랜 시간 자신이 진화해왔던 공간이라면 그러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간다.
그 환경에는 매우 많은 것을 포함한다. 습도, 온도, 기압, 산소포화도와 같은 공간적인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먹거리 환경도 포함한다. 여기에 또 중요한 환경적 요소가 있다. 그것은 생태적 환경이다.
생명은 어느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은 생태계 내에서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러한 생명의 생태계와의 관계성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에 철새가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전파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철새는 생태계의 순환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존재들이고 이런 관계의 역사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온 것이다. 원인은 명확하게 다른 곳에 있는데 철새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들 간의 관계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와의 관계이다. 사람들은 생명의 역사가 박테리아에서 시작했지만 박테리아에서 다른 생명이 진화한 이후에 박테리아와는 별개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항상 박테리아를 기반으로 하여 진화되어 왔다.[5] 모든 생명은 이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를 해왔다. 이 말은 이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존재가 각 생명의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관계에 있다. 모든 생명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포함한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왔다. 생명이 건강하다는 것은 이들 미생물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피부에 세균이 있다고 하여 피부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건강할 때에는 그 세균과 적절한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건강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하여 그 균형이 깨어질 때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명이 건강한 것은 동적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6]
오늘날 질병을 바라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의 질병을 어떠한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요인으로 환원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원주의적으로 질병을 파악하려는 시각은 질병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 부분은 아래 전염병과 관련된 부분에서 좀 더 이야기를 하겠다.
생명은 자신이 진화해온 공간에서 건강하게 살도록 진화되었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동물의 질병을 공부한 우리는 동물들이 선천적으로 다양한 질병을 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일정 부분 옳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르다. 생명이 노화에 인한 죽음을 제외하고 동물은 건강하게 살아간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하지만 예외는 예외일 뿐이다. 또 생명의 노화는 다른 문제이다. 생명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진화를 했다. 다만 동적평형상태가 깨졌을 때 일시적으로 앓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자기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이것을 자연치유력이라고 한다.
자연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생명에게 자신이 처한 환경(Niche)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치유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이해할 때 이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서양의학은 생명의 생명력에 대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생명은 원래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은 원래 건강한 것이다. 그렇게 살도록 진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나 인간에 의해 사육되는 가축이 많은 질병을 겪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인간이나 동물이 진화해왔던 환경에서 너무나도 벗어나 살고 있기 때문이다.[7]
전염병에 대한 이해
현재의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몇몇 전염병을 국정 전염병으로 지정하여 국가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가축의 전염성 질병이 발생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음으로써 축산업의 발전과 공중위생의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한 전염병을 방치하는 경우에 국가적인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말로 가축의 전염병이 국가적인 손실을 가져오는 질병인가?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전염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전염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전염병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동물에게 전염병은 원래 있었던 것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가축’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있지만 ‘동물’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은 없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생명은 바이러스나 세균을 포함하여 자신이 존재하는 곳에 적응하여 진화를 했기 때문에 질병이나 전염병과 같은 것은 없었다. 더더욱 치명적인 전염병과 같은 것은 생명의 역사에서 없었다. 생명은 바이러스를 포함한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또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도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생명의 목적은 종의 생식과 번식에 있듯이 바이러스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다. 바이러스는 어떤 생명에 감염된 후 복제를 하여 확산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감기와 같은 형태이다.
감기도 원인이 influenza virus다. 바이러스는 어느 숙주에 감염된 후 자기 복제를 하고 또 다른 개체로 확산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숙주를 죽이게 되면 다른 개체로 퍼져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숙주를 죽일 만큼 치명적이지 않다. 숙주가 죽어버리면 다른 개체에게 퍼져나갈 기회도 없이 자기 또한 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바이러스들 중에 숙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는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물은 바이러스가 있는 환경에서 진화를 해왔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존재에 의해 치명적인 상태로 되지 않는다. 동물은 바이러스가 있는 상태에서 동적평형을 이루면서 건강하게 살도록 진화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명적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원인으로 인해 그 동적평형 상태가 깨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형태로 변이한 것이다. 자연의 상태에서 바이러스는 숙주를 죽이는 경우 자신도 더 이상 퍼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숙주를 죽이지 않는다. 만약 숙주를 죽인다면 거기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은 종결되기 때문에 다른 숙주에게 전염되지도 않는다. 전염병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자연 상태에서 바이러스는 숙주에서 복제를 하며 숙주를 죽이지 않고 숙주가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고 다니도록 한다. 그것이 바이러스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었다. 그런 환경이 인구가 밀집한 도시라는 환경이고 공장식 축산 환경이다. 그래서 인류의 전염병의 발생은 도시의 발달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동물에게 전염병의 발생은 인간이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집단으로 사육하면서 발생하였다. 또 사육 환경이 바뀌면서 가축전염병은 점차 강력해졌다.
그 정점이 오늘날 과도하게 밀집하여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이다. 이러한 환경은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굳이 숙주가 돌아다니며 다른 숙주에게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도 충분히 옮겨 갈 숙주가 많다. 이때는 바이러스는 이미 감염된 숙주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복제하여 다른 개체에게 전이되는 것이 더 이익이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굳이 다른 숙주를 만나기 위한 시간을 줄 필요가 없는 환경이 되면 치명적인 형태로 변이된다. 둘째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숙주의 면역력이다.
오늘날 공장식 축산에서 사육되는 가금류는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 갇혀서 사육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자연광을 한 번도 쬐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흙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땅 속의 지렁이를 맛보지도 못한다.
수십만 마리가 배설한 배설물에서 발생한 지독한 암모니아가 뒤섞인 공기를 마시면서 산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가금류는 약한 바이러스조차 이겨낼 면역력이 없다. 따라서 가축의 전염병은 자연적인 질병이 아니라 인위적인 축산환경이 가져온 질병인 것이다.
살처분에 대한 윤리적 문제
우리는 AI가 발생했을 때 고병원성을 거론하고 광범위하게 살처분하기 때문에 아주 무서운 질병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것은 누군가에 의해 위험성이 과장된 것이다. AI는 Avain Influenza 이다. 우리말로 하면 조류 독감이다. 우리가 흔히 걸리는 감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Influenza virus에 의한 감기가 위험한 질병인가? 아니다. 그런데 왜 AI에 감염된 가금류와 3km 근방에 있는 가금류는 모두 살처분하는가? 우리는 고병원성으로 인해 가금류에 AI에 감염되면 축산농가에게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살처분한다고 지례 짐작을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가? AI에 감염된 가금류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가? 물론 죽음에 이르는 가금류도 있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르는 가금류는 왜 죽음에 이르게 되는가? AI의 원인 바이러스가 너무나 지독하기 때문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AI의 원인 바이러스가 너무 지독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공장식 축산으로 가금류를 사육함으로 인해 가금류가 면역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원인은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아니라 반생명적인 공장식 축산에 있다. 그러한데 열악한 환경은 그만 두고 원인을 바이러스로 환원시키고 있다.
또 공장식 축산에서 사육되면서 면역력 형성이 되지 않은 가금류라고 하더라도 AI에 감염되었다고 모두 폐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국가는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하는가?
그것은 축산농가의 이익과 관련된 부분 때문이다. 오늘날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은 철저히 더 많은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자연 상태에서 닭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닭의 자연수명은 20~30년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닭 또한 어릴 때 부쩍 자라고 그 시기를 지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며 개체의 신진대사를 위하여 영양소를 소모한다.
그래서 축산업계는 사료 효율적인 면에서 가장 이윤이 최대인 때를 계산한다. 1950년대 닭은 70일 간을 키웠다. 하지만 2008년 경에는 48일만 키웠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더 짧아져서 35일 정도를 키운다. 그 이상은 급여되는 사료에 비하여 비육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빨리 자라는 동안만 사육하고 최대한 빨리 순환을 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축산업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금류가 AI에 감염되는 경우 폐사가 문제가 아니라 병치레를 하느라고 성장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축산업자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축산업자들은 병에 걸린 가금류가 회복하는 동안을 기다려줄 마음이 없다.
하루하루가 수익과 연관되기 때문이고 가금류가 AI로부터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수익률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 많은 수익을 얻으려는 축산업자들은 가차 없이 걸림돌을 뽑아버리는 것이다. 축산업자에게 가금류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병에 들어 시름시름하면서 체중이 늘지 않는 가금류를 보살피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니 빨리 판을 새로 까는 것이 그들의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또 그 손실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존하도록 만든다. 이번 AI와 관련하여 국가는 살처분 농가에는 419억원의 보상금을, 계열 업체에는 609억원을 배정하였다. 이 돈은 물론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돈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축산업이라는 것이 가축을 키워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축은 살아있는 생명이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이다. 우리가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키우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생명을 마구 대해도 되는가라는 윤리적 문제는 남는다.
우리는 그러한 동물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대해도 되는 것일까? 이 부분은 동물이라는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에 의해 생각이 나뉘게 된다. 동물을 인간의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어차피 돈 벌자고 키우는 것인데 돈이 되지 않으면 빨리 없애버리는 것이지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냐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동물이라는 다른 생명을 그렇게 다루어도 되는가 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를 하나 들겠다. 2002년 군산의 집창촌에 화재가 발생하여 성매매 여성 14명과 남자업주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들은 감금을 당한 채 성매매에 동원되던 사람들이었다. 포주는 성매매 여성들을 감금시켜 놓고 성매매에 동원을 한 후 영업시간이 끝나면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감금시켜 놓았다.
그러다가 화재가 발생하여 성매매 여성들은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였다. 이와 같이 포주가 돈벌이를 위하여 성매매여성을 감금시켜 놓고 성매매에 이용하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포주는 돈벌이를 위하여 성매매여성을 감금시켜 놓고 이용했다. 이러한 행위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축산업자들은 돈벌이를 위해서 가금류를 좁은 철망장에 가두어 사육한다. 그리고 질병에 걸리는 경우 돈벌이에 장애가 될 듯하니 살아있는 생명들을 포대자루에 넣어서 땅에 파묻어버린다.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다.
포주도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는 똑같은 이유로 성매매 여성을 감금시켜 놓고 이용했다. 둘 다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윤리적인 비난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용인을 한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동물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 없고, 고통스러운 듯한 동작을 취하는 것은 뻐꾸기 시계가 시간이 되면 뻐꾹 거리듯이 내부에 그러한 장치가 되어 있어서 고통스러워 보이는 듯한 표정을 짓는 자동기계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며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을 산 채로 해부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사람들 중에 데카르트와 같이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감금된 여성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그리 대하면 안 되고,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경우 모두 고통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을 그리 대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고 가축을 그리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만약 그 근거가 성매매여성은 인간이기 때문이고 가축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피터 싱어는 그러한 사람을 종차별주의자라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문제제기는 우리가 단지 인간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다른 생명을 이러한 방식으로 대해도 되는가라는 문제이다. 과연 우리 인간이 다른 생명을 이러한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해도 되는 것일까? 누가 그러한 권능을 인간에게 부여하였는가?
잔 카네즈는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8]
그것은 동물의 생명도 소중하지만 동물 못지않게 인간의 생명 또한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을 이용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닐 때에는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한다고 하였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공장식 축산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과도한 육식에 대한 탐욕과 축산업자들의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진행되어 온 방식이다.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은 더더욱 인간의 생존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단지 축산업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가축을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진행된 것이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하여 수천만 마리의 생명을 살처분 하는 방식은 반생명적인 행위이다. 또 이러한 행위는 생명윤리적인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생명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도 되는 것인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원문 : 태양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
- 농림축산식품부, 2014년3월31일 보도자료 ↩
-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신현승 옮김, 시공사, 2008, 78~79. ↩
- 김동광, 「우리에게 구제역은 무엇인가?」,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 2011, 18~20쪽. ↩
- 구제역과 관련 내용은 김동광의 앞의 논문을 인용함. ↩
- 린 마굴리스와 도라건 세이건의 『마이크로 코스모스』와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세균과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 동적평형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이 도움이 된다.
- 홍윤철, 『질병의 탄생』, 사이, 2014, 60쪽. ↩
- 잔 카제즈, 『동물에 대한 예의』, 윤은지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1, 19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