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자위권과 평화헌법의 의미
요즘 일본 자민당(自民党) 정권이 입만 열면, ‘집단적 자위권’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한국의 몇몇 친구들이 이것이 도대체 무어냐고 자꾸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이것이 지닌 근본적 문제가 도무지 무어냐고 추궁한다.
그러나 이 또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오늘은 장황하게 그것을 조목조목 잘 설명하기 보다는 되도록 간단하고 명료하게, 내가 아는 대로만 전해둘까 한다.
일본은 현재 자위대(自衛隊)라는 비교적 강한 ‘수비형’ 군대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자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직접적으로 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적 수단의 자위권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이른바 ‘평화헌법’(곧 헌법 제9조)이 있고, 그런 헌법 정신과 전통 안에 놓여있다.
이것은 공공연히, 특히 불특정한 명분으로, 더구나 자국 영토 바깥에서 어떤 전쟁에도 참여한다거나, 결코 군사행동을 전개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헌법이고, 훌륭한 헌법 정신인지 모른다. 심지어 웬만해서는 수비적 전쟁도 안한다는 내용이니, 반전주의자인 내 입장에서는 이런 대단한 헌법이 정말 있을까 할 정도이다.
나는 클래스에서 일본학생들에게 바로 이 헌법 덕택에,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가까운 주변에서의 것만으로도, 한국전쟁 6.25, 베트남 전쟁 등, 세계전쟁사의 가장 참혹한 전쟁사의 와중에서도, 젊은 병사 한 사람도 보내지 않았고, 그들의 목숨도 잘 지켰다.
오히려 그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 경제이익은 왕창 챙겨서, 급속도로 경제대국의 대열에 화려하게 등극한 이득을 본 바 있다고 설명한다. 바로 그 모두가 평화헌법의 덕택이라고 설명하며, 그런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평화헌법은 일본인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고 부언한다.
그런데 보수정권들은 전쟁을 할 수 없는 일본의 헌법, 일본의 군대가 자꾸 불안한 모양이다. 특히 요즘 동아시아 정세가 중국의 입김, 북한의 태도 등으로 더욱 불확실해지면서, 기본적으로 전쟁을 걸 수도 없는 일본, 전체적으로 일본의 방위책임은 이른바 ‘미일동맹’에 의해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그 불안의 근본인 것이다.
이들은 말한다. 도대체 지금 이 세상에서 작은 나라든, 큰 나라든 자기나라를 주체적으로 방위해 나갈 수 있는 군대가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과거의 전쟁책임과 패전국으로서의 큰 그림자였다고 해도, 이제는 자신들도 주체적 군대를 운용하는 정상국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헌법의 탄생 배경에는 말도 안 되는 일본의 전쟁역사가 있고, 패전국으로서의 수동적 측면에서 만들어진 헌법이지만, 정말 바람직한 헌법이다. 이 헌법이 어떻든 유지되어왔다. 일본의 보수적 정권이나 우익들은 이를 고쳐서 더 강력한 군대를 만들고 전쟁도 불사하는 국운의 재흥을 꽤해 보려는 시도를 줄곧 해왔다.
그래서 사실은 헌법을 개정하여서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식군대를 가지고 싶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름대로 평화헌법의 오랜 전통이 있고, 평화헌법의 정신과 이것을 지지하는 국민적 정서도 있으며, 앞서 설명한 실제적 이득도 있었던 역사가 있다. 더더구나 지금에 와서 일본이 헌법을 완전히 바꾸어 군대를 창설한다면 주변국의 견제와 집중적 대치국면이 벌어질 것도 불 보듯 한 일이다.
아베와 자민당 정권의 ‘해석변경’
이에 현 자민당 정권은 하나의 방법으로 그 중간 단계의 방향을 획책하고 나섰다. 지금의 헌법, 즉 평화헌법 제9조를 그대로 둔 채, 단지 그 헌법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일단은 자신들이 원하는 단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집단적자위권’을 허용하는 헌법해석이다.
즉 요점은 이렇다. 일본의 자위권행사는 일본이 직접적으로 심각한 공격을 당할 때, 그 또한 선별적으로 자위적 방위권을 행사한다. 그 밖의 대부분은 일본 방위를 책임지기로 동맹을 맺은 미국의 몫이다. 그러나 이번의 집단자위권 인정 해석은 일본국민과 국토가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아도, 일본의 방위에 있어 현저하게 중요한 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시에도 일본의 자위력으로 이를 방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미국의 영토나 미국의 관할권 안에 있는 영토에 대한 공격은 일본의 방위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일이기 때문에, 동맹국에 대한 공격은 곧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판단, 자위대가 군사작전을 펼 수 있도록 그 역할의 확대해석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여기에 한 수 더 붙인다. 동맹국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 다른 국가가 다른 나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처하여 혹시 일본에게 지원을 요청했을 시, 그 상황이 일본의 국가안위나 자국민의 보호에 심각하고 엄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자위권 차원에서 일본 영토 바깥지역에서의 군사작전도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두가 현재의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의 변경만으로 가능하다는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곧 평화헌법은 그대로 둔다지만, 지금까지 존중되어 온 평화헌법의 정신은 다 무너지는 일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여러 이유와 빌미를 들어 얼마든지 국내외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라는 방향으로 논리가 귀착되어 나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이 이러한 자위권의 확대 결정, 이른바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결정하는 그 때 그 때의 정권의 성향에 따라 고무줄처럼 그 해석이 늘어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어서, 또 다시 일본이 전쟁 광풍의 군사대국으로 새로운 험로를 걸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삐가 한번 풀리면 그것을 다시 잡아채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은 일본의 주변국뿐만 아니라, 실은 일본 내부 구성원들에게 과거의 악몽, 참담한 미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데 더 문제가 있다. 지금 일본 안에서도 일부에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다수는 아직 깊이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집단적 자위권과 추축동맹의 기억
그리고 마침내 전후 일본정치에서 거의 유일하게 칭찬할 수 있었던 부분이 금이 갔다.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것을 각의(閣議)가 결정했다.
아베수상은 이런 경우야 말로 만약, 만일의 극히 예외적 경우이며, 일본은 지금까지와 같이 평화헌법과 그 정신을 수호하며, 전쟁에 결코 참여하거나 관련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누누이 국민 앞에 강조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더욱 수상해 보인다. 그렇게 아닐 것을 그렇게 집요하게 해석변경을 해내려고 노력한 이유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베나 지금의 정권은 설사 그 전통을 공언대로 지킨다 하더라도, 다음 어느 때고 새로운 정권이 조금 더 강성으로 전쟁지향의 매파들이 들어선다면, 오늘의 헌법 해석변경은 곧바로 적극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불 보듯 한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이 깊이 우려된다. 이제 미국은 일본에 대한 전적인 방위책임에 어느 정도 피로를 느낀 것은 아닐까.
아니, 나아가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억지력의 일부 책임을 집단자위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떠넘기고, 그 대가로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오늘 나의 상념을 더해주는 것은 오래 전의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이다.
1940년 9월 27일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체결했던 이른바 ‘삼국동맹’의 악몽이다. 이 동맹으로 일본은 이른바 주축국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뒤이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전제가 되었다. 이 또한 시대가 다른 흐름이라고는 해도, 일종의 ‘집단자위권’ 동맹에 다름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는 패전 후 일본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날이 오늘이다. 일본은 제한적이기는 해도 마침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동아시아 판국에 조국은 가지런히 내치도 바로 세우지 못하는 권력의 우왕좌왕을 보인다. 형편없는 난국상황이다.
모든 일본인이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자위권 인정이 지닌 위험성을 깊이 우려하는 일본의 시민들이 근래 들어 좀처럼 보기 드문 의사표현에 나섰다. 우리대학의 가까운 교수들, 학생들도 다수 데모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보기 드문 사건이 일본 동경 중심가에서 일어났다. 6월 29일 일요일 오후 2시 10분 경 동경 신주쿠(新宿) 대로의 한 육교 위에서 중년 남성이 휘발유를 뒤집어쓰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한 시간 이전부터 휴대용확성기를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수상의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정책에 강력히 반대하는 내용으로 가두연설을 했고, 뒤이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급히 소방대원들이 진화하고,병원으로 이송 하였다. 온몸에 중증의 화상을 입었으나, 현재 의식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속적으로 의식 있는 시민들의 의견표현과 데모는 있었으나, 목숨을 내 던지는 이와 같은 항의사건은 드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