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과 떡볶이, 어묵 국물 냄새가 나는 정감 가는 풍경. 메리골드라는 마을에 ‘마음을 빠는 세탁소’가 생겼습니다. 마음의 얼룩이 옷에 얼룩지듯 떠오르고, 옷에 생긴 얼룩을 지우면 마음의 얼룩도 지워진다고 해요.
이 이야기는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영미권 최대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에서 10만 달러(1억 3천만) 선인세를 받고 수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국 소설로서는 최고 수준의 대우인데요. 세계를 반하게 한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의 윤정은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세탁소와 분식집이 있는 이야기, 영국 최대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다
임: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국내 베스트셀러 1위를 몇 달째 지키고 계신데, 기분이 어떠세요?
윤정은: 제가 에세이 등 다른 작품은 많이 출간했지만, 장편 소설은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처음이에요. 그러다 보니 독자님들 반응이 어떨까 굉장히 떨렸는데, 반응이 좋은 게 지금도 무척 신기해요.
임: 최근에는 ‘펭귄랜덤하우스’와 영어권 수출 계약에 이어, 대만 출판사와도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어요.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더라는 얘길 들으셨을 땐 어떠세요?
윤정은: 생생한 리얼리티 쇼 같더라고요. 이러다 어느 순간 짠 하고 스태프들이 등장해, 모든 게 쇼였다고 얘기하지는 않을까. 정말로 생경했어요. 펭귄랜덤하우스에 제인 로손이라는 부사장급 에디터분이 적극적으로 계약을 진행하셨다고 들었어요.
임: 어떤 점이 해외 에디터분들께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세요?
윤정은: 세탁소라는 공간이 외국에서도 어떤 서민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집마다 세탁기를 갖춘 한국과 달리 외국은 코인 세탁소를 굉장히 많이 이용한다고 해요. 거기에서 일주일치 빨래를 하면서 일상을 회고하고, 다독이고, 서로 또 대화도 나누고, 이런 정서가 외국 독자분들께도 와닿았던 것 아닐까요?
임: 그런데 한국의 세탁소는 외국의 세탁소와는 또 좀 다르잖아요.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보면, 또 그 앞에 김밥이나 떡복이를 파는 분식집도 있고.
윤정은: 맞아요. 그런데,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오히려 다음 작품에서는 더욱 한국적인 요소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싸이라든지, 윤동주 시인, 또 김환기 작가…… 분식 외에 다른 한국 음식을 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제 입장에선 한국 문화를 소설에 녹여서 알릴 수 있고, 외국의 독자 입장에서 보면 생소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보편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요소를 체험할 수 있고요.
마법 같고 환상적인, 그리고 일상적인 공감이 일어나는 마을
임: ‘마음을 빨아주는 세탁소’라는 마법적인 모티브는 어떻게 나온 걸까요?
윤정은: 원래 손빨래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어릴 때 부모님 집 옥상에 빨래줄이 쭉 늘어져 있었거든요. 거기에 빨래를 색깔별로 널어놓고 보고 있으면, 마치 물방울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꽃잎 같고 참 아름답더라고요. 저렇게 빨래에서 날아가는 물방울처럼, 우리 마음의 아픔이나 상처도 날아가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죠.
임: 마음을 빨 수 있는 능력이란 건 정말 마법적이잖아요. 그런데 그 마음을 빠는 과정은 굉장히 일상적으로 느껴졌어요. 마치 그냥 주변 사람들과 차 한 잔 하며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것처럼요.
윤정은: 우리, 살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얘기 많이들 하잖아요. ‘평범한 행복’을 원한다고요. 사실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안온한 하루를 보내는 그 모든 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소설 속에 사는 등장인물들이라면 어떨까요? 어쩌면 소설 밖에 있는 사람이 우리를 보면서 정말 마법 같다, 아름답다 – 이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요?
임: 뭔가 엄청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그렇게 시원하게 빨아서 지워버리는 등장인물은 잘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윤정은: 그런가요? 저는 나름대로 시원하게 빨았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사실 정말 끔찍한 일은 지워야만 살 수도 있죠. 하지만 어떤 상처는 또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해요. 사실 거기에 딱 부러지는 어떤 답을 내고 싶진 않았어요. 결국 본인들의 선택이니까요. 새로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마음을 어디까지 빨고 다릴 것인지는요.
임: 작중 배경이 되는 마을인 ‘메리골드’ 마을도 독특했어요. 마치 동화책의 삽화처럼 아름답고 초현실적이면서도, 분식집이 있고, 세탁소가 있고, 아주 평범한 한국 같은 풍경도 있거든요. 그러면서 마을 이름은 ‘메리골드’고요.
윤정은: 예쁘고 행복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삶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우린 기쁨을 찾고 슬픔을 보듬어주면서 살아가잖아요. 슬픔을 간직한 도시지만 그럼에도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곳,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도 없는 곳 – 그런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마을 이름을 꽃으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마침 ‘메리골드’의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잖아요?
임: 마을 이름인 ‘메리골드’ 뿐 아니라, 작품 전반적으로도 꽃이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됐었죠?
윤정은: 실제로도 꽃을 좋아해요. 플로리스트 초급 자격증도 있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들 보면 누구나 다 너무 예뻐요. 하지만 꽃처럼 서로 피어나는 시기가 다르고, 또 때로는 지는 시기도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슬플 수밖에 없는 존재일 수도 있지만, 꽃은 결국 또 다시 피어요. 우리가 알을 끊임없이 부수고 탄생하는 것처럼, 계속 지지만 다시 피어나는 거예요.
장르 넘나드는 경험? 오히려 장르에 대해 모르는 게 이유 아니었을까
임: 소재도 흥미로웠어요. 아름다운 문장이 일단 기반에 깔려 있지만, 마법적인 소재도 있어요. 공감을 전하는 에세이 같기도 하고, 또 부모님의 실종 등 미스테리물 같기도 하고요. 장르라는 걸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였는데요.
윤정은: 아마 배운 게 없어서 아닐까요? (웃음) 저는 독학으로 글을 배웠어요. 10대 초반에 시를 원고지에 쓰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요. 그 이후 온갖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또 매일 정해 놓고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고….. 그렇게 수십 년을 온전히 글 속에 파묻힌 것처럼 살았죠. 사실 장르나 작법을 넘나들겠다는 의도 같은 게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제 스타일대로 쓰다 보니, 그게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인 게 아닐까요?
임: ‘마음을 빠는 세탁소’도 그렇고, 전생을 거듭하는 주인공도 그렇고, 마치 웹소설 같은 느낌의 소재도 있었는데요.
윤정은: 사실 저는 웹소설이나 장르 문학을 많이 보지 않았어요. 심지어 해리 포터도 한 번도 본 적 없거든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잘 풀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삶을 다시 살고 싶어하는 건 정말 누구나 상상할 만한 일이지만, 현생에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사실 저에게는 판타지 소설은 이래야 한다, 일반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규칙이 없는 것 같아요.
임: 혹시 그럼, 이 작품을 쓰는 데 가장 큰 모티브가 됐던 다른 작품이 있으시다면요?
윤정은: <데미안>의 구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문장을 생각했어요. 누구나 태어나려면 그 세계를 파괴해야 해요. 하지만 삶은 그걸로 끝나지 않아요. 그리고 나서도 깨고 나와야 할 또 다른 세계가 있고, 또 다른 세계가 있죠. 또 책을 보시면, 폴 발레리의 문장 중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문장이 나오거든요. 이런 문장도 작품의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어요. 이런 식으로, 제가 좋아했던 과거의 문학들, 짧은 문장 하나하나들, 또 제 일상의 이야기들이 소설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던 것 같아요.
현실을 피해 책과 이야기했던 유년기, 멋진 요행을 꿈꿨던 20대
임: 이런 작품을 쓰신 작가님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도 궁금한데요.
윤정은: 제가 세 딸 중 막내예요. 그 시대 기준으로 보면 환영 받지 못한 자식이었죠. 그러다 보니 내가 태어난 것, 살아가는 것에 대한 회의를 어릴 때부터 많이 느꼈죠. 그런데 정말 운이 좋았던 게, 큰언니가 책을 좋아해서 덩달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거였어요. 책을 읽으면 다양한 인물들이 제게 말을 걸어왔고, 다양한 인생을 경험할 수 있잖아요? 거기 몰입하면서 제 회의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죠.
임: 약력을 보면, 20대 초까지 10개 넘는 직업을 경험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무슨 일을 하셨는지 굉장히 궁금하더라고요.
윤정은: 제가 대학교를 26살에 갔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한 후 바로 사회에 뛰어들었던 거죠. 정말 온갖 일들을 했어요. 의상 디자인도 했었고, 파티 플래너, 뷰티 컨설턴트…… 또 사업도 하고 망하기도 했어요.
임: 그 경험들도 굉장히 흥미로웠을 것 같은데요.
윤정은: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그냥 멋있고 어디 자랑하기 좋아 보이니까 선택했다가 실망하는 일들도 많았죠. 예를 들어 의상 디자인만 봐도, 막내 때는 공장 다니고, 시장 다니고, 이런 일이 대부분이거든요. 그 과정의 힘듦을 견뎌야 하는 건데, 그때의 저는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았죠. 요행을 바라기도 했고요. 어쩌면 어릴 때 많은 책을 읽으면서, 나도 저런 책 속 등장인물처럼 살아야지 하는 바람만 너무 커졌던 것 같기도 해요.
임: 그러다가 대학교에 가신 이유는요?
윤정은: 저는 ‘백과사전에 나올 법한 여성’ 같은 삶을 꿈꿨거든요. 보통 그런 여성들은 대학교에 가지 않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그게 제 자격지심이었던 것 같아요. 괜히 어딜 다니든 책 들고 다니고, 대학교는 안 나왔지만 지적인 사람이라는 걸 장식해서 보여주곤 했어요. 그런데 자격지심이라는 게 결국 그걸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래, 대학교에 가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죠.
임: 어떠셨어요, 실제로 대학교에 가 보니까?
윤정은: 신기하죠, 대학교에 가니까 공부가 재미있어지더라고요. 제가 문화예술경영으로 석사까지 전공했는데, 성적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무려 백만원이나요. (웃음) 그때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 뭘 할 때 나는 행복할까, 또 뭘 할 때 불행할까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데, 정작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그동안 시도도 안 해봤다는 걸 깨달았죠. 바로 기획서와 샘플 원고를 써서, 출판사 50여곳을 조사해서 이 샘플 원고를 죄다 보냈어요.
전심을 다할 때만 성공했다, 내겐 글쓰기가 그런 일이었다
임: 출판사에 투고하고 연락을 기다리는 일도 굉장히 피마르는 일이라고 하던데요. 그걸 첫 시도부터 50군데나 할 수 있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윤정은: 저는 제가 전심을 다 할때만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70%, 80%의 마음만 다해서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사실, 투고하고 떨어진다고 그게 실패가 아니잖아요? 전심을 다한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두 군데 출판사에서 출간하자는 연락이 오더라고요.
임: 첫 투고부터 출간이라니, 대단하신데요. 첫 책은 어떤 책이셨어요?
윤정은: <20대 여자를 위한 자기발전 노트>라는 책이었어요. 그동안 제가 다양한 경험을 해왔잖아요? 무슨 위대한 멘토가 될 순 없겠지만, 옆집 언니처럼 바로 곁에서 생생하게 조언해주는 그런 역할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나중에 출판사 선생님께 제 책을 왜 내주셨냐고 물어봤는데, 제 책 중 ‘독서’와 관련된 파트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또 나를 살린 건 책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임: 그 후로도 굉장히 다양한 책을 계속 쓰셨는데요. 여기서 다 소개하자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쓸 수 있으셨죠?
윤정은: 쓰는 게 너무 좋아요. 쓸 수만 있다면 다른 힘든 일들을 얼마든 참아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전에 다른 일을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거든요. 앞에 의상 디자인 할 때 말씀도 드렸지만, 과정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요행을 바라던 경향이 있었죠. 그런데 글을 쓸 때는 달랐어요. 뒤늦게 생각해 보는 거지만, 그 일들도 글을 쓸 때처럼 전심으로 노력했다면 얘기가 달랐을지도 모르겠어요.
임: 사실 작가님이 2012년 동서문학상에서 이미 소설로 은상을 수상하셨었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로도 에세이 집필에 집중을 하셨었어요. 소설에 대한 갈망은 상대적으로 없으셨던 건가요?
윤정은: 아뇨, 너무 컸죠. 겉으로도 티를 엄청 냈어요. 그래서 제 소설이 나왔을 때, 저랑 같이 일했던 관계자 분들도 다 같이 엄청나게 축하를 해 주셨었어요. 작가님이 그렇게 꿈꾸던 소설을 드디어 내셨구나, 하고요.
임: 그런데 왜 10년씩이나 지나도록 시간동안 소설을 내지 않으신 거예요?
윤정은: 그때는 에세이가 써졌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소설의 언어가 툭 튀어나오더라고요. 아마 그동안 제 마음이,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안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계속 제 고민, 찾고 싶은 주제를 에세이를 통해 계속 쓰다가, 어느 순간…… 정답은 아니지만, 어떤 실타래 같은 것이 조금 풀려간 순간이 있었어요. 그 순간부터 소설이 막 써지더라고요.
엄마라는 역할이 내 몸에 딱 맞는 옷이 되면서, 소설이 써지기 시작했다
임: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윤정은: 아마 엄마라는 역할에 적응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원래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타입인데, 아이가 어릴 때는 음악도 제대로 안 들리고, 그러니까 너무나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엄마라는 역할이 제 몸에 딱 맞는 옷이 되었고, 그때부터 소설로 풀어내고 싶은 실타래도 풀리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해요.
임: 그러면서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탄생했군요.
윤정은: 한 번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자 소설이 너무 잘 써지더라고요. 한번은 관절이 완전히 망가져서 손가락이 안 움직이는데도 타이핑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메리골드 마을을 찾아온 이 사람의 마음을 빨리 세탁소에 맡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테이프로 칭칭 감고 글을 계속 써내려갔어요. 너무 재미있고,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임: 흥미롭네요. 등장인물을 빨리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타이핑을 멈출 수 없는 경험이라니.
윤정은: 소설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영상으로 플레이되듯 떠올라요. 저는 그걸 받아 적는다는 느낌으로 작업했어요. 저는 좋은 글의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 ‘잘 읽히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러려면 제 안에서도 이 인물들이 다 살아 숨쉬어야 해요. 제 안에서 말을 걸고, 싸우고, 화해해요. 때로는 제 의도와 상관없이 얘네들이 제 인생을 살아요. 그럼 저는 조용히 떨어져서 지켜보죠.
임: 문득 궁금해지네요. 작가마다 글을 쓰는 스타일이라는 게 있던데, 작가님은 어떤 스타일이신 것 같으세요?
윤정은: 제 스타일은 굉장히 클래식해요. 보통은 노트북으로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쓰는 편이고, 때로는 종이에 글을 쓰기도 해요. 매일 일정한 분량을 반드시 쓰고, 그 외의 시간은 제 일상을 보내고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 사용하죠. 이런 루틴을 밟은지 1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임: 가끔은 죽어도 안 써지는 순간도 있잖아요.
윤정은: 그럴 때는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보내면 다시 또 흐름이 돌아오더라고요. 저는 미술관을 많이 가요. 그리고 미술관에서 작품 설명들을 쭉 읽어요. 그것들이 또 재미있더라고요. 미술관에서 쓰는 단어들은 아주 독특해요. 다른 곳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 또 기발한 연상들이 넘쳐나요. 그런 것들을 보면 또 제게 자극이 돼요. 그 단어들을 가지고 또 작업을 하게 돼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임: 또 한 가지, 작가님은 활발한 소셜 미디어 활동도 특징이신데요.
윤정은: 저는 작가는 현대의 삶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현대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게 소셜 미디어잖아요. 만일 소셜 미디어가 삶과 멀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저도 소셜 미디어를 끊게 되겠죠.
임: 사실 인기 작가가 되면 소셜 미디어 같은 외부 활동을 꺼리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윤정은: 과거에는 저를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어필하는 창구로서도 많이 활용했었죠. 지금은 그런 효용은 조금 덜하지만, 여전히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리고 또, 작업에 앞서 제 단상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예열하는 느낌도 있어요. 소통의 욕구, 그리고 어떤 기록의 욕구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작가는 끊임없이 기록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소셜 미디어가 현대에는 그런 도구일 수도 있죠.
임: 혹시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보고 작가의 꿈을 꾸는 다른 작가 지망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윤정은: 결국 정석 –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읽고 쓰려고 하는 것도 그런 거고요. 어디 가서 굳이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것보다, 내 안에 있는 글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혹시 문체를 배우고자 하신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필사하는 것도 좋아요. 글쓰기가 가장 빨리 느는 방법이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내 인생의 가장 우선으로 두시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셔야 해요.
임: 읽는 것에 장르의 구분 같은 건 두지 않으시나요?
윤정은: 저는 비소설을 읽는 걸 완전 추천해요. 전 무슨 자격증 책 같은 것도 읽어요. 신문도 보고, 인문학서도 보고, 철학서도 보고, 심지어 수학의 정석도 보고, 또 미술관에 가서 작품 설명도 읽는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다른 세계의 언어를 접하는 게 작품을 훨씬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임: 마지막으로, 혹시 차기작에 대한 정보도 살짝만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
윤정은: 소설 한 편을 차기작으로 준비중이에요. 빠르면 내년에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임: 굉장히 빠르신데요?
윤정은: 힘이 닿는 한, 연에 한 권씩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제가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성공하면서 가장 기뻤던 게, 올해 또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거였어요. 지금은 제 책이 베스트셀러 1위를 하고 성공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제 책이 읽히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거든요. 심지어 제 책이 읽히는 게 어쩌면 지금뿐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올해는 작년보다도 더 노력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독자님들의 사랑이 정말, 너무나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