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빨래하는 기계.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어떻게든 빨래를 쉽게 해보려던 시도들
빨래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손빨래 일주일만 해보면 압니다. 노동시간과 강도도 높고, 무작정 한다고 잘 빨리지도 않아 숙련도까지 필요한 작업이죠. 그렇기 때문에 빨래를 쉽게 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초기에는 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면, 18세기부터는 세탁기에 대한 아이디어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세탁기는 1767년 Jacob Christian Schaffer에 의해 탄생합니다. 손으로 축을 돌리면 통 안에 있는 솔이 돌아가는 형태였죠. 손으로 빠는 행위를 보다 쉬운 돌리는 행위로 대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후로도 수많은 세탁기가 발명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최초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19세기까지 등장한 세탁기는 대부분 원형 통에 크랭크축으로 돌리는 형태로,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2. 세탁소 vs 세탁기(feat. 코인세탁소)
초기 세탁기는 대부분 가정용이 아니었습니다. 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수도 인프라도 제대로 깔리기 전이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초기 자동 세탁기는 증기기관을 이용했기 때문에 가정에서 쓰기 어려운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1860년대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규모가 있는 세탁소가 먼저 등장합니다.
1920년대부터 전기세탁기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고, 전기와 수도가 빠른 속도로 미국 가정에 보급되자 가정에도 세탁기를 들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흑인 가정부를 많이 거느린 남부의 가정에서는 세탁기 보급이 더뎠죠. 아무튼 세탁기가 보급되자, 세탁소는 가정용 세탁기를 경쟁자로 의식하면서 네거티브 광고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세탁소가 더 잘 세탁이 된다
세탁을 집에서 하면 주부가 우울하다
뭐 이런 식의 광고였죠. 물론 세탁기 업체도 맞받아쳐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세탁기를 쓰면 세탁소에 셔츠를 맡길 필요가 없다
이 네거티브 경쟁이 너무 심해지자 1927년, 1933년에는 네거티브 광고를 자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가정용 세탁기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탁기를 살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 것이었죠.
그러자 1934년 텍사스에서는 세탁기를 잠깐 빌려주는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코인세탁소와 비슷한 형태였죠. 다만 동전을 넣고 작동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상주 직원이 있었고, 그 직원에게 결제해야 했어요. 건조기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빨래를 돌고 집에 가져가서 말려야 했어요.
동전 결제가 가능해진 것은 1957년부터입니다. 이때부터 24시간 코인세탁소가 가능해졌죠. 이러한 편리성 때문에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세탁소 사용이 급증했습니다.
1907년, Thor 사에서 전기로 작동하는 최초의 세탁기가 발명됩니다. 통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세탁기였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전기세탁기가 널리 사용된 것은 1930년대부터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전까지는 전기와 수도가 가정에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자동 세탁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세탁기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계속 빨래를 신경 써야 했어요. 1920년대까지만 해도 세탁기에 타이머가 없어 사람이 직접 꺼야 했고, 배수 파이프를 직접 갖다 대주어야 했죠. 1931년 출시되었던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2-Tub Washer는 탈수기가 위에 붙어 있다는 점을 혁신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요, 실제로는 아래에서 헹군 빨래를 직접 탈수기에 옮겨 물기를 짜내야만 했습니다.
반면, 1936년 등장한 자동 세탁기는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다이얼만 맞추면 탈수까지 다 되는 혁신적인 기계였어요. 실제로 Bendix에서 자동 세탁기를 처음으로 시장에 선보였을 때 빨래를 돌려놓고 영화를 보고와도 된다는 식으로 홍보했죠. 게다가 이 세탁기는 위가 아닌 전면에 뚜껑을 달았어요. 오늘날 드럼세탁기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죠.
1961년에는 오늘날 울 세탁, 이불 빨래 등등을 선택할 수 있듯이, 사전에 프로그래밍이 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세탁기가 등장했습니다. 후버사의 ‘Keymatic’이란 이름의 이 세탁기는, 게임팩을 넣듯이 ‘Keycard’를 넣으면 프로그래밍된 빨래 옵션이 가능했어요.
냉전이 한창이던 1953년, 스탈린이 죽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소련의 서기장으로 취임했습니다. 흐루쇼프는 서방과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면서도 경쟁을 통해 미국을 따라잡고 추월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1958년 미국과 문화교류협정을 맺고 뉴욕과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었죠.
이 전시는 사실상 서로의 헤게모니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장이었습니다. 소련은 공산주의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미국대로 자본주의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원자력 쇄빙선 등의 첨단 기술을 전시했고 미국은 야구, 재즈,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등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것들을 전시했죠.
모스크바의 미국 전시관 오픈 하루 전날, 흐루쇼프가 갑자기 전시장을 방문하면서 닉슨 부통령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각 나라의 수장들은 화려한 자강두천(※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 논쟁을 벌였죠. 이것을 ‘부엌 논쟁’이라고 합니다.
흐루쇼프 : 미국 노동자들이 모두 이런 사치품을 살 수는 없겠죠?
닉슨 : 어떤 노동자들도 누구나 이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흐루쇼프 : 소련의 공동주택에도 이런 것들이 있고 누구든 태어나기만 하면 이런 주택에서 살 수 있죠. 게다가 미국의 집들은 20년밖에 견디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아들과 손자들까지 살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집을 만들죠.
닉슨 : 미국의 집이 20년밖에 못 견디는 것이 아니라, 20년이 지나면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원하는 것뿐이예요. 게다가 미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집과 집기를 선택할 권리가 있죠.
이이 ‘부엌 논쟁’은 냉전 중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입니다. 이후 미국에서 닉슨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해요. 그럼에도 직후 대통령 선거에서 케네디한테 졌…
5. 알아두면 어디 가서 아는 척할 수 있는 6가지 사실
- 우리나라의 동네 세탁소는 1980년대에 대거 등장했습니다. 아파트로 주거 문화가 바뀌고 양복과 교복 생활을 시작했으며, 기성복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세탁의 수요가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 ‘콤퓨타 세탁’은 이전까지 반자동 혹은 수동으로 작동했던 세탁기와 달리,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세탁이 자동으로 되는 컴퓨터 회로가 들어 있는 세탁기를 이용한다는 뜻이에요.
- 가장 오래된 국내 제조 세탁기는 금성사의 백조 세탁기(WP-181)입니다. 용량은 1.8kg으로 요즘의 1/10 수준이지만, 국가등록문화재로도 등록되어 있죠.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세탁소는 1914년부터 운영했어요. 조선호텔 개관 당시부터 이어져 온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세탁소가 그 주인공이죠.
- 행동경제학에서는 인터넷보다 세탁기를 더 혁신적인 발명품으로 보기도 합니다. 가사 노동시간을 줄여 여성의 경제 참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거든요. 실제로 1940년 미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세탁기 도입 후 세탁 시간이 평균 4시간에서 41분으로 줄었어요.
- 2020년 미국의 세탁기 시장 점유율 1, 2위를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차지하며 점령하다시피 했는데요. (2020년 말 기준 삼성 20.7%, LG 16.7%) 이에 미국은 2023년까지 한국산 세탁기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어요.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 김덕호(2020) 『세탁기의 배신』뿌리와이파리
- 유선주(2018) 「[ESC] 한국의 세탁소는 컴퓨터 수리점?」
- Joe Pappalardo(2019) 「The Secret History of Washing Machines」
- unknown(2021) 「Explore the Fascinating History Behind Laudrom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