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부르짖는 수평적 문화
많은 회사가 수평적 업무 문화를 지향한다고 한다. 이를 차별화 포인트로 인식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지원해 줬으면 하고 이야기한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누가 더 수평적인지 가늠과 구분 모두 쉽지 않다. 그런데, 수평적인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몇 해 전 상호 간의 반말 모드(일명 반모)를 일반화 한 회사도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수평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더 자유롭게 격의 없는 다수의 소통으로 인해 업무 성과도 나아질 수 있다고 하여 채택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수업 시간에 교수와 학생 간 평어(반말보다는 조금 더 정중한 느낌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한 교양수업도 있었다. 수업 내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과 학생 또는 학생과 교수 사이 소통의 ‘격을 과하게 중요시’하게 되면, 진실된 토론의 장을 열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교수와 학생의 ‘반말 수업’…말이 열리자 생각도 열렸다」 (2022.10.02 한겨레)
한쪽은 비즈니스, 한쪽은 대학교의 언어학 수업. 비즈니스에서는 우리 업의 성장과 생존을 위한 최적의 업무 방식이 필수다. 마찬가지로 수업은 지식의 공유·향유·사유화 과정을 통한 개개인의 교양 성장을 지향한다.
둘 다 성장한다는 차원에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비즈니스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 각자의 성장보다는 조직 전체의 실질적 목표 달성(단계를 너머 지향점에 가까이)을 하는 것을 목표한다. 그 과정 중에 개인의 성장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
단 이를 이끄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조직(대표)으로부터 영향은 받을지라도, 조직이 요구하는 수준만큼만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다. 그래서 소통에도 다소 소극적이다.
반면에 학교 수업은 개개인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져 있다. 따라서 교수의 성장보다는 학생의 성장 우선이다. 교수는 학생의 지적 성장을 위한 최선의 방책을 세우면 된다. 또한 교양수업이기 때문에 경쟁적 요소가 제한적이라, 협력하는 데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호의적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상호 간의 반말을 쓸 정도로 편하거나, 평어를 써서 최대한 상호 간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것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이를 통해 각자 또는 함께 이루어야 하거나, 만들고 싶은 것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① 존중 ② 공감대 ③ 협력 의식이 얼마나 존재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위 세 가지를 구성원 각자가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실제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 과정 중에 최대한 넣어보려고 하는가에 따라 문화가 ‘수평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존댓말 혹은 존경어를 일반화하면 수평적일까?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비즈니스는 정답이 없기에 토론, 논쟁 등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
- 토론(討論) :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
- 논쟁(論爭) :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툼.
여러 회사의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고, 그들과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며 늘 존재했던 것이 ‘토론과 논쟁’이다. 토론과 논쟁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예의를 갖춰 할 수 있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상호 간의 의견 차이를 인식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내놓고 싶은 답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를 정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나오는 답은 미완성에 가깝다. 과정 중 방향과 단계 등을 정하고, 일을 해가면서 ‘디테일’을 첨가하게 되는 것이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정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 일구어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여기서 누군가 ‘이끌어야 하는(※ 리드해야 하는) 역할’을 맡긴 해야 한다. 단 그가 가질 수 있는 전체적인 실패의 부담을 덜거나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혹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도 구성원 간의 쉼 없는 토론과 그 속의 논쟁은 필수다.
이때 ① 건강하고 ② 빈정 상하지 않고 ③ 협력적인 방식의 정답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원칙이 필수다. 이를 수시로 상기하고, 마음속에 내재화할 수 있도록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구호 같은 것으로 만들어 회의 전후로 외쳐도 좋다(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하나,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토론과 논쟁은 결국 정답을 결정하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여러 의견이 펼쳐졌다가 추려지는 과정에서, 정답에 가까운 것과 아닌 것이 구분될 뿐이다. 그러니 토론에 참가하는 그 누구도 지위고하에 관계 없이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 구성원들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결정되기 전까지는 하나의 의견에 불과할 것이다. 가장 설득력을 갖추었다고 보이는 의견이 정답이 될 것이다.
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답은 없다.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는 찬반이 갈릴 수밖에 없다. 만약 개인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 ‘점심 메뉴 정하기’ 같은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모두가 하나의 메뉴만을 골라야 하는 회식에서는 의견을 종합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다수의 사람을 만족시키는 답을 냈다고 해도, 우쭐대거나 반대편을 조롱할 필요는 없다. 매번 정답을 말하는 이도 없고, 정답과 먼 이야기를 하는 이도 없다. 애초에 정답도 아니다. 그저 각자의 입장과 상황에서 ‘모두가 잘 되어가는 지향점’에 대해 상호 공감된 의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셋,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있다.
정답, 혹은 그에 가까운 답과 오답의 경계는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오답에 가까운 답을 냈더라도, 그것이 왜 오답인지는 설명해야 한다. 간혹 시간 낭비를 핑계 삼아 무시하는 투로 잘라버리거나 묵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자리에서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태도이다.
넷, 틀려도 괜찮다. 다시 답하거나 수정하면 된다.
토론 중 논쟁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로, ‘내가 혹시 틀리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들을 수 있다.
틀려서 꼬투리를 잡혀 ‘일 못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어떡하지?
모두가 이런 걱정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려주기 위해 조직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정답과 오답을 쉽게 결정하지 않고, 충분히 심사숙고하며, 결정 사유를 충분한 말과 글로 설명하여 공식 루트를 통해 공유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조직 내 걱정이 커져 상호 간 활발한 의견 교환을 막는다면, 이는 개인의 작은 실패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큰 실패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 대화는 질보다 양이다.
의외로 간결한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는 조직이 많다. 말보다는 글을 통해, 진솔화 대화보다는 간단한 보고서 작성과 나눔을 통해 일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일과 업의 성격이나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조직이라면 기계적으로 간결함만 추구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① 이제 정답을 만들고, 과정도 만들어 가야 하는 조직이라면
이들은 ‘간결함’보다는 ‘명확함’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답과 정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레퍼런스를 쌓아가야 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 놓인 조직이라면 특정 채널이나 방법 등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쏠리지 않도록 조정하며,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해야 한다. 다만 ‘양 중의 질’을 찾으려는 노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② 생존에 대한 위협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조직이라면
더더욱 소통의 양을 늘려야 한다. 이미 일하는 방법을 찾았다면 이를 정례화하고, ‘명확함 속의 효율성’을 배가하는 방법으로 소통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검증된 목표 수준과 내용을 공유하며, 해당 과정에서 발견된 비효율적 요소는 제거하는 등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말한다.
③ 업의 완성도가 충분히 높아진 조직이라면
이제야 비로소 ‘소통의 양’을 줄이는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 이때의 간결한 커뮤니케이션은 효율성을 개선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정식 회의가 아닌 2. 대면이 아닌 3. 정식 보고서가 아닌, 조직 전체가 납득하는 ‘간소화된 접근’을 하며 비로소 간결함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원칙(Principle & Rule)이다. 어떤 표현에 천착하기보다는, 표현 너머에 있는 구성원 상호 간의 인식과 공감대가 중요하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이 우수하다 인정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당연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밖으로까지 소문이 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구성원들 덕분에 조직이 성장할 수 있었다’라는 시장의 평가가 뒤따라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문: 이직스쿨 김영학의 브런치
작가 소개
16년차 전략 컨설턴트, 이직스쿨 김영학 대표. 6년이 넘는 동안 1,500여 명의 직장인을 만나 커리어 코칭을 진행해 왔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이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으로, 외국계 기업이나 해외로 취업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수년간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전략 기반의 비즈니스 컨설팅을 진행했으며, 현재는 전문 비즈니스 코치로도 활동 중입니다.
직장생활과 커리어에 인사이트를 주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이코노미 리뷰에 〈직장에서 생존〉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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