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지방강의 후 돌아오는 KTX에서 살펴본 ‘주말판’ 신문들의 표지인물이 모두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헤드라인을 장식한 문구들 또한 파격이었다. <동아일보 주말판>의 헤드라인은 “가톨릭계의 메시”였고, <중앙SUNDAY>의 헤드라인은 “아픈 우리를 위해 교황이 오신다.”였다.
특히 <중앙SUNDAY>의 헤드라인에 시선과 생각이 고정됐다. 불경스럽게도 그 문구는 자꾸 시비를 걸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고삐가 풀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정말로 우리가 아파서 교황이 오는 걸까, 혹시 교황은 우리가 왜 아픈 것인지 그 이유를 알기는 할까?’ ‘교황이 오면 우리의 아픔이 치유되는 걸까, 아니 위로라도 받게 될까?’ ‘아프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야지, 왜 우리는 멀리 있는 교황에게 의지하려는 걸까?’
종교를 대하는 나의 생각을 변하게 한 성자들
최근 몇 년 간 종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일테면,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읽다 말았던 데 비해, 알랭 드 보통의 <종교, 무신론자를 위한>는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던가. 그러나 그리 단편적인 경험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변화는 아주 더디게, 그러나 일관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우선은 10년 전에 시작한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당시 교류했던 성직자들, 특히 성공회 신부님을 비롯한 사제들의 영향이 컸다. 그들의 소박하면서도 헌신적인 삶의 자세를 목도하면서 새삼 종교의 순기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 무렵, 수원지역에서 시민사회활동을 함께 했던 목회자 분들과의 교유 또한 종교관 변화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했던 듯하다.
두 번째 역시, 성직자들에 의해서였다. 성직자들의 사회참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근래들어 그 양상은 사뭇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공권력의 폭력성이 극에 달한 때문이고, 따라서 그들의 활동은 단지 활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담보로 한 숭고한 희생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사회의 분쟁과 갈등, 억압과 인권유린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길 위의 성자’ 문정현 신부님이 함께 하신다. 그분의 지난한 실천적 삶을 생각할 때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다. 밀양 송전탑 건립반대를 외치며 산중농성을 펴는 어르신들의 곁을 지키는 이들 역시 성직자들이다.
심지어 팔이 부러지고, 몸이 들리는 고통과 치욕을 견뎌내시던 수녀님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매일저녁 거리미사를 집전했던 신부님들과 고(故) 최종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지켜주었던 목사님, 스님, 수녀님들. 특히 그 자리에서 감동적인 거리설교를 해주셨던 향린교회 한문덕 목사님도 숙연함을 느끼게 했던 분들이다.
종교와 과학에 대한 가장 간단한 입문서
세 번째 변화의 계기는 한동안 꾸준히 읽어왔던 종교와 과학의 상보성에 대해 알려주었던 책들 덕분이었다. 오늘의 글은 종교에 대한 나의 생각을 변화시킨 세 번째 이유, 즉 ‘종교와 과학(혹은 철학)의 상보성’에 대해 논의하는 몇 권의 책에 대한 것으로 채울 것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인상적인 문장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보잘것없는 천박한 지식은 인간의 정신을 무신론으로 기울게 하지만 지식을 쌓아가다 보면 정신은 다시 종교로 되돌아온다.”(프란시스 베이컨의 『학문의 진보』에서.)
『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책세상문고·우리시대022/ 이하 ‘철학적 반성’)에서 소개한 문장이기도 하다. 순간 섬뜩했고 충격이었다. 무려 400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이 이토록 무섭고도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니. ‘철학적 반성’에서 저자는 우선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한다.
“종교란 철학에 의해 부정되고 계몽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종교란 하나의 현실이며, 현실을 부정하는 철학은 말장난에 불과한 지적 유희로 흐를 수밖에 없다. 종교가 구체적인 삶의 양식이라면 철학은 삶의 양식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반성적이며 비판적인 작업이 되어야 한다. 철학은 이러한 반성적이며 비판적 활동을 통해 종교의 정체성을 밝힘으로써 종교를 더 종교답게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이어 저자는 ‘과학과 종교의 상보성’에 대해서도 맞춤하게 개념정리를 해준다.
“과학과 종교가 경쟁적인 관계에 있지 않고 서로 구별되는 영역에서 기능한다면 동일한 대상에 관한 상이한 설명 체계라는 점에서 그들 간의 관계는 보완적(supplementarity)이라기보다는 상보적(complementarity)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경험적인 현상들을 정확하고 엄밀하게 설명함으로써 사건들의 원인을 추적하지만, 신학은 사건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적 세계에 관한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의 활용에 관한 지혜를 얻으려 한다면 과학적인 설명뿐만이 아니라 그것과 상보적 관계에 있는 종교적인 설명이 필요하다.”(『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 35쪽.)
다양한 역사적·철학적 담론을 잘 정리한 책
그렇기로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고 말 문제는 아닐 테다. 우선 ‘철학적 반성’을 통해서는 과학과 종교가 ‘상보적 관계’에 대해서만 이해한 것으로 치자. 이제 본격적으로 둘 간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본격 담론들을 살펴볼 차례다.
사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삶의 연원을 좇는 사유들이 오롯이 담긴 책들은 이루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중 주로 국내 저자들이 쓴 일련의 책들을 일별해 보자. 신영복 선생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독법』(돌베개), 리영희 선생의 『대화』(한길사), 도정일·최재천 교수의 『대담』(휴머니스트), 그리고 과학인이자 종교인인 김용준의 연구노트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돌베개)가 그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책은 김용준의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이다.
책의 부제 ‘과학인 김용준의 연구노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김용준 교수의 40여 년 간의 학문적 열정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역작 중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적인 면에서도, 주제를 파고드는 학문적 열정과 내용의 엄정성에서도 이 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책은, 먼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총체적으로 아우른 뒤 다시 신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숱한 과학자와 철학자, 그리고 그들의 기념비적 저작들에 대한 저자의 알찬 해설과 만나게 된다. 분과학문 체계의 한계를 벗어나 모든 학문의 역사를 통틀어 주요한 통찰을 제공한 학자들과 저서들을 폭넓게 다룸으로써, 저자는 종교와 과학의 문제가 전문가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화두임을 암시한다.
특히 책은 근대 이후의 과학과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부닥친 한계와 딜레마를 넘어선 학문적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해석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것은 곧 과학과 종교의 지평융합(가다머가 주창한 ‘해석학’ 용어, 언어의 본질인 ‘자기상실성’으로도 설명되고, 주체와 객체가 뒤틀린다는 의미에선 양자역학과도 닿아있는 개념)에 대한 저자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종교와 과학 혹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지평융합의 출발은 과학계의 새로운 철학적 인식, 즉 지식 통합의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시도를 주창한 과학자들은 토머스 쿤을 위시한 스티브 툴민(Stephen Toulmin),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 메리 헤세, 리처드 번스타인 등이 있으며, 이후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그에 가세한다.
그 중에서도 근대 이후의 과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토머스 쿤이었다. 그의 과학에 대한 발상전환의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용준 교수의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보다 비교적 쉽게 읽히는 김호경의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책세상문고·우리시대096)을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쿤은 과학적 진리를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쿤 스스로 내린 답은 부정적이다. 그는 과학적 진리가 절대적이었던 시절은 없다고 단언한다. 다만 한 시대에 일군의 사람들이 공유한 공통된 소신이 그 시대의 진리 역할을 자임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일군의 사람들에 의해 수용된 모형 또는 유형을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패러다임의 의미는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특정 공동체의 구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의 총체’를 이른다.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 117~118쪽)
“과학이란 하나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연구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과학의 유용성은 불변하는 진리성이 아니라 각 시대에 대해 가졌던 역사적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은 각 시대가 세계를 이해한 방법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118쪽)
참고로, 쿤이 사용한 ‘패러다임’의 개념과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사이언스북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앞선 논의들을 소개하자면, 쿤에 앞서 20세기 과학혁명의 전조를 보여준 사람들은 뉴턴의 물리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뛰어넘는 과학이론인 양자역학을 상상했던(단지 상상한 것만으로도 위대하다) 닐스 보어와 그의 상상을 현실의 불확정성 원리로 이끌어낸 제자 하이젠베르크라고 볼 수 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종래 뉴턴 패러다임의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완충하였다는데 학문적 의의가 있다”(『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51쪽)고 김용준은 설명하고 있으며,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에서 김호경은 덧붙여, 즉 “양자역학은 불확정성 원리를 탄생시킴으로써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었다. 이것은 곧 물질이나 사물에 대해 절대적 설명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단지 통계적 혹은 확률적으로만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고 전제한 뒤, 그것으로부터 전혀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비과학적 용어인 “‘우연’이라는 불확정성의 단어가 첨가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이 매우 중요한데, 그에 대한 김호경의 설명은 명쾌하다. “객관적인 어떤 것에 ‘우연’이 첨가됨으로써 근대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불확정성을 필두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것이 곧 토머스 쿤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탄생인 것이다.”
쿤의 작은 혁명, 즉 과학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복한 과학철학에, 해석학적 사유를 접목시킨 사람이 바로 해석학의 거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다.
“가다머의 관심은 이미 일정한 규칙으로 설정된 방법에 따라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진리의 총체에 있다. 따라서 그는 자연과학의 방법이 제아무리 엄격하고 철저하다 해도 그것으로는 결코 전체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총체적인 진리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과학이란 결코 완성을 기할 수 없는 것이다. 진리란 항상 뜻하지 않은 사건을 내포하기 때문이다.”(『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72~73쪽)
가다머가 그의 주저 『진리와 방법』에서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역사적 사유에도 분명히 진리의 영역이 있지만 예술 분야에도 자연과학 못지않은 지식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만이 오로지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그의 저서의 중심 내용인데, 문제는 바로 자연과학이 진리에 대한 주장을 포기했다는 데 있다.(‘토머스 쿤’ 등이 과학의 절대성을 부정함으로써….)
“눈에 비치는 현실의 세계와 이성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지식의 세계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을 대상화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의 최후 심판자는 논리적 무모순성이 아니라 역사적인 삶 자체다. 이것이 바로 『진리와 방법』을 통해 가다머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그의 철학적 해석학의 골자이다.”
김용준의 학문적 열정은 과학철학의 패러다임을 설명하는 해석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진화론과 우주론을 거쳐 ‘마음과 뇌’에 대한 치열한 연구, 그리고 그의 관심이 종국에 다다른 곳은 ‘진화신학’이다. 마침내 그는 결론한다. 과학이 절대성의 갑옷을 스스로 벗어던졌던 것처럼 신 역시 스스로 우리 안에 깃들어 세상사의 모든 일을 함께 도모하며 자연과 인간사의 주체로 자리하고 있다고….
“신은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그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개방성에 동참한다. 이와 같은 해석은 우주적인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성의 유일한 역사를 포함한 모든 시대에 특수한 의미를 가져오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개방성이 바로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388쪽)
내 종교관을 변화시킨 성직자들
이 주제와 관련해서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저자와 책은 김용준 교수와 그의 저작이다. 그러나 역시 내 종교관을 변화시킨 주된 동인은 실천하는 성직자들에 대한 존경과 그로부터 시작된 성찰이었다. 숱한 현장에서 만난 거리의 성자들, 그분들을 통해 길어 올린 소중한 느낌들, 소중한 말씀들, 무엇보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며 가난하고 힘겨운 이웃들과 함께 하려는 숭고한 실천들.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강남역 삼성본관 옆에서 진행된 조촐한 크리스마스 전야제에 참여했다. 고 최종범 열사 추모기도회였고, 그의 어린 딸 <별이의 크리스마스>였다. 목도리 하나 없이 떨고 있는 동안 옷 속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을 피하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하던 때, 정작 얼었던 몸을 녹여준 건 뜨거운 커피나 두툼한 목도리가 아니었다. 말씀이었다. 향린교회 한문덕 목사의 설교가 바로 그 말씀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지만 부당하게 대우받는 모든 이들의 변호인이 되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소망의 힘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변호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작은 힘들을 모아 더 고통당하고 힘들어 하는 이들의 변호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변호하며 하나둘 모여 여론을 형성하고 참된 민주주의를 누리도록,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도록 정부를 바꿉시다. 정부를 바꿔서 재벌이 독식하는 사회에서 진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합시다.”(2013년 12월 24일, 강남역 삼성본관 밑에서 진행된 향린교회 한문덕 목사의 설교문 말미에서.)
그날 설교의 제목은 <변호인>이었다. 교황은 특정 종파의 수장일 뿐만 아니라 속세에 대비되는 성스러움과 숭고함의 상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황은 이미 우리 곁에 와계셨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길 위의 신부’라는 별명을 가진 교황,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는 교황, 용산참사 현장에서 거리미사를 집전했던 교황들, 노동자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투쟁하는 교황들, 농민과 함께 하는 교황, 밀양송전탑 건설현장을 지키는 교황, 언론운동`환경운동에 매진하는 교황.
그 수많은 교황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숨을 쉬고 계셨던 것이었다.
원문: 대안미디어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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