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생전 다시 목격할 수 없을 ‘금세기 최대 장례식’이 막 끝났다. 1926년에 태어나 96세의 천수를 누리고 1952년에 즉위해서 영국 역사상 최장기간인 70년을 재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제 아버지와 남편 곁에서 영면에 들었다.
즉위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나이는 25세에 불과했다. 갑작스러운 부왕 조지 6세의 죽음으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군주가 되었다. 그 후 70년간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전후 영국을 재건하고, 군주제를 지속시킨 자
여왕이 대관식을 치렀을 때는 2차 대전의 승전국으로서 영국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였다. 현대적 입헌군주제 또한 확고히 자리 잡은 상태여서 전통적인 의미의 왕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2차 대전 기간, 왕으로서 굳건한 책임감을 보여준 조지 6세로 인해 군주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의 존재감은 확실히 퇴색하고 있었다. 1, 2차 대전의 결과, 탈식민지화가 본격화되었고 대영제국의 영광에 대한 향수에 젖은 영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여왕은 전후 영국의 재건을 위한 사회적 동기 부여를 하고 군주제 유지의 필요성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데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LP레코드판부터 5G까지 이어지는 변화의 시대를 통치했다는 말처럼, 여왕 재위 70년은 세계사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대중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미디어임을 잘 알았던 여왕은, 미디어를 통해 일반 국민과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자신과 왕가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여왕은 ‘멀지만 가까운 군주’라는 이미지를 잘 활용했다. 빅토리아 시대까지만 해도 영국 왕들은 일반 백성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군주제를 존속시키는 비결이라고 생각했는데,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1953년 6월 2일 있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TV로 널리 생중계되었다. 이는 이후 여왕의 친 미디어적인 행보를 미리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충실한 진중한 행보로 군주제 폐지론이 고개 들 때마자 잠재웠고, 언제 해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피식민지 국가들의 처절한 호소를 외면한 자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국 내부에 국한된 이야기다. 대영제국의 식민 지배로 극심한 수탈과 착취에 시달렸던 과거 피식민지 국가들이 느꼈던 온도는 확실히 달랐다.
영연방은 1차 대전 이후 창설되었다. 전쟁 중 영국을 인적, 물적으로 적극 지원했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자치령 국가들은 함께 피를 흘린 대가로 실질적인 독립을 요구했고, 영국이 이를 수용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과거 피식민지 국가들도 하나둘씩 참여함으로써, 현재 영연방은 총 56개의 회원국이 있는 국제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식민 지배를 당했던 국가들이 영국 주도의 국가 연합체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영연방이 사실상 영국 주도의 국제 시장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독립 후 경제력이 매우 빈약해진 피식민지 국가들은 영연방에 참여함으로써 관세 인하 등 대외 무역에서 여러 가지 실리를 챙길 수 있었다. 더불어 군사적, 외교적, 문화적 혜택도 누릴 수 있었기에 과거를 뒤로 하고 참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 지배가 남긴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영국 식민지들을 예로 들면, 독립하는 과정과 독립 국가의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에서 더 많은 상처를 입었다.
1884년부터 영국령 동아프리카였던 케냐는 1952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주 시절 남편인 필립 공과 첫 해외 순방길에 올랐을 때 가장 먼저 방문한 국가였을 정도로 영국의 식민지 중 비중이 컸다. 여왕은 부왕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케냐 방문 당시 현지에서 여왕으로 지위가 바뀌었고, 급거 귀국해서 국장을 치렀다.
그러나 이후 6개월 뒤 있었던 케냐 마우마우족의 독립운동은 처절한 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반란에 가담했다는 명목으로 무려 42만 명의 케냐인이 학살당했지만, 여왕은 영국이 자행한 인종 학살에 침묵했다.[1]
올해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캐나다 앨버타주를 방문해서 과거 그 지역의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아동 학살에 가톨릭교회가 책임이 있다고 사과한 바 있다. 캐나다에는 백인들이 유입되기 전에 대대로 살아왔던 인디언, 에스키모 같은 원주민과, 백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 메티스(Metis)가 상당수 있었다. 이들에 대한 강제 동화 정책이 대대적으로 실행되었는데, 주로 가톨릭교회와 영국 성공회 교육 기관을 통해서 이뤄졌다.
15만 명이 넘는 캐나다 원주민 아동이 19세기부터 1970년대까지 가톨릭 학교에 강제로 다녀야 했는데, 거기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뒤늦게 용서를 구한 것이다.
강제 동화 정책의 또 다른 주체는 영국 성공회였다. 영국 성공회 측은 36개의 기숙 학교를 운영했고, 1820~1969년에 150개 이상의 인디언 데이 스쿨을 운영했다. 여기에서도 같은 비극이 벌어졌다.
캐나다 원주민 단체는 영국 성공회 측만 아니라 영국 성공회의 수장이자 캐나다의 명목상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의 공식 사과 표명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왕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캔터베리 대주교가 사과하는 선에서 그쳤다.[2]
여왕 재위 70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아 자메이카의 각계 인사 100여 명은 윌리엄 왕세손과 엘리자베스 2세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인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대한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편지를 공식적으로 보냈다. 하지만 이 또한 묵묵부답이었다.[3]
그의 그림자: 과거사 청산이 절실하나, 기대는 크지 않다
어떤 사람은 엘리자베스 2세가 침묵을 통해서 통치했다고 말한다. 사회, 역사적 이슈에 대한 여왕의 침묵이 반드시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맥락을 읽어야 한다는 옹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끝까지 명맥을 유지하고자 했던 대영제국의 권위가 전 세계에 걸친 식민지를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영제국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제국주의의 유산을 청산해야만 영국과 영연방 소속 국가들의 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심점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결자해지의 책임이 있었지만, 그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영국 식민 지배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는 역할에 충실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최근 네덜란드 정부는 과거 노예무역에 대한 사죄와 과거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2억 유로(약 2,785억 원)에 달하는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4] 기금을 집행하는 방식은 과거사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더불어 공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식민지를 거느렸던 영국의 군주들과 정부가 과거사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여왕의 사망 직후에 한 공식 스피치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현대 영국의 기반이었던 바위’라 비유했다. 대영제국의 후신인 현대 영국이 과거 영광의 끝자락을 보다 오래 붙잡고 있게 했다는 의미라면 적절한 비유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의 완전한 마무리라는 시대적 과제의 수행이라는 측면에서는 타당한 비유가 아니다.
절대 불평하지 말라, 절대 설명하지 말라
Never complain, never explain
윈저 왕조의 비공식 모토라고 한다. 왕조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데뿐만 아니라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데도 유용한 처신이다.
망한 부자도 3대는 간다는 식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면, 영국은 계속해서 과거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영국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과거사에 대한 확실한 청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 과제는 왕위를 승계한 찰스 3세와 확정 상속자인 윌리엄 왕세자에게 넘겨졌다. 그러나 두 사람이 과제 해결에 얼마나 충실할지, 벌써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1] Guardian, 「Uncovering the brutal truth about the British empire」
[2] CBC, 「Residential school survivors, Indigenous leaders say Queen should apologize next」
[3] AP News, 「Jamaicans shun UK royal visit, demand slavery reparations」
[4] Bloomberg, 「Dutch Government Plans to Launch Slavery Apology F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