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는 송강호, 김윤석, 하정우, 류승룡 정도다. 이 네명 중 하정우만 구분되는 점이 있는데 첫째로 유일한 30대라는 것이고, 둘째로는 천만 관객 영화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군도”가 개봉하기 전, 많은 기대를 모았다. 우선 “범죄와의 전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윤종빈 감독에, 강동원과 하정우라는 두 30대 스타가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고, 조연도 조진웅, 이성민, 김성균 등 스타급들이 출동했다. 누구든 천만이 가능하다 믿을 법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재미없다”, “산만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다행히 5일만에 300만을 넘기는 등 빠른 속도로 흥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볼 영화가 없어서”라는 반응이 주다. 명량이 개봉한 이후 이 흥행은 완전히 꺾이고 있다.
이야기가 한 줄기어야 하는 이유
“군도”의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 라인이다. 학창시절에 “기승전결”이라는 걸 국어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이야기가 시작하고, 전개된 다음, 절정을 찍고 결말을 맺는 것.
이야기에서 이 “기승전결”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기와 승의 단계에서 이야기에 빠져들고 전(절정)에서 모든 긴장을 한 다음, 결에서 이완을 하게 되는데 카타르시스라 불리는 이것을 통해 이야기를 접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하여 관객들은 기꺼이 영화표를 구입한다. 그리고 그 카타르시스가 강할수록 (전에서 결로 떨어지는 감정의 차이가 강할수록) 관객의 만족도는 높아지고, 더불어 흥행할 확률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그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여러개일땐 어떻게 될까? 옴니버스의 예를 들어보자. 옴니버스 영화는 독립영화에서는 존재할 지언정 흥행영화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 이유는 우선 2시간에서 3시간정도 걸리는 상업영화의 러닝타임에서, 상업영화는 그 시간동안 전->결의 차이를 위하여 “전”을 드라마틱하게 만들려 모든 힘을 모으지만, 옴니버스는 이야기가 두 가지만 되어도 이야기당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로 “전”을 위한 힘을 모을 시간이 부족해진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영화를 하루에 하나 이상 보는 관객은 드물다.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모든 집중력을 동원한 관객은 마지막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그 후 다시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해서 들어갈때에는 즐겁다기 보다는 피로감을 더 느끼게 된다. 옴니버스의 경우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때 새로 시작하기 마련인데, 두 번째 옴니버스는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관객을 맞이해야 한다.
셋째로 관객은 언제나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영화에서 긴장과 이완은 전에서 결로 떨어지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수 없이 많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그 강도를 점점 높여가다가 “전”의 순간에서 그 강도를 최고로 올린뒤 떨어뜨린다. 옴니버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려면, 두 번째 이야기의 전에서 결로 이어지는 그 차이는 첫 번째 이야기보다 훨씬 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옴니버스 영화가 이런 조건을 만족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대개 여러가지 생각을 전하는 예술영화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흥행영화로 존재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또, 위와 같은 이유로 이야기는 명확하게 한 줄기여야만 흥행할 수 있다. 최근 영화 중 가장 좋은 예로는 “변호인”을 들 수 있겠다.
군도의 문제: 떨어지는 긴장감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군도는 이러한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 구조로 보았을때는 마지막 하정우와 강동원의 대결씬이 최고의 긴장을 가졌어야 하는 것으로 보이나, 관객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하정우와 강동원의 대결씬이 절정인지, 이성민의 죽음이 절정인지, 이경영의 죽음이 절정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군도”의 전개가 절정을 위하여 에너지를 몰아주지 않았고, 그저 순간순간의 장면에만 집중하기 바빴던 것이다.
하정우와 강동원의 대결을 보여준 이 씬이 절정이 되려면 강동원이 아주 강한, 절대적으로 악한 인간인데 힘이 약했던 하정우가 얼추 힘을 길러 비슷하게 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 힘의 대치를 느끼며 사람들이 하정우가 이기길 바라는 경우가 있을것이다. 주로 예전의 영화에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강동원은 완벽한 악인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사연이 있고, 동생의 아이를 보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하나는 하정우에게 흐르고, 하나는 강동원에게 흘러서 두 사람의 세력이 동등해 지고 서로가 이겨야만 하는 다른 이유를 갖고 대결을 했을때, 이야기는 긴장감을 가졌을 것이다. 감독은 이 방법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강동원이 굳이 이겨야 하는 이유는 “그가 악인이고 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였고 하정우가 이겨야 하는 이유는 “복수심”일 뿐이었다. 그 “이겨야 하는 이유”가 약하므로 두사람 대결의 긴장감도 한참 약해졌다. 절정의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 올리는데 실패한 것이다.
또, 하정우가 강동원에 비해 힘이 약한것도 이미 영화 여러번에서 증명이 된다. 관객은 이걸 이미 알고 있었고, 어차피 질 하정우가 어떻게 이길것인가를 많은 관객은 궁금해 했는데 일단은 대나무 숲이라는 곳으로 강동원을 유인하여 긴 칼의 약점을 이용한것은 좋았다. 하지만 결론은 김성균의 힘을 빌어서 승리했다는 것은 하정우가 색다른 액션을 보여주어 강동원을 이길 방법을 보여주길 기대했던 관객을 더욱 김새게 만들었다.
군도의 문제. 명확하지 않은 캐릭터
그렇다면 두 주인공을 위한 이야기의 전개는 어떤가? 앞에서 말했듯, 영화의 이야기는 하정우에게도, 강동원에게도 친절하지 않다. 여동생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이유를 가지고도 하정우는 그 일에 대한 죄책감이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그렇기에 큰 성장도 보이지 않았다. 성장의 노력이라고 한다면 대나무에서 칼을 연마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군도 무리에서 하정우는 그냥 그 상태를 즐기는 원래 그랬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하정우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두고도 영화 전체에서 큰 영향을 받지 않아 그 사건이 의미있는 사건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강동원에 대한 분노도 명확하지 못했다. 거기다 하정우의 가족을 죽인것이 강동원인지도 확실하지 못해 하정우가 갖는 강동원에 대한 분노가 그가 정말 악인이라서 그런지, 그냥 객기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강동원도 마찬가지다. 어린시절 서얼 출신이라는 열등감을 안고 살았다는 그 이야기는, 강동원의 연기가 아닌 나레이션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 나레이션은 영화의 흐름을 돕는 것이 아닌 방해를 한다. 그런 불필요한 설명을 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 중간중간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을 것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속한 나레이션이 아닌 그저 인물의 과거를 설명하는 나레이션이 너무 길게 나와 집중력을 흐트러뜨렸고, 강동원의 멋진 모습만 부각하다 보니 오히려 강동원이 등장할때마다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강동원이 등장할때는 조윤이라는 캐릭터보다 인간 강동원이 더 강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영화의 이야기는 절정을 위하여 쌓이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군도의 문제. 무너지는 액션과 개연성
이런 큰 스토리상의 문제외에도 군데군데 문제는 존재했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관객의 집중력을 유도한 후, 이를 절대 끊지 않고 절정까지 간 다음 결말을 내야 “흡인력”이 있다고 불리는데, 군도의 주인공들이 등장해 탐관오리 한명을 완벽하게 속이며 그들을 골탕먹이는 도입부는 정말 재밌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집중력이 끊어진다. 앞에서 말한 나레이션도 그 방해요소중 하나였고, 액션 또한 방해요소였다.
최근에는 “테이큰”의 흥행으로 보았듯 군더더기 없는 액션이 인기를 끌었다. 영화 “테이큰”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구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고 상대가 대화를 시도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회가 생기면 방아쇠를 당겼고 이런 깔끔한 액션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군도에서는 처음 하정우가 죽지 않은건 그의 운명이라 쳐도 그다음부터도 사람들은 좀체로 죽지를 않고, 뜸만 맞고도 살아나고, 칼을 맞고도 죽지 않고 할 말은 다한다. 또 칼싸움을 하는 상대는 그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꼭 80년대 홍콩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개연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어째서 군도에게 죽은 조서인의 처는 군도들과 함께있다가 출산을 하며, 그토록 죽이려 했던 조카를 구하기 위해 강동원은 목숨까지 내놓는가? 이런 순간의 의문들을 관객은 영화가 상영하는 내내 갖고 가며, 이것 또한 긴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의문들이 풀리는 순간 관객은 이완을 느끼는데 그 의문들을 풀어주지 않은 채 영화는 종료되었고 관객은 풀리지 않은 긴장을 갖고 찝찝한 기분으로 상영관을 빠져나가게 된다.
군도의 장점은, 뛰어난 영상미와 순간순간 보이는 칼싸움들이 아름답게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외의 장점은 그다지 많아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부족한 시나리오로 촬영을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고, 감독도 이 부족한 시나리오를 크게 보강할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다. 보면서 작가와 감독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었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영화를 맛있게 살려야할 배우들이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데 실패하여 총체적인 난국을 맞았던것 같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에겐 영화의 스토리나 배우의 연기보다 강동원만이 기억에 남게되었다. 워낙에 흥행배우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 배우구성으로 500만은 넘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은 어려워보인다. 아마도 하정우는 천만배우가 되려면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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