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헌법에 의하여 외교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며, 우리 영토와 주권을 수호할 의무를 가진 존재다. 그리고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외교 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이 직면한 외교 안보 과제는 셀 수 없이 많다. 한국은 여전히 종전을 이루지 못한 분단국이며, 북한의 핵개발을 비롯한 안보 위기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한미동맹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이지만, 경제, 안보 차원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기도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도 외교, 안보를 둘러싼 논쟁이 첨예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를 ‘친중정부’로 공격하며,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으로 내거는 등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반면 민주당은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다만, 이것만으로 실제 향후 외교 안보 정책의 방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외교 안보 정책은 특히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합을 맞춰가야 하는 일이기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좌우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통령이라 해도 마음 먹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외교라, 대선 과정에서의 공약과 선언이 얼마나 지켜질지도 미지수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안보 전략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또 새로 들어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 전략은 어떻게 될까.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익명의 밀덕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인터뷰이: 익명의 밀덕
익명을 요구한 한 밀덕. 시사 문제와 안보, 국방 문제에 관심이 많다.
뜨거운 감자, ‘쿼드 합류’는 가능할 것인가
임예인: 지난 대선의 ‘뜨거운 감자’였던 쿼드 이야기부터 해보죠. 윤석열 대통령은 대권 주자 시절부터, 한미동맹 강화를 내세우며 쿼드 가입 모색을 공약으로 내걸어왔는데요.
익명의 밀덕: ‘쿼드’란 미국, 일본, 인도, 호주, 이렇게 4개국의 정상급 안보 회담 체제를 뜻합니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자유로운 인도·태평양’을 내걸고 있죠. 일각에서는 ‘아시아판 나토’로 불리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평가가 얼마나 온당한 것인지는 다소 논쟁거리이기도 하죠.
임예인: 찬반을 떠나,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어요. 미국 국무부가 “쿼드에는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절차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이,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고요. 단도직입적으로, 쿼드 가입은 가능할까요?
익명의 밀덕: 아직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쿼드의 확대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죠.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국의 신경이 곤두선 상황이라 미국도 조심조심 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스탠스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겁니다. 한국의 쿼드 참여는 그리 머지 않아 가능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세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첫째, 뻔한 이야기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현 외교라인이 한미동맹에 확실히 배팅하고 있기 때문이고요. 둘째, 가입의 큰 걸림돌인, 일본의 반발을 무마할 절충안이 모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셋째, 쿼드의 성격이 당초 우려하던 반중 안보동맹에서 조금 옅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예인: 하나씩 짚어보죠. 일단, 일본은 왜 한국의 쿼드 가입에 불만을 표하는 것일까요?
익명의 밀덕: 쿼드의 역사와 성격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쿼드를 구성하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모두 해양국가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나라들의 연합입니다. 미국은 전 세계 해양, 일본은 서태평양, 호주는 남태평양, 인도는 인도양을 자신들의 핵심 권역으로 설정한 나라입니다.
반면 쿼드가 견제하려는 중국은, 해양에서의 위세는 끽해야 황해, 동중국해, 남중국해 일부로 초라하죠. 그래서 대국굴기를 갈망해온 중국은, 해양에서의 위세를 더 높이려 합니다. 쿼드 4개국에게는, 중국이 해양으로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앞마당을 갉아먹는 걸 용인할 수 없다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거죠. 이런 공통점을 노리고 일본의 아베 전 총리가 ‘쿼드 블록’ 아이디어를 내놓았던 것입니다.
임예인: 그래서… 사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기도 하고, 한국이 쿼드에 가입한다고 해서 쿼드에 나쁠 건 별로 없어 보이는데요. 일본은 한국의 쿼드 가입에 왜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걸까요?
익명의 밀덕: 일본은 자신들이 (북)서태평양권 대표 국가로서 오너십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고는 하나, 이런 해양국가로서의 정체성은 없죠. 일본이 보기에 한국은 그냥 어중간하게 끼인 국가일 뿐입니다. 그런 한국이 쿼드 4국과 동등한 일원으로 가입한다? 이건 일본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노릇입니다. 더군다나 지난 문재인 정부와 과거사 문제로 꼬일대로 꼬인 상태에서는 절대 불가한 일이었죠.
임예인: 그럼에도 일본의 반발을 무마하고 절충점을 찾을 여지는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익명의 밀덕: ‘쿼드 플러스’가 대표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기존 4개국은 그대로 중심으로 두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 형식으로 참여국가를 확대하는 방식이죠. 문재인 정부에서는 초반부터 한일관계가 꼬여버려 일본이 이것도 불편하게 생각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런 절충점을 찾기가 좀 더 수월해 보입니다.
임예인: 아무래도 문재인 정부보다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일관계 개선에 더 적극적이기 때문일까요?
익명의 밀덕: 그렇죠.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그렇습니다. 일단 윤 대통령이나 기시다 일본 총리나, 그간 악화일로였던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은 강합니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양측 정부가 적당히 뇌관을 봉인할 방안만 찾는다면, 쿼드 참여 형식의 합의점은 절충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임예인: 그런데 그 과거사 합의점이 참 보이지 않는단 말이죠. 노무현, 이명박 때도 한일관계는 험악했고요. 박근혜 때 괜히 건드려서 문제가 커지고, 문재인은 이를 방치한 느낌이고요. 과연 이 문제를 다시 꺼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익명의 밀덕: 당연히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결자해지할 수는 없죠. 일본에서 침략전쟁의 죄상을 그나마 잘 알고 책임을 느끼던 세대들이 많이 은퇴하고 사망했습니다. 우리 한국이 ‘이만하면 됐다’고 할 만한 사과와 배상을 할리가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전한 해결’보다는 더 먼 미래를 기약하는 ‘불완전한 봉인’입니다. 그러려면 강제징용 배상 문제, 즉 현재 압류된 일본 옛 전범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을 강제매각해 피해자 배상금으로 지불하는 걸 적절히 처리하는게 가장 중요한 현안이죠.
탈출구로는 우리 정부가 일단 피해자 분들께 배상하고, 대신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많은 분들이 이미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지방선거가 끝나면 윤석열 정부가 이 방안 실행에 착수하리라 봅니다. 물론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많은 일반 국민과 민주당에게 갖은 비난을 듣기는 하겠죠. 그래도 그 정도면 일본도 더 이상 한국의 행보에 발목을 잡지는 못할 겁니다.
임예인: 쿼드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 모임인만큼, 당연히 중국의 반발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예요. 중국은 쿼드를 ‘인도·태평양의 나토’라고 부르며 반발했습니다. 한국이 쿼드 플러스 합류를 망설였던 이유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익명의 밀덕: 그런 걱정도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쿼드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반중 연합’으로서의 성격이 있으니까요. 이 때문에 중국과 경제적 관계가 밀접하고, 특히나 남북관계 관리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한국에서는 가입 신중론도 상당했지요.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안보 핵심 포스트를 차지한 분들의 생각이 대부분 그러했고요.
쿼드는 ‘반중 연합’으로 남을 것인가?
임예인: 그럼, 윤석열 정부의 쿼드 합류 움직임이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이건 거의 중국에게 노골적으로 적대심을 표하는 꼴이잖아요.
익명의 밀덕: 그 부분은 조금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는데요. 우선 쿼드의 역사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쿼드는 이번에 새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우여곡절을 거쳐 2017년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부활한, 말하자면 ‘쿼드 2.0’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4년경 출범했던 첫 번째 쿼드, 즉 쿼드 1.0은 거의 바로 와해되었어요. 인도도 미온적이었고, 호주도 반중이라고 보긴 어려웠거든요.
임예인: 2004년에 이미 와해되었던 쿼드가 2017년에 다시 부활한 이유는 뭐죠?
익명의 밀덕: ‘반중 연합’으로서의 연결고리가 더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주는 최근 무역 분쟁까지 벌어질 정도로, 정치적으로 갈등이 커지고 있죠. 다만 여기서도 인도는 여전히 약한 고리입니다. 인도가 중국에 발끈한 건, 양국의 고질적인 국경 분쟁 문제만이 아닙니다. 뿌리가 같은 인접 국가인 파키스탄과 스리랑카로, 일대일로를 내세우며 야금야금 영향력을 확대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해양 일대일로는 처참한 실패(?)를 겪고 있습니다. 중국이 인도양에서의 야욕을 조금 거두고 인도 체면을 세워주면, 경제 성장에서 갈 길이 먼 인도도 반중 노선을 내세울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도 인도를 쿼드에 합류시키기 위해, 의제에서 직접적으로 중국을 비판하는 것을 피하고, 전세계적인 백신 공급 등을 핵심 의제로 설정하는 등 인도를 배려하기도 했어요.
임예인: 인도는 원래 친미 국가라고 하기는 어렵죠? 최근 대러시아 제재에도 동참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익명의 밀덕: 인도는 냉전 시대에도 미-소 블록에의 편입을 거부하고, 비동맹 노선을 견지한 바 있죠. 미-중 대결의 시대가 되어도 이런 본성을 거스르지 않을 겁니다. 미국 또는 중국을 오냐오냐 따를 나라가 아니라는 자존심도 대단합니다. 1차 쿼드 때도 인도는 미온적이었고, 지금도 인도는 계속 쿼드가 노골적인 반중 안보동맹이 되는 것을 막고 있죠.
결국 쿼드가 인도태평양판 NATO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하기는 하지만, 동상이몽에 빠진 국가들의 느슨한 모임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임예인: 그렇다면 오히려 쿼드가 너무 유명무실한,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요?
익명의 밀덕: 말씀하신대로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이 쿼드는 쿼드대로 내버려두고, 역으로 다른 판을 짤 가능성이 높습니다. 좀 더 좁지만 강력한 대중 안보동맹이요.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많이 이야기되어오던 것이지만, 한국에서 보수정권이 등장한 지금을 호기로 생각하고 구체화할 수도 있죠. 다만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NATO의 대러시아 안보 전선 정비 문제 등으로 인해 얼마나 진전을 볼 수 있을지… 특히 바이든 정부의 2024년 재선 성공 여부도 큰 변수가 되겠죠.
임예인: 종합하자면, 쿼드 가입이 대중 관계에 미칠 영향은 어떠할까요?
익명의 밀덕: 한국에 문을 열어줄 때쯤 되면 의외로 별 영향이 없을 겁니다. 앞서 말했듯 쿼드 가입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또는 종전,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급한 불 끄기 등이 먼저 이뤄진 뒤에야 가능합니다. 전격적으로 뚝딱 가입할 수가 없어요. 사드 배치 같은 경우 워낙 전격적으로 결정된 터라 중국 입장에서도 ‘충격과 공포’로 인식됐지만, 쿼드 가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중국을 험악하게 몰아쳤던 트럼프 대통령 시절처럼 심각한 이슈가 아닐 것이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물론 바이든이 재선에 실패하고 트럼프가 복귀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일단 그건 논외로 하죠.
임예인: 그런데 쿼드가 큰 의미 없다면, 반대로 예상되는 반발을 무릅쓰고 굳이 쿼드에 가입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미동맹 강화라는 상징적 의미 외에, 뭔가가 있을까요?
익명의 밀덕: 현재 바이든 정부는 쿼드에서 ‘반중’의 의미는 덜어내되 ‘민주주의 블록’의 성격은 강화하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보듯이 앞으로의 세계는 다시금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간의 힘겨루기가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죠.
UN은 국제협력의 최상위에 위치하지만, 앞으로 봉착할 기후위기 대응이나 국제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무제한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합의와 강제가 어렵죠. 인도가 고집을 피우기는 해도 ‘전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긴 하잖아요. 앞으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현안은 쿼드에서 먼저 민주주의 국가들의 입맛에 맞게 논의한 뒤에 더 큰 테이블에 올려놓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차피 ‘민주주의 블록’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우리 한국은 빨리 뛰어들어 목소리를 내는 게 낫죠.
사드 배치는 진짜 중국의 제재를 부를 수 있다
임예인: 그러고보니, 또 한 가지 뜨거운 이슈가 사드 배치입니다. 일단 사드란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익명의 밀덕: 사드란 종말 고고도 지역 방어 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를 뜻합니다. 항공기가 아니라 오직 탄도 미사일만을 요격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종말’이라는 이름 그대로 미사일을 종말 단계, 즉 미사일이 대기권으로 재진입해 낙하하는 단계에서 직격해 파괴합니다.
임예인: 사드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우선, 사드가 북한의 핵위협을 견제하는 역할을 못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익명의 밀덕: 사드 미사일은 원래 수천 km 이상을 날아오는 적의 탄도미사일 요격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걸 수백 km 밖에서 탐지해서 목표를 전달하면 미사일이 발사되어 반경 100km 내외에서 요격하는 거죠.
그런데 북한의 미사일기지에서 남한의 목표까지는 700~800km에 불과합니다. 북한이 만에 하나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이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쏜다면 박격포처럼 매우 높은 각도로 올라갔다 떨어지는 고각사격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낙하각도나 속도도 나쁘고 요격에 반응할 시간도 촉박하고 애로사항이 꽃피죠. 그래서 사드가 이런 변태 같은 궤적의 미사일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는거죠. 아예 못 하는건 아닌데, 요격 성공률이 좀 떨어질 걸로 예상됩니다.
임예인: 한편 일각에서는 이게 북한의 핵위협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기도 해요.
또한 방금 말씀드린 요격체계는 사드의 한 측면에 불과합니다. 사드는 이외에 탐지체계 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성주에서 전자파 문제로 말이 많은 그 사드 레이다, 정확히 AN/TPY-2 레이다를 말하는거죠. 이 레이다는 X 밴드라는 영역, 그러니까 주파수 8~12GHz 범위의 전파를 씁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와이파이 전파가 2.4GHz 대역 또는 5GHz 정도를 쓰니까 더 주파수가 높은거죠.
주파수가 높아진다는건 그만큼 더 촘촘하게 진동한다는 이야기에요. 전파의 봉우리와 봉우리,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 길이가 3cm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레이다의 해상도가 좋아집니다. 게다가 이 레이다는 출력도 높아서 탐지거리가 최대 3,000km에 달합니다. 적국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초기 단계부터 추적하여 정보를 넘겨줄 수 있죠. 다시 말해 사드 미사일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큰 망원경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은 이 점에 발끈하는 거죠. 북핵 위협은 핑계일 뿐이고 실상은 중국 내륙 감시용 전진 레이다 기지라는 주장입니다.
사드 논쟁의 핵심은, 이 레이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연합뉴스)
임예인: 윤석열 대통령은 ‘사드 추가 배치’를 페이스북에 한 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어요. 사드 추가 배치가 정말 이뤄질까요?
익명의 밀덕: 사드 추가 배치보다는, 현재 성주 문제부터 해결하겠죠. 아직도 성주 사드 기지는 ‘임시배치’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유해 전자파 논란 등이 불거지며, 환경영향평가 이후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이 환경영향평가가 차일피일 미뤄지며 문재인 정부 내내 거의 진전이 되질 않았죠. 덕분에 주민들은 임시배치 상태인 사드 기지에서 건설 등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불법이라며, 매번 사드 기지로 들어가는 장비와 물자를 막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임예인: 환경영향평가 완료가 계속 미뤄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정말 소음이나 자연파괴 문제때문일까요?
익명의 밀덕: 확언해드릴 수는 없지만 환경문제는 다 핑계 아니겠어요? 흔히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이면에서 구두로 ‘3불’을 약속했다고 하죠. 사드는 현상 동결, 미국의 MD 체계에는 미 참여, 한미 동맹을 한미일로 확대시키지 않겠다는 점. 또 목적상 사드 레이다는 미사일이 날아오는 공역을 감시하는 것이고, 요즘 레이다는 전파를 몰아 쏘는 능력이 좋아서 산 아래 주민의 거주구역에는 별 영향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진짜 환경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기에 미뤄왔다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요.
임예인: 추가배치가 문제가 아니라, 있는 것부터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군요. 성주 사드 기지는 어떻게 될까요?
익명의 밀덕: 성주 사드기지 정상화는 무난히 진행되리라 봅니다.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를 차일피일 미룰 이유도 없고요. 하지만, 역시 사드 추가 배치는 간을 볼 것이라 봅니다. 일단 성주에 갖다 놓은 1개 포대는 박근혜의 일이고, 어쨌건 이 분은 탄핵당해 감옥에도 오래 있었으니, 더 이상 중국에서도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거든요. 다만 추가 배치는 차원이 다릅니다.
임예인: 중국은 사드에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까요?
익명의 밀덕: 저는 중국이 사드에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실질적인 안보 위협 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의 촘촘한 대중 감시망에서 성주 사드 레이다 하나 더 늘어난다고 얼마나 차이가 있겠어요. 귀찮기는 해도 안보를 크게 뒤흔들 정도는 아니죠. 그보다도 박근혜를 믿었던 시진핑이 본인 자존심에 먹칠을 당했다고 분노한 점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임예인: 그렇다면, 오해를 풀고 이야기를 좀 합리적으로 풀어갈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익명의 밀덕: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여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중국의 누구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지요. 분명 아랫사람들이 벌벌 떨 정도로 ‘격노’했던 것 같습니다. 실리적인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풀어갈 여지가 적은 겁니다.
우리도 이걸 잘 아니 사드 추가 배치는 계속, 중국 간보기 카드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앞으로 중국과 여러 채널의 협의가 있을 때마다 ‘그러면 우리도 확 사드 추가 배치한다?’는 말을 꺼내 볼 수 있겠지요. 다만 블러핑으로만 쓰고, 실제 실행하는 수준까지는 안 갔으면 좋겠습니다.
임예인: 만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 줄 공약’으로 천명한 것처럼, 실제로 우리 정부가 사드를 추가 배치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익명의 밀덕: 시진핑이 공언하던 게 있으니 중국은 어떤 형식으로든 또 한 번 아주 심각한 제재 카드를 쓰겠죠. 한한령도 무서웠지만, 한한령은 공식적인 조치 없이 묵시적인 괴롭힘만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정말 사드를 추가 배치한다면, 그때는 중국이 본격적인 수출규제 카드를 꺼내들 것 같습니다.
중국이 요소 수출을 중지했더니 요소수 대란이 일어났던 것처럼, 한-중 교역구조에는 찌르면 아플 만한 구석이 많이 있습니다. 이 꼴을 안 당하려면 호주가 광물 수출을 막아서 중국을 괴롭혔듯이, 우리도 반도체 이외에 중국이 아쉽게 생각할 만한 카드를 더 마련해야 합니다.
임예인: 반도체 이외에 중국이 아쉽게 생각할 만한 카드라면, 어떤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을까요?
익명의 밀덕: 제가 코로나19 이전에 중국에서 전문가들에게 빙빙 돌려 물어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 한국엔 반도체 말고는 아쉬운게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대중국 주요 수출품목 중 반도체 및 IT기기를 제외하면 석유화학제품이 많은데 이건 한국이 워낙 고도의 잉여설비가 많아서 그렇죠. 이미 중국은 한국에서 중간재를 수입하는 분업형 교역구조를 탈피해, 자국에 중간 가공부터 첨단 완제품까지 생산능력을 다 갖추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일본제 없으면 어떻게 사나 했지만 어느새 꽤 많이 국산화했잖아요? 일본이 불산 등을 수출규제해도 어찌어찌 극복해냈기도 했고요.
결국 이건 반도체처럼 미국이 강하게 대중제재를 해서 중국이 우리를 대체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부분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공개적으로 콕 찍어드리기는 곤란한데, 자잘한 몇 개 분야가 있습니다. 그런 쪽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더 높이고 중국의 추격은 미국의 완력으로 찍어 누르는걸 교묘하게 병행해야겠죠.
「2022 대선, 외교와 안보를 말하다: 익명의 밀덕 인터뷰 2/2」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