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 앞을 비롯해 미 전역에서 수만 명이 시위 중이다. 미 현지 시간으로 6월 25일, 미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를 규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어 버렸다. 무려 1973년에 내려진 판결인데 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임신중단권이 ‘헌법에 쓰여있지 않으므로’ 각 주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법적 규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에 나온 대로 해석’하는 문언주의(textualism) 성향의 보수 판사들이 대법원 다수를 차지하게 되며 19세기식 사회로 후퇴 중이다.
같은 권리라도 미 대법원은 헌법에 규정된 총기 소지권은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18세가 총으로 흑인이나 아이들 20명을 쏴 죽인 게 불과 한 달 전인데). 그런데 금주 대법원은 총기 규제 내용을 기각했다.
앞으로 텍사스나 미시시피 같은 보수성향 주에 사는 미국 여성들은 임신 중단 수술을 하려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가된 주로 가야 한다. 이미 13개 주에서는 trigger law라고 하여 Roe 판결이 뒤집하는 경우를 대비해 임신 중단 규제를 하는 법령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심지어 위스콘신주 같은 곳에서는 1863년에 만들어 놨다가 폐기하지 않았던 낙태 처벌법을 부활시킨다.
이번 판결은 미국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 여성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며
- 경제적 불평등을 유발하고
- 전체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각 항목별로 살펴보자.
1. 여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주에서는 웬만하면 임신 중단을 못 하기에, 임신한 여성의 건강에 악영향이 미친다 하더라도 의사들은 임신 중단 수술을 꺼릴 것이다. 의사 아닌 이들이 낙태 시술을 하면서 여성들이 많이 죽어 나갔던 1960년대로 회귀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주에선 웬만하면 임신 중단을 못 하기에 의사들이 임신 여성 건강에 악영향이 있어도 임신 중단 수술을 꺼릴 것이다. 의사 아닌 이들이 낙태 시술을 하면서 여성들이 많이 죽어 나간 1960년대로 회귀할 가능성도 있다.
2. 가난한 이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보수적인 주에서는 비행기 타고 다른 주로 갈 여력이 없을 경우 임신 중단을 못 하게 된다. 가난한, 주로 유색인종 여성이 가장 크게 영향받을 것이다.
3. 전체 경제에 타격을 준다
임신 중단권의 박탈은 여성의 사회 참여를 억제한다. 가난한 가정의 경우는 더하다. 여성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경우 빈곤으로 쉽게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 가정의 아이들도 똑같이 빈곤의 굴레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빈부격차가 벌어지면 전체 경제에 좋을 리 없다.
또한 다른 권리에도 악영향을 준다. 먼저 개인정보 침해가 우려된다. 이 주에서는 여성들의 산과 병원 방문 이력이나 CCTV 화면, 먹는 피임약 검색 기록, 생리주기 관리 앱 이력 등이 주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여성의 권리뿐 아니라 전반적인 인권에 큰 후퇴를 불러온 상황이다.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빼앗겼다. 전 세계적으로도 임신 중단권을 ‘줬다 뺏은’ 사례는 전례가 없다. 트럼프가 임명한 3명의 보수 대법관들을 포함해 6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무려 종신직이다)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계를 거꾸로 돌릴 것이다. 9명의 대법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클레런스 토마스 대법관이 판결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의 우선 타깃에 있는 판결은 총 3개다.
- 기혼자의 피임 권리 (1965)
- 동성애 권리(2003)
- 동성 결혼 권리(2015)
교훈. 진보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힘들게 싸워야 얻을 수 있는데, 설사 권리를 쟁취했더라도 눈을 부릅떠야 지킬 수 있다. 투표 잘해야 한다. 멀쩡한 민주주의를 부정하게 뒤집으려 하는 대통령도 있지 않은가. (트럼프가 선거 결과 뒤집으려고 경합 주 중 공화당이 주지사인 곳에 연락해 압박을 가한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설상가상 바이든 지지율은 집권 2년 차 대통령으로서 최저, 최악을 찍고 있다. 11월 미국 중간 선거에서 상하 양원이 다 공화당에 넘어갈 수 있는 상태에서 터져 나온 이슈다.
로 대 웨이드 이슈가 과연 고물가라는 초대형 악재에도 여성, 진보 진영, 중도까지 결집하는 초대형 태풍이 될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 임신 중단권은 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권리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번 판결에서 남긴 의견 요지는 이렇다.
헌법에 임신 중단권이 쓰여있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50년 전의 대법원 결정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이게 미국 중도층의 의견일 것이다. 먹고사니즘에 대한 짜증이 더 클 것인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뒤집으려는 흐름을 막아야 한다는 심리가 더 클 것인가? 말도 안 되게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인물이 민주주의를 흔들고, 입법·사법·행정을 흔들면서 사람들의 삶과 권리를 옥죄고 있다.
원문: 네눈박이엄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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