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응급실 의사가 흉기에 부상을 당했다. 심정지로 응급실에 실려온 아내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심폐소생술 과정에 서로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그게 무엇이건간에 응급실에서 의사에게 흉기를 휘둘렀단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며칠 전엔 재판에서 패소한 뒤 상대측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 여러 목숨이 희생된 사건을 들었는데. 다들 사이다에 환장하더니 우리는 어느덧 저마다의 정의 구현까지 익숙해진 사회가 되었나보다. 무서워서 살겠나.
그러고 보니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흉기에 숨진 게 겨우 2년 전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꾸 착각하는데, 의사를 원망하는 환자들을 보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니 왜 종로에서 뺨을 맞고 한강에 와서 눈을 흘기십니까?
대부분의 경우에 의사는 환자를 죽인 범인이 아니다. 정말 많이 쳐줘봐야 살리지 못한 죄인이지. 환자가 트럭에 치여서 응급실에 왔는데, 끝내 살려내지 못했다고 멱살을 잡으면 의사 입장에선 너무 억울하다.
아니 원망은 제가 아니라 트럭 운전수에게 하셔야죠. 환자를 잃는 아픔은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건 제게도 트라우마인데 왜 제게 욕까지 하십니까?
교통사고면 원망할 사람이라도 있지, 그냥 병에 걸려서 운명하면 누굴 탓하기도 애매한가 보다. 눈에 안 보이는 병을 욕한다 한들, 병마를 내려보낸 신을 욕한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재수 없게 병에 걸린 자기 자신을 원망할 수도 없고.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를 원망하면 안 된다. 왜 사람들은 굳이 병으로 운명한 경우들까지 범인을 찾고 보복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건지 모르겠다. 워낙 한이 많은 민족이라 그런가? 정해진 천수를 다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억울한 건지, 그래서 그게 의사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심정지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는 디폴트 값이 사망이다. 심장이 멎었다는 자체가 원래 죽음과 동의어다. 그러니 혹시나 살려내면 그게 운이 좋은 거지, 살리지 못했다고 해서 탓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날고 기는 명의가 와도 마찬가지.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이 모 교수님도 심정지 환자는 대부분 잃는다.
INTP에 O형이라서, 예전에는 응급실에서 환자나 보호자와 정말 많이도 싸웠다. 우리도 일종의 서비스직이라 다른 업종들과 마찬가지로 적잖은 비율의 진상 손님이 존재한다. 시비가 붙은 적도 참 많고, 단추가 땅에 떨어진 일도 제법 된다. 그런데 요새는 어지간해선 꾹 참는다.
그까짓 말 싸움 이겨서 뭐하겠나? 욱해서 쑤셔버리면 나만 손해인데. 저 인간 감옥 살면 뭐해? 나랑 일면식도 없는 인간이 감옥에 있는다고 내게 어떤 이득이 있어? 치료 받느라 나만 힘들지. 죽으면 나만 손해고. 나 죽고, 쟤 사형 당하면 그게 쌤쌤이 되냐고. 나만 개죽음이지.
왜 이런 극단적인 생각들까지 하냐고? 무서운 인간들을 종종 마주치니까. 강해상도 안 죽었으면 응급실 실려올 거 아냐? 환자로 실려오면 나는 장첸도 치료해야 해. 평범한 내가 저런 사람 만날 곳이 여기 말고 어딨겠어? 그래서 가끔 무섭다고. 흉기에 부상당한 의사 소식이 남 일 같지가 않다고. 여전히 계약직 신분에 월급도 적게 받으면서 대학병원에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안전요원님들이 항상 곁에 있어서다.
부디 잘 치료받고 몸조리 잘하시고, 어렵겠지만 마음 많이 다치지 않고 응급실로 복귀하셨으면 좋겠다.
원문: 조용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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