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도전, 1년여만에 110억 투자를 받다
한국시니어연구소, 고루한 회사명이지만 2년이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등으로부터 100억 이상의 투자도 받았다.
이 회사는 ‘마이돌’의 창업팀이 뭉쳐 만든 회사다. 2015년에 글로벌 1천만 다운로드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팬덤 서비스 앱이다. 이진열 대표는 서울대 최초 재학생 신분으로 졸업생 축사를 할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마이돌을 접은 후, 이들은 새로운 사업을 꼭 성공시키기 위해 기존의 문제를 되짚어보았다. 그중 하나가 인사(HR), 즉 사람을 대하는 관점이다. 이에 대한 이진열 대표의 생각을 옮겨보았다.
첫 번째 실패의 깨달음: 상품 ‘마이돌’은 성공하지만, 대표 이진열은 실패할 수도 있다
한국시니어연구소의 대표 이진열입니다. 저희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1년 반만에 여러 투자사들로부터 100억 이상의 투자를 받았고, 매월 성장세도 뚜렷합니다.
승승장구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시니어 전, ‘마이돌’이라는 아이돌 앱 사업을 7년간 하고 매각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멋진 매각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번아웃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빚만 겨우 갚을 정도였지요. 먼저 그 실패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이돌’의 시작은 제가 대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서울대생의 스타트업, 1천만 다운로드, 재학생 최초 서울대 졸업식 축사 등 엄청나게 주목받았죠. 아이돌 앱이었기에, 유명한 엔터사 사장님들과 연예인들을 매일같이 만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에서 수백만 명이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어떻게 돈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 채 가라앉았고, 결국 저는 ‘마이돌’을 매각했습니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화려한 연예계에 빠져 정작 일에 게을렀던 건 아니냐고요? 정반대였습니다. 제 워라밸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일에만 파묻혀 살면서 7년을 바쳤는데, 막상 사업을 끝내고 주변을 보니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엄청난 허무함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이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에 유행하는 수많은 HR 방법론… 겉만 따라 해 봤자 부작용만 낳았다
스타트업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땅에 부딪치기 전, 비행기를 조립하는 일이라고도 하죠.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은 이를 위해 여러 장치를 도입합니다. 스프린트, 디브리핑… 일반 회사에서 접하기 힘든 개념이 스타트업에서는 유행처럼 퍼집니다.
저도 ‘마이돌’에서 그랬습니다. 스타트업답게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해서 성과를 높여보자… 그런데 뒤를 돌아보면 개중 제대로 작동했던 게 있나 싶습니다. 그럴듯한 방법론들은 오히려, 조직원들을 옥죄고 자율성을 떨어뜨리곤 했습니다.
제가 인사 관리에 실패했다는 걸 깨달은 건 조직원들이 하나씩 떠나기 시작한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인복이 있었던 건지, 7년간 함께 한 공동 창업자인 김선중 CTO가 함께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마이돌에 7억을 투자해준 본엔젤스는, 다시 한번 저희를 믿고 투자해주셨습니다.
컬처덱은 존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시니어연구소는 ‘마이돌’에서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시작했습니다. 방법론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방법론이라 해도, 사업과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지, 모델부터 시작하면 안 됐던 것이죠.
한국시니어연구소는 노인 돌봄이라는 전통적인 영역에 IT를 결합합니다. 전자가 사람 간 공감을 중시하는 아날로그라면, 후자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디지털이죠. 한국시니어 HR의 시작은, 이처럼 이질적인 영역을 융화시킨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컬처덱의 첫 키워드를 ‘디지로그’로 잡았습니다. 아날로그적인 공감과 디지털의 효율성을 동시에 이뤄내야 하는 것이 회사 HR의 굉장히 큰 숙제였지요.
컬처덱이 ‘동작’하게 만들기 위해
다들 넷플릭스를 따라 컬처덱을 만들지만, 실제로 회사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깊이 생각한 건 ‘실현 가능성’이었고, 컬처덱에 ‘FM’ 관련 내용을 길게 서술했습니다. FM이라면 낡아 보이지만, 저희가 일하는 요양보호는 국가와 긴밀히 연계된 업입니다. 번거롭더라도 지켜야 할 부분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하는 업이지요.
실현 가능성을 위해서는 조직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미션과 비전에 동의하게 만든다, 멋진 말이지만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도전을 갈망할 수도, 스톡옵션으로 부자가 되는 삶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기본 근무 환경을 워라밸로 맞췄습니다. 리더급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칼퇴근합니다. 리더급도 비상시가 아니면 워라밸을 지키길 권합니다. 회사가 잘 되는 대신 개인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이 지난번 사업에서 극심한 번아웃을 경험했으니까요. 그건 절대 이상적인 조직 상이 아닙니다.
다양한 분들이 섞이는 만큼, 각자의 삶을 지켜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로 요양보호사분들은 전통적인 일을 오래 해온 분들입니다. 이분들에게 IT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분들에게 육아의 일부를 포기하라 할 수도 없습니다. 분명한 건 회사의 문화를 강요하기보다, 그분들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겠죠.
그럼에도 원팀으로 돌아가기 위해
물론, 회사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원팀이어야 합니다. 저희는 원팀이 ‘가족 같은 회사’가 아닌, 각자 제 역할을 해내는 스포츠팀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기효용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원과 팀의 목표 설정을 도와야 하죠.
목표 설정을 위해서 OKR을 활용합니다. ‘방법’보다는 ‘가치’를 우선하는 기법이기 때문이죠. 예로 어르신을 상담하는 팀이, 효율성에 매몰되어 상담 수만 늘려서는 안 됩니다. 회사의 모든 지표는, 어르신에게 공감하고 좋은 돌봄을 제공하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원팀이 되기 위해, 느리더라도 많이 공유하길 권합니다. 자기 일을 빨리 끝마치는 게 다가 아니라, 구성원끼리 자신과 팀의 일을 되돌아보길 권합니다. 최대한 많이 기록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회고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도록 돕는 게 조직의 역할입니다.
동시에 한국시니어연구소는 구성원에게 기회를 열어주고자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 개개인의 역할은 리더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일이 있고 열정이 있다면, 그만큼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합니다.
예로 ‘하이케어’라는 핵심 프로덕트의 매니저는 IT업계 PM 출신이 아닙니다. 방문요양센터를 관리하던 사회복지사입니다. ‘요보사랑’의 PM은 회사에서 디자인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다른 역할을 하고 싶어 했고, 조금씩 발을 걸치는 과정에서 업무 영역을 완전히 바꾸게 된 겁니다.
말뿐이 아닌 액션으로 피드백을 해야 한다
컬처덱뿐만이 아닙니다. 스타트업은 직원 간 소통을 위해 수많은 장치를 도입합니다. 타운홀 미팅, 원온원, 피어 리뷰… 하지만 소통의 문제는 미팅의 횟수가 모자라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미팅 백 번을 해도 드러나지 않는 내부 문제는 그대로 숨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복도에서, 담배 피면서 나누는 이야기에 진짜 회사의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소통의 형태가 아닙니다. 핵심은 오직, 리더가 피드백에 열려 있느냐 하는 겁니다. 마이돌 때 아무도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 이야기해봤자 변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한국시니어에서는 피드백을 행동과 변화로 연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팀원이 사직서를 썼습니다. 상담을 해보니, 조직 내 문제를 발견했는데 말해봐야 해결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합니다. 그래서 그 팀원에게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 이야기했고,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팀장급이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에 필요한 것은 멋진 선언보다 ‘변화 그 자체’입니다. 컬처덱과 타운홀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경청’하는 게 아니라 변화를 위한 행동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시니어연구소에서는 단 한 명의 멤버도 퇴사하지 않았습니다. 인턴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모두 ‘원 팀’이 되는 데 성공했죠. 물론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있겠지만요.
중요한 건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유연성
최근 회사에 피플팀 리더가 합류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컬처덱이 맘에 들었다 했습니다. 컬처덱이 완벽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 반대였습니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 실제로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 점을 알고 더 고민하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시니어연구소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지금은 마이돌의 실패를 거울삼아 HR에 신경 쓰고 있지만, 어느 날 이 고백도 치기 어린 이야기였다 생각하겠지요. 그럼에도 정답을 규정짓지 않고, 작년보다 더 나은 회사, 조금이라도 더 열린 회사를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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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찾아가는 어르신 돌봄 서비스, 110억 투자를 이끌어내다: 한국시니어연구소 이진열 대표 인터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