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민주연합 안철수 대표가 물러났습니다. 3년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부터 정치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왔던 그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고, 보궐 선거를 거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이어서 민주당과 합당, 새정치연합으로 새롭게 창당하여 공동대표를 맡으며 정치경력을 이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 내내 그에 대한 지지율은 계속 낮아졌고 주위에 그에 대해서 기대를 하는 사람은 점차 사라졌고 이번에 선거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안철수 본인, 새정치연합 내부, 모두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안철수에게 없던 비전: 그래서 새정치란 무엇인가?
안철수에게 없던 것은 ‘비전’입니다. 안철수가 순식간에 대선 후보로 떠오른 것은 그가 새로운 인물로서 신선함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중도층을 껴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치권 밖의 인물로서 한번에 주목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람들의 ‘정치혐오’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정치혐오를 넘어서는 뭔가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입에 담고 다녔던 것이 ‘새정치’이죠. 하지만 ‘새정치’가 무엇인지 기억하시나요?
결국 그가 말한 새정치는 반(한자 반대 반)정치, anti-정치에 머물렀습니다. 정치를 반대하되 정치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기존 정치에 반대하긴 했는데, 결국 새정치를 강조하다가 그 역시 정치의 틀 안에 갇혀 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언론 인터뷰와 성향으로 볼 때, 안철수 본인이 모두가 고통받는 한국사회, 높은 자살률과 불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등등에 대해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안철수는 문제점을 의식하고 이대로는 안된다에서 머물렀을 뿐, 큰 그림, 비전으로서의 해결책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야권의 전통, 정권심판론에서 벗어나야
전통적으로 야권의 문제점은 여권의 문제점을 까는 데서, 정권심판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네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다’의 논리가 아니라 ‘내가 왜 잘 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정치혐오를 느끼고 있고,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결국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보여주는 비전이랄 것도 많지 않습니다. 4대강, 창조경제, 부동산 값 올리기. 하지만 그들은 중요할 때마다 뜬금없이 경제를 들고 나오면서 그들이 경제를 챙기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널리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런 프레임을 깨지 못하면 야당은 딴지 걸고 늘어지는 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라고 해서 무조건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등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게 투쟁적이어서는 안 되며,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학규가 내세웠던 ‘저녁 있는 삶’ 캐치프레이즈에 저는 참 크게 공감합니다. 안철수라면 그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안철수의 기반은 IT, 의료, 아카데미아에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기반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 혹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삶의 방향, 이것들을 담은 비전을 그는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와 같은 논쟁에 묶여서 정치 밖의 영역에서 그는 어떤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야당에 부족한 단결, 공천갈등으로 극대화
야당 전체를 돌아보면 부족한 것은 ‘단결’입니다. 저는 민주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따라서 어느 정도의 잡음이 반드시 일어나고, 또 의사결정이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사결정은 궁극적으로 좋은 결론을 내기 쉽지만, 효율성은 떨어집니다.
그래서 효율성이 중요한 기업의 경우는 민주적 의사결정보다는 수장이 직접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전제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국가 정책과 법조문을 결정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결론, 동시에 상호 합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민주적 절차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은 단결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성격이 급합니다. 그래서, 논쟁이 너무 길어지고 서로 삿대질이 시작되면, 차라리 그것보다 권위에 복종하여 그 권위가 토론을 끝내고 무언가를 일단 시작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지나친 토론은 비효율을 넘어서, ‘무능’으로 비춰집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과정은 효율성보다 정당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단결력이 있어야 효율적이고 좋은 것으로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은 항상 분열했습니다. 정치권에서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사리사욕에 따르는 사람보다 대의적으로 옳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신념이 충돌할 때 극한 대립을 해 왔습니다. 계파간의 갈등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파 밖의 사람은 같은 야당이라도 서로 격렬하게 비판하고,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실패하면 안철수 책임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왔습니다.
과연 저게 정말 신념 때문인지 그냥 인간적으로 싫어서 그런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안철수가 박정희 묘소에 참배할 때, 김진표가 FTA에 관련해서 전향적으로 움직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표면적으로 제일 잘 드러난 것이 공천을 놓고 일어나는 갈등입니다. 지난 지방선거도, 이번 보궐선거도 공천을 놓고 갈등이 표면화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당 차원에서 공천이 결정되기 전에 계파 국회의원들이 자체적으로 모여서 지지선언을 하는 것은 계파 간 힘 과시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여러 곳에서 잡음이 많았습니다.
제일 극적인, 최악의 장면은 기동민 출마회견에 난입한 허동준이었습니다. 몇 줄의 뉴스보다 하나의 영상, 장면이 사람들에게 더 강한 이미지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동준의 그 난입 장면은 국민 모두에게 야당의 내분, 실상을 정확히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단결을 통한 효율성과 비전이 필요
안철수가 비록 CEO와 아카데믹 그룹에서 리더 역할을 했을지언정, 그의 리더쉽은 야당의 분열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사실 공천 과정을 살펴보면 안철수가 자기 사람을 챙기거나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너무 챙겨주지 못해서 안철수의 사람들이 떠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공천에서는 잡음이 계속되었습니다. 안철수의 정치적인 능력이 아직 미숙한 만큼 안철수 김한길이 공동대표를 맡은 것은 김한길이 단합을 이끌어내고 안철수가 비전을 만들어내며 서로 힘을 합치면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것이었지만, 둘 다 실패했습니다.
결국 비전과 단결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혐오를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야당이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특별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야당은 그걸 넘어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적 신념,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처럼 정부군이 시위대를 향해서 저격하는 상황이 되지 않는 한, 투쟁심만으로 넓은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단결을 통한 효율성과 비전을 통한 이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번의 실패가 제일 안타까운 것은 선거 결과가 세월호 특별법 통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안철수 역시 비록 신선함은 사라졌지만, 그가 가진 능력과 자원을 통해 한 번 더 국민에게 좋게 쓰일 일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일입니다. 단순히 정권 창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슴아파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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