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 노동을 묻다: 전혜원 인터뷰 1/2」에서 이어집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이 어려웠던 이유
임예인: 연공서열제가 오히려 노동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는 셈이네요.
전혜원: 사실 연공서열제는 한 기업 내에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충돌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연차가 높은 사람한테 높은 임금을 주니까요. 비정규직을 쓰는 유인을 줄이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상층부를 개혁하는 일도 적절하게 함께 추진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한 큰 과제가 임금체계 개편, 즉 연공서열제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의 개편이었는데, 이 과제는 문재인 정부 내에서 그렇게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던 것 같아요. 초반부터 노동조합과 갈등하고 싶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던 듯하고요.
임예인: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란 생각이 들긴 합니다. 노동조합은 이미 정규직 노동자 위주로 힘이 실려 있고, 임금체계 개편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전혜원: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정권의 힘이 가장 강력한 정권 초기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힘이 있었던 집권 초기에는 임금체계 개편 과제가 뒤로 밀렸고,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등으로 휘청이던 집권 중반기 이후에야 임금체계 개편 과제를 추진하려고 했어요. 그러다보니 여러모로 동력을 잃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겠다고 공약했었는데, 물론 법을 제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이 역시 집권 중반을 지나면서 흐지부지 사라져버렸죠
임예인: 이건 사실 노동 이슈만의 문제는 아닌데, 문재인 정부가 어려운 과제를 자꾸 뒤로 미뤄놓는다는 인상이 있었어요. 결국 정부의 의지가 문제였던 걸까요?
전혜원: 정부의 의지가 있었다면 쉽게 되었을 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공공부문 정규직화 과정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청소·경비·시설관리·조리·사무 등 5개 직종이에요. 그래서 정부는 이 직종에 대해 ‘표준임금체계’라는 이름의 직무급을 도입했는데요. 직무급제란 하는 일에 따라 임금을 받는 체계를 말해요.
임예인: 직무급제가 앞에서 이야기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치에도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연공서열제는 근속연수라는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직무급제는 그런 명확한 기준이 없잖아요.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직무에 속하는지, 그 직무의 난이도와 책임소재는 어느 정도인지, 숙련도는 어떤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할 텐데요.
전혜원: 그렇습니다. 실제로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면 일단 각 직무의 가치가 얼마인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업무 난이도 등에 따라 ‘직무등급’을 정하고, 그 안에서 근무연수 및 평가 단계에 따라 단계적으로 승급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죠.
그런데 이 내용을 정하는 데 노동조합이 참여하지 못했어요. 임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서인지, 가장 낮은 단계(직무등급 1등급, 승급단계 1단계)의 임금구간을 그해 최저임금에 딱 맞춰 설정했기 때문에 반발 또한 컸고요. 이런 임금체계가 기존 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면서 차별 소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임예인: 노동조합은 왜 임금체계 개편에 참여하지 않은 거죠?
전혜원: 노동조합은 ‘정부의 직무급은 온전한 직무급이 아니다’라며 반대했습니다. 성과연봉제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거나, 임금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잇따랐죠. 사실 노동조합의 동의 하에 공공부문 노사가 함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었겠지만…집권 초기에 했어도 노조의 동의를 얻기란 쉽지 않았을 거라 봅니다.
노동조합의 비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우려하듯이 직무가치를 기업이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평가하게 내버려두지 않으려면, 오히려 노조가 적극 개입해서 직무, 직종, 산업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한국사회 임금의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노동조합이 비협조적이어서 노동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제 유럽의 여러 사례에서는, 노동조합도 양보를 통해 협상력을 강화하잖아요.
전혜원: 연대임금 정책을 추진한 스웨덴에 관한 책들을 몇 권 봤는데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게, 여기 노동운동은 일찌감치 토론과 논쟁을 통해 가장 비협조적이고 급진적인 노선과 결별했어요. 그 이후에 고용주 단체와 대등하게 협상하면서 사회의 규범을 만들어나가죠. 물론 같은 노동자 간의 격차를 최대한 축소시켜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요. 이렇게 하면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여가는 게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본 겁니다.
한국은 아직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여기에는 한국 고용주 단체가 노동조합에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정부가 때로 기업들의 편을 들어온 역사가 반영된 측면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정부가 뒤로 빠지고 노사가 대등하게 마주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주 52시간제가 아니라, 주 52시간 상한제
임예인: 주 52시간제에 대한 평가도 엇갈립니다. 긍정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어려운 과업을 이행했다는 평가가 있고요. 부정적으로는 주 40시간제가 정상임에도 현실과 타협했다는 평가도 있고, 정반대로 노동시간을 경색시켜 부작용을 낳았다는 평가도 있죠.
전혜원: 먼저 ‘주 52시간제’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요, ‘주 52시간 상한제’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주 40시간제’예요.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기준 노동시간을 ‘법정근로시간’이라고 하는데 이게 주 40시간이거든요. 무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요.
임예인: 그런데 왜 ‘주 52시간제’라는 표현이 통용되고 있는 거죠?
전혜원: ‘주 40시간제’를 기본으로, 여기에 노사가 합의하면 주 12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게 해서 그동안 쭉 ‘주 52시간 상한제’였던 거예요. 다시 말해 주 52시간은 노사 합의가 있더라도 이를 초과해서 일해선 안 된다는 법적 상한인 거죠. 문제는 이게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다는 건데요.
임예인: 어째서죠?
전헤원: 노동부가 노동시간을 해석할 때 일주일을 5일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한국 노동자는 주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데, 휴일에는 근로시간이 ‘리셋’돼 하루 8시간씩 16시간을 더 일할 수 있다고 본 거죠. 근로기준법상 1일 근로시간 한도가 8시간이거든요.
임예인: 네? 주당 52시간만 일할 수 있다고 해 놓고, 주말은 일주일에 포함이 안 되니까 일을 시켜도 된다니…
전혜원: 이게 바로 대한민국 노동자가 주 52시간에 16시간을 더한 68시간 동안 일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이 소송을 냈어요. 그 결과 정부의 노동시간 해석이 법원에서 번번이 기각되어서 대법원 판결만을 앞두고 있었어요.
임예인: 그래서 결국 대법원 판결까지 난 건가요? 그래서 주 52시간 상한제가 도입된 건가요?
전혜원: 아뇨, 5년을 훌쩍 넘도록 대법원에서 계류되어 있었어요.
임예인: 그건 또 어째서죠?
전혜원: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문건에도 등장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었습니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을 의도적으로 늦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죠. 문재인 정부가 주 52시간 상한제를 전면 이행하겠다고 공약한 것은, 이렇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폭탄’을 해결한다는 의미였어요. 더 미룰 수 없었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기업에서는 주 52시간 상한제가 자율적인 기업활동을 방해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업종에 따라서는 탄력적으로 고강도 노동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주 52시간 상한제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요.
전혜원: 현실적인 면을 볼 필요도 있긴 하겠죠. 노동시간 상한이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급격하게 줄어드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2018년에 법을 통과시킬 때 노동시간 단축을 연착륙시키기 위해서, 일정 정도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조치를 같이 통과시켰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요.
예컨데 탄력근로제라고 해서 단위기간 동안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 이내라면, 어떤 주에는 주 52시간을 넘겨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제도가 있거든요. 이 ‘단위기간’을 늘리면 어느 정도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죠.
임예인: 아, 지금도 무조건 주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는 건 아니군요?
전혜원: 그렇죠.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유연화 조치 없이 노동시간 단축을 먼저 해놓고, 나중에 기업들이 반발하니까, 좀 뜬금없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했죠. 그러면서 기업 반발을 의식해 ‘계도기간’을 두어, 그 계도기간 동안에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시그널까지 줬어요. 여러모로 치밀하지 못했다는 인상이 있어요. 사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계도기간 없이 처음부터 제대로 단속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임예인: 주로 스타트업 쪽에서 노동시간 제도가 경직되어 있다는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전혜원: 이건 모두가 생산직처럼 경직되게 일하라는 법이 전혀 아닙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이미 다양한 유연근무제도가 존재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무제도를 일부 확대하기도 했고요. 노동시간 ‘규제’를 탓하는 게 아니라, 마감을 맞추기 위한 초고강도 노동을 뜻하는 ‘크런치 모드’ 같은 단어가 통용되던 현실을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요.
임예인: 사실 기업이 노동 조건을 개선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긴 합니다.
전혜원: 이건 기본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요. 조금 다른 예가 되겠지만, ‘포괄임금제’라고 해서 실제 근무시간에 상관없이 사전에 정해진 추가근로수당을 지급하는 형태의 임금제도가 있는데요. 문재인 정부는 이를 결국 폐지하지 못했지만, 넥슨이나 스마일게이트 등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게임·IT업체에서 노사 합의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크런치 모드’가 일상화된 게임·IT업계에서조차 이런 변화가 가능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조치를 할 수 있었는지,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노하우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임예인: 하지만 그들은 이미 덩치를 키운 대기업이잖아요? 예로 아까 자영업자들도 작은 곳일수록 최저임금 인상에 힘들어했고, 이에 정부는 유인책을 제공했습니다. 대형 게임회사처럼 하기 힘든,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들에게도 유인책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전혜원: 일정한 지원을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윤석열 정부처럼 스타트업을 주 52시간 상한제를 아예 적용받지 않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정하는 건 기준도 모호하거니와 맞는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업에게의 유인이라면, 음… 현재도 존재하는 근로기준법상 여러 유연근무제도를 활용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여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직원들의 생산성과 만족도, 낮은 이직률로 나타나지 않을까요?(웃음) 출산과 육아 이후에도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테고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저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업무의 속도를 정하는 데 자율성을 주는 게 직원의 생산성도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시간 주권’이라고 하죠.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 유연화, 윤석열표 노동정책을 설명하는 키워드
임예인: 노동정책에 있어서는 노동권도 중요하지만, 고용률 같은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고용률을 두고서는 같은 수치를 두고서도 정부는 늘 잘했다고만 하고, 반대측에선 늘 잘못했다고만 하니 판단을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전혜원: 만 15-64세 생산가능인구 중에서 특정 시점에 취업해 있는 인구의 비율을 고용률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는 조사 시점에 수입을 위해 1시간 이상 일한 모든 사람이 포함됩니다. 이러다 보니 주 15시간도 일하지 못한 초단시간 노동자가 늘어나도 고용률이 늘어납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 만든 노인이나 청년 단기 일자리도 반영이 되고요. 그래서 혹자는 정부 재정 일자리를 일자리 분식회계라고 표현했던데요(웃음). 그럼에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노후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선 공공일자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특히 위기상황에선 더 그렇죠.
임예인: 그럼, 문재인 정부의 고용률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전혜원: 문재인 정부의 경우 2017년 66.6%의 고용률에서 출발해 2019년 66.8%, 2020년 코로나로 65.9%, 이후 회복해서 2021년 66.5%로 마무리했는데요. 최저임금 인상으로 주휴수당 부담이 커지면서 초단시간 노동자가 100만명을 찍은 측면이 영향을 미쳤을 것 같고요. 공공 일자리도 많이 늘렸습니다. 그래서 풀타임 환산 고용률은 2017년 65.1%에서 2021년 58.8%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 적어도 제도적으로 쪼개기 고용을 부추기진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임예인: 확실히 고용률이라는 숫자 하나만으로는 볼 수 없는 측면이 많은 것 같아요. 그 외에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요?
전혜원: 한국이 청년과 여성 고용률이 OECD 다른 나라들보다 특히 낮은데 이 부분에 대한 진전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와 이동성 높이기 등 입직 연령을 낮출 수 있는 정책, 임금차별 해소와 육아휴직 급여 확대 등 여성 경력단절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정책들이 절실한 상황인 듯합니다.
임예인: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라며 친기업, 친시장적인 노동 정책을 주로 내세웠는데요. 윤석열표 노동정책의 큰 방향성은 어떻게 될까요?
전혜원: 윤 대통령표 노동정책의 큰 방향은 노동시간과 임금의 유연화로 보입니다. ‘주 120시간’ 발언은 한 스타트업 대표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겠다는 방침은 분명합니다.
임예인: 지금도 이미 탄력근로제 등 노동시간 유연화가 어느 정도 이뤄져 있다고 하셨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가 더 도입될까요?
전혜원: 구체적으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늘리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는 정해진 단위기간 내 주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 이내이기만 하면, 출퇴근 시간을 노동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제도인데요. 이렇게 되면 일간, 주간 노동시간 상한은 사실상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임예인: 그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에 퇴근하는 식도 가능한가요? 어마어마한 과로 논란이 일 것 같은데요…
전혜원: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을 설계한 유길상 전 한국고용정보원장은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루 일하면 다음에 일할 때까지 11시간은 무조건 쉬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법 개정 사안이라 민주당의 합의도 필요하고요.
임예인: 그 외에도 노동시간 유연화를 위한 여러 공약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전혜원: 이외에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동시간 상한을 적용하지 않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스타트업’을 포함시키거나, 스타트업에게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는 공약도 있었고요. 또한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연장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예외를 허용하는 공약도 있었습니다. 모두 사측의 이해를 반영한 공약들입니다.
임예인: 임금의 유연화는 그렇게 나쁜 내용은 아니지 않나요? 지금의 연공서열제에 문제가 있다는 건 대체로 공감하는 바 같은데요.
전혜원: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임금의 유연화는 현재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직무가치와 성과가 반영된 임금체계로 바꾸겠다는 것인데요. 이는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가 모두 추진해왔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임금은 노사 합의의 핵심 사항인데, 노동조합이 이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강제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무리하게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추진하다 반발이 거셌었죠.
임예인: 민주당 정부와 국민의힘 정부를 막론하고 모두 실패해왔던 과제를,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해서 밀어붙일 수 있을까요?
전혜원: 구체적인 내용을 보죠. 윤석열 당선자는 “사업장 내 직무·직군·직급별로 근로자들이 원하는 임금체계가 상이할 경우, 해당 부문 근로자대표와 사용자 간 서면합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직무, 직군, 직급별로 임금 제도를 서로 다르게 결정할 수 있게 되죠. 이는 소위 ‘MZ세대 노조’로 주목받은, 최근 생긴 대기업 사무직 노조를 염두에 둔 공약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찬성을 통해, 생산직, 중장년 위주로 짜여진 기성 노조의 반대를 우회하겠다는 뜻이죠.
임예인: 그런데 젊은 직원들이라고 해서 성과급제를 무조건 반기기만 할까요? 사실 평가라는 게 받는 사람 입장에서 썩 달가운 것은 아니잖아요.
전혜원: 맞습니다. 대기업 사무직의 젊은 노조라도 보통 요구하는 바는 ‘집단적 성과급’의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거나 더 많이 달라는 것이죠. 정부가 바라듯이 ‘직무가치와 성과가 반영된 임금체계’가 이들의 요구인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임예인: 한때는 한국이 ‘쉬운 해고’의 나라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반대로 사용자들은 해고 요건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전혜원: OECD의 평균적인 수준과 비교하자면, 개별 해고는 어렵고 집단 해고는 쉬운 편입니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온도차는 아마 그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별 해고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해고하지 못하는데요. 이는 근로계약을 계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확실한 책임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래서 보수는 줄곧 고용 유연화를 주장해왔죠.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당시 노동조합의 반발이 무척 거셌고, 문재인 정부 들어 해당 지침은 폐기되었습니다.
임예인: 개별 해고가 어렵고 집단 해고가 쉽기에, 부작용도 없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예로 특정 직원이 성과가 낮거나 문제를 일으켰는데, 팀을 날려 버린다거나…
전혜원: 여기서 집단 해고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같은 것을 말해요. 한국은 고용보험이나 직업훈련 등 사회안전망이 취약해서 OECD 평균 수준의 집단 해고라 하더라도 ‘해고는 살인이다’ 같은 구호가 나올 정도가 되지요. 대기업에 다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면 처우가 나락으로 떨어지니까요.
또한 개별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책상을 화장실 앞으로 보내버린다거나 힘든 업무를 배정한다거나 하는 유치한, 혹은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밀어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해고를 유연화한다고 해서 기업이 그만큼 사람을 더 많이 뽑는 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인지는 좀 회의적입니다. 예컨대 기계가 대체해버릴 수도 있고, 개발자 등 훨씬 고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상황일 수도 있죠.
임예인: 노동유연화라고 하면 보통 고용의 유연화를 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요. ‘유연화’를 큰 방향으로 제시했던 윤석열 정부가, 혹시 고용의 유연화까지 추진하지는 않을까요?
전혜원: 일단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노동 유연화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고용 유연화가 아닌 노동시간과 임금의 유연화라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윤 후보는 “기존의 노동시장을 조금 물렁물렁하게 유연화시키자”라면서도 “그렇다고 해고를 막 자유롭게 한다든가 그거는 아니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실 고용유연화는 노동계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죠. 박근혜 정부 시절의 경험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을 거고요.
다만 이번에 윤석열 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이, 일반해고 지침이 포함된 박근혜 정부 노사정 대타협 때 한국노총 사무처장이었던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이죠. 그렇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친기업적’ 정부가 될 것인가
임예인: 또 한 가지 뜨거운 감자가 최저임금의 업종별, 지역별 차등 적용입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비판도 만만치 않아요. 정말로 실현될까요?
전혜원: 윤석열 당선자가 대선 기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 최저임금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은 고용주 단체가 요구해온 사항이죠. 일단 공약집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요. 보수층 내지 자영업자를 염두에 둔 상징적 발언인 듯 보입니다. 다만 임기 내내 주요 전선은 되겠죠. 윤석열 당선 이후 처음 결정될 내년도 최저임금에서 업종별·지역별 차등이 어떻게 논의될지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임예인: 실제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시행하는 나라가 많은가요?
전혜원: 사실,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 적용은 영토가 넓고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경우, 혹은 지역 간 경제력이 현격하게 차이 나는 개발도상국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나라 중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을 도입한 나라는 일본,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등 몇 나라 되지 않는데요. 이조차도 어디까지나 ‘하한선으로서의 지역 혹은 국가 단위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방식의 업종별 최저임금입니다. 한국의 고용주들이 기대하는 ‘국가 단위 최저임금보다 낮은 업종별 최저임금’과는 맞지 않습니다.
임예인: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 규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꾸준히 내비쳤습니다. 한 예로 중대재해처벌법 손질을 수차례 시사하기도 했고, 실제로 기업110대 국정과제에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 지원”이 포함되어 있기도 해요.
전혜원: 윤 당선자가 중대재해처벌법을 포함한 여러 현안에 대해 수차례 기업의 시각에서 발언했기 때문에 우려가 큰 것은 사실입니다.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을 주도한 김현숙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윤 당선자 정책특보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주로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 내용을 명확히 하는(즉 좁히는) 방향으로 법이나 시행령을 개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고용 유연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고요. 또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이기 때문에, 실제 법 개정을 하려면 민주당과의 합의가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하죠. 그러니 지나친 비관보다는 활발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임예인: 하지만 결과적으로 ‘친노동’ 정책은 힘을 잃어버릴 것 같기는 합니다.
전혜원: 친노동 정책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의미한다면, 그런 정책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고용주 측의 이해를 주로 대변해온 점,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노동조합에 대해 보여온 적대적 태도를 고려하면, 앞으로 윤석열 정부 5년은 사측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임예인: 사실 앞으로 노동 시장에 일어날 변화를 생각하면 앞길이 까마득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최저임금이나 정규직, 유연화 같은 기존의 담론을 넘어 더욱 미래지향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전혜원: 맞습니다. 노동시장의 모든 불평등을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난 5년간 확인하기도 했죠.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와 자영업자에겐 별다른 보호장치조차 없습니다. 이들은 아예 비정규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다만 일부 특수고용 직종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했을 뿐이죠.
임예인: 그동안 보호받지 못했던 노동,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노동,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노동까지… 앞으로 희망적인 논의가 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전혜원: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본법’을 만드는 데 찬성한 바 있습니다. 보수정당조차 새로운 고용형태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망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모두 공감하는 이런 것부터 제1 과제로 통과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이거야말로 청와대 이전 같은 문제보다 훨씬 공감대 높고 시급한 이슈니까요. 윤석열 정부 ‘1호 노동 법안’으로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할 때의 제한 조건인 ‘전속성(주로 한 업체에 전속되어 일해야 산재보험 적용)’ 기준을 폐지한 것은 긍정적으로 봅니다.
임예인: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전혜원: 한 노동사회학자는 윤석열 정부가 박근혜 정부보다는 ‘이명박 정부 시즌 2’이지 않을까 전망하더군요. 박근혜 정부가 그래도 노동시장 구조를 전반적으로 개혁하려는 큰 그림을 그렸다면, 이명박 정부는 기업들을 위한 규제 완화에 그쳤다고요.
저는 문재인 정부 5년을 비롯해 역대 정부의 경험이 한국이라는 큰 공동체의 경험으로 축적되어 가고 있다고 여기려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조합이 노조 울타리 바깥의 모든 노동자를 대변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기를 바라고 응원하며, 저 역시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고해상도라는 저명한 매체에서 불러주셔서 영광이고, 긴 시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