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최저임금 만원,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굵직한 노동 현안에서 나름 중요한 전진을 이뤄냈지만, 결국 최저임금은 만원에 미치지 못했고, 근로시간 단축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 안정 등의 과제도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역풍도 불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정’ 담론과 부딪쳤고,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담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의 자율적 성장을 방해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소득주도성장이 허상에 가까웠다는 비판도 있었다.
노동권 문제는 언제나 첨예한 이슈였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특히 그렇다. 과도한 친노동 정책으로 성장 동력을 상실시켰다는 비판에서부터, 친기업적인 정책으로 선진국 수준의 노동권 달성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까지. 대선이 끝난 지금, 피상적인 비판보다 좀 더 깊이 있는 평가가 듣고 싶었다.
저널리스트 이력의 과반을 노동 현장에서 보내며 노동 이슈에 대해 그 누구보다 깊은 성찰을 보여주었던,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전혜원 기자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인터뷰이: 전혜원
시사IN 기자. 그의 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플랫폼 노동과 자영업자 문제 등 진보조차 외면하기 십상인 노동 이슈의 첨단을 다루어 화제가 되었다. KTX 해고노동자 소송 심층 취재로도 유명한 ‘노동 전문’ 기자다.
좌초한 ‘최저임금 만 원’, 무엇이 문제였나
임예인: 최저임금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반 가장 뜨거웠던 이슈였죠. 대선 기간에는 거의 모든 후보가 최저임금 만 원을 공약했는데, 정작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거셌어요.
전혜원: 최저임금을 유의미하게 올린다는 방향 자체는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상당히 높은 나라였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내내 크게 변화도 없었고요.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문재인 정부 취임 첫해인 2017년 22.3%에서 2020년 16%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여전히 OECD 평균(13.8%)보다는 높지만, 평균에 상당히 가까워진 겁니다. 임금노동자들 사이의 불평등도 개선되었고,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도 높아졌습니다.
임예인: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끼친 부분을 특히 주된 비판의 근거로 삼고 있는데요.
전혜원: 그 부분이 문제인데,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고용이 줄었다는 분석도 있고, 그런 증거가 없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만 고용에 일부 영향이 있더라도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면,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그런 정책을 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겼다는 비판도 있었어요.
전혜원: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늘린 건 사실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취업자 4명 중 1명이 자영업자입니다. 자영업자 비율이 6.1%인 미국, 10%인 일본보다 훨씬 높습니다. 개중 많은 수가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인 만큼, 정책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영업자를 위해 최저임금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죠. 이런 상황이라면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직업훈련이나 재취업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노동시장으로 복귀하도록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임예인: 그래도 자영업자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었어요. 여러 정책을 통해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죠.
전혜원: 맞습니다.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특정 요건을 만족할 경우, 30인 이상 사업장도 가능)에서 저소득 노동자를 해고 없이 계속 고용할 경우, 일정 금액을 정부에서 지원해줬어요. 그게 ‘일자리안정자금’이었는데요. 하지만 이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는 수준에 그쳤죠. 선진국 대비 높은 자영업 비율을 어떻게 축소할 것인가와 같은 큰 그림 없이, 최저임금 정책이 다소 당위적으로 추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임예인: 사실 인터넷에는 ‘최저임금 올려서 망할 사업장은 망하게 둬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와요. 그런 한계 상황이면 언젠가 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다소 섬뜩한 주장이었습니다.
전혜원: 어려운 문제입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보듯 저숙련 자영업이 과잉 상태여서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게 되려면 고용보험의 획기적 개편과 이들이 옮겨갈 수 있는 일자리가 전제되어야 하죠. 자영업자를 ‘사장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한국의 자영업자 중 상당수는 ‘자영’, 즉 사업체를 직접 경영하는 권한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프랜차이즈 가맹점 같은 경우, 상품 가격부터 노동 시간까지 본부의 결정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사실상 ‘은폐된 고용’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임예인: ‘은폐된 고용’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인상깊은데요. 조금 더 풀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혜원: ‘사장님’이라는 건 자기 사업의 결정권을 가지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지는 사람을 말하는 건데, 실제로 프랜차이즈 편의점이나 식당을 보면 제품 가격이나 행사 같은 게 다 본사에서 정해져서 내려오잖아요. 심지어 개점시간이나 폐점시간, 인테리어 하나하나까지 전부 본사가 통제하죠. 이걸 과연 ‘자영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실상 본사에 종속된, 그러면서도 노동자를 위한 안전장치는 전혀 적용받지 못하는 상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의 노동 정책은 당연히 자영업자 문제가 포함되어 논의되어야 합니다.
임예인: 배달기사처럼 실질적으론 노동자 역할을 하면서도,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혜원: 그렇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라 불리는 노동자들이 바로 그런데요. 최근 크게 증가하는 배달 기사도 그렇지만, 보험설계사나 방문판매원,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 설치기사, 배송 및 화물 기사 등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고용계약이 아니라 단독 사업자로서 업무를 위탁받는 형태로 계약을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업체나 플랫폼에 종속되어 업무 지시에 감독까지 받죠.
사실상 노동자와 마찬가지인데, 노동법의 보호는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그나마 문재인 정부 들어 산재보험 가입이 확대되고 고용보험에도 가입이 가능해지는 등의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노동시간 쪼개기로 돌파하는 사용자들
임예인: 자영업자를 비롯한 영세 사용자들은, 실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이 이미 시급 만원을 넘긴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전혜원: 아마 ‘주휴수당’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실제로 아쉬운 대목입니다. 주휴수당은 주 1회 보장되는 유급휴일, 즉 ‘주휴일(週休日)’에 받는 하루치 임금을 말하는데요. 보통은 일요일이 주휴일이 되는데, 노동자는 이날 일하지 않음에도 일을 한 날과 마찬가지로 임금을 받습니다. 이 주휴수당이 전체 임금의 약 16.7%를 차지합니다. 예를 들어 2019년 최저시급 8350원에 주휴수당을 더하면, 실질적으로 사용자가 지급하는 시급은 1만30원으로 그때부터 처음으로 실질 시급 1만원이 넘는다는 얘기가 나왔죠.
임예인: 2020년 최저시급이 8590원이었으니,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역시 1만원을 초과해요. 그럼 최저임금이 이미 사실상 만원을 돌파했다는 사용자 측의 항변에도 나름 설득력이 있는 셈이네요?
전혜원: 문제는, 합법적으로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노동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자를 쓰면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휴수당이 임금의 16.7% 정도 되니까, 이렇게 직원 1명당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임금을 16.7%나 아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임예인: 실제로도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알바를 쪼개 쓰며 노동시간을 줄이는 꼼수를 쓰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전혜원: 그렇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고용주들은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를 빠르게 늘려 주휴수당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른바 ‘쪼개기 알바’죠.
이와 같은 실태를 통계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데요. 소득분위 1~2분위의 경우, 2019년 시간당 임금은 8.3~8.8% 상승했지만, 월 임금은 -2.4~-4.1%로 오히려 하락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시급은 높아졌는데 월급은 줄어드는 희한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노동시간이 줄었기 때문이죠. 특히 1분위에서 초단시간 노동자가 2018년 33.7%에서 2019년 41.9%로 8.2%포인트 증가했습니다. (김유선,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불평등 축소에 미친 영향’)
임예인: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주휴수당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안 그래도 유급휴일이 적은 한국에선 주휴일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전혜원: 물론 ‘일주일에 하루 휴일’, 즉 ‘주휴일’을 보장하는 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룰이죠. 하지만 주휴일을 유급으로, 법적으로 딱 정해놓은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개별 기업 단위에서 노사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걸 나라가 법으로 정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게다가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는 또 거기서 빠져 있잖아요? 주 15시간을 넘겨서 일하는지 아닌지가 임금에 그렇게 현격한, 16.7%에 달하는 차이를 발생시켜야 할 근거도 별로 없고요. 실질적인 휴일 보장은 최저임금 자체를 높여가면서 달성해갈 수 있겠죠.
임예인: 말씀하신 것처럼 주휴수당이 썩 합리적인 제도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휴수당을 없애버린다면, 노동자 입장에선 그만큼 임금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요?
전혜원: 물론 그냥 주휴수당만 없애는 건 안 되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의 임금을 16.7% 깎는 꼴이 될 테니까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주휴수당을 없애는 대신 그만큼 최저임금을 인상시켜야 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취임 첫해에 그렇게 했다면, 주휴수당을 이미 지급하던 선량한 자영업자들에게는 최저임금 인상이 큰 부담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쪼개기 알바’로 인한 부작용도 줄일 수 있었고요.
임예인: 그렇다면 종합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기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전혜원: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7.2%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가 9.0%, 노무현 정부 때가 10.6%, 이명박 정부 때가 5.2%, 박근혜 정부 때가 7.4%였던 것에 비해 정작 높지도 않습니다.
임예인: 그런 것 치고는 엄청나게 시끄러웠던 것 같아요.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망한다, 경제가 망한다, 그런 얘기들이 언론에도 한가득이었고요.
전혜원: 초기에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느라, 사회적 갈등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다 소진해버린 거죠. 그런 걸 생각하면 ‘2020년 만원’이라는 속도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조금 성에 안 차도, ‘주휴수당’을 포함한 임금 문제를 풀어가면서 대응하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자영업자들의 정책 수용성도 높일 수 있었을 거고요.
임예인: 노동계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말놀음에 불과했고,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명목상 최저임금을 높이긴 했지만,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 등 원래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포함시키지 않았던 항목들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시켰다는 건데요.
전혜원: 일정 정도의 산입 범위 조정은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그동안은 정기적으로 받는 상여금이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최저임금의 취지를 생각하면 포함되는 게 맞죠. 최저임금법은 안 지키면 형사처벌을 받는 제도니까요. 특히 정기상여금의 경우는 진짜 최저임금 노동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상위 분위 노동자들의 이슈였고요.
다만, 여기에 그리 큰 금액도 아닌 식대와 복리후생비까지 넣은 것은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정기상여금만 넣는 선에서 타협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왜 좌초했나?
임예인: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인 노동정책을 또 하나 얘기하자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는데요.
전혜원: 한국 노동시장은 ‘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된 상위 20%’와 ‘나머지 80%’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나머지 80%’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이 바로,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정규직화였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가 겪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었다면,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어느 정도 숙련도가 있어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었지요.
임예인: 최저임금 인상은 삐걱대긴 했지만 그래도 체감되는 변화가 있었다는 느낌인데요. 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그것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전혜원: 문제는 이것만 해서는 전체 노동시장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거죠.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정책인데, 실제로는 민간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공공부문 정규직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민간부문의 거대한 불평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임예인: 공공부문이야 정부 차원에서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 있지만, 민간부문 비정규직을 정부가 정규직으로 억지로 만들 수는 없잖아요.
전혜원: 문제는 공공부문에서 2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정규직화되었는데도, 민간부문에서는 정권 초기 몇몇 대기업 말고는 유의미한 파급효과가 없었다는 것이죠. 오히려 민간부문 비정규직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효과를 민간으로 확산시키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겁니다. 상징적 효과만 있을 뿐이죠.
임예인: 실제로 민간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전혜원: 법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는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하는 거죠.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이런 내용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공약 및 국정과제로 제시한 바 있는데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었는데, 국정 우선순위로 올라오지 못하다가 집권 중반 이후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생명·안전 업무 직접고용 원칙’의 경우, ‘생명·안전 업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두고 갑론을박하다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임예인: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의의는 없었을까요?
전혜원: 사실 역대 정부도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추진해왔습니다. 다만 그 방법을 살펴보면, 주로 그 기관이 직접 고용했던 계약직을 정규직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걸 용역계약 형태로 간접적으로 고용한 용역업체 노동자까지도 넓힌 거죠.
해당 기관의 계약직만이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점, 용역업체 노동자 등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더 많다는 점, 그리고 어쨌거나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필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되도록 정규직을 쓰는 게 맞다는 점을 공공기관이 확인하는 의미는 있었다고 봅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보는 또다른 시각, ‘공정의 훼손’
임예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젊은 세대는 오히려 ‘공정의 훼손’으로 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전혜원: 문제는 공공부문에서 2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정규직화되었는데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민간부문에서는, 정권 초기 몇몇 대기업 말고는 유의미한 파급효과가 없었다는 것이죠. 오히려 민간부문 비정규직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청년 세대 입장에서는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우호적으로 보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임예인: ‘인국공 사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역풍을 맞은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 요원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열심히 공부한 취업준비생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여론이 들끓은 건데요.
전혜원: 인천공항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공정 담론’의 홍수라고 할 정도로 많은 분석이 이어졌는데요. 일단,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보안검색 요원 1902명을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정규직화한다고 하자 반발이 나온 것이죠. 공사에서 일하려면 시험 같은 공정한 제도를 거쳐야 하며, ‘공채 없는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자격 없는 이들이 받는 과도한 보상, 곧 무임승차라는 겁니다.
임예인: 이런 ‘무임승차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혜원: 직접고용 대상으로 발표된 보안검색 요원분들은 평균 5년간 그 일을 문제없이 해온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자격’이 기준이라면,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그 일을 수행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자격의 증거일 수 있습니다. 소속이 바뀐다고 이들이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직접고용하려면 공채를 보게 해서 일부를 떨어뜨려야 한다면, 이 정책은 모순에 빠집니다. 비정규직에게 이익을 주려는 건데 도리어 일자리를 잃게 하니까요.
임예인: 그 말씀도 맞지만, 요즘 취업시장이 어려운 건 사실이잖아요.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시험을 준비해온 청년 세대로서는, 안 그래도 좁은 취업문을 기성세대가 샛길을 파서 빼앗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혜원: 왜 자회사는 시험이 필요 없고 직접고용은 시험이 필요할까요?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평균연봉이 9000만원이 넘습니다. 공기업이어서 고용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공기업 정규직이 좋은 일자리라는 것을 한국사회에 사는 누구나 알고 있죠.
그런데 인천공항의 수익은 효율적 경영뿐 아니라 ‘독점권’으로부터도 나온다는 점에서 ‘지대(Rent)’에 가깝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지대(Rent)’를 누릴 ‘자격 있는 소수’를 결정해온 것이 공개 채용(시험)인 겁니다. 결국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은, 한국사회에서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이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숙련’과는 거의 무관한 다른 것(입직 과정)임을 폭로한 사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임예인: 안 그래도 한국은 ‘어떤 대학에 입학했는지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여겨지는 사회였잖아요. 이게 요즘에는 ‘어떤 회사에 입사했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로 진화한 것 같아요.
전혜원: 그렇죠. 사실 소위 MZ세대뿐 아니라 기존 정규직들 모두가 공채 없는 직접고용 정규직화에 반감이 높습니다. 다만 젊은 세대의 경우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가 예전보다 더 커졌고, 첫 직장으로 대기업을 가기 힘들어졌습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점프하기도 힘드니, 공기업 정규직은 엄청난 가치를 갖게 됐죠. 이런 시대에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세대라면, 누군가가 시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실상 같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더 크겠죠.
임예인: 한국 사회가 그동안 너무 불공정한, 말하자면 ‘꼼수’가 난무하는 사회였다 보니 그런 경향이 더 큰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시험이 그나마 공정한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혜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공채를 통과한 소수만이 큰 보상을 받고, 나머지는 숙련을 쌓아도 그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한국사회에는 어떤 일을 하면 얼마를 받는다는 기준이 없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닌 ‘동일입사일 동일임금’이 있을 뿐이죠.
만일 한국이 어떤 회사에 다니는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가 임금을 결정하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하는 일과 숙련에 따라 임금을 받는 사회였다면? 그럼 이렇게까지 큰 갈등은 없었을 겁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용역업체로 외주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럴 유인이 적으니까요.
결국 핵심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너무 큰 격차에 있다
임예인: 비정규직 문제라는 노동 이슈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사회 구조 전체의 문제인 거네요.
전혜원: 문재인 정부는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추진해 많은 비판을 받았죠. 물론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가 바람직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직접고용 시 이들에게 어느 정도 임금을 지급할 것인가 하는 기준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잘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공공부문 노사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세워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숙련이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모회사든 자회사든 얼마를 받는다’는 원칙이죠. 그리고 이를 민간에 확산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날 것’의 갈등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이들에 대한 예의일지 모릅니다.
임예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국제노동기구헌장에도 명시되어 있는 대원칙이죠.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잘 지켜지고 있나요?
전혜원: 다른 나라들은 이렇지 않습니다. 산업 단위로 노사가 머리를 맞대든(유럽), 시장 평균임금이 반영되든(미국), 주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결정됩니다. 반면 한국은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경향이 세계에서 가장 강합니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심각합니다.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이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높습니다. 심지어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할 때도요.
임예인: 현재 한국에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전혜원: 맞습니다. 한국에선 ‘연봉제’를 실시한다 해도 호봉제를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정도 직종별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IT 부문 정도를 제외하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불능력이 크고 노조가 있는 대기업은 연공서열제형 임금을 감당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임금체계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대기업일수록 오래 다니기 때문에 이 격차는 더 커집니다.
임예인: 그럼 대기업에서 굳이 연공서열제를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요? 단순히 오래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월급을 더 많이 줘야 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일 것 같은데요.
전헤원: 연공서열제라는 합의를 깨는 건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비정규직이나 외주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죠. 실제로,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경향이 높은 회사일수록 용역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비정규직이 더 많이 발견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적은 임금을 줄 수 있다면 기업은 외주화를 택합니다.
「2022 대선, 노동을 묻다: 전혜원 인터뷰 2/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