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 지역구도를 묻다: 조귀동 인터뷰 2/3」에서 이어집니다.
토호 정치의 극복은 가능할까?
임예인: 지역 정치는 영남과 호남,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가를 것 없이 ‘토호’라고 불리는 토착세력 기득권이 지배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토호’ 정치란 무엇이고,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조귀동: 광주 학동 철거현장 붕괴 사고의 주역 중 하나가 재개발 조합장인 조모씨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박주선 전 의원의 지역구 조직책이었고, 동구 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인물입니다. 또 학동 참사 현장 바로 옆 아이파크1차 아파트에서 재개발 조합장이기도 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조씨가 조합장을 하면서 재산이 많이 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죠. 그가 ‘동구 대통령’이라고 불린 것도 그것이고요.
임예인: 토호 정치에는 물론 부정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다만 토호들의 이권이 토지, 건설, 개발 등에 얽혀있다면, 혹시 그들이 지역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든지 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조귀동: 말씀하신 것처럼 토호는 건설 개발에 친화적입니다. 가령 광주의 아파트 비중은 아파트 대단지가 모여있는 특이한 지역인 세종시 다음으로 높습니다. 부영, 호반, 중흥, 한양, 삼라마이더스(SM) 등 광주 전남을 기반으로 성장한 건설 기업들이 즐비하죠. 따라서 토건을 위한 주택 건설이나 도로 건설 등은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대형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같이, 기업이나 자본의 이해관계에 맞는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이건 건설에만 매달리는 토호와는 다소 동떨어진 문제입니다.
임예인: 그래도 건설 개발에 적극적인 토호들이 있다면, 대규모 토건 사업이라도 좀 벌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조귀동: 결국 중앙정부의 의지입니다. 지역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건 1950년대부터 산업화의 기회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민당은 1950년대부터 야당이었고, 박정희 정부의 중심에는 경북고 등 영남 엘리트들이 포진해 있었으니 자연스레 해당 지역에 대한 투자가 이어졌죠. 한국전쟁 등도 영남이 상대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였고요.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이제는 중앙에서 주도하는 대규모 산업 개발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고요.
임예인: 저서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막상 예산 많이 탄 아시아문화전당은 골치거리만 되어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조귀동: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2002년 ‘광주문화수도 육성’을 내걸었죠. 그렇게 시작된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한 건설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1년에 수백억 적자를 내고 이를 세금으로 보전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죠. 비슷하게 문화예술 시설을 랜드마크 건물로 짓고 도시를 부흥시킨 스페인 빌바오 같은 곳과 너무 대비되는 결과물입니다.
임예인: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조귀동: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화산업에 대한 전략이나 역량 없이, 위에서 내리꽂았기 때문이죠.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SOC 사업으로 변질된 셈입니다. 이걸 남탓할 수도 없는 게, 애초에 지방은 자체적인 사업계획 및 개발 역량이, 지자체나 민간이나 다 부족합니다. 돈 주머니를 쥔 문화부 관료의 입맛과 그들의 업무 수행방식에 부합하는 사업이 될 수 밖에 없죠. 이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주로 정부 지원을 더 받자는 식이 주입니다. 사업적으로 턴어라운드를 어떻게 하자는 계획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임예인: 중앙 정치와 지방 정치의 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이 분화가 훗날 토호 정치를 강화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조귀동: 지역 내 정당간, 경쟁 압력이 강해지지 않으면 강화될 수 있겠지요. 지역의 낙후도가 높아질 수록 지역 정치는 폐쇄적으로 변해갈 테니까요. 이를 벗어나려면 호남에서는 국민의힘, TK에서는 민주당의 정당 조직이 구축되고, 지역 정치 수준(지자체와 지방의회)에서 경쟁이 있어야 합니다.
임예인: 그런데 비록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호남 표, 민주당의 TK 표가 늘었음에도, 여전히 정치 험지임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그러면 지역 정치에 힘쏟을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변화의 가능성은 어디서 올 수 있을까요?
조귀동: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히려 중앙과 지방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지면서 아예 새로운 정치적 동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역간 경계가 희미해질 수 있겠죠. 이 과정에서 토호에 대한 반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데요. 사실 지역에서 토호세력에 대한 반발은 ‘기층 대충’이라고 할만한 사람이라면 다들 갖고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렇기에 선거 구도가 정당 대 정당이 아니라, 누가 더 지역에서 일을 맡길만한 일꾼이냐 중심으로 짜여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같은 정당 내의 경선에 서면 조직이 열세라 힘을 얻기 힘든 사람들이, 정당 밖에서 치고나갈 여지가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임예인: 토호는 지역 산업과 언론, 관료, 정치권과 연을 맺으며 그 기득권을 유지해왔습니다. 혹시 지중앙 정치와 지방 정치의 분화로 인해, 토호들이 더이상 정당에 결합할 이유를 느껴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조귀동: 지역 정치의 영향력은 지방 관료까지 사정권으로 둡니다. 관료들도 승진을 위해서는 지역 정치인과 네트워크가 중요하죠. 요즘은 아예 퇴직 공무원 조직이 만들어져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도 나옵니다. 지역 토호들은 예전부터 각종 학연, 지연 등으로 지역 정치인과 얽혀있는데, 정치 조직은 그 끈끈한 네트워크의 공식적 형태라고 보는 게 적절해 보입니다.
임예인: 중앙에서 사람을 내리꽂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한데요. 언제까지 지역민들이 고인물을 환영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조귀동: 지역 정치는 내리 꽂는 게 불가능하고, 국회의원 정도인데 지역은 전략공천 대상으로 보통 간주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역에 연고가 있어야 하니까요.
서울 정치와 지방 정치의 대립, 극우 포퓰리즘의 발호를 낳진 않을까
임예인: 중앙 정치와 지역 정치의 괴리가 심해지고 있고, 메가시티같은 지역 개발 어젠다 역시 뚜렷한 실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지역 정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조귀동: 결국 서울과 지역의 대립구도는 점점 심해질 겁니다. 그런데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럽 등 서구권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프랑스 대선도 그렇고,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도 그렇고, 런던 대 시골, 파리 대 지방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임예인: 지방 입장에선, 대립을 해서라도 자기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닐까요?
조귀동: 사실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극우 정치인들이 등장하는데요. 극우 정치인들은 확장력을 얻기 위해 소외된 지역에 어필합니다. 이준석 대표가 지방 소도시를 많이 다니는 이유도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미국의 트럼프도 낙후된 구산업단지, 러스트벨트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죠. 오히려 클린턴 쪽이 엘리트 화이트칼라 금융권을 대변한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사실 소외된 지역을 살리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잖아요?
조귀동: 하지만 그게 실질적으로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역 지지층의 이해관계에 맞춘 이야기를 내놓지만, 그 이야기가 정작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겁니다. 이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또한 선진국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실제로 중앙에서 드라이브를 걸어 지역 산업을 개발한다는 게 어렵습니다.
임예인: 그럼 너무 골치가 아픈데요. 지역 개발을 하기에는 늦었고, 대안이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니까요.
조귀동: 사실 그렇습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해결책을 찾아가야죠. 뭔가 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서울 시민들은 지역 쇠락을 다른 세상 얘기처럼 여기는데, 이건 결국 서울 사람들의 비용으로 돌아올 겁니다. 서울에서 걷은 세금을 지방에 퍼주는 구도도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대립하며 정책 의사결정 자체를 꼬이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예인: 어떤 형태로 정책 의사결정이 꼬이게 된다는 말씀이실까요?
조귀동: 어떤 형태가 될 거라고 예언을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브렉시트도 그렇고, 프랑스에서 극우 정치인이 결선투표에 계속 등장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극우 포퓰리즘이 지방 인구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힘을 축적하게 되는 거죠.
정치의 양극화도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인데, 프랑스 같은 경우도 사실 중도라고 할 만한 정당이 살아남아 있질 못합니다. 포퓰리즘과 극우, 극좌만 살아남은 형국인데, 한국도 이런 양극화가 진행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사실 민주당도 포퓰리즘으로 많이 기운 상황입니다만, 앞으로 수도권 화이트칼라 기반의 중도정당이 소멸하거나 최소 곤란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결국 지역 정치에도 ‘경쟁’이 필요하다
임예인: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또 찾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귀동: 맞습니다. 문제점은 분명해지고 있는데, 해결책은 난망한 상황이에요. 최소한 포퓰리즘의 득세만은 막아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노력해 나가야죠.
임예인: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없을까요?
조귀동: 있습니다. 전통적인 지역 구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호남에서 윤석열이 득점한 것만큼, 이재명은 TK에서 득점했습니다. 이번 지선을 앞두고는 광주 동구에서, 30세 청년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구의원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렸어요. 옛날 같으면 절대 없었을 일이거든요. 어쩌면 지난 몇년간 대구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이 많이 발굴되었던 것 같은 일이, 이제 호남에서 일어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임예인: 사실 서울과 수도권의 민주당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호남에서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대두하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들 텐데요. 5.18의 상징성도 있고요.
조귀동: 하지만 표심은 유동적이어야 합니다. 부산을 보세요. 부산의 표심이 유동적이니,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나 공을 많이 들입니다. 가덕도 공약에 예타 면제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가 다 경남이 경합 지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없으면 아무것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임예인: 영남도 그렇고 호남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5대 5까지 가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조귀동: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지역 조직이 돌아갈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시도당이 굴러갈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해요. 안 그러면 후보조차도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쉽지는 않습니다. 김부겸 같은 경우, 원래도 대구 출신 운동권이었고, 수십 년 동안 대구에서 정치적 역량을 축적해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 지선에서처럼, 광주에서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 시의원 후보들이 계속 나온다면, 언젠가는 김부겸 같은 정치인이 호남에서도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임예인: 혹시 제도적으로 이런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조귀동: 일단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가 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3~5인 선거구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다양한 정치세력의 진입을 도모하자는 겁니다. 지금 지방선거를 보면, 시의원/구의원 선거에 2인 선거구 위주의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소선거구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도권에서는 그나마 진보 정당이 한 석 정도 가져가는 경우가 있지만, 안 그래도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는 그런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요. 결국 거대 양당이 의석을 나눠먹게 됩니다.
임예인: 소수정당이 제도권 내로 들어오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조귀동: 소수 정당이 야당으로서 존재하면, 의사결정에 있어 견제 효과를 확실히 낼 수 있습니다. 같은 정당은 기본적으로 한 배에서 난 새끼들일 수밖에 없고, 양당 정치인들도 그렇게 거세게 싸우지 않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많아요. 이게 끊어지려면 소수정당, 소수 정치세력의 진입이 필요합니다. 결국 핵심은 경쟁입니다. 가장 오래된 모범적인 해답이 이제야 조금씩 작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임예인: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말씀 부탁 드립니다.
조귀동: 지역이 위기라고 하는데, 진짜 지역의 위기는 침몰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난파선을 어떻게 수리하고, 폭풍우를 피할 지 거버넌스에 대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나 합니다. 보통 정치개혁 이야기를 하면 중앙정치 이야기만 하는 게 보통인데, 진짜 시급히 바뀌어야하는 곳은 지역정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수정당도 국회의석에 목을 매다는데, 한국의 정치가 바뀌고 정당 구조에 변화를 주려면, 지역 정치부터 완전히 뜯어고쳐야 합니다. 지난 몇년 간 중앙 정치의 흐름을 보면 지역 토호의 악습과 부패가 중앙 정치 수준의 문제로 스케일이 커지거나 전국 단위 이슈와 연결되는 경우도 많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중앙도 마찬가지로 병들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