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지금껏 대선 결과를 좌지우지한 요소다. 이번 대선에서도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영남은 국민의힘으로 대변되는 쏠림 구도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 쏠림은 이전만큼 크지 않았다. 윤석열 후보는 호남권에서 보수정당 사상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재명 후보 역시 TK(대구경북)에서 민주당계 정당 사상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도심이 진보정당에 유리하다는 통설도, 부동산 폭등 이후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흔들리고 있다.
한국 정치의 오랜 병폐로 지적되어왔던 지역 구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전라디언의 굴레>로 지역 정치에 대해 깊은 성찰을 보여줬던 조귀동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인터뷰이: 조귀동
13년 차 회사원. 광주 풍향동, 산수동, 두암동에서 살았고 전남대 후문, 충장로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구조와 변화 과정에 대한 글을 써왔다. 경제라는 하부 구조의 변동이 어떻게 정치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이 많다. 저서로 <세습 중산층 사회>, <전라디언의 굴레> 등이 있다.
지역구도 약화의 근간에는 세대 투표가 있다
임예인: 우선 총평부터 듣고 싶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지역 표심’은 어떤 형태로 발현되었나요? 기존의 지역구도에 변화가 있었을까요?
조귀동: 영남은 국민의힘, 호남은 민주당을 찍는 전통적 지역 투표는 여전했지만, 약화되는 경향은 분명합니다. 2022년 윤석열의 득표율은 2012년 박근혜보다, 대구에서 5.0%p, 경북에서 8.1%p, 경남에서 4.9%p씩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광주에서 5.0%p, 전북에서 1.2%p, 전남에서 1.4%p가 늘어나죠. 역대 보수 후보 가운데 TK에서는 최저치, 호남에서는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임예인: 전반적으로 지역구도가 약화되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요.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조귀동: 지역구도의 약화는 세대 투표의 강화 형태와 결부되어 나타났습니다. 호남에서는 20~30대가 민주당을 대거 이탈했고, 영남에서는 40대의 이재명 지지가 뚜렷이 높아졌습니다.
임예인: 원래 청년세대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지지세가 높게 나타났는데요. 이번 선거에서 청년세대가 반민주당으로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귀동: 20~30대의 반민주당 정서와 40대의 친민주당 정서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영향이 큽니다. 40대는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상황이고, 불안정 노동의 비율도 낮습니다. 주 52시간제나 최저임금 인상 등의 혜택도 많이 받는 연령대죠. 여기에 각종 보육 지원 등 복지 정책에도 친화적입니다. 자가 소유 비율도 1980~1981년생까지는 어느 정도 높죠.
하지만 20~30대는 노동 조건이 이전보다 불안정하고 내부 분화가 심해졌으며, 주택 가격 급등으로 월급을 모아, 안정된 주거를 확보할 수도 없어졌습니다. 애초에 1인가구, 비혼 부부도 많고요.
임예인: 주택 가격 급등은 수도권에서 가장 심각했잖아요.
조귀동: 그래서 수도권을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수도권은 40대 비중이 가장 높고, 그래서 원래 민주당 지지도 뚜렷했던 지역입니다. 하지만 최근 균열이 관측되고 있는데요. 수도권 전체를 보면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신승을 거두긴 했지만, 서울과 경기의 표심이 갈렸습니다. 서울은 윤석열 후보가, 경기는 이재명 후보가 각각 5%p 가량 앞서나갔죠.
임예인: 경기도 같은 경우 원래 이재명 후보의 지역적 기반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조귀동: 그런 면도 있습니다만, 경기도 내에서도 또 다릅니다. 2020년 총선과 비교할 때 ‘서울 통근권’ 신도시의 경우 국민의힘 지지가 늘었고, ‘서울 통근권 바깥’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 서남부(수원, 평택, 안산, 화성)는 민주당 지지가 튼튼히 유지됩니다. 같은 도시 지역이라 해도, 부동산 문제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서울 통근권과, 그 외 경기도 지역의 차이가 상당했던 것이죠.
임예인: 이런 현상이 수도권만의 얘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수도권 외 지방에서도 가파른 집값 상승이 많이 관측됐잖아요.
조귀동: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광주만 해도, 학동 무등산아이파크의 가격이 8억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결과 광주를 비롯한 호남 지역에서도 2030 세대의 민주당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건 TK도 마찬가지예요. 전반적으로 보면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민주당계 후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지만, 2030 세대는 국민의힘을 찍습니다.
임예인: 세대 말고 계급적인 측면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강남 3구 등 부유한 지역에서 윤석열 후보에 몰표를 줬는데요.
조귀동: 집값이 비싼 동네에서 탈 민주당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긴 했습니다. 계급 투표 경향은 앞으로 계속되겠지만, 이번 선거의 핵심은 아닙니다. 민주당이 서울과 도시권에서 우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40~50대 대기업 화이트칼라를 핵심으로, 저소득층 자영업자와 블루칼라를 끌어들여 일종의 연합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연합이 와해되기 시작한 것이죠.
약세 지역 공략을 위한 양당의 노력은?
임예인: 다시 지역 정치로 돌아가 보죠.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약세 지역인 호남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조귀동: 윤석열 후보는 보수정당의 이전 대선 후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남 표를 얻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광주에 복합쇼핑몰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요. 이건 1987년 이후 보수정당 후보의 지역 공약이 호남에서 가장 큰 논쟁을 일으킨 경우였습니다. 또 윤석열의 정치적 행보 자체가 2020년 5.18 관련 발언에서 시작되었고요. 법정 허용 우편물을 모두 몰빵해 호남에 손편지를 보내는 등 여러 신경도 썼죠.
임예인: 이준석 대표도 호남 득표 30%를 자신하는 등, 호남에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귀동: 이준석 대표의 경우 농촌 지역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장흥신문에 이준석 대표가 방문해 지역 현안을 살피고 공약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1면에 게재되는 등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요.
임예인: 그 결과 호남권에서 보수정당 사상 최다 득표를 얻긴 했지만… 그렇게 노력을 기울인 것 치고는 썩 성적표가 좋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조귀동: 국민의힘의 호남 공략은 호남 자체를 공략하기 위한 것이면서, 경기도 등으로 이주한 호남 출신 이주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옛 개발독재 시절 주류 정당으로, 지역 차별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벗겠다는 장기적인 전략이기도 하고요. 지난 10년 지속적으로 영남에서 민주당의 득표율이 높아져온 만큼, 국민의힘도 호남표를 얻어야 한다는 사정이 강합니다.
임예인: 과거에도 이정현 등, 보수 정당 쪽에서 호남에 공을 들였던 정치인이 있잖아요.
조귀동: 왜 호남에서는 국민의힘이, TK에서는 민주당이 어려움을 겪는가 생각해보면, 결국 지역 정치 수준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나마 민주당 같은 경우 2016년 총선에서 2명이 당선되는 등 성과를 냈는데, 그건 그 당시 김부겸, 홍의락 등 정치인들이 굉장히 오래 그 지역에서 뛰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호남 지역의 경우 88년 총선부터 국민의힘 계열 정치인들의 득표율이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예요. 기본적으로 5.18 같은 사건의 영향도 많이 작용하고, 여기에 지역 정치, 지역 정치인 자체가 없었던 탓도 크죠.
임예인: 그럼 민주당은 약세 지역인 영남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조귀동: 일찍부터 부산 경남 표심을 얻기 위해 쭉 노력해왔죠. 부산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고요. 김경수 경남지사가 요구한 경남내륙고속철도를 예타 면제 사업으로 추진하고, 가덕도 공항 사업을 벌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 정부 사업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대구 경북 유세에 시간을 많이 들였고, 의도적으로 박정희 전두환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은 결과 TK에서 지지율이 상당히 높게 나오기도 했고요.
「2022 대선, 지역구도를 묻다: 조귀동 인터뷰 2/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