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제일 잘 진단하는 키워드는 불신, 즉 신뢰가 없다는 것입니다. 타진요, 광우병 파동에서 나타난 불신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법을 지키면서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넓게 믿어지는 집단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람들은 정부, 검찰과 경찰, 언론, 기업 그 어느 것도 믿지 않는 듯하며, 어디를 가나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간의 간극이 깊어져 있습니다. 신뢰를 사람 사이의 문화 차원에 한정해서 이야기하기에는, 불신이 미치는 악영향은 너무나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뢰의 부재,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근원
신뢰가 없기에, 우선 토론에 근거한 민주적 의사 결정이 불가능해집니다. 어느 쪽이 우리 모두에게 좋을까 이야기하는 것은 구성원 모두가 집단을 생각한다는 믿음 아래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신뢰가 없다면, 상대편이 들고 나오는 자료는 모두 겉치레이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게 되죠. FTA, 민영화 이슈가 대표적입니다. 둘 모두 근본적으로는 정책적 토론 이슈이지만,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이 신뢰를 잃었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이어져서, 토론할 밑바탕조차 만들어지지 못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결정된 정책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배 안에 대기하라는 선장의 안내방송을 따른 학생들이 그대로 사망했다는 것이었죠. 그 후 얼마 안 되어서 일어난 서울의 지하철 사고에서는 승객들이 차량 내에 머무르라는 안내방송을 아무도 지키지 않고 탈출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앞으로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올바른 안내방송을 해도, 피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많은 경제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근거로 합니다. 대표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통화정책은 그런 정책 발표를 국민이 믿을 때만 물가안정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선거는 51%의 득표율을 얻으면 당선될 수 있지만, 정책효과는 그 성공 가능성이 국민의 신뢰 비율과 비례하여, 국민 신뢰가 낮아질수록 성공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추가로 국민들이 서로 협동해야만 효과를 보는 정책도 있는데, 국민 서로간의 신뢰가 낮으면 일부분이 일탈하면서 성공하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경우죠.
법은 만능이 아니다: 불신 속에 증가하는 거래비용
여기에 불필요한 거래비용이 소모됩니다. 쉽게 말하면 공장장과 직원들이 서로 열심히 일한다고 믿으면 카메라 한 대에 가끔 공장을 돌아보면 되지만, 믿지 못하면 카메라 여러 대에 불시순찰도 자주 하고, 순찰하다 걸린다고 해서 직원을 해고할 수 없으니 이러이러한 경우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는 식으로 계약서도 새로 작성해야 하죠. 이중 삼중의 감시, 그리고 추가적인 계약과 계약이 거래비용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김영란법을 봅시다. (주: 김영란법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의 금품, 향응을 받을 시,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게 주 내용) 아래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저는 이 법에 대해 중립입니다. 포괄적인 금전거래를 모두 불법화하는 김영란법은 정상적인 로비활동과 부정부패/전관예우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고 국민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무원들의 실제연봉은 크게 낮아지게 됩니다. 과도한 입법으로 인해 국민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추가로, 사실은 신뢰가 없으면 법의 효력도 상실됩니다. 김영란법은 국민의 1/3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든다고 합니다. 신뢰가 떨어진 상태에서 이 법이 실행된다 한들, 부패가 사라질까요? 검찰과 경찰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강한 입법을 해도, 결국 사람들은 누가 걸려도 재수없어도 걸렸다고 생각하고, 정말 빽 좋은 거물들은 운좋게 빠져나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 수많은 룸싸롱이 성업하면서 성매매금지법을 무색하게 하고 있지만 한국은 한편으로는 음란동영상에 대한 인터넷 접속마저 차단하고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영란법도 성매매금지법과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절대로 법이 만능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위에 상술한 여러 이유 때문에, ‘불신’은 경제성장과 분배 모두에 악영향을 줍니다. Yann Algan, Pierre Cahuc과 같은 학자들은 신뢰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여러 경로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더 나아가 실증적으로 사회의 신뢰 수준이 국민소득과 양의 관계가 있음을 보였습니다. 또한 복지국가의 경우 자연히 세금도 높고 복지혜택도 높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데, 정부 불신이 높은 사회에서는 국민이 세금을 많이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믿음직해야 국민이 정부를 믿고 세금을 내고 그 복지를 향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음모론의 문제: 정당한 문제 제기까지 힘들게 한다
이러한 불신이 발생한 원인은 너무 다양해서 넘어가겠습니다. 불신을 풀어나가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먼저 국민 모두 언론을 접할 때, 정당한 의혹제기와 근거없는 음모론을 구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세월호 업무용 노트북이 발견되어 보안사항 밖에 있는 국정원 지적사항이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이건 사실이고 따라서 국정원과 세월호의 연관성에 대한 의혹까지는 맞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라는 이야기는 아직 하나의 가능성이지, 그걸 ‘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에 다음 아고라 등에서는 세월호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고 세월호가 어뢰로 침몰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일까요?
유병언 시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신에 의문점과 의혹, 음모론도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표창원 교수는 인터뷰에서 시체의 부식 상태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복제 아바타가 아닌 이상, DNA, 지문, 치아 등등으로 볼 때 유병언이 확실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새정치연합의 몇몇 의원들은 여전히 의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문을 제시할 때는 정확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증거가 틀렸다면 분명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트위터를 통해서 무분별하게 의혹제기를 하는 행태,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없는 기사들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부풀려진 측면이 있었고, 또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아니라는 음모론도 꾸준하게 대두되었지만 모든 가설들이 반박되면서 틀린 것으로 사실상 밝혀 졌습니다. 추가적으로, 음모론을 믿게 되면 주장의 논점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광우병, 천안함, 세월호 모두 음모론 밖에서도 정부의 대응에 엄청나게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이 음모론에 모이게 되면, 음모론이 틀린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이야기할 당위성을 놓치게 되어, 결국 문제 해결과 조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이야기했듯이 음모론이 사회 불신을 조장하는 문제도 크게 때문에, 음모론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요.
신뢰 회복의 기초: 정부의 투명성
동시에 정부도 신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론이 분열되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다수가 존재하면 정부도 그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우선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와 권력의 분립입니다. 권력이 분리되어 상호 견제하여 권력층이 범법 행위를 저지르기 힘들어야 정부가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정황, 그리고 검찰의 간첩사건 증거조작은 이미 법정에서 밝혀 졌습니다. 국정원 검찰 경찰 모두 이에 대해서 공개적인 사과를 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하며, 동시에 언론은 중립을 유지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문제는 정부의 투명성입니다.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하면서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음을 수차례에 걸쳐 증명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정부예산으로 벌인, 의혹을 받고 있는 수많은 정책사업들에 대해서 예산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문제없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4대강 개발, 한식세계화 사업은 모두 예산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내수부양 정책을 발표하니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내수부양 한다고 또 돈 많은 사람들에게 돈 뿌리겠구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배당소득세 인하는 그 혜택이 보통 부자들에게 돌아갑니다. LTE 방식으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을 건립한다고 합니다. 2조원의 혈세가 투입되는데 과연 재난망이 LTE를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돈이 곧 사람입니다. 정부 예산이 제대로 흘러가면 죽을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투명해지려면, 결국 단기적으로는 법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신뢰가 쌓이면 법을 줄여서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신뢰를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법을 강화하고 그 법을 통해 깨끗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김영란법이 큰 그림에서 비효율적이지만,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 통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회 계층 서로 신뢰를 회복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세월호 특별법으로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월호 특별법입니다.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대한민국에 최근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대형참사입니다. 그리고 의혹과 음모론이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유가족과 국민들이 이해할 만한 검증과 조사가 이루어지고, 문제가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밝혀지고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되는 순간, 그 모습은 신뢰를 회복시켜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최근 법학자 229명이 성명을 발표하여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속하게 일이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여전히 신뢰는 본질적으로 문화의 문제인 만큼, 사람들 스스로가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를 신뢰하는 사람과 불신하는 사람간에 서로 이해하고 왜 그런지 이야기를 하면서 교감해야 합니다. 동시에 자녀들에게 정의 못지 않게 신뢰의 문화를 교육시켜야 합니다.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이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혹시 글을 읽으면서 앞부분에서 제가 김영란법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였을 때, 음모론에 대해서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문제점을 지적햇을 때, 아니면 제가 쓰는 바른보수라는 필명을 처음 보셨을 때, 아, 이 사람은 수구꼴통이라서 어쩔수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셨다면, 이 글을 다 읽고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 더 ‘신뢰’를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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