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대선, 부동산을 묻다: 최경호 인터뷰 2/3」에서 이어집니다.
새 정부가 시행해야 할 정책은?
임예인: 새 정부가 주택 시장을 위해 시행해야 할 단 한 가지 정책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최경호: 전월세신고제를 넘어, 전월세등록제를 시행해야 하고요. 정비사업을 하긴 해야 하는데, 그냥 정비사업이면 안 됩니다. 당선인의 임기가 2022~2027년인데, 그게 2020년대 중반이잖아요. 10~20년 단위 감각으로 보면, 도시화도 포화상태고, 더 이상 신도시 개발할 곳도 마땅치 않고, 산업화가 아니라 포스트-산업화 시대고, 기후위기에도 대응해야 하고… 이런 시대정신을 생각하면, ‘그린정비사업’을 도입해야 합니다.
임예인: 그린정비사업이란 뭔가요?
최경호: 제가 만든 말인데요, 용적률 뻥튀기로 사업성을 개선하는 게 아니고, 제로에너지주택을 짓는 조건으로 그린뉴딜 자금을 투입해서 사업성을 개선하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 모두 살아남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시대니까, 공공 지원을 할 근거도 충분히 되죠. 그리고 역세권 정비같은 ‘점’ 차원 정비사업은 몰라도, ‘면’ 차원 대규모 초고밀화, 여기서 초고밀화는 넓은 주거지역의 경우는 용적률 300% 이상을 말하는데요, 그런 건 절대 안됩니다. 신도시 개발이나 용산 공원 전체 정비 사업 같은 경우에 말입니다.
임예인: 지금 부동산 상황에 쾌적한 주거환경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최경호: 이건 쾌적한 도시에 대한 낭만이 아니에요.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인구밀도는 500명/ha 에서 더 많아지면 오히려 비효율이 늘어납니다. 이게 용적률로는 대충 300% 수준이거든요. 그리고 용적률은 한번 올리면 내리는게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내릴려면 생돈을 투입해야 합니다. 용적률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임예인: 용적률이 높으면 더 많은 가구가 살 수 있으니 좋지 않나요? 공급이 늘면서 집값이 내린다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최경호: 밥을 혼자 하면 40분 걸린다고, 10명이 하면 4분만에 되는 건 아니잖아요. 역세권 같은 곳은 고밀개발해도 좋지만, 용적률 늘리기로 사업성 확보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고, 실제 서민대중의 주택문제 해결에는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많은 분들이 자꾸 컴팩트시티 이야기하시는데, 글레이저가 <도시의 승리>에서 흩어져서 문제라고 한 경우들은 인구밀도가 29명/ha 에요. 그런데 은마아파트는 세대당 3명 잡으면 벌써 550/ha가 넘어요. 이미 지나치게 컴팩트한 거죠. 제가 전에 슬로우뉴스에 쓴 적이 있습니다.
임예인: 지난 대선에선 두 유력 후보가 모두 용적률 500%를 제시했었는데요.
최경호: 실제로는 쉬운 수치가 아닙니다. 그리고 고밀개발해도 직주근접이 안되면 말짱 꽝입니다. 강남하고 판교를 2배 고밀화했는데, 각자 자기집 근처로 통근하는 게 아니라 교차 통근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에너지소비는 2배 이상이 되죠. 차라리 주4일제를 실시하는 게 용적률 올리는 것 보다 더 기후위기 대응에 도움이 될 거예요. 공간으로 해결 안되면 시간으로 해결하는 거죠. 인구의 1/5을 직장 근처에 살게 하는게 쉽겠어요, 아니면 주4일제해서 5일 중 하루 출근 안 하는게 더 쉽겠어요?
임예인: … 사실 둘 다 어렵죠…
최경호: 그렇긴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은 복지 차원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해요. 아니면 재택근무 활성화도 의미가 있죠. 그리고 용적률 500%가 되는 건, 한줄이나 두 줄로 동배치를 하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을 때나 가능하죠.
지금 용적률 900%인 경우가 몇 개 있는데, 다 주변이 오픈스페이스에요. 용적률 500%로 짓는데 가로세로 각각 3×3 줄 이상이 되면, 가운데 갇히는 동의 저층부는 영구음영이 질 거예요. 분양이 안되니 조합도 싫어할 거고. 그런 곳에 공공임대 몰아넣는다는 것도 말도 안되고…
임예인: 노후주택, 노후단지의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경호: 재건축, 재개발하는 거 좋죠. 노후주택에 계속 살라고 하는 건 사실 주거권 침해의 문제로 봐야해요. 자가점유든 임차인이든이요. 그런데 순차적으로 해야 해요.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4,400세대인데, 그 옆의 단지들이랑 모조리 한꺼번에 철거하면 전월세 시장이 어떻게 되겠어요?
문제가 또 있어요. 리스크 차원에서 앞 순번 받은 정비사업이 제일 유리하고, 심지어 뒤 순번은 노후주택에 더 살기까지 해야 한단 말이죠. 그린정비사업과 결합해서 해법을 고민해봤는데, 너무 소설 같아서 아예 <10년후 대한민국-용적률이 쏘아올린 럭비공>이라는 소설도 써봤어요.
임예인: 이젠 소설까지 쓰시나요?
최경호: 재건축재개발 사업 통과 요건에 주택의 에너지성능을 넣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예컨대 ‘이 건물은 탄소배출을 많이 하니, 건물은 아직 튼튼하지만 허물고 새로 짓는 게 전체 생애주기분석(LCA) 차원에서 배출 감소를 위해 더 낫겠다’고 판단되면 재건축/재개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러면 좋아할 정비조합이 많을지도요? 사업성은 무분별한 용적률 완화가 아니라 그린뉴딜 재원을 통해 보완하고요, 조합원들도 자기분담금을 좀 더 낼 각오를 해야하고, 정치인들도 그렇게 설득해야 합니다.
임예인: 주택의 환경, 탄소배출 등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가요?
최경호: 주택과 건설부문은 전체 에너지 소비의 36%, 탄소배출의 39%를 차지합니다. 용적률 뻥튀기 방식으로 가면 앞으로는 더 심각해질 거라는 게 문젭니다. 관련주제로 유네스코가 단행본을 내는데, 제가 쓴 내용은, 유네스코에서 진행한 수요토크쇼 유튜브를 봐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임예인: 설득이 될까요…?
최경호: 해야죠. ‘용적률 뻥튀기를 통해 내돈 안/덜 들이고 헌 집을 새 집으로 바꾸는 시대는 끝났다, 그건 역사적으로 운 좋은 몇몇 집단만 가능했던 일이다, 약오르지만 후손들도 살아남기 위해선 할 수 없다, 대신 탄소배출을 줄이는 집을 짓는다면 통 크게 지원하겠다, 그래도 어느정도 자기 분담금은 각오하시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그 부분은 정말 지지할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다 같이 망하는 거니까요.
주택정책, ‘공급자 금융’에 열쇠가 있다
임예인: 워낙 뜨거운 감자였으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부동산 담론이 너무 중산층의 아파트 구매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눈을 돌려, 저소득층을 위한 부동산 정책에서 문재인 정부는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최경호: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했죠. ‘주거복지 로드맵’이라는 것도 최초로 만들었고, ‘공급자 주도’에서 ‘수요자의 시각’으로 전환하려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수요도 없는 곳에 실적 맞추려고 공급만 때려 붓는 방식을 지양하고, 연령, 가구 규모 등 실제 소비 수요에 맞춰 주택 공급 계획을 짠 거죠. 여전히 입지와 관리 문제 등이 남아있지만, 어쨌든 공공주택의 절대 물량도 많이 늘기도 했고요. 다만 ‘공급자 금융’의 새로운 모델이 자리잡지 못한 점이 한계였습니다.
임예인: ‘공급자 금융’이라는 말은 좀 낯선데요. 어떤 개념인가요?
최경호: 주택은 초기 공급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공급자들이 조기에 이걸 분양해버리고 엑싯(Exit)하면, 이후는 소비자가 은행 빚 떠안고 사는 방법 뿐이죠. 이러면서 문제가 꼬입니다. LTV를 완화하면 금융부실의 위험이 커지면서 가격상승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LTV를 강화하면 실수요자의 접근성이 차단되죠. 공급자가 조기엑싯하지 않고, 책임지고 가야 시세차익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임예인: 공급자가 어떻게 책임을 지는 거죠? 어차피 소비자는 집을 한 번에 살 정도로 부자가 아닐 테고요. 집을 할부로 파나요…?
최경호: 딱 그런 거죠. 자동차나 가전제품 같은 다른건 다 할부로 파는 게 있는데 집은 없잖아요? 물론 거기에도 이유가 있지만, 저는 그걸 해결하자는 입장인 거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 대출받아 사는 거랑 현금흐름은 큰 차이가 없어요. 내는 원리금을, 은행이 아니라 공급자에게 내는 거예요.
대신 분양가격이 좀 비싸지긴 하겠죠. 그래도 은행에 내는 이자총액보다 할부로 인한 증가액이 더 작으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게 낫죠. 이때 원리금을 장기간에 걸쳐 다 갚도록 하면 분양주택이 되는 셈이고요, 이걸 원리금보다 싸게, 이자율 수준에서 받으면 임대주택이 되는 셈이죠.
임예인: 은행이 빠진다고요? 오늘날 금융 없이 시장이 굴러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최경호: 은행이 빠지는 게 아닙니다. 은행은 개인보다는 공급자로부터 장기적으로 돈을 회수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금 개발 금융구조는 은행이 공급자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공급자는 완공 직후 다 갚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임예인: 그런 구조는 어쩌다 형성된 건가요?
최경호: 과거에는 은행도 돈이 없었고, 정부가 수출산업에만 몰아주도록 규제했어요. 그래서 ‘선분양제도’가 공급자 금융 역할을 했었죠. 다주택자가 그걸 분양 받아서 전세로 세입자에게 넘겨주는 매개 역할을 한 겁니다. 그래서 전세 보증금은 소비자금융이자 공급자금융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역사적으로는 다주택자들의 공로를 인정합니다. 그분들 없었으면 당장 돈 없는 사람들이 어디서 살 수 있었겠어요?
임예인: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서 금융 선진화도 많이 이뤄졌는데요. 새로운 방식의 금융이 시도되진 않았나요?
최경호: 금융이 선진화되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도 자리잡았습니다. 기업의 신용도나 담보가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의 현금 흐름과 사업성을 계산하여 대출을 해 주는 방식인데요. 다만 이것도 기본적으로는 분양 직후 상환하는 거죠.
앞으로는 공급비용을 훨씬 더 장기적으로 회수해도 되도록 공급자 금융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윤석열의 ‘역첫집’이나 ‘청원주’도, 송영길의 ‘누구나집’도, 원희룡의 ‘반반주택’도, 저희 사회주택도 성공할 수 있어요. 다들 초기 공급비용이 빨리 회수되지 않는 모델이거든요.
임예인: 기존에 없던 모델이다 보니 실제 적용이 쉬울 것 같지 않아요.
최경호: 리스크 관리가 문제긴 합니다. 그동안 은행은 주택 공급자에게도 이자와 수수료를 받고, 분양 후엔 주택 소비자에게도 이자를 받았어요. 그런데 공급자 금융이 자리잡으면 공급자 한 군데에 장기적으로 돈이 묶이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자연히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커지는데, 은행 입장에서 그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별 가구를 일일이 상대하는 것 보다, 공급자하고 기관 대 기관끼리 협의하고, 제도권의 영역에서 리스크 관리하는 걸 더 선호할 수도 있겠지요.
임예인: 주택담보대출을 보면 몇십 년 만기가 보통이잖아요. 그럼 어차피 돈이 장기적으로 묶이는 것 아닌가요?
최경호: 그런데 그 경우, 사실 은행들도 정말 수요자가 그걸 몇십 년 동안 평생 벌어서 갚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집값이 오르면 팔아버리고, 대출도 전부 털 거라고 기대하는 측면이 있죠. 하지만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는 장기적인 공급자 금융이 실제로 작동해요. 연 1%로 30년간 빌려주고 막 그래요.
임예인: 그런데 금융자본은 수십년 씩 놔두는 것보다, 빠른 회수를 선호하지 않나요?
최경호: 일반적인 투자는 원금과 이자를 조기회수해서 빨리 엑싯하는 걸 선호하죠. 하지만 이자율만 좀 적당하면 그냥 두고두고 넣어놓는 걸 좋아하는 돈들도 있어요. 연기금이나 공제회가 대표적으로 ‘조기상환’보다 ‘장기배당’을 선호하는 돈줄이에요. 그런 돈이 주택공급에 들어오면, 공급자가 훨씬 편해지는 거죠.
임예인: 하지만 연기금이든 공제회든, 안정적인 ‘수익’을 원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민간이라면 몰라도 공공주택 같은 경우 그런 ‘수익률’을 맞춰주는 게 가능할까요?
최경호: 맞아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같은 경우 특히 그렇죠. 예를 들어, 임대주택 지어서 생기는 수익률이 2%라 치고, 연기금의 요구수익률이 4%가 됐다고 쳐 보죠. 그땐 정부가 그 차이 2%를 보조해주자는 거예요.
임예인: 그럼 결국 정부가 돈 들여 짓는 거 아닌가요? 기존 공공주택과 어떤 점에서 달라지는 거죠?
최경호: 정부가 보조하는 금액에 비해, 실제로 조달할 수 있는 돈은 50배가 되는 거예요. 예컨대 정부가 1조를 투입하면, 연기금 50조원을 빌려와서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죠. 만일 차이가 1%면 100배의 돈을 빌려올 수 있어요. 그것도 빨리 안 갚아도 되는, 아니 빨리 안 갚는 걸 더 좋아할 수도 있는 돈을요.
만일 정부가 5조를 투입하면 500조예요. 우리나라 예산이 다 합쳐서 500조라던가요? 사실 이런 ‘이자 차액 보전’ 제도는 이미 있는 제도이긴 해요. 저는 주택공급자 금융에 이걸 대폭 활용해서 연기금을 동원하자는 거구요.
임예인: 하긴, 연기금은 투자 시장에서 엄청난 큰손이지요.
최경호: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공급자 금융은 거기까지 다 탈바꿈되지는 못했어요. 한두 정권만으로는 안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문제는 지금 연기금은 오히려 상업부동산에 간접투자로 들어가서 단기 수익에 더 치중하는 편이죠. 그러니 국민들의 노후보장을 위해서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임예인: 결국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미완에 가까웠다는 말씀이시군요.
최경호: 네. 사실 처음에 개혁의 방향을 이렇게 잡은 것이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10년 주기설에 따라 2018년 쯤엔 가격폭락이 올 걸 더 걱정했다는 소문도 있지요… 실제 2017년 상황은 충분히 그런 시그널이 많기도 했어요. 어쨌든 정리하면, ‘다양한 시도와 모색을 했으나 실적은 아직은 미비하고,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는 절반의 진전을 이뤘다’고나 할까요?
임예인: 정권 후기에는 LH 사태 같은 문제도 있었죠.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완전히 날려버린 사건이었어요.
최경호: LH사태도 직원 개개인의 일탈 여부를 가리기보단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해요. 군사작전하듯 후보지를 발표해서 토지를 수용하고, 땅 팔아 번 돈으로 임대주택을 짓고 하는 한,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터질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라고 봐야죠. 이것 때문에 공공신뢰도가 추락했는데, 공공이 신뢰를 잃는건 정권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봅니다. 이것도 제 기고문이 있는데요,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방을 위한 주택정책, 핵심은 ‘포도송이형 국토’에 있다
임예인: 다들 서울 이야기만 하는데, 인구 절반 이상이 수도권 밖에 살잖아요. 부동산 정책이 주요 지방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최경호: 지금 같은 식으로 수도권 용적률 풀고, GTX 역 주변에 업무지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울 출퇴근용 아파트 단지 만들고 하는 식이면 계속 쪼그라들겠죠. 쓰레기 매립장이나 송전선/발전소 설치 가지고 갈등도 심화되고요. 서울의 식민지가 되는 거죠. 반면 앞으로 ‘수요분산’, 즉 ‘균형발전’ 혹은 ‘특성화 발전’으로 가겠다고 하면, 지역 곳곳이 발전한 ‘포도송이 국토’가 될 수 있을 거고요.
임예인: ‘포도송이 국토’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경호: 저는 지방의 문제는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도시계획이나 철도정책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도심이 아니라 외곽에 고속철도역을 만들고, 역 주변은 택지개발을 하는 방식이 문젭니다. 역에 내려서도 한참을 가야 업무를 볼 수 있으니 효율성도 떨어지고, 원도심은 쇠퇴하니 또 그거 해결한다고 도시재생사업하고 하는게 웃지못할 일이지요.
임예인: 맞아요, 고속철도역 근처 보면 허허벌판인 곳도 많았죠.
최경호: 원래의 기차역에 고속철이 들어가게 했으면 원도심 쇠퇴 문제도 없었을 텐데요. 보상비니 어쩌니, 또 신개발해서 개발이익 낼 생각에 생긴 문제죠. 세상에 공짜가 없습니다. 들일 돈을 안 들이면 어디선가 대가를 치루게 되는 거죠.
임예인: 지금은 수요 분산은 완전히 요원한 꿈이 돼 버렸고, 오히려 수도권 집중이 심해지고 있어요.
최경호: 필요한 건 ‘다른 곳도 서울 부럽지 않게’ 만드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수도권 집중을 심화하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인기지역을 계속 고밀화하면, 결국 특정 지역만 비대해진 ‘수박형 국토’가 될 거예요. ‘수박형 국토’의 시나리오는 두 가지겠지요.
주거를 넘어, 에너지와 기후, 지속가능성까지 생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임예인: 어떤 시나리오죠?
최경호: 인구가 그만큼 지속 유입이 되면 시나리오1. ‘바벨탑의 성공’으로 갈 수도 있어요. 초고밀 도시의 주택이 완판되는 시나리오죠. 그래도 에너지와 쓰레기 문제는 남아요. 그것도 안 되면 시나리오2. ‘도시의 부도’로 가게 돼요. 초고밀도시를 만들려다가 미분양 사태에, 자칫 환경 재앙까지 벌어지는 시나리오죠.
제일 좋은 건 포도송이 국토로 가는 거예요. 수요가 분산되며 집값도 안정되고, 에너지와 폐기물 문제도 해결하고, 대외개방성도 유지되는 시나리오3. ‘동방의 등불’이죠. 아마 최악을 대비해야 하겠지만, 일단은 ‘동방의 등불’ 시나리오로 가려고 애를 써보려고요. 이번 지방선거가 고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임예인: 사실 여러 지역으로 수요가 분산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지만, 수도권 집중을 피할 수만은 없을텐데요. ‘바벨탑의 성공’ 시나리오에도 문제라는 에너지와 쓰레기 문제는 뭔가요?
최경호: 사람들이 자꾸 홍콩 용적율이 1,500%다 이야기하는데, 홍콩은 겨울철 난방비 걱정이 없고 오히려 여름철 냉방이 문제인 곳이에요. 집을 촘촘히 지어 해를 가려도 문제가 안된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거기는 습해서, 촘촘히 지을 때 일조보다는 환기가 더 중요한 이슈예요.
임예인: 한국은 난방 문제도 있죠? 요즘 서울은 쓰레기 매립장 문제로도 골치를 앓고 있고요.
최경호: 홍콩과 달리 우리나라는 난방비가 이슈가 됩니다. 일조가 중요하지요. 개별 가계에도 그렇지만 기후위기대응이라는 사회적 과제에서도 그렇습니다. 기후의 차이를 무시하고 도시계획을 베껴오면 안됩니다.
임예인: 사실 용적률 1,500%의 아파트 풍경을 보면 별로 따라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최경호: 그리고 홍콩은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배후지에, 다국적기업이 모인 비즈니스 허브로서의 경쟁력 덕분에 그 고밀의 도시가 어쨌든 떠받쳐진 거예요. 그럼에도 에너지 순환 차원에선 자립이 안되죠. 쓰레기 매립장 문제로 갈등이 있고, 전력 자급도 지금은 간신히 하지만 비상시를 대비해서 중국의 그리드에 편입되어 있거든요. 홍콩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찬반 의견을 떠나서, 초고밀도시가 된 순간 아마 독립은 힘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도 글로벌 경쟁력은 키워야겠지만, 인구나 에너지나 쓰레기의 배후지가 감당이 될까요?
임예인: 한반도에 많은 시사점을 주네요. 대선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렸는데, 주거의 미래까지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최경호: ‘아파트지구’ 제도라고 해서 그 땅엔 아파트 밖에 못 만들게 하는 제도가 1976년에 생겼어요.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아파트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을 지은게 아니라, 산업화와 도시화에 맞춰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기획 차원의 필요성에 의해 생겼던 거죠.
이 아파트지구 제도는 2003년에 폐지되는데요, 이듬해인 2004년에는 드디어 소비자의 아파트 선호가 단독주택을 앞질러 1위가 됩니다. 뭐 이젠 지구지정을 안 해도 모두가 아파트를 짓고 싶어하죠.
임예인: 한국의 아파트 단지가 그만큼 주거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최경호: 제 얘기는 아파트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선호’라는 것이 만고불변의 것이 아니고, ‘제도’에 따라 형성되기도 하고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이런 선호를 만드는데 한 세대 정도의 시간과 공공의 개척과 각종 지원, 건설사들의 호응과 연구가 있었던 거죠.
주거중립성이나 그린정비사업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잖아요? 정말 필요하다면 꾸준히, 새로운 선호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만들어 나가야죠. 공허한 캠페인으로 끝날 게 아니라, 대안으로써 매력을 높여가야 하고, 책임감 있게 설득해 나가야만 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면 주거안정은 주택정책으로는 안될지도 몰라요.
임예인: 네?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최경호: 도망가려는 게 아니고요. 저야 주택정책 전공자니까 주택 이야기를 계속 할 거예요. 다만 주택에 목을 메는 이유가 사실은 노후보장이나 자녀 교육때문이라면, 그 문제를 풀면 의외로 주택문제도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아까 유동성이나 국토계획이 주택정책 영역 밖에 있다는 이야기하며 말씀드렸던 것처럼, 주택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은 다른 영역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임예인: 예시를 하나 들어주신다면…
최경호: 복지국가론에서는 ‘복지국가의 4대기둥’이라고 해서 주거, 사회보장, 교육, 보건을 꼽는데, 서로 다른 기둥끼리 관계가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학군제가 아니었으면 지금 강남이 지금 강남이겠습니까? 사교육이 아니었으면 대치동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노후보장이 잘 되어있으면 이렇게 부동산에 목숨을 걸까요?
임예인: 하긴 그렇네요. 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최경호: 네. 여기에 21세기 대한민국은 에너지(+쓰레기), 교통, 인터넷, 돌봄까지 해서, ‘복지국가의 8대기둥’을 함께 생각해야 비로소 문제가 풀릴지도 모릅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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