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의 성과는 나빴고, 이로 인해 많은 민심이 떠났다. ‘집 팔 기회를 드리겠다’는 정책 책임자의 발언은 웃음거리가 됐고,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빌라, 다세대의 전월세까지 치솟으며 서민 주거 전체가 흔들렸다.
새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부동산의 해법을 찾기는 힘들다. 책임론의 차원을 넘어, 그 이상의 논의는 불가능할까. 미래의 주거 정책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돈 안 되는 부동산 전문가’, 주거중립연구소 수처작주 최경호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인터뷰이: 최경호
학부에서 건축,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사회주택 비중 세계1위인 네덜란드에서 주택 제도와 거버넌스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다가,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장을 맡았고, (사)한국사회주택협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으로 ‘전세에 살든 월세에 살든 자가에 살든 모두 주인이다’라고 혹세위민을 시도하고 있다. 집을 가져도 욕먹고 안 가져도 욕먹을 운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패’라 부르는 세 가지 이유
임예인: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민주당에 승리를 안겼던 서울이, 이번에는 윤석열 후보의 손을 들었습니다.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까요?
최경호: 1/3 이상이라고 봅니다. 전 인구집단에 걸쳐서 다 부동산에 실망했죠. 『모두가 기분 나쁜 부동산의 시대』라는 책이 나올 정도였잖아요. 저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임예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제로 어떤 점이 문제였다고 보시나요?
최경호: 사람들의 불만은 크게 1) 집값 폭등, 2) 전세난, 3) 대출 규제의 불편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민간임대등록제, 임대차 3법 제정 이후의 여러 혼란도 있죠. 민심이 떠난 건 정책 뿐 아니라, 일부 여당 인사들의 잘못된 인식이나, 내로남불로 보인 행태가 준 실망감 등도 크다고 봅니다.
임예인: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인 것은 역시 집값 폭등이었는데요. 문재인 정부 들어 이렇게까지 가격이 오른 이유가 뭘까요?
최경호: 크게 3가지 문제입니다. 1) 유동성 관리, 2) 수요 분산, 3) 재건축 및 재개발(정비사업)의 대안 모델 만들기 등이 바로 그것이죠. 그러나 이건 ‘최근 폭등’의 원인이겠고요, 우리나라 주택 문제의 근본에는 ‘공급자 금융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하나씩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먼저 유동성 관리 실패부터…
최경호: ‘유동성 관리’는 사실 주택정책만의 영역은 아닙니다. 집값 잡자고, 저금리를 고금리로 바꿀 순 없죠. 저금리로 인해 시장에 돈이 풀렸고, 박근혜 정부 시절 대출규제 완화로 주택분야로 돈이 더 몰렸어요. 코인 시장이 커질 때 저는 사실 ‘돈이 저쪽으로 몰려가면 집값은 좀 잡히려나’ 했는데, 코인으로 돈 버신 분들이 또 부동산에 통큰 투자를 하더군요. 이건 실패라기 보다는, 불가항력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Q. 그런데 코로나19 위기로 돈이 더 풀리기도 했죠.
최경호: 그렇죠. 세계적으로도 코로나 이후 부동산가격이 폭등했죠. 시중에 돈이 얼마나 많은지, 2021년 4월에 SK아이이테크놀로지 공모주 청약에 이틀 만에 81조 원이 넘게 몰렸습니다. 2019년 주택도시기금의 연간 운용액이 75조 원인데 말이죠.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이 그렇게 힘이 센데, 세금 좀 올린다고 주택 분야로 몰리는 돈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유동성 차원에서는 규제만 할게 아니라, 유동성을 흡수하는 방안이 한편에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국민주 리츠 같은 거요. 그래도 흡수효과가 미지수인데, 거꾸로, 연기금도 부동산 투자에 나섰으니…
Q. 수요분산의 실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최경호: ‘수요분산’은 국토계획 차원의 이야기, 즉 균형발전 정책입니다. 그게 없이는 강남, 서울 도심 선호를 막지 못하죠. 과거 신도시들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공급효과가 있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심진입 대기수요를 서울 주변에 포진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허나, 문재인 정부에서 균형발전 담론은 사라졌고, ‘강남 대체제’를 만들지 못한 것이 최근의 집값 폭등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하지만 균형발전과 같은 국토계획 역시, 주택정책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이고 실패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주택정책 그 자체는 아니지요.
임예인: 마지막으로,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대안 모델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하셨는데요.
최경호: 사실 지금와서야 집값이 폭등해서 난리지만, 박근혜 정부 말기까지만 해도 미분양 걱정하고 뉴타운 수습하기 바빴어요. 대기업 건설사들도 몸 사릴 때거든요. 2017년 초까지도 하우스푸어 이야기가 나왔어요. 누군들 쉽게 정비사업 대안 모델 같은 거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싶긴 합니다.
그럼에도 기존의 ‘용적률 뻥튀기’ 중심의 정비사업에 대안을 추진해나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주택을 철거하면, 당장 생겨날 멸실효과가 임대차시장에 줄 충격을 걱정하며 재건축을 미뤄왔죠. 집은 낡아가고 도심수요 분산은 안되니, 짐이 너무 무거워졌습니다. 대안적인 정비사업 모델을 만들어 내긴 했어야 하는데, 그새 가격이 급등해버렸죠. 잠깐이지만 어쩌다 공무원을 했던 제 입장에선, 누워서 침뱉는 모양새라서 뼈아픈 부분이긴 합니다…
정책뿐 아니라, 정무에서도 발생한 혼란상
임예인: 메시지의 실패도 짚고 싶습니다. 정권 초기 김수현 사회수석의 ‘집 팔 기회를 드리겠다’ 발언은, 실제 정책 방향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잖아요. 실제로 주택 구입을 미룬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요.
최경호: 박근혜 정부는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으로, 훗날 가격상승에 영향을 미쳤죠. 이번 정부는 ‘집 팔 기회를 드리겠다’는 발언으로 ‘세금으로 다주택자 때려잡을 테니 가격 내려가면 사라’는 메시지를 던졌고요. 결과적으로 둘 다 무책임했다고 봅니다. 자가는 물론 임차 부문도 다 마찬가지인데요. 접근성 개선이나 주거 안정 문제는 시장방임으로도, 세금만으로도, 도덕주의로도 풀 수 없습니다.
임예인: 하지만 최소한 시장에 맡기는 게, 이번 정부처럼 혼란을 주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최경호: 시장에 전부 다 맡겨서 잘 된 사례 있으면 알려주세요. 사실 박정희, 전두환 때도 냉온탕을 오갔습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렇죠. 이명박 정부 때 발표된 정책만 20번이에요. 17번인 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더 많아요.
임예인: 이번 정부의 부동산 문제는 정책 뿐 아니라, 정무적인 부분에도 있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최경호: 맥락이 같은지는 몰라도, 저도 정무적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컨트롤 타워가 앙상했고, 후반에는 붕괴했습니다. 후반의 변창흠 장관 등판이 늦었고, 공급정책을 궤도에 올리기 전에 LH 사태로 그만두게 된 부분은 안타까운 사고였지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공급 대책이 흔들린 차원을 넘어, 공공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 부분은 현 정부를 넘어 모두의 뼈아픈 손실입니다.
임예인: 흔히들 ‘공급 늘리면 된다’고 하는데, 사실 공급 정책의 효과가 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빨라야 다음 정권에서나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러다 보니 공급 정책이 고장난 샤워기처럼 극단적인 온수와 냉수 사이를 오고 간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최경호: 주택 공급에는 시차가 나는게 필연이다보니, 냉온탕을 오가는 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에요. 네덜란드에서도 70년대에 그런 적이 있었어요. 자가 소유를 진흥했던 자유당 정부 시절에는 시장에서 미분양이 나서, 정부가 사회주택 사업자들에게 그 집들을 사들여서 사회주택으로 쓰라고 부탁할 정도였죠. 반대로 사회주택 좋아하는 노동당 정부 시절에는 집값이 오르면서 사람들이 아우성쳤고요.
임예인: 혹시 한 정부 안에서 공급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 있을까요?
최경호: 없을 걸요? 한 정부가 10년을 하면 모를까. 다만 ‘인허가 실적’을 보고 5~6년 뒤 이후 상황을 점치고 투자에 나서는 경우, 그 때문에 집값이 변동할 순 있겠지요. 그건 실제 수급상황이 아니라 심리 때문이지만, 그 또한 포함해서 정책을 짤 필요는 물론 있습니다. 그래서 꾸준한 공급이 필요한 거고요.
부동산 정책의 결정적인 자살골: 민간임대등록제
임예인: 실패의 장면들이 너무 많긴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하나만 꼽을 수 있을까요?
최경호: 글쎄요. 너무 많은데… 우선 민간임대등록제를 시행하면서 ‘신규 매입’과 ‘이후 매각차익’에 인센티브를 준 부분입니다. ‘기존 보유주택의 투명한 등록’이나 ‘세입자에 대한 혜택’에 연동해서 인센티브를 부여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등록실적에 급했던 실무선에서의 정책굴절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주택자의 매집과 매각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되면서 상황이 꼬였습니다.
임예인: 민간임대등록제에도 의의가 없진 않았잖아요. 갱신청구권을 보장하거나, 임대료를 몇 % 이상 올리지 못한다거나 하는 규제도 있었고요.
최경호: 기존 다주택자가 소유한 주택을 투명하게 등록하는 건 저도 대찬성입니다. 필요하면 인센티브를 줄수도 있지요. 하지만 신규 매입 주택까지 혜택을 준 부분은 이해가 안가요. 어차피 임대차법이 개정되면서, 계약갱신권은 모든 임차인들에게 적용되었거든요. 등록임대주택에 대한 혜택을 주지 않아도, 임차인은 2+2년을 살 수 있게된 거죠.
물론 민주당 입장에서도 예상 밖의 상황이긴 했습니다. 2020년 임대차법 개정은 의외였어요. 코로나로 180석 압도적 다수당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원래 민주당은 ‘민간임대등록제’를 통해 등록한 주택만이라도, 4~8년 계약갱신권이 작동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런데 임대차법 개정으로, 줄 필요 없는 인센티브를 준 꼴이 되어버렸죠.
임예인: 그런데, 정작 지금 민간임대 등록한 다주택자들은 사기 당했다고 울상이던데요.
최경호: 그렇게 크게 손해보신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시세차익이 안 나면 양도세도 안 낼텐데요. 물론 주택의 유지관리나 기타 비용지출이 있으셨으니 계산이 꼬이긴 하셨을 거예요. 이런 게 부동산 개발입장에서는 ‘미분양리스크’만큼 무서운 ‘공공리스크’죠. 당황스러우실 거라는 데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임예인: 뭔가 엇박자가 난 느낌이네요.
최경호: 그렇죠. 결과적으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인상률 제한이 결국 일반 임대차시장에도 도입되었으니, 임대사업자로 등록된 개인들이 하는 ‘등록임대주택’에 특별한 지원을 해야 할 근거가 무너진 셈이죠. 또 4~8년이라도 세입자의 주거가 안정된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지만, 이를 위해 임대사업자들에게 부여한 인센티브가 너무 과했어요. 임대시장의 투명화와 안정적 관리라는 취지보다는 주택가격 상승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부동산 정책의 자살골은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한 해트트릭이었다
임예인: 그럼 다음 질문을 드려 볼게요.
최경호: 잠시만요. 사실 또 떠오르는 게 있어요.
임예인: 역시 한 가지만 꼽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최경호: 이게 제가 최근 제일 답답해 하는 것인데요, ‘전월세 등록제(신고제)’를 계약갱신청구권과 인상률제한제와 같이, 혹은 먼저 도입하지 않은 것이에요.
임예인: 그 세 가지가 소위 ‘임대차 3법’이죠?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차기간을 2+2년으로 늘린 법이고, ‘인상률제한제(전월세상한제)’는 임대료 상승폭을 5% 이내로 제한한 법이고요. 이 둘은 비교적 이해가 쉬운데, ‘전월세신고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최경호: 지금은 주택이 임대용인지 실거주용인지가 쉽게 안 드러나죠. 신고제는 계약체결하면 신고를 하라는 거니까요. 저는 신고제 보다 ‘등록제’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자가 아니라 집을 등록하는 걸로요. 집주인이 실거주하려면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집을 등록에서 해제하도록 하는 거죠. 이게 시장경제의 원칙에도 부합합니다. 렌터카도 다 등록하잖아요. 집도 임대시장에 내놓은 상품인지, 자기가 살 거주용인지 등록을 하라는 거죠.
임예인: 전월세 신고제가 다른 두 제도에 비해 늦게 시행되었죠? 게다가 실제 계약 체결수에 비해 신고된 거래수가 훨씬 적어서, 아직 데이터로서의 가치도 충분치 못하다고 들었어요.
최경호: 당시에 행정부가 준비부족을 이유로, 3법 중 2개만 먼저 시행했죠. 결국 집주인이 사는지 세입자가 사는지 데이터가 수집되지 못했습니다. 서로 자기가 유리한 통계만 들고오니, 현장에서도 혼란이 계속됐어요. 전월세신고제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실거주한다고 거짓말하고 임차인 쫓아내네 어쩌네 하는 갈등의 소지는 줄일 수 있었을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31년만에 이 고통 치루고 한 발 더 나가서 약간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차원에서, 원점회귀는 반대합니다.
Q: 한국인은 삼세판의 민족이죠. 하나만 더 말씀해주신다면?
최경호: 마지막 한 장면은… 일부 여당의원들이 나섰던 ‘1가구 1주택 법제화’라고 하겠습니다. 지금도 모든 가구가 주택을 하나씩 가져야 한다는 1가구 1주택주의, 국민개택주의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건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실현 불가능합니다. 그걸 인정하고,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Q: 그런데 1가구 1주택 법제화는 애초에 망상(…)에 가까운 것 같은데, 이게 실제로 부동산에 영향을 준 건 아니지 않나요?
최경호: 물론 당위론에 가깝지만, 정책기조나 사람들의 심리, 여당에 대한 신뢰도에는 영향을 줬죠. ‘야, 이제 내집 마련이 쉬워지겠구나’라고 생각한 사람들 보다는, … 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선의는 인정하지만, 요는 ‘1가구1주택’을 외치며 ‘국민개택주의’로 갔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주거중립성 주의자’다보니… 뒤에서 자세히 말씀드릴께요.
부동산은 서울 표심을 어떻게 바꾸었나
임예인: 이번에는 부동산이 ‘표심’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좀 얘기해보죠. 서울 표심을 보면 부동산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는데요.
최경호: 글쎄요. 원래도 그분들은 그랬지 않았나요? 탄핵 직후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넉넉히 앞선 경우가, 한국사에서 특이한 경우였죠. 정확히 분리된 통계는 못 봤지만, 그때도 자산계층은 주로 홍준표나 유승민을 찍지 않았을까 싶어요. 전국적인 득표를 살펴보면, 이번 이재명 후보는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최다 득표를 했고요.
임예인: 사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개표 초반에는 이재명 후보가 앞서가다가, 중반 즈음 강남 3구 투표함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윤석열 후보가 역전했죠.
최경호: 강남구는 서울에서 세입자 비중이 제일 큰 자치구이기도 해요. 대도시일수록 세입자 비중이 크니, 서울에서 1위면 전국적으로도 1위가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 동별 투표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이 높게 나온 동네가, 임차인도 은근히 많은 동네거든요. 서울시내 임차비중 1-3위가 강남구, 관악구, 용산구에요.
임예인: 강남구 유권자라고 해서, 반드시 부자고 자산가라는 법은 없다는 거군요.
최경호: 물론 관악구 세입자와 강남구 세입자의 경제적 형편은 많이 다르겠지요. 강남구의 임차인은 다른 곳에서는 임대인일 확률도 높고요. 아무튼 ‘잘 사는 동네’라고 해도 다양한 표심이 섞여있고, 꼭 종부세 같은 요소만으로 결정됐다고 볼 순 없다고 생각해요. 임대차법이 급히 도입되면서 빈틈이 있었던 점, 예컨대 실거주 핑계로 세입자를 쫓아내는 걸 막지 못하는 점이라든지, ‘매물감소 착시효과’ 등이 세입자 표심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이슈는 복잡해서 사후분석하기 쉽지 않아요.
임예인: 종부세 등 부동산 세금 정책 논란이 결정적인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최경호: 자산계층은 탄핵 같은 정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원래 민주당에 투표하는 비중이 낮습니다. 이번 대선 결과를 가지고 새삼스럽게 세금에 반응한 계급투표라 할 건 아니죠. 오히려 ‘정권의 부유층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요? 이것저것 귀찮고 번거롭게 구네, 나는 그냥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건데, 나와 내 욕망을 죄인취급해? 당해봐라, 이런 심리죠.
임예인: 그런데 대선 이후 윤석열 인수위 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세금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부동산 감세, 세금 완화, 종부세 환급 등 부동산 세금 완화 메시지… 이건 어떻게 보세요?
최경호: 지방선거 앞두고 그러는 것일 텐데요, 그런다고 그 표 안 옵니다. 애초에 감세와 작은 정부가 철학이라면 모를까, 선거 앞두고 세금 가지고 어떻게 해보려는 것 자체가, 자신이 불리한 전장에서 자꾸 싸우려 드는 거죠. 오히려 인수위가 더 신중한 것도 같네요.
임예인: 서울 화이트칼라는 민주당을 떠받치는 핵심 세력이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들마저 이탈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여기에 부동산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최경호: 동의합니다. 40대 투표율도 떨어졌다면서요. 집 팔거나, 살까 말까 하다가 안 산 가정은 부부싸움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이재명후보가 역대 민주당 후보 중 최다득표를 하기도 했죠. 부동산 때문에 실망하면서도, 윤석열 후보가 너무 싫어서 집결한 걸까요? 그렇게 보면 민주당 입장에서도 사실 ‘역대 최다득표’를 좋아할 상황만은 아니죠.
임예인: 혹시 좀 더 차분하게 좋은 정책 성과를 얻을 방법이 있었을까요?
최경호: 앞서 ‘전월세 등록제’ 이야기를 했지만 그걸로도 부작용을 완전히 잡을 수는 없었을 거고요. 임대차 3법은 언제 도입했어도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꾸준히 공급을 많이 하고 정비사업도 하는 게 정론이지만, 막상 2010년대 중반처럼 미분양 걱정하는 시점에, 공급 인허가 내는 배짱은 쉽지 않아요. 민간 건설사도 망설일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경기변동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공공주택과 같은 ‘시장 바깥에서의 공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제 생각일 뿐이고 인기 있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제 연구소 이름처럼 자가든 전세든 월세든 마음편히 사는 ‘주거중립성’을 추구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뿐이겠죠. 하나로 해결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고 봅니다.
임대차 3법은 정말로 악법인가?
임예인: 앞서 말씀하신 내용 중에 다소 낯선 개념이 나왔는데요. 임대차 3법으로 인해 ‘매물감소 착시효과’가 나타났다고 하셨는데, 이거 어떤 개념인가요?
최경호: 평소 매물도 10개, 집 찾는 사람도 10명이었던 시장을 예로 들어 보죠. 그런데 10개의 매물 중 5개가 계약갱신권을 행사했다고 해 보세요. 매물이 절반으로 뚝 줄어든 것 같지만, 그만큼 집 찾는 사람도 줄어들면서 수요:공급은 여전히 5:5거든요. 경쟁률 변화는 없지요. 하지만…
임예인: 하지만 집 찾는 사람 입장에서는 차이가 없진 않았잖아요?
최경호: 그렇죠. 1) 전에는 그래도 내가 10개의 매물 중 고른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젠 5개 밖에 구경을 못한다는 점, 2) 계약갱신된 곳은 아무래도 수요자가 만족하는 곳일 테니, 시장에 나온 5개는 아무래도 수요자의 눈높이에 못 미칠 거라는 점 때문에, 개개인들 입장에서는 매물이 줄어든 걸로 보이죠.
여기까진 착시효과라 해도, 증여나 실거주로 인해 실제로 줄어든 물량까지 있으니, 전에는 10명이 10개를 봤다면, 지금은 5명이 4개, 그 중에서도 좀 맘에 안 드는 4개를 보게 되어서 체감효과는 더 컸을 거예요. 하지만 증여분을 빼면, 갱신권 행사한 집은 이번에 시장에 안나왔을 뿐 집이 사라진 건 아니죠.
임예인: 그래도 결과적으로 집 찾는 사람 입장에서 나쁘긴 한 것 아닌가요?
최경호: 당장은 그렇지요. 하지만 언제 도입되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진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거에요. 일단 증여로 인한 매물 감소는 제도 도입초기의 진통 정도로 보고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거주로 들어간 가구는, 기존에 임대해서 살던 곳이 임대매물로 나왔겠죠. 처음 임대차보호법이 생기면서 계약기간이 1년이 되었고, 1989년에 2년으로 바뀌었고, 31년만에 간신히 2+2년이 되었어요.
무기계약으로 가는 게 역사적으로는 가야할 길입니다. 다들 계약기간이 1년이었던 시절 기억은 나세요? 지금은 2년인게 자연스럽잖아요. 그런데 1년으로 줄어들면? 집 찾기야 더 쉬워지겠죠. 그래서 1989년 이전, 아니 계약기간 개념도 없던 1981년 이전으로 되돌아가시는게 낫겠어요? 아니면 우리 자녀들은 무기계약이거나 무기한 갱신 가능한 세상에서 사는게 낫겠어요?
임예인: 그런데 무기계약으로 간다고 하면, 사유재산권 침해 이슈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집을 처음 살 때는 이런 제도가 없었으니, 소급적용이 힘들 것 같기도 하고요.
최경호: 재산권이면 사용/수익/처분권인데, 자기가 임대용으로 ‘사용할 자유’를 보장해 인정해줬는데 뭐가 문제죠? 안에 사는 사람을 마음대로 쫓아낼 수 있어야 재산권이 지켜지나요? 집 안 부수고 성실하게 임대료 잘 내고 있는데?
임예인: 하지만 수익 실현이나 처분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은 있잖아요.
최경호: 그러면 임대주택 등록에서 해제해서 자기가 쓰면 되죠. 소유주가 실거주하면 계약연장 안 할 수 있게 보장했잖아요. 임대용으로 수익도 낼 권리도 보장합니다.
다만 계약갱신요구의 실효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인상률을 좀 제한해서, ‘수익권’ 자체가 아니라 수익의 규모를 일부 제한하는 건데요, 이런 제한은 주택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 이걸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하면, 지금도 그런 침해는 일어나고 있어요. 투기지역 전매제한도 있고, 의무거주기간도 두고요. 투기를 막자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처분권을 제한하는 거죠. 심지어 거주이전의 자유도 좀 제한한 셈이잖아요?
임예인: 오… 그렇네요.
최경호: 애초에 주거권과 재산권은 태생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래서 민법체계에서 특별법 식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있는 것이고요. 주택은 공공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일반적인 재화처럼 다룰 수도 없는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거죠. 토지에 고착되어 있고, 누구나 필요하고, 등의 이유로요.
임예인: 한국이 특히 부동산 소유주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건 아닌 건가요?
최경호: ‘임대용으로 쓰는 한, 성실한 세입자는 계속 살 수 있다’는 게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신에 임대인에게 계약해지권을 주면 됩니다.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면 정당하게 해지할 수 있도록이요. 네덜란드도 마약을 재배한다거나(…) 하면 무기계약인 경우도 계약해지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임예인: 임대차3법으로 인해 전세 종말이 올 거라는 전망도 있는데요.
최경호: 그렇죠. 무기계약을 향해갈수록 생기는 문제가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될 거라는 점인데요. 그건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해요. 임대차3법으로 그 속도가 조금 빨라졌을 순 있어도요. 1995년만 해도 전세가 30%, 월세가 15%로 전세가 훨씬 많았지만, 그런 시대는 한참 전에 끝났어요. 임대차3법 도입 이전인 2019년에 이미 전세가 15%, 월세가 23%였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전세의 시대는 갔다’고 한 게 2016년 국정과제 세미나때입니다. 그래서 뉴스테이도 시작했구요.
임예인: 하지만 임대차 3법이 전세 종말을 더 가속화한 건 사실이지 않나요?
최경호: 임대차3법으로 전세가 줄어들 걸 걱정할 게 아니라, 이미 월세시대는 도래했고, 월세시대에 꼭 필요한 제도가 임대차3법이라고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게 미래지향적입니다. 전세의 월세화는 다른 방식으로 대책을 세워야죠. 이 부분을 여당이 책임 있게 설명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마치 문제가 없을 것처럼만 이야기하니 역풍을 맞았지요.
「2022 대선, 부동산을 묻다: 최경호 인터뷰 2/3」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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